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색출 전쟁의 실체

5월 15일, explained

전 세계가 간첩 색출 작전에 나섰다. 우리나라도 안전하지 않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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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대대적인 간첩 색출 작전을 벌이고 있다. 올 상반기 중국 보안당국과 공안은 여러 기업을 급습해 사무실을 압수 수색하고 직원들을 조사했다. 국내외 기업을 가리지 않지만 주로 표적이 된 건 외국계, 그중에서도 미국 기업이다. 미국 컨설팅 회사 캡비전, 베인앤드컴퍼니 등이 당했고 기업 실사 업체 민츠그룹에선 직원 5명이 연행됐다. 지난 3월 26일 일본 제약 회사 아스텔라스의 직원은 아예 스파이 혐의로 구금됐다. 중국 내 외국계 기업들은 긴장하고 있다.

WHY NOW

방법은 조금씩 달라도 이 같은 움직임은 유럽과 러시아,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도 발견된다. 세계가 간첩 색출에 열을 올리는 것은 위험한 신호다. 첩보전은 안보 위기를 전후해 활개 치기 때문이다. 외교·안보적 긴장 수위가 올라가면 해외에 진출한 기업들이 위험해진다. 국가 권력이 안보 위기를 이유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도 커진다. 북한과 대치 중인 우리나라도 이 문제에 무관하지 않다. 국제적 스파이 전쟁의 실체는 무엇인가.

라이프 오브 (스)파이

간첩은 있다. 정보 획득을 목적으로 외교관이나 기업인을 가장해 숨어들기도 하고 사회 운동가를 표방해 특정 여론을 조장하기도 한다. 2023년 3월, 《뉴욕타임스》에는 미국 기업인의 지적 재산권을 훔치려는 중국 간첩의 실화가 소개됐다. 미국 국적의 한 중국계 기업인은 중국 현지 행사에 전문가로 초대된다. 미국에 돌아온 그는 영문도 모른 채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취조를 받게 되고 이후 수사에 협조하기로 한다. 이후 중국 행사에서 알게 된 호스트는 그에게 회사 컴퓨터에서 민감한 자료를 다운받을 것을 설득한다. 수사 공조 끝에 그 스파이는 체포된다.

비밀 경찰서와 GRU

첩보 활동은 내밀하면서도 대담하다. 지난 4월 FBI는 뉴욕 차이나타운에서 중국 향우회 운영자 두 명을 ‘비밀 경찰’ 혐의로 체포했다. 중국은 해외 각국에 비밀 경찰서를 두고 반(反)체제 인사를 조사하거나 첩보 활동을 한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또 하나 요주의 국가는 소련 시절 KGB, 현재는 GRU로 악명을 떨친 러시아다. 독일, 노르웨이, 스웨덴, 프랑스 등은 지난 4월에만 자국 내 러시아 외교관 수십 명을 스파이 혐의로 추방했다. 러시아 스파이의 대담성은 푸틴의 정적 알렉세이 나발니 독살 미수 사건에서도 드러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인 지금, 스파이 활동이 기승을 부리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세계 간첩 활동 통계 편람

간첩 활동은 과거보다 얼마나 많아졌을까? 물론 〈세계 간첩 활동 통계 편람〉 같은 자료는 없다. 국가 기관의 발표로 알 수 있을 뿐이다. 간첩 적발 건수가 많아졌다는 것은 복합적 의미가 있다. 정말 간첩이 많아졌거나, 단속을 강화했거나, 발표 건수를 늘렸거나. 《가디언》은 러시아 스파이가 하루가 멀게 검거 및 추방되는 현상이 과도한 단속 때문은 아닌지 질문을 던진다. 기사 말미에서는 러시아인 불법 체류자 몇 명이 스파이 혐의로 검거된 것을 두고, 러시아에서 스파이 혐의로 억류된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자, 에반 게르슈코비치 등 서구 인질들의 교환용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검거 과정에서 존재할지 모를 불법성은 은폐된다.

중국의 방첩법 강화

같은 문제는 중국에도 제기된다. 중국은 지난 4월 방첩법을 크게 강화했다. 스파이 행위를 ‘대리인에 협력하는 행위’ 등으로 더 폭넓게 해석하고 지켜야 할 정보의 범위를 넓혔다. 기존엔 국가 기밀이나 정보만이 보호 대상이었으나 수정안은 “국가 안보나 이익에 관련된 문건·데이터·자료·물품”으로 확대했다. 올 7월부터 적용이지만 예고는 시작됐다. 올 상반기 조사한 외국계 기업들이 주로 기업 실사나 컨설팅을 담당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앞서 중국 스파이의 사례처럼 중국도 외국계 기업을 ‘대리인의 조력자’로, 특정 기업 정보를 ‘국가 기밀’로 볼 여지가 마련된 셈이다. 한국 기업에도 북한을 빌미로 언제든 적용될 수 있다.

