뉴스 불신의 시대

4월 21일, explained

손석희 특파원과 조선일보가 허위 광고에 이용되고 있다. 구글 때문이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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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온라인 공간에서 손석희 JTBC 순회특파원을 모델로 내세운 광고가 수시로 노출되고 있다. 클릭하면 조선일보나 경향신문, EBS 등의 언론사 홈페이지로 보이는 사이트로 이동된다. 실려있는 기사에는 손 특파원이 ‘360 Soft Bit’이라는 정체불명의 암호화폐 거래 프로그램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물론 허위광고다. 손 특파원은 광고주와 무관하다. 언론사 홈페이지도 허술하게 만들어진 가짜다.

WHY NOW

가짜뉴스라는 용어에 충분히 익숙해진 요즘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언론사와 언론인에 대해  어느정도 막연한 신뢰가 있다. 그런데 그 기반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돈 때문이다. 달라진 언론과 뉴스, 플랫폼 간의 역학 관계에 관해 알 필요가 있다. 진실을 알 권리를 계속해서 지키려면 말이다.

가해자와 피해자

손석희 특파원도, JTBC와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사도 피해자다. 그리고 무엇보다, 광고에 속아버린 모두가 피해자다. 그런데 가해자는 누구일까. 알 수 없다. 돈을 내고 광고를 집행한 사람이 분명히 있을 텐데, 피해를 본 언론사들은 그 가해자의 국적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구글이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해당 광고는 구글의 ‘애드센스’라는 중개 서비스를 통해 노출되었다. JTBC는 구글코리아에 내용증명을 보냈지만, 애드센스는 구글 본사가 관리하는 서비스로 구글 코리아와는 무관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가짜뉴스와 애드센스

2003년에 처음 등장한 애드센스는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블로그든 커뮤니티든, 사이트를 운영하는 누구라도 광고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구글의 콘텐츠 심사만 통과하면 자격을 얻을 수 있다. 반면, 애드센스는 가짜뉴스 확산의 주범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사이트에 접속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광고 노출 정도가 빈번할수록 더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다. 더 많은 방문자를 원하는 사이트 운영자들은 작정하고 자극적인 콘텐츠를 보여줘야 한다. 이때 가짜뉴스는 간편한 선택이 된다. 예를 들면 2016년 미 대선 당시 널리 퍼졌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트럼프 후보 지지 선언을 했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수니파 무장단체 ISIS에 무기를 팔아넘겼다” 등과 같은 것들이다.

마케도니아의 뉴스룸

이러한 가짜 뉴스는 여러 이유로 만들어진다. 비뚤어진 신념, 정치 선전, 자기만족. 그러나 역시 가장 큰 동기는 돈이다. 앞서 소개한 기막힌 가짜뉴스들은 마케도니아의 한 시골 마을 10대들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 미국의 대통령이 누가되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청소년들이었다. 손쉬운 광고 중개 시스템이 가짜뉴스를 쏠쏠한 수입으로 인코딩한다. 즉, 가짜뉴스를 배포하는 일이 하루에 수백만 원씩 벌 수 있는 황금광 개척이 되었던 것이다. 구글은 마케도니아 10대들에게 농락당한 피해자일까, 아니면 어떤 콘텐츠가 생산되어 소비되든 방관한 채 광고 중개 수수료만 챙겨 간 가해자일까.

신뢰라는 가치와의 결별

애드센스가 쏘아 올린 새로운 광고 패러다임은 이렇게 ‘뉴스’에 대한 신뢰를 추락시켰다. ‘뉴스’와 ‘사실’이 동의어였던 시대가 끝난 것이다. 이제 ‘가짜 뉴스’는 그 개념을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일반 상식에 해당하는 용어가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논란이 되고 있는 손석희 특파원과 조선일보 등을 사칭한 허위 광고는 한 차원 더 나아간다. 특정 언론인과 매체의 탄탄한 공신력이 이토록 손쉽게 도용되어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뉴스로 쌓아 올린 신뢰를 간단히 훔쳐 쓸 수 있게 되었다. 애드센스와 같은 중개 플랫폼을 이용하면 정체를 숨기는 것도 간단하다. 이대로라면 어떤 언론인도 매체도, 뉴스의 신뢰도를 보증할 수 없게 된다.

