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 내전이 시작된 이유

4월 25일, explained

전쟁은 힘과 돈 때문에 시작된다. 그런데 21세기, 또 다른 이유가 추가되었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NOW THIS
 
대탈출이었다. 현지 시각으로 어제, 아프리카 수단에서 우리 교민과 대사관 직원들이 탈출했다. 탈출 경로는 직전까지 비밀에 부쳐졌다. 수도 하르툼에서 동북쪽으로 약 800킬로미터 떨어진 포트수단으로 이동한 뒤 비행기에 탑승했고, 홍해를 건너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 공항에 착륙했다. 영화 같은 과정이었다. 우리뿐만이 아니다. 미국, 사우디,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세계 각국이 자국민 대피를 위해 ‘작전’을 펼쳤다.

WHY NOW
 
목숨을 건 탈출은 수단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 때문이다. 지난 15일부터 정부군과 신속지원군이 충돌하고 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준군사조직에 해당하는 신속 지원군을 정부군에 언제 통합하느냐의 문제다. 정부군 측은 2년을, 신속지원군 측은 10년을 주장한다. 그런데 애당초 왜 하나의 나라에 두 개의 군대가 들어선 것일까. 왜 이토록 잔인한 내전이 시작된 것일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진짜 이유가 보인다. 수단의 내전 상황이 결코 남 일이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다윗과 골리앗의 충돌
 
생지옥이다. 병원이 점령당하고 주택가 골목까지 군인들이 진격한다. 하늘에는 전투기가 날고 공습으로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은 울부짖고 있다. 시민으로서는 가장 상상하고 싶지 않은 형태의 전쟁이다. 아프리카 북부의 거대한 국가, 수단의 현재 상황이다. 2019년, 독재자 오마르 알바시르를 30년 만에 축출하고 이제 겨우 4년이다. 이번에는 군벌 간의 다툼이다. 엘리트 출신으로 정부군을 이끄는 일인자, ‘압델 파타 부르한’과 낙타 목동 출신으로 신속지원군(RSF)을 이끄는 이인자, ‘모하메드 함 단 다갈로’의 충돌로 일주일 만에 4천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바그너그룹
 
신냉전 때문이다. 서방 세계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러시아가 수단의 내전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목동 출신의 다갈로 장군이 이끄는 신속지원군을 러시아 민간군사기업 ‘바그너그룹’이 지원하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바그너 그룹은 무자비한 학살로 악명 높은, 이른바 ‘용병 그룹’이다. 바그너그룹이 수송기를 동원해 다갈로 장군 측에 지대공 미사일을 제공했다거나 신속지원군 부대원을 바그너그룹이 훈련시켰다는 등의 외신 보도가 쏟아진다. 수단 내전이 러시아와 서방 세계 간의 대리전 양상으로 치닫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푸틴의 PLAN B
 
사실 러시아는 냉전이 끝난 이후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을 접었다. 그런데 러시아와 서방 세계와의 갈등이 판도를 바꿨다. 시작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합병이다. 서방의 제재가 본격화하자 자원이 풍부한 아프리카 국가들에 손을 뻗치기 시작한 것이다. 2019년에는 처음으로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같은 해 폭로된 문서를 보면 수단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마다가스카르와 함께 러시아 협력 수준 ‘최고’ 등급으로 꼽힌다. 다갈로 장군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하루 전 모스크바를 방문하기도 했다. 지금 러시아는 수단에 해군 기지를 건설 중이다. 수단을 손에 넣으면 홍해에서 아프리카 내륙까지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에 들어간다. 그러나 러시아가 수단을, 그것도 목동 출신의 다갈로 장군을 집중 관리하는 까닭은 따로 있다.
 
황금의 나라
 
금 때문이다. 수단은 세계 3위의 금 매장량을 자랑한다. 아프리카의 최빈국 중 하나인 수단을 러시아가 신경 써 관리하는 이유다. 지난 2022년, 러시아는 바그너그룹을 통해 수단 금광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러시아가 엘리트 출신의 일인자인 부르한이 아니라 이인자인 다갈로 장군의 신속지원군 편에 선 이유도 금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신속지원군을 앞세운 다갈로 장군의 집안이 수단 서부의 다르푸르 지역을 중심으로 세 곳 이상의 금광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내전은 이 금광 통제권을 둘러싼 일인자와 이인자 사이의 충돌로도 해석될 수 있다.
 
