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에 칩 심는 일론 머스크

5월 31일, explained

뉴럴링크가 FDA로부터 인간 임상 실험을 승인받았다. 우려와 기대가 공존한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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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의 뇌 신경 과학 스타트업 뉴럴링크(Nueralink)가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인간 임상 실험을 승인받았다. 이로써 뉴럴링크는 인간의 뇌에 컴퓨터 칩을 이식하는 실험을 할 수 있게 됐다. 아직 실험 대상을 모집하진 않았지만 조만간 자세한 내용이 공지될 예정이다.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

WHY NOW

인간의 뇌에 컴퓨터 칩을 이식하면 어떤 것이 가능해질까? 2021년 12월 트위터에는 “세상아, 안녕(hello, world)”이라는 인사말이 올라왔다. 루게릭병을 앓던 62세 남성 필립 오키프의 트윗이었다. 그는 뇌와 컴퓨터를 연결해 생각만으로 트윗을 남긴 최초의 인물이 됐다. 그에게 이식된 건 ‘싱크론(Synchron)’의 칩이었다. 같은 인간 대상 임상에서 뉴럴링크보다 먼저 FDA 승인을 얻어낸 호주 기업이다. 터무니없어 보이는 미래는 이미 도래했다. 일론 머스크는 여기서 한차원 더 나아가고자 한다.

BCI(Brain-Computer Interface)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의미하는 BCI는 오래전부터 연구가 이뤄지던 분야다. 뇌 신호를 수집해 이를 디지털 신호로 전환시켜 기기를 작동케 하는 기술이다. BCI를 통하면 신체가 마비된 사람이 생각만으로 각종 기기를 조종하거나 타인과 의사소통할 수 있다. 시력·청력 손상이나, 비만, 우울증, 불면증, 자폐증, 정신 분열증 등 난치성 신경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길도 열린다. 싱크론은 이미 ‘뇌 임플란트’를 개발해 일곱 명의 환자에게 이식 후 테스트 중이다. 스위스 로잔 공과대학교(EPFL) 연구진은 현지 시간 5월 24일 BCI를 이용해 하반신 마비 환자를 일으켜 세워 걷게 했다.

뉴럴링크의 탄생

일론 머스크의 속내는 조금 다르다. 그는 대표적인 인공지능(AI) 위협론자로 꼽힌다. 자신이 출자한 비영리 기업 삶의 미래 연구소(FLI)에서 유발 하라리 등과 함께 AI 개발을 멈춰달라는 서한을 공개하기도 했다. 다만 그는 이러한 러다이트식 주장과 어울리는 인물이 아니다. AI 시대를 대비할 머스크의 계획은 바로 ‘인간과 AI의 병합’이다. 2016년 머스크는 일곱 명의 과학자와 뉴럴링크라는 회사를 세운다. 뉴럴링크의 최종 목표는 사람이 서로 생각만으로 텔레파시처럼 소통하는 것이다. 그는 기술을 통해 인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의 시대를 열고자 한다.

기억의 전이

인류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의 뇌 용량은 3000년 전부터 차츰 줄었다. 그 이유로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기억의 외장화’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도구와 집단 지성의 발달은 기억의 필요성을 감소시켰다. 그런데 만약 뇌에 외장 하드가 있다면 어떨까? 뉴럴링크는 이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뇌 신호를 디지털로 치환해 저장하고, 반대로 그 정보를 다시 뇌에 옮겨 담을 수 있다는 논지다. 알츠하이머를 극복할 수 있다. 이론상 더 무서운 일도 가능하다. 2000년에 정발된 니타 타츠오의 만화 《체인지》는 두 사람이 뇌를 바꾸며 일어나는 비극적 사건을 그렸다. 뇌를 해킹하거나 내심을 읽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머스크, 뇌를 해킹하다

2019년 7월 BBC는 〈일론 머스크가 뇌 해킹 계획을 공개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머리카락보다 얇은 1500개의 전극을 이식한 쥐의 뇌에서 무선으로 정보를 전송받아 컴퓨터로 읽은 실험이 공개됐다. 뉴럴링크는 2022년 12월 이를 기반으로 한 뇌 임플란트 장치를 공개했다. 초소형 칩과 더불어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1024개의 전극 채널로 이뤄져 있었다. 수십~수백 개의 전극을 사용한 기존 BCI에 비해 훨씬 고도화된 성능을 자랑했다. 이번엔 ‘사케(Sake)’라는 이름의 원숭이가 생각만으로 마우스 포인터를 조작하고 키보드를 타이핑했다. 뉴럴링크의 다음 모델은 1만 6000개의 전극 채널을 목표한다.

