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시민을 위한 교통인가

4월 26일, explained

유류세 인하와 대중교통비 정책은 둘 다 민생을 말한다. 그런데 각자가 말하는 민생은 다르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NOW THIS

정부는 유류세를, 정의당은 대중교통비를 잡는다. 24일, 정부는 현행 유류세 인하 조치를 8월 말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당초 4월 30일까지였던 이 조치를 연장함으로써 휘발유 25퍼센트, 나머지 경유 등이 37퍼센트 인하된 세율을 적용받게 된다. 같은 날,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대중교통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소위 ‘대중교통 3만원 프리패스법’이라고 불리는 이 법안이 통과되면 3만 원짜리 교통 패스로 한 달 동안 지역 내 모든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게 된다.

WHY NOW

유류세 인하는 2021년 11월부터 시작하여 네 차례나 연장되었다. 언제나 민생이 이유였다. 화물운수업 종사자들이 있고, 화물 운송에 기대어 물건을 제공받는 소상공인이 있기 때문에 유류세를 줄이면 전반적인 물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런데 유류세 인하가 외면하는 것도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유류세 인하로 인해서 직접적인 세금 인하를 경험하는 자동차 이용자들과 달리, 대중교통 이용자들은 이를 체감하려면 너무 먼 길을 돌아야 한다. 그들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세금 혜택에서 소외된다.

교통과 세금의 형평성

대중교통법을 발의한 정의당의 제안 이유도 민생이다. 최근 물가 상승으로 가계 부담이 늘어난 가운데, 가계 소비 지출에서 16퍼센트를 차지하는 교통비가 시민들의 경제에 많은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서울시는 하반기 대중교통 요금 인상을 추진 중이니, 그 부담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니 대중교통 패스 도입으로 유류세 인하와 형평성을 맞추자는 것이다. 자동차 탑승자와 대중교통 이용자들의 형평성 문제는 실제로 세금에서 확인된다. 2021년, 정부는 교통시설특별회계(교특회계) 세출의 61퍼센트를 도로에 배정했다. 자동차 운행에 대한 환경 부담금으로 걷은 세금을 다시 자동차를 위해 쓴다는 비판이 일었다. 정의당은 교특회계를 공공교통특별회계로 전환하여, 도로 건설 용도로 주로 쓰이던 돈을 대중교통 확대 용도로 전환하려고 한다. 우리가 너무 자동차를 위한 환경에 집중해 왔다는 이유다.

자동차의 나라

한국은 자동차의 나라다. 자동차 등록대수는 꾸준히 늘어, 국민 두 명 중 한 명은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다. 우리의 교통 체계는 자동차를 중심으로 꾸려져 있다. 50년 전에 설계된 서울 강남도 자동차 교통을 중심에 두고 계획된 곳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의 생리에 자동차는 잘 어울린다. 자동차는 나를 이동하게 함으로써 출근시키고, 여행을 가능케 한다. 손에 짐을 덜고 어딘가에 앉음으로써 몸을 편안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럼으로써 자동차는 도시민에게 더 많은 가능성과 상상력을 부여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같은 활동을 하더라도 대중교통에 비해 자동차에서 하는 활동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질적으로 따졌을 때 승용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의 질이 높기 때문이다. 소득 수준 높은 도시민들의 승용차 사랑은 현재진행형이다.

대중교통의 슬픔

한편 도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대중교통을 탄다. 최근 김포 골드라인에서는 혼잡도가 너무 높아 승객들이 실신하는 사고가 있었다. 승객들 중 혼잡한 지하철에 끼어 타고 싶어서 타는 시민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다들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꾸역꾸역 열차에 몸을 집어넣을 뿐이다. 승용차에서의 쾌적한 경험을 대중교통에서는 느끼기 힘들다. 김포 골드라인처럼 극단적인 사례까지 가지 않아도, 도시민들은 대중교통 내에서 자기만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최근 음향 기기와 관련하여 주목받는 기능은 외부 소음을 차단하는 노이즈 캔슬링이다.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헤드폰을 통해 소음이라도 차단시키고 싶어 한다. 내 몸이 존재하는 공간만큼이라도 다른 사람의 존재 없이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하나의 방안이다.

15분 도시

소규모의 도시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자는 15분 도시 아이디어가 실현된다면 대중교통에서의 불쾌감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카를로스 모레노 교수가 처음 만든 이 아이디어는 2020년에 프랑스 파리가 도입한다고 발표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자전거를 타거나 도보로 이동해서,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15분 안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동네를 구획하겠다는 계획이다. 15분 안에 자기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해결하고, 도시에서 점차 자동차를 없애는 걸 목표로 한다. 15분 도시에서는 오히려 자동차를 이용하는 게 불편해진다. 그런데 15분 도시가 가능하려면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직장과 집이 가까워야 한다.

