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토크를 얻은 중국

5월 24일, explained

왕따가 된 러시아가 중국에 항구를 바쳤다. 동해를 품은 한국이 큰일 났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NOW THIS

러시아가 중국에 항구를 바쳤다. 지난 15일, 블라디보스토크항의 사용권을 중국에게 제공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는 러시아에게 등을 돌렸다. 왕따가 된 러시아의 이번 선택은 통이 크다 못해 절박함이 느껴진다. 이제 중국이 아니면, 러시아는 잡을 수 있는 손이 없다.

WHY NOW

그런데 큰일이 난 건 한국이다. 블라디보스토크항의 입지는 한반도의 바로 위, 연해주이기 때문이다. 가까워도 너무 가깝다. 게다가 중국이 진출할 위치는 우리의 앞마당인 동해다. 뻔히 알고도 당하지 않으려면 다음 스텝을 빨리 정해야 한다. 그러려면 중국이 왜 하필 블라디보스토크항의 사용권을 받았는지,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역사

블라디보스토크의 시간은 1800년대로 돌아간다. 러시아는 제2차 아편전쟁 당시 힘 빠진 청나라에게 아이훈 조약과 베이징 조약이라는 강제 조약을 들이민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점유권은 청나라에서 러시아로 넘어가고, 그 역사는 현대에까지 이어진다. 블라디보스토크항은 1991년까지 외국인에게 개방되지 않은 상태였다. 투자를 유치한 것도 2015년이 되어서였다. 개발의 역사가 길지 않다. 자유항이 되고 2년 후인 2017년, 러시아의 선택은 한국이었다.

극동 최적의 파트너(였던) 한국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러시아 극동 개발 최적의 파트너라고 이야기했다. 러시아도 긍정적인 발전을 기대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면서 상황도 바뀐다. 윤석열 정권은 초기부터 러시아와 중국의 대척점에 한국을 두었다. 미국과의 동맹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지난 4월,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조건부 무기 지원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발끈했다. 러시아에게 한국은 더 이상 최적의 파트너가 아니다. 대신 손을 잡은 건 중국이다. 멀리 봐서는 잘못된 선택이다.

왕따 러시아의 어쩔 수 없는 선택

다른 곳은 몰라도 블라디보스토크에서만큼은 중국의 손을 잡으면 안 됐다. 강제 조약의 역사가 영토 분쟁의 씨앗이 될 테니까. 하지만 고립되고 있는 러시아로서도 별 수 없다.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NATO) 가입 의사를 밝히는 등 세계가 러시아를 견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 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때 소련의 일부였던 라트비아는 러시아 국영 미디어가 자국에 방송되는 걸 금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근처의 소국 몰도바는 유럽연합(EU)에 가입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의 밀월 관계는 어쩔 수 없이 굳어지고 있다. 아니,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에 따르면 러시아는 중국의 속국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중국에게 이득이다.

중국의 항만 전략

중국은 북동부 길림성과 흑룡강성의 화물을 남부로 이동하는 데 블라디보스토크항을 이용할 계획이다. 기존에는 한반도 북서쪽의 요동반도까지 육로로 1000킬로미터를 돌아가야 했으니, 물류비를 대폭 아낀 셈이다. 그런데 계획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중국은 동남아에서 아프리카까지 세계 항구를 연결한다는 큰 그림, ‘진주 목걸이 전략’을 가지고 있다. 진주 목걸이가 물류 전략이라면, 군사 전략은 중국 근해의 ‘도련선’을 확보하겠다는 거였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중국이 처음 탐낸 위치는 한반도 북동쪽 북한의 나진항이다. 실제로 중국은 나진항의 사용권을 획득하고 2012년에는 도로까지 뚫었다. 그런데 대북 제재로 인해 나진항을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다고 포기할 중국이 아니다. 기어코 블라디보스토크항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머리 아픈 미국과 일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중국은 북태평양으로 올라갈 수 있다. 미국의 머리가 아파 온다. 남중국해 상에서 필리핀과의 공조로 막아놨던 중국의 태평양 진출이 비로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더욱 머리가 아픈 건 일본이다. 중국이 위로 올라가도, 아래로 내려와도 문제다. 위로 올라가면 러시아와 영토 분쟁 중인 쿠릴 열도가 있다. 일본의 편을 들어오던 중국은 얼마 전, 60년 만에 ‘중립’으로 입장을 바꾸며 사실상 러시아의 손을 들었다. 중국이 아래로 내려오면 거기에는 동해가 있다. 일본이 중국을 견제하려면 동해를 장악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동해에는, 일본이 일방적으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독도가 있다.

독도, 그리고 한미일 군사 공조 강화

그래서 한국도 머리가 아프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더욱 강하게 주장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일본은 한미일 군사 공조를 강화하려 할 것이다. 중국이 블라디보스토크항에 단지 화물선만 띄우지 않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나진항 부두권을 획득할 당시, 일본의 안보 전문가는 중국 당국자들에게 동해가 군사적 목적인 도련선에 포함될 가능성을 물었다. 거기에 중국 당국자는 “얼마든지 중요한 물자가 오갈 수 있는데, 그때 그 항로의 안전은 누가 보장하게 되냐?”며 되물었다. 군함이 화물선을 호위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동해 상에서 일어날 일

현재 중국과 러시아는 여기에 군함이 들어설 계획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고 있지 않다. 더구나 블라디보스토크항의 인프라가 열악하다며 경제적 효과에 대해서도 앞서 발뺌하고 있다. 하지만 블라디보스토크항은 원래 러시아의 태평양 함대의 기지가 있는, 군사적으로 주요하게 쓰인 항구다. 여러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는 일본의 입장에선 불안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배가 동해를 지나가면, 그 다음으로 지나가는 곳은 러일전쟁의 격전지였던 쓰시마 해협이기 때문이다. 자칫 군사적인 충돌이 일어날 때 가장 중요한 당사자는 중국, 일본, 그리고 우리 한국이다.

IT MATTERS

2010년대 초, 일찍이 중국이 나진항에 진출할 때부터 중국이 동해를 뚫게 되면 한국은 섬으로 고립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중국에 대한 북한의 의존도가 높아지면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본격적으로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중국이 북한의 항구는 쓸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블라디보스토크항을 열면서, 중국이 동해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이 와중에 한국 정부는 중국을 견제하는 안보 협의체 쿼드(Quad)에 가입하려는 의사를 슬쩍슬쩍 비치고 있고, 중국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다. 중국을 도발하는 것은 미국도 바라는 바가 아니다. 작년에 한국이 쿼드 가입 의사를 비쳤을 때, 미국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며 발을 뺐다. 그리고 지난 2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중국과의 해빙 가능성을 언급했다. 표면적으로라도, 중국을 자극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중국에 대해 굴종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마저 때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이 시점에, 한미일 동맹 관계에 올인하고 중국과 척지는 것도 해법은 될 수 없다. 당장 우리 바다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세계의 질서가 바뀌고, 중국의 차항출해(借港出海)[1]는 시작되려 한다. 동맹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점을 되새길 때이다.
[1]
외국 항구를 빌려 바다로 진출한다는 의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