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에 없는 다문화 군인

5월 19일, explained

나라를 지킬 사람이 없다. 포용이 안보의 문제가 되는 시대가 왔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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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군대로의 전환이 빨라지고 있다. 올해부터 이주 배경 청년들이 약 1만 명씩 국군에 편입된다. 한국군사회복지학회에 따르면 올해부터 향후 5년간 징병 검사 대상이 되는 이주 배경 남성은 연평균 9461명이다. 국군 병력의 3퍼센트 규모다. 2029년부터는 약 1만 9000명가량이 징병 검사 대상으로 우리 군인의 4~5퍼센트로 늘어난다. 그 규모에도 불구, 다문화 장병에 대한 정책과 지원은 미비하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WHY NOW

학계에서는 인구의 5퍼센트가 이주 배경 주민이면 다문화 사회로 본다. 코로나19로 주춤했지만 우리나라에도 현재 약 4퍼센트 내외의 등록 외국인이 산다. 2040년엔 6.9퍼센트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다문화 사회가 코앞이다. 그간 많은 이주 배경인이 공장과 건설 현장, 농장, 가사 등 내국인이 기피하는 일자리를 채워 왔다. 차별과 노동 환경 문제도 자주 불거졌다. 군대는 그 모든 문제의 집약체가 될 수 있다. 포용이 안보의 문제가 되는 시대가 왔다.

제1 다문화 보병 사단

다문화 장병 3퍼센트는 어떤 의미일까? 절댓값과 비율로 체감이 되지 않는다면 편성 단위로 보는 방법이 있다. 현대적 개념의 군 편제상 1개 사단 규모는 3000명에서 1만 5000명 사이다. 한국 육군은 보병 사단을 기준으로 완편 시 1만 1500명이다. 앞으로 다문화 장병들로만 한 개의 사단 구성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군대 예능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백골’, ‘백호’, ‘칠성’ 등이 사단의 이름이고 군복 좌측 어깨에 붙은 게 사단 마크다. 별도의 부대 마크와 함께 ‘제1 다문화 보병 사단’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다. 현재 대한민국 육군은 총 38개 사단 전력을 갖추고 있다.

사라지는 군부대

전역자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군대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출신 부대를 검색해 보면 자신의 부대가 해체됐다는 사실과 마주할 수도 있다. 출생률 저하로 대대적 감편 및 부대 통폐합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육군은 2026년까지 31개 사단으로 그 규모를 줄일 계획이다. 사단 한 개 규모가 될 다문화 장병은 안보 공백을 메워주는 소중한 전우다. 문제는 0.78명의 합계 출산율을 자랑하는 우리나라답게 다문화 출생아 비중도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0년 6퍼센트까지 올랐지만 2021년엔 전년 대비 12.8퍼센트 감소해 5.5퍼센트를 기록했다. 수통은 6·25 때와 같지만 인구 변화는 계속돼 왔다.

2010, 다문화 장병의 등장

다문화 장병이 등장한 건 2010년이다. 군은 병역법을 개정해 ‘외관상 명백한 혼혈인’의 입대를 의무화했다. 원래대로면 5급 제2국민역으로 복무가 면제되었을 51명이 최초로 현역병에 입대했다. 개정의 배경은 장병 수 감소에 따른 위기의식뿐만이 아니다. 사회 통합의 측면도 있었다. 다문화 가정 2세들의 병역 의무 논란이 불거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병무청은 2011년부터 다문화 장병의 적응을 위해 다문화 가정 출신 2~3명의 동반 입대 복무 제도를 시행해 함께 군생활을 할 수 있게 했다. 현재 다문화 장병은 몇 명이고 이들의 군 생활은 어떨까?

No Raw Data, Null

모른다. 로우 데이터조차 없다. 비공식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8년까지 4000명가량의 다문화 장병이 현역 복무를 했다. 2019년 당시 3000명의 현역병이 복무 중이라는 기사도 있지만 출처는 불분명하다. 다문화 장병의 집계는 2015년 4월 다문화 장병 관련 부대 관리 훈령이 바뀌며 2016년까지만 이뤄졌다. 당시 국방부는 조사 및 현황 자료 보유 자체가 차별 행위라는 인식 하에 이를 멈췄다고 설명했다. 물론 다문화 장병들도 신상을 드러내는 것에 거부감을 가질 확률이 높다. 한편, 병역법 개정의 원인이었던 사회 통합은 2019년 다문화 장병 동반 입대 폐지의 논리가 됐다. 실제 다문화 장병들의 동반 입대 신청 건수도 적었다. 문제는 없는 걸까?

