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씨앗이 된 딸기

6월 5일, explained

독일과 스페인이 딸기를 두고 싸운다. 난감한 건 스페인의 중앙 정부, 웃는 건 스페인의 극우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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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스페인이 딸기 전쟁을 벌인다. 독일로 수출되는 스페인산 딸기가 ‘가뭄 딸기’라며, 독일 환경 단체 캠팩트(Campact)가 불매 운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캠팩트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에 몰려 있는 딸기 농가가 주요 습지 도냐나(Doñana) 국립공원의 물을 마르게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자치정부와 딸기 농가는 독일의 주장이 거짓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WHY NOW

독일과 유럽이 습지를 지킬까, 스페인이 딸기를 지킬까? 이 문제의 근본에는 습지를 마르게 하는 기후 위기가 있다. 하지만 이 문제를 결정적으로 점화한 것은 기후 위기가 아니다. 스페인의 정치 문제를 들여다 봐야 이 문제가 보인다. 

목마른 과일 딸기

딸기는 목마른 과일이다. 딸기 1킬로그램을 재배하려면 300리터의 물이 필요하다. 딸기는 한 도시의 배를 불려주는 과일이다. 스페인 최남단 안달루시아 총소득의 8퍼센트와 일자리 10만 개를 창출한다. 한 도시에서 생산되는 양이 스페인 전체 베리류 생산량의 98퍼센트를 차지한다. 안달루시아 우엘바에서는 어마어마한 양의 딸기를 생산하고, 그래서 더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필요하다. 그리고 여기에는 보호 대상 습지, 도냐나 국립공원이 있다.

도냐나 국립공원

도냐나 국립공원은 1994년 유네스코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곳이다. 유럽 최대 규모의 습지인 도냐나는 사슴과 오소리, 독수리와 이베리아 스라소니가 사는 보금자리이자 철새 도래지이다. 이곳이 딸기 농사로 말라간다. 재배량을 감당하려면 물을 국립공원에서 끌어 와야 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습지는 모래톱으로 마르고, 물새의 개체수가 줄어가고 있다. 도냐나 생태계는 학자들과 환경 단체로부터 꾸준히 지적받아 왔다. 세계자연기금(WWF)은 불법 우물을 폐쇄하고 농산물 재배 면적을 줄이라고 권장한다. 어마어마한 딸기 생산량 중 3분의 1을 수입하는 것은 독일이다. 그래서 독일 환경 단체 캠팩트가 도냐나를 지키기 위해 딸기 보이콧에 나선 것이다.

독일의 딸기 보이콧

캠팩트는 독일의 식품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4대 슈퍼마켓 체인[1]으로 향한다. 이들은 스페인 딸기의 대부분을 구매하고 있다. 딸기가 출발하는 곳은 아니지만, 도착하여 최종적으로 소비되는 곳이다. 캠팩트는 수요를 말리면 공급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독일의 마트들이 딸기 불매 운동에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 현재 독일의 14만 명 이상이 온라인 서명을 통해 스페인 딸기 판매 중단을 요청하고 있다. 그런데 이 움직임에 지지를 보낸 사람이 스페인에도 하나 있다. 환경 단체도, 연구자도, 일개 정치인도 아니다. 무려 총리, 페드로 산체스다.

스페인을 지켜라 (1) - 도냐나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트위터에 독일의 딸기 보이콧 기사를 공유하고, “도냐나를 구합시다”라고 적었다. 산체스는 스페인을 지키고 싶은 걸까? 그렇다. 정확히는 세계 문화유산 지정 취소 위기에 처한 도냐나를 살림으로써, 유럽 사법재판소(CJEU) 등 “습지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 않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피함으로써 스페인을 지키고 싶다. 하지만 딸기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밥줄이다. 연간 수확량에 따라 10~30억 유로의 수익이 달려 있다. 먹고사는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스페인을 지켜라 (2) - 경제 

스페인을 지키고 싶은 마음은 산체스 총리나 안달루시아나 마찬가지다. 그 방향과 방식이 다를 뿐이다. 스페인 최대의 베리류 생산 조합인 인터프레사(Interfresa)는 딸기 산업이 불법적으로 물을 끌어다 쓰고 있다는 독일의 비난이 거짓이며, 이 지역의 산업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농부들이 등에 업은 것은 안달루시아의 자치 정부다. 그리고 자치 정부를 이끌고 있는 것은 스페인의 우파 세력 인민당(PP)[2], 그리고 그들과 연정하는 극우 정당 복스(VOX)이다.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속한 사회노동당(PSOE)와는 정치적인 방향이 다르다. 이들은 산체스 총리가 자국의 산업을 챙기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다.

