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바꿀 노동의 모습

5월 8일, explained

인공지능은 어느새 노동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 합의 없는 움직임에, 인간의 노동은 위기를 맞았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NOW THIS

인공지능(AI)의 일자리 위협이 현실로 다가온다. 미국 IBM은 향후 5년간 7800개의 일자리를 사람이 아닌 AI로 대체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장 인력을 해고하는 건 아니지만, 채용을 중단하거나 미루는 식이다. 영향을 받는 것은 백오피스 사무직의 30퍼센트다. 이들은 고객을 상대하지 않으며, 고용확인서 발급 등 일상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완전 자동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WHY NOW

AI가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이야기에 우리는 막연히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다. IBM은 처음으로 구체적인 숫자를 내놓았다. 지금은 7800개의 일자리다. 앞으로는 숫자 단위부터 달라질 것이다. 지난 1일, 세계경제포럼(WEF)은 앞으로 5년 안에 전 세계에서 83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발표를 내놓았다. 역시 AI 때문이다. 인간 노동의 위기가 코앞으로 다가온다.
인간 노동력, 낙관론과 비관론

새로운 도구는 인간의 노동을 언제나 효율적으로 만들어왔다는 점에서, 인공지능 역시 인간의 효율적인 도구가 될 것이다. 이로 인해 인간의 일자리는 사라질까. 낙관론과 비관론이 공존한다. WEF는 2018년에 75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더라도 1억 3300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창출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2023년 5월 1일에는 83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6900만 개가 새로 생길 것이라고 발표했다. 5년 만에 경제학자들이 입장을 바꾸었다. 사라지는 일자리가 더 많을 것이라고.

인간의 자리에 앉은 AI

첫 번째 문제는 어디서 줄고 어디서 늘어날 것이냐다. 데이터 분석가, 개발자, AI 전문가 등 기술직이 새로 생기고, 경영자나 운영 관리자 등이 살아남을 것이라 예상되었다. 사라지는 일자리는 은행 창구 직원, 사무보조, 비서 업무 등이다. IBM의 최고경영자(CEO) 아르빈드 크리슈나 역시 콕 집어 사무직을 이야기했다. 현재 파업 중인 미국 할리우드 작가들은 제작사가 대본 작성에 AI를 활용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AI가 방송 제작 현장에 도입되어 인간 작가 대신 대본을 쓴다면 어떨까. 대형 언어 모델을 학습한 AI는 금세 기존 대본을 소화하고 새로운 에피소드를 쓸 것이다.[1] 2017년에 전문가들은 AI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를 쓰게 되는 시점을 2049년이라 보았다. 어쩌면 지금의 AI는 인간 작가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를 쓸지도 모를 일이다.

AI 노동이 회사에 주는 효율

작가들이 AI를 거론하며 파업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초기 개발비를 감당할 수만 있다면 AI는 회사에게 싸고, 능력 있고, 고분고분한 노동자가 되기 때문이다. 회사는 AI에게 인간 노동자처럼 지속적인 임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 AI는 계약 조건 수정이나 연봉 협상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이에 불만을 품고 파업할 일도 없다. 인간의 노동력은 일반적인 상품과 다르다. 숫자로 정량화하기 힘들고, 한 번 관계를 맺고 나면 법적인 제약이 없더라도 해고하기 쉽지 않다. 기업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 사람을 채용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기계가 노동하게 되면 회사가 인력을 관리하는 과정이 삭제된다. 대신 휴대폰을 고르듯 기계를 고르고, 휴대폰 소프트웨어 업데이트하듯 기계를 업그레이드함으로써 비용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가능한 청사진, 양극화

AI를 기준에 두고 보았을 때, 인간의 노동은 기계가 하기에는 너무 어렵거나 중요한 노동, 혹은 기술을 쓰기에는 너무 저렴한 노동으로 분류된다. 노동의 측면에서 이는 단순히 화이트칼라-블루칼라 노동자가 나뉘는 문제가 아니다. 중숙련 사무직 대다수가 일자리를 잃으며 화이트칼라 직군이 경영자 및 개발자 극소수로 줄어드는 반면, 블루칼라로 대변되는 저숙련 노동자의 수가 늘며 힘의 불균형과 집중도가 심화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AI 개발로 늘어나는 저숙련 노동자 중에는 AI가 학습할 데이터 뭉치의 거름망 역할을 하고, AI의 실수를 보조하는 이른바 ‘미세노동자(microworker)’가 있다. 챗GPT 개발을 위해 케냐의 텍스트 라벨링 노동자들이 시간당 최대 2달러를 받으며 AI가 학습할 데이터를 분류해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현재 인구 감소로 노동력 부족을 겪고 있는 선진국들은 이민의 문턱을 낮추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 역시 대학을 졸업하고 소프트웨어를 짤 수 있는, 그래서 기계로 대체되지 않을 고숙련 노동자이다. 발빠른 노동자들은 이 전환기에 살아남기 위해 대학에 다시 진학하기도 하고, 본업 외에도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며 대체 불가 인력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사회의 총비용이 올라가는 셈이다.

