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포화 시대의 기술

5월 11일, explained

은퇴 이후의 삶을 책임지기에 지금의 안전망은 너무 헐겁다. 기술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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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세 이상 커뮤니티를 위한 핀테크 스타트업 ‘찰리(Charlie)’가 출범했다. 노인을 대상으로 한 사회적 혜택 보장, 월 수수료 감면, 보관 잔액에 대한 3퍼센트의 이자 제공 등의 서비스가 포함됐다. 노인의 시각적, 신체적 제한을 고려해 노인 사용자에게 친화적인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택하기도 했다.

WHY NOW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한 상황에서 더 많은 이들이 노인이 된다. 생명 연장을 목표로 하는 의학 기술의 발전은 그 흐름을 가속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약적으로 빠른 사회의 변화는 더 많은 노인을 사회의 중심에서 배제하고 있다. 사회적 안전망의 지속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어쩌면 이들을 포용하는 기술이 노인을 주체로 만드는 대안일 수 있다.

모두가 노인인 시대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901만 8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17.5퍼센트에 달한다. 65세의 기대 수명은 21.5년이다. 이들이 평균적으로 86세까지 생을 이어 간다는 말이다. 모두가 저출생에는 관심을 기울이지만, 고령의 미래는 준비하지 못한다. 노인을 향한 안전망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사회 전체가 빠르게 붕괴할 수 있다.

달라진 노인들

미래의 노인은 어떤 모습일까? 정의할 수 없다가 답이다. 원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들이 경험했던 급격한 기술적 변화와 그에 대한 적응, 그리고 또 하나는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의학계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고속도로 건설로 가능했던 이동성의 증대부터 스마트폰의 출현, AI의 자동화 시대까지를 경험하고 있다. 은퇴를 앞둔 5060 세대의 60퍼센트가 하루 세 시간 이상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으로 드러날 정도로, 이들은 달라진 시대에 시시각각 적응하고 있다. 수명 연장의 기술은 더욱 고도화하고 있다. 일라이릴리가 개발한 ‘도나네맙(donanemab)’은 알츠하이머 진행 속도를 36퍼센트 지연시킨다. 노인을 위협하는 질병은 상당 부분 극복될 것으로 보인다.

무력한 미래와 배제되는 노인들

지금의 사회는 무거운 노년층을 감당할 수 있을까? 미래는 밝지 않다. 국민연금은 2041년 적자를 앞두고 있고, 2055년에는 소진될 예정이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자산 중 80.9퍼센트는 부동산이다. 노후 자금의 유동성 제약이 심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거시 경제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수도권 바깥 지역 사회의 인프라는 빠르게 감소한다. 병원에는 간호사가 없고, 공장에는 노동자가 없고, 농촌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가득하다. 사회에는 스마트폰을 활용하는 노인도 있지만, 다닐 병원이 없는 노인도 있다. 다양한 삶의 형태를 가진 노인을 보호하기에 기존의 사회적 안전망은 충분히 민첩하지 않다. 

미디어가 정의한 노인, 수혜자

빠른 변화와 헐거운 안전망 위에서 많은 노인이 배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항상 사회적 혜택을 받는 수혜자로 정의됐다. 미디어와 뉴스에서 ‘노인’은 저출생 고령화 시대의 골칫거리로, 은퇴 이후에 사회적 복지 시스템으로 연명해야 하는 대상으로 소환된다. 이들은 쉽게 대중교통 적자의 원인으로 지목되며, 부적절한 정치적 태도를 가진 보수적 대상으로 묘사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부를 창출하지 못하는 대상은 힘을 가진 주체로 나서기 쉽지 않다. 노인에 대한 깔린 얼마간의 혐오는 이들에 대한 대상화와도 멀지 않은 문제라는 뜻이다.