차이나 불리잉이 향하는 것

중국의 방첩법 개정안은 새로운 형태의 차이나 불리잉(China Bullying)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그간 인공지능과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 산업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해 왔지만 중국은 외국인 투자와 첨단 기술에 있어 서방의 주요국을 배제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지난 3월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마저 중국 철수를 결정하자 대응 수위를 높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간 중국은 외교 리스크를 무역 보복으로 갚아주곤 했다. 하지만 첨단 산업은 직접 겨냥하기 어려우니 정보 제한을 새로운 카드로 꺼내 든 것이다. 투자와 공장 설립 등은 환영하지만 중국 시장이나 산업 기술에 대한 정보는 제한하겠다는 자신감은 중국 시장의 크기에서 나온다.

외교 언어의 기출 변형

체제 경쟁이던 냉전 시기와 달리 지금의 국제 관계는 기술 경쟁 양상을 보인다. 민간 기업이나 직원에 스파이 혐의가 적용되기 시작했다는 점은 ‘경제 안보’의 공식화를 의미한다. 보통 국가 간 갈등이 생길 때 이를 대응하는 일선의 기관은 대사관이다. 외교관을 초치 혹은 추방하거나 외교관을 다리 삼아 상대국과 조율을 이어가기도 한다. 서로 약속된 절차다. 그러나 민간인이 스파이 혐의로 구속되거나 기업에 조사가 들어가면 상대국에서 대응이 어렵다. 특히 상대가 민주주의 국가일 때 그 효과는 배가된다. 구류된 자국민 하나를 위해 다양한 외교적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공식 외교 관계를 단절하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정치 양극화와 낙인 문제

스파이 색출 작전은 외교 무대만을 타깃한 것이 아니다. 국내 정치적 의도도 있다. 권위주의 국가에선 반체제 여론을 특정 국가와 엮어 민족주의를 강화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 북한이 대표적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보호주의의 내러티브를 안보와 연결해 극우 유권자들에 호소할 수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정치 양극화가 심해지고 서로를 향한 낙인이 빈발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선 지난 5월 10일 민주노총 전직 간부 네 명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간첩 활동을 벌였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사실로 드러나면 대단한 이적 행위다. 그러나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일각에선 벌써 노조와 주사파, 간첩을 동의어로 놓기 시작했다. 여론은 분열된다.

IT MATTERS

각국의 스파이 색출전엔 각자의 사정이 있다. 유럽은 러시아 제재의 정당성을 위해 자국의 안보가 위협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러시아는 체제 안정과 우크라이나 침공 정당화를 위해 유럽의 악마화가 필요하다. 미국은 하드 파워를 넘어 기술력과 소프트 파워까지 부상하는 중국을 누르기 위해 ‘중국 위협론’이 필요하다. 유럽과 더불어, 포로 교환을 위해 러시아 간첩을 만들어서라도 확보해야 한다. 중국은 서방의 탈중국과 디커플링, 대만 문제 등을 간접적으로 견제하기 위한 묘수로 간첩 문제를 꺼내 들었다. 국제 사회를 병들게 하는 외교적 방식일지언정 대개 국익을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언사다.

안보는 국익의 관점에서 출발한다. 이것이 체제의 문법으로 쓰일 때 가치의 관점이 더해진다. 영악한 외교는 가치를 내세워 국익을 취한다. 절박한 외교는 국익을 내세워 가치를 취한다. 미국은 스파이 풍선을 빌미로 중국을 비난하며 여론전을 폈다. 10대에게 악영향이 있고 데이터를 무단 수집한다며 틱톡을 제재하려 한다. 동맹국의 감청을 안보 우산을 이유로 눈감고 외교 무대에서 타국의 적국을 명시적으로 이르는 행위에 국익은 없다. 정치적 사익이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가치 외교는 힘 있는 국가의 방식이다. 기존의 강대국이 아닌 신흥 국가들이 모두 철저한 실용주의를 펴는 건 이 때문이다. 스파이 혐의는 가치 외교를 펴는 국가에 대한 효과적 대응 전략으로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는 과연 새로운 외교적 언어에 대응할 준비가 되었는지 자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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