초거대기업, 초거대국가

AI 경쟁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막대한 개발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소수의 빅테크 기업들이다. 국내에서도 네이버나 카카오가 인공지능을 개발하려 나서고 있지만, 해외 빅테크들은 벌써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기본 검색 엔진을 두고 경쟁할 정도로 스케일이 거대하다. 기술적으로 AI가 인력을 대체할 수 있게 되어도, 그것을 당장 적용하는 것은 서울의 작은 스타트업이 아니라 미국의 IBM 같은 빅테크 기업이다. 그들은 AI가 주는 생산성을 챙기고, 인건비와 임금 협상을 위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자연스럽게 AI 노동으로 인한 효과는 빅테크에 집중되고, 빅테크가 터를 잡은 국가의 세금과 부로 이어진다.

AI는 누구의 것인가

더 중요한 것은, AI 기술이 빅테크에 집중되어 있지만 AI를 만든 것은 우리 모두라는 점이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은 최근 자사 API에 접근하는 기업에 요금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레딧의 CEO 스티브 허프먼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레딧에 있는 말뭉치들은 정말 가치가 크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가치를 소수의 대기업에게 무료로 제공할 필요는 없다.” 할리우드 작가들은 AI와 관련한 저작권 제도가 아직 미비하다는 점을 도입 반대의 근거로 든다. 제작사가 인공지능 작가를 도입할 때, 기존 대본을 학습한 AI가 새로운 에피소드를 만들어낸다면 과연 그 저작권은 누구에게 속하냐는 것이다. 오리지널 대본을 쓴 인간 작가라 말하기도, AI를 실행시킨 제작사라 말하기도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기본소득 아이디어와 로봇세

그래서 실리콘밸리에서 기본소득 아이디어가 유행한 것이다. OpenAI의 샘 알트먼은 2021년, 돈이 기술과 토지에 집중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렇기 때문에 AI로 인해 돈을 벌어들일 기업에 세금을 부과하고 이를 시민과 분배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빌게이츠도 일찍부터 로봇세를 주장해 왔으며, 한국은 2017년 ‘생산성 향상시설 투자세액공제’ 축소를 통해 자동화 시설의 조세 혜택을 줄임으로써 일종의 로봇세를 도입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거대 기업은 시민들의 데이터에 기대어 AI를 개발하고 있다. 즉, AI는 시민으로부터 나온 것이기에 이를 통해 얻은 부를 사람들에게 돌려줄 필요도 있다. 국가는 세금과 재분배를 통해 그것을 조정할 능력과 의무가 있다.
  

IT MATTERS

AI가 개발될 당시 기계가 노동력을 대체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 일각에서는 이를 산업화 시절의 러다이트 운동처럼 바라보았다. 시대에 뒤떨어지고 경제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는 시각이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인공지능은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의 속도로 발전한다는 점이다. 딥러닝 개념을 고안한 ‘AI 대부’ 제프리 힌턴은 이제 와서 “킬러 로봇이 걱정된다”는 말로 인공지능의 능력에 대해 경고하며 구글을 떠났다. 일론 머스크와 스티브 워즈니악도 AI 기술에 검토가 필요하다며 개발 속도를 늦추라는 공개 서한을 발표했다. 인공지능 발달은 노동의 틀을 바꿀 것이다. 하지만 AI가 개발된다고 해서 누구도 노동하지 않는 시대는 오지 않는다. 우리가 접하는 모든 것은 결국 인간이 빚어낸 것들이기 때문이다. 인간 노동 낙관론에 맞게 사람들은 어떤 방식이든 노동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비관론의 지적처럼 그 노동의 형태와 수입, 만족도는 인공지능 도입으로 매우 달라질 수 있다.

불안한 현재와 필연적인 미래 사이에 우왕좌왕하는 과도기가 있다. 정말로 준비할 것은 이 과도기다. 노동자를 해고한 기업은 비용을 줄임으로써 경영에 대한 책임을 졌다고 할 수 있지만, 사회의 책임은 그때부터 시작이다. 사회는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가 방치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절실히 느꼈듯, 외부적인 조건으로 사람들의 삶이 변화할 때 그것을 조정하고 충격을 완화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자 역할이다. 전 영역에 AI가 도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부분적으로는 AI가 이용하는 데이터의 저작권 문제부터, 크게는 AI 개발로 인해 직업을 잃는 사람들을 재교육하거나 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를 보호할 방법, 국가 간에 벌어지는 격차 문제까지 촘촘한 논의가 필요하다. 기술은 과연 논의를 기다려줄까.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이세돌 9단에 대한 알파고의 승리처럼, AI의 노동은 합의 없이 갑자기 사회에 닥쳐올지 모른다.
[1]
이를 ‘퓨샷러닝(few-shot learning)’이라고 한다. 데이터를 대량 학습한 초거대 AI는 소량의 데이터만 추가 학습해도 정확도가 높은 결과를 제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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