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니뇨는 어떻게 생길까

2023년 5월 23일, explained

엘니뇨가 온다. 세계는 또 한 번 역사적 전환점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NOW THIS

올여름 역대급 폭염이 온다. 내년 여름은 더 뜨거울 전망이다. 향후 5년간 지구 온도는 최고치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태평양 동쪽의 바닷물이 평년보다 따듯해지는 엘니뇨 때문이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올해 7~9월 엘니뇨가 발생할 확률을 80퍼센트로 예측한다. 엘니뇨가 시작하면 전 세계에 폭염, 가뭄, 홍수 같은 기상 이변이 나타난다. 5월인데 서울은 벌써 30도를 넘었다.

WHY NOW

올해 하반기 뉴스에서 가장 많이 접할 단어가 엘니뇨다. 최근 3년간 라니냐가 이어지며 지구 기온 상승을 억제해 왔다. 하지만 올해 들어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오르면서 4년 만에 엘니뇨가 돌아올 가능성이 커졌다. 태평양 수온이 0.5도 오르면 지구 기상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건강, 식량, 물, 환경, 산업, 경제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엘니뇨 현상이 생기는 원리와 과정을 살펴보고 근미래를 전망한다.

뜨거운 바다

5월 중순 강릉 낮 최고 기온이 35.5도까지 올랐다. 관측 이래 가장 높았다. 베트남과 미얀마는 40도를 넘었다. 태국 방콕은 체감 온도가 50도를 넘어섰다. 유럽도 상황은 비슷하다. 역대 가장 덥고 건조한 4월을 보낸 스페인의 한 마을에선 기우제가 열렸다. 이탈리아 북부에선 100년 만에 최악의 홍수가 발생해 총리가 G7 회의 도중 긴급히 귀국했다.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올라가는 엘니뇨 때문이다. 남미 앞바다의 바닷물이 뜨거워지면 왜 전 세계가 영향을 받을까.

무역풍

달리는 차 안에서 밖을 바라보면 가로수가 차의 이동 방향과 반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같은 원리로 태양은 멈춰 있어도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보이는데, 지구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자전하기 때문이다. 지구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시속 1670킬로미터로 달려 나가니까 자연히 바람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불게 된다. 이게 무역풍(trade wind)이다. 과거 유럽 선박은 이 바람을 타고 대서양을 서쪽으로 가로질러 아메리카 대륙에 닿았다.

바닷물의 순환

무역풍은 범선만 움직이는 게 아니다. 바닷물도 이동시킨다. 남미 페루의 앞바다는 적도에 자리한다. 태양의 직사광선이 다른 곳보다 더 많이 도달해 바닷물 온도가 높다. 동에서 서로 부는 무역풍은 이 지역의 따듯한 표층수를 아시아로 이동시킨다. 페루 앞바다의 따듯한 바닷물이 서쪽으로 이동하고 나면 그 빈자리를 심해에 있던 차가운 바닷물이 올라와 채운다. 적도의 열기를 지구 곳곳으로 보내 에너지 균형을 유지하는 셈이다.

아기 예수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무역풍이 약하게 불 때가 있다. 그러면 따듯한 바닷물이 페루 앞바다에 그대로 머문다. 심해의 차가운 물도 위로 올라오지 않는다. 이 물이 올라올 때 해저에 있던 영양분이 딸려 올라오는데, 그러지 못하게 되면 그 영양분을 먹는 물고기들도 수면으로 올라오지 않는다. 어획량이 줄어든다. 1600년대 페루 어부들은 연말이 되면 몇 년에 한 번씩 어획량이 주는 현상을 발견하고 마치 아기 예수가 주는 크리스마스 휴가 같다고 해서 엘니뇨(남자아이)라고 불렀다.