목동의 출세 비법
 
그렇다면 대체 낙타를 치던 다갈로 장군은 어떻게 금광을 손에 넣고 신속지원군이라는 준군사조직까지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일까. 다갈로는 이웃 국가인 차드에서 분쟁과 가뭄을 피해 수단으로 건너왔고, 다르푸르 지역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2003년, 다르푸르에 분쟁이 일어난다. 다양한 문화와 정체성, 인종적 배경을 지닌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격화하자 당시 집권 중이던 독재자 알바시르 정권은 아랍계 무장 민병대 ‘잔자위드’를 조직하고 비아랍계 부족들을 거의 학살했다. 이때 다갈로는 이 민병대에 합류한다. 그리고 학살의 현장에서 공을 쌓아가며 입지를 쌓았다. 다갈로 장군 치하의 신속지원군은 이 민병대 조직을 기반으로 2013년 창설되었다.
 
2003년, 다르푸르
 
기후 위기 때문이다. 목동 출신의 다갈로 장군이 출세의 기회를 잡은 것도, 수단의 금광을 손에 넣게 된 과정도 모두 기후 위기로 인한 가뭄이 그 시작이었다. 아프리카의 반듯한 국경선은 제국주의의 부끄러운 흔적이다. 그 흔적과 관계없이 대륙 안에서 다양한 부족이 이동하고 섞이며 공존한다. 그런데 기후 위기로 사람이 절박해지면 공존은 사치가 된다.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게 되고 불공평한 통치에 살기 위해서라도 반기를 들게 된다. 2003년, 다르푸르의 비아랍계 주민들이 그랬다. 오랜 가뭄으로 사하라사막이 커지고 목초지가 줄어들자, 아랍계 무슬림 유목민들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충돌이 시작되었다. 가뭄으로 인한 사막화, 이것이 3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다르푸르 대학살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한 목동이 수단이라는 국가의 이인자로 거듭나게 된, 성공 신화의 시작이기도 했다.
 
전쟁의 뉴노멀

기후 위기는 직접 발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으로 하여금 기어이, 발포하게 한다. 가뭄이나 홍수로 인해 기후 난민이 발생하게 되면 ‘타인의 고향’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다. 생존을 건 여정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침략이 된다. 그렇게 분쟁이 시작된다. 이미 연구 결과로 증명된 얘기다. 지난 2016년, 미국 국립과학원회보에 따르면 가뭄 등의 기후 위기는 종족 간 분쟁 확률을 23퍼센트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리아 내전도, 소말리아 내전도 시작은 가뭄이었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사하라 사막 남쪽 사헬 지역에서 테러 단체들이 조직원을 손쉽게 충원하고 있다며, 그 원인을 기후 변화로 인한 생활고라고 지적했다.

IT MATTERS
 
존 레넌의 〈Imagine〉은 너무 순진무구한 음악일지도 모르겠다. 살인도, 희생도, 종교조차 없는 그런 곳을 상상해 보자니 말이다. 그러나 인간은 희망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동물이다. 지난 2007년, U2, 그린데이 등 세계적 아티스트들이 모여 《Instant karma : Save Darfur》라는 앨범을 발매했다. 존 레넌의 순진한 상상력을 되살려 다르푸르 지역의 평화를 기원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2023년, 수단에는 또다시 총성이 울리고 있다.
 
그렇다면 순진하지 않은, 냉정한 시선으로 수단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무엇이 이 전쟁을 시작했는가. 기후 위기였다. 기후 위기가 분쟁을 시작했고, 분쟁이 대학살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다갈로라는 돌연변이 군벌이 탄생했다. 군사력은 황금으로, 황금은 다시 권력으로, 권력은 다시 푸틴으로 이어진다. 한 마을의 평화가 깨지면 이렇게 잔인한 나비 효과가 퍼져나가는 시대다.

그래서 우리에게 수단의 내전은 남 일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기후 위기의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은 지금 중국과, 러시아와 헤어질 결심을 목전에 두고 있다. 영리한 외교는 무엇인지, 2023년의 국제 분쟁의 시작과 전개 과정은 어떤 모습인지 깊이 생각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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