1조 원짜리 가짜뉴스

뉴스 불신의 시대에 언론은 무엇을 동력 삼아 존재를 이어가게 되는 것일까. 미국의 ‘폭스 뉴스(FOX NEWS)’가 지불하게 된 1조 원대의 배상금이 최근의 경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폭스 뉴스는 지난 2021년 3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패배한 2020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투표 기계가 선거 조작에 기여했다는 내용을 방송했다. 대선에서 패배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장하던 내용이다. 그러나 언론사의 간부들은 그 주장이 ‘음모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결국, 폭스 뉴스는 투표 기계 업체에 막대한 배상금을 지급하게 되었다.

뉴스의 생살여탈권

미국 명예훼손 소송에서 공개 된 합의금 중 역대 최고액이다. 작년 폭스 뉴스가 벌어들인 수익의 약 4분의 1에 해당한다. 그런데 폭스 뉴스 측의 반응이 침착하다. 이유가 있다. 이 언론사가 배상금보다 두려워하는 것은 따로 있다. 시청자 이탈이다. 2020년 대선 이후, 폭스 뉴스에서 트럼프 대통령 측의 선거 조작 의혹 제기에 반박하는 리포트가 여러 차례 방송됐다. 그러자 트럼프는 지지자들을 향해 신생 방송사인 ‘뉴스맥스(Newsmax)’, ‘원 아메리카 뉴스(One America News)’ 등으로 옮겨가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날 폭스 채널의 모회사 뉴스 코퍼레이션의 주가는 6퍼센트 하락했다. 프라임 시간대 시청자도 37퍼센트 이탈했다.

팬덤이 원하는 것

폭스 뉴스는 사실을 보도한 대가로 휘청였다. 그래서 시청자가 원하는, ‘대안적 진실’을 방송했다. ‘믿을 수 있는 뉴스’는 상품이 되지 못했고 ‘믿고 싶은 뉴스’는 상품이 되었다. 결국 언론이 기대는 것은 이제 신뢰가 아닌, 팬덤이다. 어차피 뉴스도, 언론인도, 매체도 믿을 수 없게 된 시대의 당연한 풍경일지도 모른다.

IT MATTERS

이번 허위 광고 사태의 피해 매체 중 하나인 경향신문은 사실을 알게 된 즉시 구글 측에 광고 차단을 요청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해당 광고가 무작위로 게재되는 광고이기 때문에 사전 차단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구글은 수수료를 챙겨가고 있으되 어떤 광고를 내보낼지, 차단할지를 결정할 수도 없다는 얘기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구글은 스스로 통제할 수도 없는 광고 사업으로 돈을 벌고 있다.

폭스 뉴스도 마찬가지다. 2016년의 마케도니아 10대들과 폭스 뉴스의 목적의식은 다르지 않다. 팔릴 이야기를 만들어 판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정보의 가치는 올라도 사실의 가치, 언론의 가치는 추락한다. 손석희 특파원도, 조선일보도, 경향신문도 글로벌 광고 플랫폼 앞에 언론의 체면을 지킬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언론과 뉴스, 플랫폼 간의 역학 관계가 재정의되고 있는 지금, 중요한 것은 믿고 싶지 않은 것도 믿을 수 있는 용기일지 모른다. 나의 의견과 다른 관점에도 성의 있게 귀를 기울이는 성실함일지 모른다. 그리고 플랫폼의 책임감을 요구하는 행동력일 지도 모른다.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용어로 간편하게 정리하기에는 수고로운 일들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진실을 알 권리, 속지 않을 권리가 있다. 누구도 대신 지켜주지 않는 권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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