도냐나에서 벌어지는 밀릴 수 없는 싸움

불은 독일이 댕겼고 불씨는 스페인에서 붙었다. 스페인 정치가 활활 타고 있다. 안달루시아의 우파 자치 정부는 지방선거를 준비하며 현재 불법적으로 행해지는 도냐나 인근 약 1900헥타르의 관개 경작지를 합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딸기 농부들이 이 지역의 주요 유권자 그룹이기 때문이다. 반면 중앙의 좌파 정부는 이를 헌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고 큰 소리로, 자주 말하고 있다. 스페인 지방 선거가 있던 5월, 도냐나 갈등은 스페인 정치의 가장 뜨거운 문제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28일, 스페인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중도 우파 성향의 인민당과 극우 야당 복스 연합이 대승을 거두었다. 안달루시아 우엘바는 역사상 처음으로 인민당이 장악하게 되었다.

스페인 정치, 극우가 점령할까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지방선거 패배를 인정하고 7월 23일 조기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선언했다. 로이터 통신은 정부여당에 대한 지지율 하락과 보수 정당 상승세가 커지는 걸 막기 위해서 정치적 위험을 무릅쓰고 총선을 실시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전망은 밝지 않다. 우파 인민당과 극우 복스 연합이 인기를 끌고 있고 이들의 선거 승리가 예상된다. 산체스 총리는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현재 3위 정당인 복스가 집권 세력의 일원이 된다.

IT MATTERS

이것은 스페인만의 일이 아니다. 지금 극우는 유럽의 중앙 정치에 속속들이 진출해 집권 세력이 되거나 그들과 연정을 구성하여 정치를 휩쓸고 있다. 이탈리아는 이미 극우 정당 이탈리아의 형제들이 정권을 잡았다. 조르자 멜로니 정권은 동성 부부의 입양을 제한하고 난민 구조선이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독일의 극우 대안당(AfD)은 지난 3일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9퍼센트로, 집권 사민당(SPD)과 동률을 보였다. 지난 프랑스 대선과 총선에서는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이 선전하여, 마크롱 현 대통령은 결선 투표에 가서야 겨우 대통령 자리를 지켜낼 수 있었다.

최근 영국 언론 《가디언》은 이 현상을 낳은 것이 주류 정치권이라고 이야기했다. 주류 정당이 극우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미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극우파의 수사와 정책을 모방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소수였던 극우파가 토론의 룰을 만들 수 있었다. 스페인의 우파 인민당이 극우 복스를 파트너로 삼은 것 역시 이러한 현상 중 하나다. 주류 정치권의 고민이 필요하다. 극우의 메시지는 왜 매력적이었을까.

소위 극우나 극좌는 ‘포퓰리즘(populism·대중영합주의)’을 택한다. 포퓰리즘은 사회를 ‘순수한 민중’과 ‘부패한 엘리트’로 나눈다. 이 구도에서 순수한 민중은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생산자들이고, 부패한 엘리트는 이 생산의 부산물을 누리기만 한다. 포퓰리즘을 택한 정치는 엘리트에 반대해 민중의 편에 서서 민중들의 의지를 대변한다. 스페인의 딸기 생산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우파 정당의 모습이 떠오른다. 문제는 모든 개인도, 모든 이슈도 단순한 이분법으로 나누기에는 복잡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안달루시아의 딸기 농부는 농부인 동시에, 기후 위기로 인해 더워지고 있는 스페인의 날씨를 견뎌야 하는 사람이다. 딸기 논쟁에는 지역 경제에 더불어 환경, 국제 문제 등 다양한 이슈들이 얽혀 있다. 지역 경제를 살리자는 매력적인 메시지를 내세운 스페인의 우파는 당장 안달루시아 지방선거에서는 승리했지만, 장기적으로 보아 도냐나 국립공원의 생태계를 되돌릴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 것이다.

메시지를 쉽게 만드는 것과, 쉽게 메시지를 만드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고민 없이 만들어진 메시지는 ‘우리’와 ‘그들’을 간편하게 나누기 때문에 이해하기 쉽고 선명하다. 하지만 여기서는 쉽게 구분 지어진 ‘그들’도 곧 한 세계에 살아가는 ‘우리’라는 점은 절대 말하지 않는다. 결국 해석은 유권자의 몫이다. 극우가 몰고 오는 새로운 공포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유권자 스스로 극우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1]
에데카(Edeka), 리들(Lidl), 레베(REWE), 알디(Aldi)
[2]
국내 언론에서는 주로 국민당으로 번역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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