초저임금 일자리

사회적 혐오와 배제 사이에서도 노동하는 노인은 크게 늘고 있다. 1996년 5퍼센트였던 75세 이상 노동자는 2026년 11퍼센트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생계를 위해 노동을 이어 나가야만 하는 노인은 점차 늘어나지만, 이들을 떠받칠 안전망은 없다. 한국에서는 그들이 가진 능력, 의지와 무관하게 저임금 일자리로 내몰리는 고령 노동자가 늘고 있다. 《동아일보》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최저임금보다 적은 급여를 받은 근로자 275만 명 중 45.5퍼센트가 60세 이상이었다. 고령의 노인들이 소모적인 일자리에만 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 안전망의 지속 가능성

사회의 재정적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미국 베이비부머 세대의 58퍼센트만이 퇴직 연금 계좌를 갖고 있다. 미국 민간 부문 노동자 가운데 근 절반인 5700만 명은 퇴직금이 없는 곳에서 일하고 있다. 여기에 늘어나는 의료 비용 부담까지 더하면 기존의 사회 안전망이 이들을 떠받치기는 어렵다. 사회의 직접적인 부를 창출하는 직종은 젊은 세대에게만 열려 있고, 은퇴 이후의 삶은 적은 연금으로만 보장돼 있다. 노동력 부족과 초저임금 고령 노동자가 공존하는 기형적 사회가 지금의 모습이다.

기술이라는 새로운 안전망

노인을 위해 등장하는 기술들이 느리고 무거운 사회 제도를 보완할 새로운 안전망으로 기능할 수 있다. 산업 현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증강 기술은 더 많은 노인들이 사회적 부의 생산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돕는다. AI와 로봇 등의 증강 기술을 통해 서비스직이나 단순 노동에만 동원됐던 노인들의 직업 선택의 폭을 늘릴 수 있다. 노인을 생각하는 UX 디자인만으로도 소외된 이들의 정보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 노인에게 친화적인 큰 글씨와 간략한 폰트, 쉬운 버튼 클릭, 직관적인 목표 설정, 생애주기에 대한 고려가 대표적이다. 코맥 맥카시의 2005년 작품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더 이상 노인들의 지혜가 기능할 수 없는 현대 시대를 비꼰다. 노인에 대한 이해가 전제된 기술은 어쩌면 노인을 위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
IT MATTERS

비대해질 노인의 더 나은 삶을 위한 기술은 멀리 있거나 타국의 스타트업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토스는 2022년 상반기, 시니어 전용 서비스를 도입했다. 50세 이상 사용자를 위해 토스의 앱 메인 화면을 단순하게 정돈했다. 더불어 노인을 위한 연금 및 자산 관리 방법, 건강 관리 콘텐츠 등 그들의 생애주기에 맞춘 부가 콘텐츠를 제공한다.

의료 공백과 돌봄 부담, 지역 격차를 줄이기 위한 IoT 서비스와 로봇도 주목받고 있다. ‘유카이 엔지니어링(Yukai Engineering)’에서 개발한 로봇 ‘보코 이모(Bocco emo)’는 의료용 IoT와 연결돼 환자의 바이털을 모니터링하고 간호 인력에게 상태를 보고한다. 로봇은 사용자의 말과 감정을 이해해 그에 맞는 음향 효과와 제스처를 제공하기도 한다. 11킬로그램을 운반할 수 있는 로봇 카트 ‘리트리버(Retriever)’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위해 세탁물과 음식, 물건을 집으로 배달해 준다. 거동이 어려운 이들도 쉽게 소비하고, 또 주체적으로 움직이도록 한다.

그런 점에서 노인을 위한 기술은 결국 모두를 위한 기술이다. 장기적 노동력 손실을 막고 사회적 비용을 줄인다. 은퇴한 이들이 새로운 도전을 하도록 격려하기도 한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늘어나는 노인을 소모적 대상이 아닌 기회로 바라봐야 한다. 인력 수입만이 인구 피라미드를 보완하는 유일한 대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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