뇌 임플란트 N1, R1

이식 과정은 만만치 않다. 뉴럴링크의 뇌 임플란트 기술은 N1이라는 칩과 R1이라는 로봇이 핵심이다. 25센트 동전보다 약간 큰 N1은 이식받는 사람의 두개골 덩어리를 대체하고 피부 아래 보이지 않게 심어진다. R1은 뇌 조직을 노출하지 않은 채 두개골 아래 경막층을 뚫어 혈관을 피하면서 빠르게 전극 바늘을 뇌에 삽입한다. 문제는 이식 이후 칩의 와이어가 뇌의 다른 부분으로 이동하며 과열로 인한 조직 손상을 유발할 수 있고 칩 제거 과정에서도 뇌 손상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FDA가 이제껏 승인을 거부한 이유다. 그렇다면 다른 업체들은 이 문제를 예전에 해결한 걸까?

침습 전쟁

싱크론이 먼저 FDA 승인을 받을 수 있던 건 이들의 기술이 비교적 안전하기 때문이다. BCI는 두개골을 절개해 침을 주입하는 침습식, 혈관에 센서를 주입하는 개입식, 두피 표면에 침을 부착하는 비침습식이 있다. 뇌파 수집의 효율도 이 순서를 따른다. 싱크론의 BCI ‘스텐트로드(Stentrode)’는 철망 구조로 이뤄져 혈관을 확장하는 ‘스텐트’를 활용한 개입식이다. 8밀리미터 길이의 스텐트를 목 경정맥에 삽입하면 BCI가 뇌혈관에 달라붙어 신호를 보낸다. 머스크는 지난해 싱크론을 인수하려 했지만 그들은 이미 제프 베이조스와 빌 게이츠의 투자를 받은 뒤였다. 최근엔 중국에서 원숭이를 대상으로 개입식 BCI 연결을 성공시키며 뉴럴링크의 입지는 더 위협받고 있다.

1500마리

머스크의 다급함은 동물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뉴럴링크는 현재 미국 농무부(USDA) 감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다. 2018년부터 동물 실험으로 무려 1500마리 이상이 실험동물이 죽었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머스크의 재촉과 압박으로 인해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급박하게 실험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물론 동물 실험은 BCI 업계 공통의 문제다. 그러나 뉴럴링크가 죽인 동물의 숫자는 싱크론이 죽인 80마리에 비해 19배나 된다. 침습적 방식을 실행하다 보니 그 방식도 더 잔인할 수밖에 없다. 이는 뉴럴링크의 근본적 방향성에 질문을 던진다.

IT MATTERS

일론 머스크는 BCI를 혁신할 수 있을까? BCI 분야의 기술 선구자인 미겔 니코렐리스는 뉴럴링크의 기술이 새로운 것이 아니며 그 지향점이 크게 비현실적이라고 일갈한다. 깊은 인지 능력과 감정 등은 전이할 수 없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여타 BCI 기업과 달리 뉴럴링크는 인간 향상(human enhancement)을 대대적으로 표방한다. 뉴럴링크가 위험성 높은 고난이도의 침습 방식을 고수하는 건 치료가 어려운 질병을 돕는다는 1차 목표를 넘어 이처럼 BCI 개념의 확장을 꾀하기에 그렇다. 사람 머릿속의 ‘핏빗(Fitbit)’ 장비를 만들려는 야심 자체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뉴럴링크를 향한 기대감은 실재한다. 과거 우주 로켓을 재사용한다는 얘기에도 사람들은 비슷한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스페이스X는 2015년 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킨 후 추친체 로켓을 회수하는 데 성공해 우주 산업의 새 지평을 연다. 2018년엔 팰컨 헤비(Falcon Heavy)의 보조 추진 로켓 두 대를 수직으로 동시 착륙시켰다. 스티브 잡스가 일상을 혁신했다면 일론 머스크는 인류의 가능성을 혁신해 왔다. 그러나 인체는 로켓도, 전기차도, 2차 전지도, 마음껏 주무를 수 있는 소셜 미디어도 아니다. 의료나 생명 과학 분야의 스타트업이라면 경쟁과 혁신 이전에 생명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1500마리 동물의 죽음과 무리한 침습 연구로는 화성에 갈 신인류를 창조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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