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침몰을 막을 상상력

5월 30일, explained

뉴욕시가 가라앉는다. 저지대는 매년 여름을 걱정한다. 무엇이 기형적인 도시 풍경을 만들었나?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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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 가라앉고 있다. 매년 평균 1밀리미터에서 2밀리미터 정도다. 맨해튼, 브루클린, 퀸스와 같은 뉴욕 주요 도시가 침강하기 쉬운 도시로 꼽혔다. 원인은 땅을 짓누르는 건물이다. 건물의 무게가 지층의 이완 현상을 강화하고 있다. 땅은 가라앉는데, 해수면은 올라간다. 도시가 위험에 처했다.

WHY NOW

높고 빽빽한 건물, 그 사이를 가득 메운 사람과 콘크리트는 성공한 도시의 전형이었다. 서울시는 여의도 국제금융중심지구의 빌딩 높이 규제를 사실상 폐지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기후위기의 시대에서 도시의 문법도 바뀌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건 마천루가 늘어선 스마트 도시가 아니다. 도시 개발과 성공 모델에 대한 상상력의 복원이다.

뉴욕의 땅

맨해튼의 기반암은 화산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딱딱한 편암이다. 높은 빌딩들이 줄지어 선 맨해튼 남단과 록펠러센터가 위치한 미드타운은 기반암과 지층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 높은 건물을 짓기 쉬운 지반 환경을 갖추고 있다. 반면 미드타운과 다운타운 사이인 중간 지대에서는 높은 건물을 찾기 어려운데, 편암 기반이 깊은 지하에 위치해 지반이 약한 탓이다. 이 딱딱한 변성암은 1887년부터 시작된 뉴욕의 고층 빌딩 건설을 떠받쳤다. 미래에도 그럴 수 있을까? 쉽게 ‘그렇다’는 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이유는 건물이다.

건물과 콘크리트

뉴욕시 전체에는 108만 4954개의 건물이 있다. 이들의 무게는 7620억 킬로그램으로 전체 인류 무게의 약 두 배에 달한다. 물론 인프라와 건물 안의 물품과 가구, 사람의 무게는 뺀 것이다. 유연하면서도 빠르게 굳는 콘크리트는 도시의 무게 대부분을 차지한다. 와이즈만 연구소에 따르면 콘크리트는 인간이 만든 전 세계 모든 인공물 무게의 약 절반을 차지한다. 2040년에는 지구 전체 생명체의 무게인 바이오매스(biomass)를 추월할 것이라 예상된다.

사람

왜 도시에는 콘크리트로 지어진 마천루가 가득 들어섰을까? 사람이 몰렸기 때문이다. 1950년에는 세계 인구의 30퍼센트만이 도시에 거주했다. 2007년에는 이 수치가 50퍼센트를 넘었다. UN은 2050년에는 전 세계 인구 100억 명 중 70억 명이 도시에 살 것이라 전망했다. 글로벌 경제 발전으로 인해 부유해진 국가는 도시와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망을 건설했다. 이동이 쉽고 빨라지자 몇몇 도시에 산업 기반이 몰렸다. 노후화된 농촌을 떠나 도시를 찾는 이들이 더 많아졌다. 1800년대의 런던과 뉴욕, 1970년대의 한국이 그랬다.

산업과 성장

콘크리트와 높은 건물로 구성된 지금 도시의 전형적인 모습은 산업화 이후 성장의 문법을 좇은 결과물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하비 몰로치(Haryey Molotch)는 이러한 도시를 ‘성장 기제(growth machine)’라고 표현한다. 산업 성장에 의해 도시의 경제적 가치는 커지지만 이로 인한 이익은 소수의 몫으로 돌아간다는 논지다. 한정된 땅이 경제 가치가 높은 상품이 되면 원주민은 추방당한다. 지금은 도시의 당연한 부분처럼 느껴지는 젠트리피케이션이다. 한 도시 계획자는 도시를 “성장 문화가 실제뿐 아니라 상징적 측면에서 구체화된 것”이라고 표현했다.

