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융합 기술의 미래

2023년 5월 12일, explained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들이 핵융합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핵융합이 성공하면 에너지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난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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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MS)가 핵융합 스타트업 헬리온(Helion)과 전력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헬리온이 2028년부터 매년 최소 50메가와트의 핵융합 전력을 MS에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헬리온을 포함해 현재까지 핵융합 발전 기술을 완성한 사례는 없다. 이번 계약은 의지와 신뢰를 기반으로 성사됐다.

WHY NOW

어떻게 보면 과감하고 어떻게 보면 무모하다. 핵융합 발전은 70년 가까이 ‘꿈의 기술’로 존재했다. 핵융합 발전이 성공하면 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면서 가격도 저렴한 전기를 거의 무제한으로 얻을 수 있다. 핵융합 발전은 5년이 걸려도 30년이 걸려도 성공만 한다면, 그야말로 에너지 패러다임을 바꿀 기술이다.


또 하나의 태양

1950년대부터 수많은 국가가 핵융합 발전을 상용화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했다. 70년이 지났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핵융합 발전을 이해하고 나면 헬리온의 약속이 허풍처럼 느껴질 정도다. 핵융합 연구는 지구에 가짜 태양을 만드는 실험이다. 같은 전하를 띄는 원자핵은 서로를 밀어내지만 엄청난 힘에 의해 융합되기도 한다. 섭씨 1500만도와 100억 기압이 만드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태양을 이루고 있는 수소 원자의 원자핵은 서로 충돌한다. 그러면서 만들어지는 에너지가 바로 핵융합 반응이다. 태양이 1초 방출하는 에너지는 지구의 모든 인류가 100만 년 쓰고 남을 정도다. 과학자들이 태양의 환경을 지구로 옮길 꿈을 꾸기 시작한 이유다.

토카막과 플라스마

온도는 높일 수 있었지만, 100억 기압에 달하는 환경을 만들기에는 기술이 부족했다. 과학자들은 온도를 1억도로 높여 기압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지구상에는 1억도를 버틸 소재가 아직 없다. 과학자들은 토카막이라는 도넛 모양의 장치를 만들었다. 가운데 수소를 띄우고 자기장을 이용해 제어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높은 온도 속에서 수소 원자의 원자핵과 전자는 분리되는데, 고체·액체·기체도 아닌 제4의 물질 상태인 ‘플라스마’가 만들어진다. 플라스마는 통제하기 힘들고 온도가 1억도를 넘는다. 플라스마에 닿은 토카막은 모두 녹아버린다. 핵융합 발전소를 24시간 가동하기 위해서는 플라스마를 최소 960초 동안 안정적으로 자기장 안에 가두는 기술이 필요하다.

민간 기업의 등장

우리나라의 핵융합 연구로 케이스타(KSTAR)가 플라스마를 30초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중국의 이스트(EAST)는 5000~6000만도에서 403초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1초만 늘어나도 박수를 받는 상황이다. 2022년 유럽 공동 연구진이 커피포트 60대를 끓일 수 있는 수준의 전력을 생성하며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핵융합 사업에 민간 기업도 뛰어들었다. 캐나다 핵융합 기업 제너럴퓨전(GF)은 토카막 없이 핵융합 에너지를 만드는 기술을 내세워, 10년 넘게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투자를 받고 있다. 트라이알파에너지는 구글과 손잡고 핵융합 장치에 알고리즘을 적용해 플라스마를 제어한다. 

오픈AI가 투자한 헬리온

2023년 5월 기준, 전 세계에서 운영 중인 민간 핵융합 기업은 최소 35개로 추정된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 등이 핵융합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2021년까지 핵융합 기업에 모인 투자액은 23억 7000만 달러다. 그리고 전체 투자액의 20퍼센트가 한 기업에 쏠렸다. 민간 기업 최초로 플라스마 온도 1억도를 달성한 헬리온이다. 플라스마 두 개를 충돌시키는 핵융합 엔진을 연구하기도 하고, 다른 기업들이 사용하는 삼중수소 대신 헬륨3를 사용할 계획을 전하기도 했다. 오픈AI의 CEO 샘 알트먼은 헬리온에 3억 7500만 달러, 우리 돈 약 5000억 원을 투자했다. 