기상 패턴

엘니뇨는 동태평양의 바닷물 온도가 평년보다 0.5도 이상 높은 상태로 5개월 이상 지속하는 현상이다. 반대로 수온이 내려가면 라니냐(여자아이)라고 한다. 엘니뇨가 시작하면 동태평양의 열과 습기가 해류로 이동하지 못하고 대기로 방출되면서 이상 기후가 발생한다. 남미와 미국 남부에는 홍수가, 호주와 인도네시아에는 가뭄이 일어난다. 엘니뇨와 라니냐 자체는 기상 이변이 아니다. 기상 패턴이다. 3~6년 주기로 생긴다. 문제는 이 패턴이 지구 온난화를 만나 갈수록 더 강하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슈퍼 엘니뇨

엘니뇨에도 단계가 있다.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2도 이상 올라간 상태가 3개월 이상 이어지면 ‘슈퍼 엘니뇨’라고 부른다. 엘니뇨는 1951년 이후 23번 발생했다. 그중 4번이 슈퍼 엘니뇨였다. 1972년, 1982년, 1997년, 2015년이다. 최근 들어 발생 빈도가 늘고 있다. 미국해양대기청(NOAA)은 올해 4월 전 세계 해수면 온도가 21.1도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관측 이래 최고치다. 이번 엘니뇨가 슈퍼 엘니뇨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재난 규모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 2015년이 그랬다.

2015

슈퍼 엘니뇨가 있었던 2015년 겨울, 유럽 알프스는 기온이 10도까지 올라 흙바닥이 드러났다. 미국 뉴욕은 초여름처럼 더웠다. 미국 중남부엔 토네이도가 몰아치고 폭설과 폭우가 쏟아졌다. 농사하기 어려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세계 곡물 생산량은 전년보다 1.6퍼센트 줄었다. 농업 생산이 차질을 빚으면서 아프리카, 남미, 남태평양에선 기근이 발생했다. 가뭄이 들면서 물 소비량이 많은 화석 연료 생산이 줄어 에너지 가격이 올랐다. 페스트, 콜레라 같은 전염병도 돌았다.

IT MATTERS

엘니뇨가 지구 온난화를 만나면서 극단적인 이상 기후가 뉴노멀이 되고 있다. 엘니뇨는 지구의 열 순환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정 작용이다.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다. 지구 온난화는 다르다. 온실가스를 줄이자는 전 지구적 합의안인 파리기후변화협정은 2015년 12월에 채택됐다. 마지막 슈퍼 엘니뇨가 있던 해다. 그해 벌어진 기상 이변과 인명 피해, 경제적 손실은 기후 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을 높여 파리협정 채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엘니뇨는 잠시 스쳐 가는 현상이 아니다. 사회와 경제에 오랜 기간 타격을 입힌다. 엘니뇨는 시작 시점부터 적어도 5년간 경제 성장을 둔화시킨다. 올해 엘니뇨가 유발할 경제적 손실은 2029년까지 3조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미국 다트머스대 연구팀은 1997년 슈퍼 엘니뇨가 발생하고 5년이 지난 뒤의 GDP와 만약 엘니뇨가 없었다면 달성했을 GDP를 비교했다. 미국 GDP는 3퍼센트 감소했고, 페루와 인도네시아 같은 열대 해안 국가의 GDP는 10퍼센트 이상 감소했다.

현재 지구 온난화의 비용을 추정할 때 엘니뇨가 불러올 장기적 재정 손실은 포함되지 않는다. 경제적 피해가 과소 계산되는 셈이다. 다트머스대 연구팀은 엘니뇨 이후의 성장 침체까지 더해야 한다고 말한다. 올해 엘니뇨는 전 세계에 유례없는 가뭄과 홍수와 기근과 산불을 일으킬 것이다. 직접적 피해와 장기적 손실은 열대 지방의 최빈국에 집중될 것이다. 올해 11월 말에 열릴 제28회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에서 개발 도상국의 손실과 피해에 대한 선진국의 지원이 전향적으로 검토될 수 있다. 2015년 슈퍼 엘니뇨 때 그랬던 것처럼, 세계는 또 한 번 역사적 전환점을 눈앞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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