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이 된 재난 문자

6월 1일, explained

북한이 우주발사체를 쏘아 올렸다. 시민을 불안케 한 것은 재난 문자였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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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31일 오전 6시 41분, 서울시내 곳곳에 재난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 서울시가 발령한 경계경보를 알리는 위급 재난 문자였다. 잠을 자다가, 출근을 준비하다, 아침 식사를 차리다가 시민들은 멈춰 섰다. 그리고 당황했다. 재난 문자에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2분 뒤, 시민들은 허탈감에 빠졌다. 모두를 멈춰 세웠던 경계경보가 오발령이었다는 행정안전부의 정정 문자를 받아들었기 때문이다.

WHY NOW

북한이 쏘아 올린 우주발사체보다 서울시에서 보낸 재난 문자 한 통이 더 큰 불안이었다. 재난도 전쟁도 예고 없이 시작된다. 이번 일이 그저 짜증스러운 해프닝으로 끝난다면 우리는 실제 상황이 닥쳤을 때 감당할 수 없는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해결할 방법은 없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이것은 생존의 문제이다.

문자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

재난 문자 알림음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침실에서도, 도로 한복판에서도, 생방송 스튜디오에서도 60데시벨이 넘는 날카로운 ‘삐’ 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재난 문자는 휴대전화를 가린다. 2013년도 이전에 출시된 3G폰, LTE폰 등은 재난 문자 수신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2020년도 기준으로 이에 해당하는 단말기는 122만 5000대였다. 10년도 더 된 오래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다면 국가의 재난 경보를 수신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행안부는 ‘안전디딤돌’ 앱을 설치해 재난 문자를 수신할 수 있도록 했지만, 고령자 등 디지털 리터러시 취약 계층에게는 넘어야 할 난관이 높다.

정부가 보내는 스팸 문자

재난 문자는 받았으되 놀라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제대로 읽지도 않고 꺼버린 사람들이다.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익숙함을 넘어 짜증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연간 재난 문자 발송 수는 2016년 375건에서 2020년 기준 5만 5000여 건으로 급증했다. 그리고 코로나19 재난이 덮치자,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전국 지자체가 발송한 코로나 관련 재난 문자는 14만 5000여 건이다. 물색없는 지자체의 행태도 기름을 부었다. 폭설 긴급 재난 문자에 ‘눈사람’을 만들자는 이벤트 내용을 담아 보낸 지자체는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이렇게 재난 문자는 스팸이 되었다. 그래서 재난 문자를 수신 거부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런데 지난 31일 아침에는 ‘스팸 거부’를 해 둔 사람들의 휴대전화에서도 알림음이 울렸다. 이번에는 ‘위급 재난 문자’였기 때문이다.

9분이 지난 위협

재난 문자는 ‘위급’, ‘긴급’, ‘안전안내’ 세 종류다. 이 중 ‘위급’은 규모 6.0 이상의 지진, 전시 상황, 공습경보 등 국가적 위기가 발생했을 경우 발송된다. 즉, 무조건 수신해서 바로 대피해야 하는 상황이란 얘기다. 수신 거부가 되지 않는 이유다. 그렇다면 빨리 전달되어야 한다. 필요한 정보가 담겨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서울시의 문자는 경보 발령으로부터 9분이나 지나 발송되었다. 경보 발령의 이유나 대피 방법 등도 빠져있었다. 부족한 정보는 정보가 아니라 위협일 뿐이다. 실제 상황이었다면 오히려 혼란만 가중했을 가능성도 있다.

매뉴얼의 함정

늦게 온 이유가 있다. 전화 통화가 되지 않아서다. 서울시가 행안부의 지령 방송을 수신한 후 확인 전화를 시도했지만, 행안부 쪽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절차가 복잡한 까닭도 있다. 행안부의 지령과 동시에 문자가 나가는 것이 아니다. 담당자가 시스템에 문자 내용을 등록하고 그 내용을 서울시가 최종 승인하여 발송하게 된다. 이런 과정들이 1분씩, 2분씩 걸렸다. 그렇게 실제 상황이었다면 결정적이었을 9분이 흘렀다. 결국 정해진 대로 한 것이 문제였다. 지금 당장 시스템을 손봐야 한다.

먹통, 그리고 또 먹통

부실한 문자 내용은 규정 탓이었다. 담당자는 ‘재난문자방송 기준 및 운영규정’에 제시된 문안 그대로 내용을 작성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검색을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부족한 정보를 찾아보기 위해서다. 결국 네이버가 터졌다. 문자가 수신된 것은 오전 6시 41분, 네이버 모바일 버전 접속 장애는 오전 6시 43분부터 48분까지 5분간이었다. 포털이 막히면 정보가 막힌다. 대피소의 위치는 ‘안전디딤돌’ 앱과 국민 안전 재난 포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앱과 사이트에 접속한 시민들도 정보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먹통이었다. 접속이 폭주했을 때 서버가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전쟁 중에 스마트폰은 작동할까?

서울시의 재난 문자에는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적혀있다. 그런데 노약자와 어린이만 있는 경우라면 어떨까? 디지털 약자 이야기다. 팬데믹 기간 동안 우리는 디지털 약자가 어떤 식으로 복지에서, 교육에서 소외되는지를 목격했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IT 인프라에만 기댈 경우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무엇보다 전쟁은 첨단 기술을 무용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전기가 끊기고 기지국이 공격당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정보를 얻고 대응할 수 있을까.

낡은 기술의 가치

지난 2021년 방송통신위원회가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1가구 1대 갖기’ 캠페인을 주목해 볼만 하다. 집집마다 휴대용 라디오를 한 대씩 갖자는 얘기다. 라디오는 재난 필수매체로 꼽힌다. 소형 수신기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일반 건전지로도 오랫동안 작동하고, 제작도 간단하다. 통신과 달리 일방향이므로 청취자를 추적할 수도 없으며 단파 라디오의 경우에는 수천 킬로미터 밖에서도 수신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저렴하다. 쉽다. 첨단이 아니기 때문에 전시에는 더 큰 가치를 가질 수 있다.

IT MATTERS

개선할 수 있는 문제는 개선하면 된다. 지진 관련 재난 문자가 좋은 예다. 지난 2016년, ‘경주 지진’ 당시에는 지진 발생 9분 후에야 발송되었다. 상황이 종료된 이후에 문자를 받은 셈이다. 그런데 2017년 ‘포항 지진’ 때에는 발생 1분 만에 문자를 발송했다. 주관 부처가 기상청으로 바뀌면서 절차가 간소화했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중으로는 폭우 등의 위험 기상 관련해서도 기상청이 곧바로 재난 문자를 발송하게 된다.

다만, 좀 더 장기적으로 고민해 봐야 할 문제도 있다. 팬데믹 시기, 디지털 격차는 교육 격차로 이어졌다. 누군가는 온라인 수업을 위해 성능 좋은 웹캠과 마이크를 구입하는 동안 누군가는 할머니의 낡은 휴대전화에 의존해 원격 수업에 겨우 출석했다. 기술이 모든 것을 혁신하는 시대다. 그러나 혁신은 모두의 것이 아니다. 재난이나 전시 상황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비극이다.

게다가 첨단의 기술이 국민적인 불안을 감당할 만큼 탄탄하게 준비되어 있지도 않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우리는 이미 지난 2018년 KT 아현지사 화재로 갑자기 인터넷이 끊겼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를 경험한 바 있다. 지난해의 ‘카카오 먹통 사태’도 교훈을 남겼다. 그러나 아직도 정부의 재난 포털은 서울 시민의 불안도 감당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예정된 전쟁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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