경기도의 상징, 빨간 버스

한국 도시의 구성 방식으로는 15분 도시 실현은 어렵다. 일자리와 인프라가 몰린 거점 도시와 그 주변의 위성 도시가 위계를 띠는 방식으로 국토와 도시 계획을 했기 때문이다. 서울에 일자리가 있고, 김포나 고양 등 경기도에 시민들이 거주하면서 출퇴근하는 구조를 띤다. 도시의 위계는 이미 공고하기 때문에 해체할 수도 없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지어진 도시에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매일 두 시간씩 비싼 교통비를 내고 빨간 버스를 타는 사람들의 삶도 지킬 필요가 있다. 경기도에서 서울까지 대중교통을 타고 출퇴근을 하는 건 어떤 사람들일까. 연령별로는 청년층, 소득별로는 소득이 낮고 고용이 불안정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교통이 고통’이다. 광역버스가 입석을 금지했을 때 시민들은 동이 트기 전부터 교통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다시 유류세 인하 문제로 돌아가면, 이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대중교통 이용자들이 보기에는 자동차를 몰 수 있는, 도심 빌딩의 주차비를 감당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9유로 티켓

독일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로 에너지 가격이 오르며 유류세 인하 조치가 시행되었고, 지금의 우리처럼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다. 정부가 내놓은 것은 9유로 티켓이었다. 한국 돈으로 약 1만 원에 해당하는 9유로를 내면 한 달 동안 모든 대중교통을 탈 수 있는 시스템이다. 작년 여름 90일 동안의 이 실험을 통해, 대중교통 승객 수는 전년 대비 29퍼센트 증가했다. 효과를 입증받아 5월부터 비슷한 개념의 49유로 티켓을 상설화한다. 오스트리아에서도 기후 티켓을 도입한다. 독일의 아이디어는 세계에 퍼지고 있다.

교통이 해결하는 것

9유로 티켓 도입 이후 독일에서는 무임승차자가 줄었다. 개찰구에서부터 티켓을 자동으로 확인하는 우리와 달리 검표원이 불시검문하는 독일은 무임승차 시 60유로의 벌금, 세 번 적발 시 기소될 가능성도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무임승차를 했다가 걸리기라도 하면 당장의 벌금도 그렇지만 처벌을 받을 수 있어 골칫거리였다. 그런데 요금을 줄여버림으로써 무임승차가 일어날 가능성 자체를 줄인 것이다. 환경 영역에서의 효과도 있었다. 세계경제포럼은 9유로 티켓으로 인해 탄소 180만 톤이 감축됐다고 발표했다. 9유로 티켓으로 인해 줄어드는 교통 세수는 어디서 메꿀 수 있을까. 녹색당은 탄소를 배출하는, 법인 차량에 세금을 부과하려고 한다.

IT MATTERS

이동 분야에서의 탄소 저감은 쉽지 않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통계를 보아도, 다른 많은 부문이 감축에 성공할 때 교통 부문의 탄소 배출량은 2021년에 비해서 2022년 2.1퍼센트 증가했다. 이마저 전기차가 없었다면 작년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300만 톤 더 높았을 것이다. 그러면 전기차 전환은 답이 될까.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 전기를 만들기 위한 발전 시설에 쓰이는 화석연료 때문이다. 결국 자동차를 줄여야 한다. 우리가 이동량과 이동 거리를 줄일 수 없다면, 이동하는 사람당 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대중교통이다.

탄소 배출을 줄이면서도 이동권 불평등이나 불편이 강화되면 안 된다. 독일 9유로 티켓 도입 당시에도 늘어난 교통량을 감당하지 못해 이동이 불편해졌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노조 연합 베르디(ver.di)도 아이디어 자체에는 환영 입장을 밝혔지만, 서비스 확대와 인프라 투자, 그리고 노동자들의 근무 조건 향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용자가 많아지면 그만큼 목소리가 커진다. 대중교통 이용자를 늘림으로써 시설에 대한 요구가 많아지고, 인프라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가진 자원은 한정적이다. 정치의 역할은 그 한정적인 자원을 사람들의 욕망과 실제 필요에 맞게 적절히 분배하는 것이다. 어딘가에 돈을 끌어오려면 다른 어딘가에서는 줄여야만 한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가진 자원을, 시민들의 발인 대중교통 대신 개인의 자가용에 더 쓰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의 마음과 지갑 사정, 기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말이다. 모빌리티 이론가 팀 크래스웰은 “모빌리티란 단순히 A지점에서 B지점으로의 이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GPS상으로는 단순히 A에서 B로 좌표를 이동한 것에 불과한대도, 우리 각자는 A에서 B로 옮겨가는 사이에 많은 것을 경험하고 있다. 이동 외의 것들 말이다. 무엇을 타고, 어떻게 갈 것인지 사유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