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히드마틴이 되려는 한화

5월 25일, explained

대우조선해양이 ‘한화오션’으로 재탄생했다. 한화는 바다에서 미래를 찾는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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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고 탈 많던 대우조선해양의 새 주인이 정해졌다. 한화그룹은 지난 5월 23일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마무리 지으며 ‘한화오션’의 출범을 알렸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첫 인수 시도가 무산된 지 15년 만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다섯 개 계열사가 약 2조 원 규모의 유상 증자에 참여해 한화오션 주식 49.3퍼센트와 경영권을 확보했다. 한화그룹의 성장을 이끈 계열사 CEO 출신들이 경영진을 맡게 된다. 한국판 ‘록히드마틴’에 더 가까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WHY NOW

2022년 6월 21일 누리호가 날았다. 1톤 이상의 페이로드를 우주 궤도에 올릴 수 있는 일곱 번째 국가가 탄생했다. 로켓의 심장인 엔진을 만든 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였다. 방산과 우주·항공, 에너지에 특화된 한화가 이제는 바다를 탐낸다. 한화의 큰 그림엔 우리나라의 새 먹거리가 있다.

한화 DNA

지금의 한화를 만든 건 화약이다. 사명도 한국화약의 준말이다. 세계 서울 불꽃 축제는 주관사인 한화의 자존심이다. 한화의 DNA엔 폭발력이 있다. 적극적 M&A로 사세를 불리고 신사업으로 확장해 시너지를 내는 게 한화의 주특기다. 국내의 오랜 대기업이 말하는 ‘사업보국’을 이들은 방산으로 실천한다. 지난 4월 3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그룹 내 방산 기업인 한화디펜스와 한화방산을 흡수 합병했다. 방산과 우주,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의 3대 과제에서 시너지를 내려는 판단이다. 그런데 방산에 진심인 한화에게도 없는 게 있었다. 군함과 잠수함이다.

육·해·공 트리니티

큰 그림을 그리던 한화의 눈에 들어온 건 과거에 인수하려 했던 대우조선해양이다. 특수선 사업부가 특히 매력적이었다. 대우조선해양은 국내 수상함(군함) 시장에서 점유율 25.4퍼센트로 2위, 잠수함 시장에서 점유율 97.8퍼센트로 압도적 1위 사업자다. 반대로 한화는 함정 부품 13개 시장 중 열 개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이 64~100퍼센트에 달하는 1위 사업자다. 인수 합병을 통한 시너지가 안 날 수 없는 조건이었다. 한화 DNA는 또다시 꿈틀거렸다. 2022년 9월 MOU를 시작으로 2023년 5월 한화는 대우조선해양을 품에 안았다. 이로써 한화 방산의 육·해·공 라인이 완성됐다.

안보 딜레마의 열매

시기도 적절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방산 골드러시 시대를 열었다. 각국은 앞다퉈 방위비를 늘리고 무기를 수입하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 국방 예산 총합은 2953조 원에 달했다. K-방산은 안보 딜레마의 열매를 노린다. 그러나 한국형 록히드마틴의 꿈은 멀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가 집계한 무기 수출국 순위에서 한국은 9위를 기록했다. 점유율도 2퍼센트 내외였다. 압도적 1위는 미국으로 30~40퍼센트의 점유율을 보여 왔다. 러시아, 프랑스, 중국이 뒤를 잇는다.

K-방산의 에지(edge)

같은 지표에서 눈에 띄는 건 최근 5년간 한국의 점유율 변화다. 상위 10개국 중 가장 높은 74퍼센트의 증가율을 보였다. 러시아, 중국, 독일, 영국 등은 오히려 몇십 퍼센트 감소했다. K-방산의 강점은 가성비와 빠른 납기 능력이다. 전쟁의 시급성은 K-방산에 호재로 작용했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가 한국의 K2 전차를 구매한 이유다. 휴전 국가로 계속 무기를 양산해 온 것이 생산력의 기반이 됐다. 게다가 무기는 한 번 사면 30~40년을 유지·보수하며 쓰고 거기서 추가 매출이 발생한다. 한화의 방산 포트폴리오 확장은 이러한 ‘락인 효과’를 강화할 수 있다.