꿈의 에너지

실리콘밸리의 돈이 핵융합 발전으로 향하고 있다. 핵융합 전력은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기업의 미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알고리즘을 훈련하는 동안 막대한 양의 전기를 소모한다. 스탠퍼드대 인공지능 인덱스 보고서에 따르면, 오픈AI의 ‘지피티(GPT)3’ 알고리즘 훈련에 시간당 1287메가와트의 전기가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배출된 탄소는 502톤으로 추정된다. 핵융합은 핵분열과 다르게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 방사능 위험도 없다. 최종 폐기물로 헬륨만 남는다. 또 이론상으로 약 1킬로그램의 핵융합 연료는 1만 톤의 화석연료와 맞먹는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 소비자가 부담하는 전기료가 상상 이상으로 줄어든다는 뜻이다.

작은 발전소

발전소 건설에 잡음이 없다는 것도 긍정적인 요소다. 2021년 9월, 커먼웰스퓨전시스템즈(CFS)는 핵융합 기기를 소형화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테니스장 절반 정도의 면적이면 핵융합 전력 생산시설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CFS는 2025년까지 생산시설을 구축해 2030년쯤 핵융합 전력을 상용화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전력 발전소는 대표적인 님비(NIMBY·Not in my backyard) 시설로 꼽힌다. 건설 계획이 전해지면 원자력과 화력발전소는 안전 문제로, 풍력발전소는 소음 문제로 반발이 거세다. 핵융합 발전소는 차지하는 면적도 작을뿐더러 안전과 소음 문제에도 자유롭다.

아직은 먼 미래

핵융합 발전은 꿈처럼 멀리 있는 기술이기도 하다. 2050년이 넘어야 상용화할 수 있다는 것이 여러 과학자의 공통적인 견해다. 핵융합 기술의 선두에는 서 있는 건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이다. 1988년 만들어진 최대 국제 프로젝트로,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EU·러시아·인도·중국·일본까지 7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각국이 비용을 분담해 프랑스에 거대한 핵융합 실험로를 짓고 있다. 70퍼센트 완성된 상황이다. 완공되면 2025년 첫 플라스마 발생 실험을 진행한다. 핵융합 발전은 7개국의 돈과 힘을 모아도 힘든 프로젝트다.

IT MATTERS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융합 기술에 희망을 거는 것은 어느 때보다 에너지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바이든 정부에 들어서 2035년까지 전력 부문 탈탄소화를 추진하고 있다. 유럽 연방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 중립 달성 목표를 발표했다. 영국은 2019년 2050년 탄소 중립 목표 명시한 법안을 제정했다. 핵융합은 기후 위기의 대안일 뿐 아니라, 에너지 대란도 해결할 수 있다. 2022년 글로벌 경기 침체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에너지 위기가 촉발됐다. 난방비, 전기료가 급등하며 우리나라도 에너지 대란을 겪었다. 핵융합 전력이 상용화되면 생산시설 운영 비용 정도만 부담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전기의 환경, 비용적 문제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핵융합이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의 키라고 불리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헬리온은 2028년까지 MS에 상업용 핵융합 전력을 제공하지 못하면 위약금을 물겠다고 선언했다. 내년 중으로 핵융합을 통한 전기 생산을 시연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계약을 체결한 MS는 물론, 투자한 샘 알트먼 오픈AI CEO도 헬리온의 계획을 굳게 믿고 있다. 알트먼 CEO는 “세계에서 가장 멋진 데모 기술을 만드는 게 아니라, 전 세계에 매우 저렴한 전력을 공급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5년 안에 이 모든 것을 이루겠다는 헬리온의 계획이 실현될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다만, 임페리얼칼리지 런던의 아더 터렐 교수는 2050년에 성공하더라도 인류의 큰 승리라고 말했다. 에너지의 미래는 어쩌면 생각보다 가까이 와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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