군대는 단체 생활이야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 무슬림의 율법 때문에 군대에서 차별받지는 않을까, 외모가 다르고 말투가 어눌한 것으로 놀림을 받지는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한국에 온 지 14년이 된 무함마드 사캅 씨가 2019년 11월 ‘국민이 묻는다’라는 행사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에게 던진 질문이다. 구체적 차별 사례는 없지만 군대는 흔히 ‘단체 생활’의 논리로 설명되는 곳이다. 전문가들은 일체성 속에 소속감을 느끼는 군 문화의 특성상 다문화 장병의 다양성은 차별적 요소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1] 상명하복, 신속한 의사소통, 획일화된 보급품과 식단 등은 언어와 문화의 차이가 있는 다문화 장병들에게 고역일 가능성이 크다.

폐쇄된 조직

더 큰 문제는 군 조직의 폐쇄성이다. 다문화 장병이 차별을 경험하더라도 제대로 된 조처가 있을지 미지수다. 다문화 장병을 위한 법은 부대 관리 훈령 3장에 마련되어 있으나 차별을 금지하고 지휘관의 다문화 교육을 부여하는 정도에 그친다. 차별 행위가 묵인될 시 공론화하거나 법적 대응을 하는 것은 내국인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공군 내 성추행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이예람 중사의 억울함은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 성전환을 이유로 강제 전역되어 생을 마감한 변희수 하사의 순직 처리도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다문화 군대가 한국에 더 어려운 이유

다문화 군대로의 이행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성공적인 다문화 군대로의 이행은 한국에 특히 어려운 과제다. 한국은 징병제다. 사병 월급도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국군의 위상도 낮고 전역자에 대한 처우도 열악하다. 병 개인을 고려한 포괄적 지원이나 선진 병영을 기대하기 어렵다. 순혈주의 신화에서 비롯된 배타성이 결부되면 병영 문화의 새로운 고질병이 될 수 있다. 다문화 장병도 애국심을 갖기 어려워진다. 의무 병역임을 감안하면, 매해 한국에 반감을 가진 이주 배경인이 숱하게 생겨나는 꼴이다. 국방력 역시 약화된다. 1882년 조선은 이미 임오군란을 경험했다. 1857년 인도 용병들이 영국에 반기를 들며 일어난 세포이 항쟁도 영국이 다문화 군의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아 발생한 사건이었다.

IT MATTERS

우크라이나에 전운이 감돌 때 많은 전문가는 러시아의 침공이 소규모 국지전에 그칠 것으로 봤다. 러시아는 이를 비웃듯 우크라이나 전역에 미사일을 쏟아부으며 가용 병력의 95퍼센트를 투입해 섬멸전을 노렸다. 전문가들의 분석과 러시아의 섬멸전에는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이유가 작용한다. 우크라이나는 땅이 넓고 평지라 군을 통한 완전한 점령도 방어선 구축도 어렵기 때문이다. 현대에 와 아무리 군사 기술이 발달하고 미사일·드론 전쟁이 되었다 해도 보병은 소중하다.

한국은 다문화 강군을 가질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아직 다문화 장병이 입대해 온 기간이 짧아 복무 생활과 상호 간 인식, 갈등 등에 대한 구체적 연구가 부족하다고 말한다.[2] 단순 현황조차 부재한 상황에서 정책을 수립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정책엔 숫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문화 장병의 식별이 차별적이라면 개인화된 지원을 위한 조사를 모두에게 확대하거나 더 많은 선택지를 주는 방법도 있다. 차별금지법이 소수자만을 위한 법이 아니듯 병 개인의 기호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은 모두에게 이롭다.

개선에는 돈이 든다. 복지엔 지출이 필요하다. 국군의 열악한 처우를 감안하면 충분히 지출을 고려할 수 있는 문제다. 값비싼 전투 장비의 교체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종교와 언어, 음식 등 기본권의 회복이 필요 조건이다. 기원전 5세기 20개 이상의 속국을 거느렸던 페르시아제국조차 사병들의 종교 및 언어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식문화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 대표적인 다문화 군대인 미군도 모두 24종의 전투 식량에 무슬림용, 유대교용, 채식주의자용 등 선택권을 더했다. 특히 한국처럼 지휘관의 의무적 다문화 교육에 그치는 것이 아닌 본격적인 ‘기회 균등 프로그램(Equal opportunity program)’을 마련해 지휘관의 다양성 존중과 부대의 단결을 구체적 지표로 제시한다. 안보는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고 다양성은 군 밖의 이야기가 아니다. 군인이 변한다면 군대도 변해야 한다.
[1]
김인찬 외 5인, 〈세계 강군의 다문화 적용사례 연구〉, 《문화기술의 융합》 , 8(6), 2022., 442쪽.
[2]
권소연, 강원석, 〈다문화 장병에 대한 인식 개선 방안 연구〉, 《신산업경영저널》, 37(1), 2019.,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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