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생애 주기를 논해야 하는 이유

2023년 5월 26일, explained

영미권에서 폐경기에 대한 복지 제도가 확대하고 있다. 여성의 생애 주기를 아는 것이 저출산 대책의 시작이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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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영국에서 폐경기 여성을 위한 복지 제도가 확대하고 있다.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는 2023년부터 가상 진료 서비스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한다. 영국 정부는 2021년 ‘범정부 폐경 태스크포스(TF)’를 설립했다. 윈프리와 미셸 오바마 등 여성 인사들은 폐경기에 대한 인식 개선에 나서고 있다.

WHY NOW

저출산 시대, 여성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 인식 개선에 대한 논의는 월경에 머물러 있다. 국가와 기업이 관심을 갖는 분야는 난임뿐이다. 여성의 생애 주기 전반을 이해하는 것이 저출산 극복의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있다.


중년 여성을 위한 복지

영미권에서 폐경기 여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엔비디아(NVIDIA)는 폐경기에 있는 본사 및 협력사 직원들이 ‘페피 헬스(Peppy Health)’를 이용할 수 있게 했다. 호르몬 검사 결과에 대해 전문가와 비대면 상담을 할 수 있는 서비스다. 영국은 정부 차원에서 나섰다. 2021년 ‘범정부 폐경 태스크포스(TF)’를 설립했다. 폐경기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치료 접근성을 향상하기 위함이다. 미국 뉴욕 시장은 올해 초 발표한 ‘뉴욕시 여성 건강 어젠다’에 폐경기 친화적 직장을 만든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중요한 노동력

폐경기 친화적인 기업은 왜 필요한가. 중년 여성이 중요한 노동력이 됐기 때문이다. 지금의 중년 여성 노동자는 1960~1970년대에 태어난 세대다. 이들이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확대했다. 미국 인구 조사에 따르면, 현재 45~60세 사이 여성 1500만 명이 유급노동을 하고 있다. 영국의 50세 이상 노동력 45퍼센트가 여성이다. 폐경기까지 직장에 남아 있는 여성은 숙련된 인력이다. 또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의 이탈은 회사 전체의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진다.

두 번째 경력단절 위기

중년 여성은 두 번째 경력단절 위기를 겪고 있다.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것이 첫 번째, 폐경으로 인한 것이 두 번째다. 영국 오픈대학교의 조안나 브루위스(Joanna Brewis) 교수는 “영국에서 90만 명 넘는 여성이 폐경으로 조기에 직장을 떠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로 인한 생산성 손실은 전 세계적으로 연간 1500억 달러, 우리 돈 179조 400억 원에 달한다. 문제는 그동안 중년 여성의 이탈 원인을 퇴사자 본인도, 회사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성의 경력단절 관련 연구나 제도는 출산과 육아에 집중돼 있다.
 
빅-M 이해하기 

여성은 폐경 후 급격한 신체·정신적 변화를 겪는다. 증상만 해도 34가지에 이르고 개인마다 다르다. 하지만 관련 연구가 부족한 탓에 ‘갱년기 증상’이라고 통칭한다. 오프라 윈프리, 미셸 오바마 등이 폐경(menopause) 후 갑작스럽게 신체·정신적 변화를 맞는 시기를 ‘빅-M’이라 부르며 인식 개선에 나서고 있다. 호르몬 변화를 파악하면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폐경기 퇴사자는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인력이다.

복지의 한계

한편, 북미 폐경 학회의 스테파니 포비안(Stephanie Faubion) 박사는 기업 차원의 폐경기 여성을 위한 복지 제도가 가지는 위험성을 경고했다. 여성이 나이가 들수록 직장에서 덜 생산적이라는 낙인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폐경에 대한 인식 개선을 촉구하는 차원으로 시작하여, 결국에는 축소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고 분석한다. 여성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라는 것이다. 영국 범정부 폐경TF는 첫 회의에서 논의한 내용도 저용량 호르몬 대체요법 제품을 처방전 없이 판매하는 방안이었다.

낮은 의료 접근성

영국과 미국 여성의 의료 접근성은 낮은 상황이다. 2022년 왕립 산부인과 대학(RCOG)의 발표에 따르면, 산부인과 대기자 명단은 50만 명에 달했다. 20명 중 1명이 1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대기 명단에 있는 여성 837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77퍼센트가 업무와 사회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미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51개 주 가운데 절반이 산부인과 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 미국에서 220만 명 이상의 가임기 여성이 산부인과가 없는 지역에 살고 있다.

성장하는 펨테크

여성 건강 관리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은 새로운 산업을 만들기도 했다. 바로 펨테크(femtech)다. 여성(female)과 기술(technology)를 합친 용어로, 여성 건강 관리에 초점을 맞춘 IT서비스를 말한다. 그랜드 뷰 리서치는 전 세계 펨테크 시장 규모는 2030년까지 131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786개의 펨테크 기업을 분석한 결과, 이들이 기존 헬스케어 기업들이 해결하지 못한 부분을 해결하고 있다며 성장 가능성도 크다고 설명했다. 2021년, 해외 펨테크 시장 정보 플랫폼은 펨테크를 이끌 키워드 순위를 발표했다. 1위는 난임 및 임신, 2위는 폐경기였다.

IT MATTERS

국내 펨테크는 아직 월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이 여러 기관과 함께 펴낸 ‘한국 여성의 월경·폐경 관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의 40퍼센트가 월경으로 인한 이상 증상을 경험하지만 그중 30퍼센트만 의료기관을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경이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거나, 관련 대화를 꺼리는 인식 탓이란 분석이다. 

한편,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이 집중하는 여성 건강 관련 이슈가 있다. 난임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난임 인구는 2021년 35만 명이었다. 2017년 30만 명에서 약 18퍼센트 증가한 것이다. 서울시는 조례를 마련해 난임 부부의 치료 시술비를 지원한다. 난임 치료 목적의 휴직을 허용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인구학자 데이비드 콜먼은 2006년 한국을 ‘인구소멸 1호 국가’로 경고했다. 그리고 2023년 다시 한국을 찾아 경제적 지원만으로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미국, 프랑스 등을 인구 정책 성공 국가로 언급하며, 이들의 공통점은 저출산 정책이 따로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본적으로 성평등을 강조하고 노동, 직장 환경이 양호하다는 것이다. 출산만이 아니라 폐경기까지, 여성의 생애 주기 전반을 이해하는 것이 저출산 대책의 시작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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