잠수함 수주전

한화오션은 벌써 물밑에서 대형 수주의 냄새를 맡았다. 지난 5월 17일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가졌다. 언론이 주목한 것은 60조 원 규모의 잠수함 수주 건이다. 캐나다의 요구 조건에 걸맞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으로 좁혀진다. 트뤼도 총리 방한에 앞서서 캐나다의 군 당국자들은 한화오션의 옥포조선소를 둘러본 바 있다. 한화의 물밑 작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화오션의 사외 이사 중엔 조지 W. 부시의 조카 조지 P. 부시가 있다. 그는 유엔사 부사령관 출신 웨인 에어 캐나다 국방참모총장과 아프간 파병 동기로 알려진다. 수주 기대감이 높은 이유다.

LNG 밸류 체인

한화오션은 비전은 방산에서 그치지 않는다. 애초에 한화는 복수의 대기업에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제안하며 특수선 사업부만을 가져가려 했으나 분할 인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노선을 틀었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가능성이 피어났다. 유럽 LNG 사업이다. 대우조선해양은 LNG 해상 생산 기술 및 운송 역량을 갖추고 있다. 한화는 통영에코파워와 미국의 LNG를 수입해 발전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LNG 사업 전반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차후 한화솔루션과 한화임팩트를 통해 태양광이나 수소 발전으로도 연계할 수 있다.

새로운 조선 삼국시대

문제는 역설적으로 조선 사업이다. 조선 업계엔 고질병이 있다. 수주량이 높아도 적자가 난다. ‘저가 수주’ 때문이다. 배 만들 때 ‘내는 돈’이 싸다는 의미다. 배경은 2008 금융 위기다. 공급 과잉으로 수주 가격이 하락했다. 조선 업체들은 수익성이 악화해도 싼값에 배를 많이 만들어 시장 점유율을 늘리려 했다. 원자재 상승이 겹칠 때마다 지옥문이 열렸다. 치킨 게임을 주도한 건 조선 빅3 중 하나인 대우조선해양이다. 적자 폭도 가장 커 공적 자금까지 투입됐다. 업계는 한화의 인수로 저가 수주 관행이 없어질 것을 기대한다. 선박 중 가장 비싼 선종인 LNG 운반선의 수주가 늘어나면 수익성도 제고할 수 있다.

IT MATTERS

첨단 산업과 관련해 한국은 고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미중 갈등으로 반도체와 전기차의 활로는 보이지 않고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뚜렷한 강점이 없다. 그 가운데 한화는 오래된 새로움을 제시하고 있다. 세계 조선소 1~4위는 한국 기업이다. 방위 산업의 생산력도 안정적이다. 한화오션은 국토 삼면이 바다인 이점과 휴전국이라는 특징을 한화 DNA로 해석한 결과물이다. 한화는 국제 사회가 당면한 안보 불안과 에너지 위기, 리오프닝, 문 러시(moon rush)를 정확히 타깃하고 있다.

한화오션은 순항할 수 있을까? 과제는 한화그룹 밖에 있다. 한화오션의 발목을 잡는 것은 대부분 조선 업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단 한화가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이 막대하다. 대우조선해양은 10분기 연속 적자로 부채 비율이 1858퍼센트에 달한다. 지난해만 1조 6135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경영 정상화와 수익성 확보가 한화의 선결 과제다. 잠수함 수주도 확정되지 않았고 잠수함 등 특수선의 매출 비중도 상선에 비하면 아직 16.7퍼센트 수준이다.

인력난과 노조로 대표되는 사람 문제도 큰 과제다. 조선 업계는 고질적 인력난으로 외국인 노동자에 기대왔다. 인력난 해소를 위해 ‘한시적 병역 특례 혜택’까지 논의되고 있다. 아직까지 큰 노사 갈등을 빚어본 적 없는 한화에게 강성 노조도 변수다.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은 지난해 6월 임금과 상여금 문제 등을 두고 사측과 크게 대치했다. 옥포조선소는 제1독(dock)은 점거됐고 단식 농성이 이어졌다. 한 노동자는 철창에 자신을 가두고 용접하기도 했다. 이를 동시에 타개하려면 노동 구조와 노동자 처우를 근본적으로 손봐야 한다. 한화오션이 목표하는 ‘글로벌 해양·에너지 선도기업’은 사람에 대한 존중 위에서 이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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