침몰을 감당하는 이들

이익만 소수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 손해도 누군가에게는 더욱 무겁다. 도시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가라앉지만, 그 몫을 받는 이는 따로 있다. 뉴욕의 경우 무거운 맨해튼의 마천루로 인한 침하 피해를 브루클린 남부와 브롱크스, 퀸스의 특정 지역이 감당하게 된다. 2012년 가을 폭풍 이후, 연방 정부는 도시를 보호하기 위한 ‘빅U’ 프로젝트를 내놨다. 광대한 잔디로 맨해튼을 둘러싸는 계획이다. 그러나 폭풍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공공 주택이 모인 외곽 자치구를 위한 계획은 없다. 현재 미국의 해안 도시는 고학력자의 유출로 인해 고심하고 있지만,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이들은 쉽게 이주를 고려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2022년, 강남을 덮친 폭우로 인해 집이 잠겨도 많은 사람은 그 공간을 떠나지 못했다.

새로운 도시?

위태로운 도시를 구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논의된다. 그중 하나는 기후 위기와 환경 오염에 대응하는 스마트 도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 시티는 물과 바람과 태양만으로 작동하는 스마트 도시를 지향한다. 그러나 새로운 도시를 만들 때 발생하는 탄소의 양, 담수화 공장이 사용하는 화석 연료, 170킬로미터 규모의 광대한 거주 공간은 친환경과는 거리가 멀다. 한편으로는 녹지 구성을 통한 녹색 도시 계획도 논의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5월 24일, 정원도시 서울 구상을 발표하며 낮은 건물을 높이 세우고, 빈 부지를 녹지로 채울 것이라 밝혔다. 미래 서울의 청사진에는 여의도의 용적률을 1200퍼센트로 완화하고, 높이 규제를 철폐한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높은 건물이 세워지는데 진정한 녹색이 맞냐는 기자의 질문에 서울시는 탄소 발생량은 어차피 동일할 것이라 일축했다.

나우토피아

생태학 전문가인 파블로 세르비뉴와 라파엘 스테방스는 지구에 거주하는 대다수가 더 이상 지구 시스템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못할 때, 인구는 인위적으로 만든 구조물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 대안으로 나온 개념이 ‘나우토피아’다. 우리의 사회가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지금 당장 대안적인 현실을 만들자는 제안이다. 존 조던과 이자벨 프리모는 ‘21세기 시민 불복종 캠프’를 그 사례로 든다. 2007년 영국에서는 1500명의 환경 운동가와 시민이 모여 케냐와 같은 양의 탄소를 배출할 것이라 예상되는 공항 건설을 막았다. 이들은 예정 부지를 점거하고 그곳에 에코 빌리지를 세워 직접 탄소 없는 삶을 실천했다. 이미 있는 캠핑 트레일러를 개조한다거나 태양열 발전 샤워실을 만드는 식이다.

IT MATTERS

암스테르담대학교의 페데리코 사비니 교수는 탈성장을 “석기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닌, 공간과 부를 재분배”하자는 아이디어라고 표현한다. 도시를 없애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다.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의 정석 교수는 서울에는 “멋진 스카이라인을 위한 고층 건물과 랜드마크용 건물보다 소통할 수 있는 건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속 가능한 미래 도시의 핵심은 공유와 연결이다.

네덜란드의 가장 오래된 도시인 네이메헌은 1995년 경험한 홍수 피해 이후 도시 전체를 재구성했다. 거대한 제방을 세우는 방식이 아닌, 물을 우회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물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하고 그 성질을 존중해서 도출된 방안이었다. 덕분에 수많은 야생동물은 다시 안식처를 찾았고, 도시는 해변을 갖게 됐다. 봄에는 꽃으로 가득 차는 작은 섬도 생겼다. 작게는 도시 농업과 코하우징도 하나의 대안이 된다. 환경과 개인의 연결, 상품과 시간의 공유는 성장 모델로서의 도시 이면의 상상력을 부른다. 사람은 도시를 만든다. 거대해 보이는 도시도 사람에 의해 충분히 바뀔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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