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특별자치도, 성장의 청구서

6월 7일, explained

강원특별자치도가 출범한다. 마냥 환영하기 힘들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NOW THIS

오는 6월 11일부터, 강원도는 더 이상 강원도가 아니다. 628년 만이다. 조선 태조 4년 이후 변함 없이 지켜온 이름이지만, 이제는 ‘강원특별자치도’ 시대를 연다. 제주도에 이어 16년 만에 두 번째 특별자치도, 제주와 세종에 이은 세 번째 특별광역자치단체다.

WHY NOW

수도권은 무심하다. 강원도는 뜨겁다. 이 온도 차가 처음부터 문제였다. 이 온도 차 때문에 강원도의 민심은 ‘특별자치’를 원했다. 그래서 2022년, 당시 대선 후보들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리고 지난 5월 강원특별자치도법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으며 현실이 되었다. 당장 달라지는 것은 이름뿐이다. 그러나 1년 후, 10년 후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상상 이상이다. 강원도의 얘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 얘기다.

두 번째 표결

지난 5월 25일, 국회의사당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의원들이 이미 표결에 들어간 법안을 두고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반대토론에 나섰기 때문이다. 표결은 중단되었고 본회의장에는 고성이 오갔다. “표결을 두 번 하는 게 어디 있냐”, “지금 뭐 하는 짓이냐” 등 비난의 목소리였다. 해당 법안이 바로 ‘강원특별자치도법’이다. 이 의원의 토론 신청이 접수되지 않았던 것은 착오였고 소동은 해프닝이었다. 그러나 본회의장의 고성은 선명한 상징이었다. 누군가에겐 무조건 이뤄야 할 과업이 누군가에겐 어떻게든 막아야 할 악법인, 모순적인 상황의 상징 말이다.

강원도의 힘

이 의원에게 강원특별자치도는 왜 막아야 하는 일이었을까. 강원도의 장래 희망이 의외의 방향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강원도는 분단된 한반도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 그래서 평화라는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아름다운 산세와 청량한 바다 풍경을 자랑하는 청정한 지역이기도 하다. 평화와 환경, 수도권의 우리에게 강원도는 그런 곳이다. 그런데 강원특별자치도법의 내용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강원특별자치도의 장래 희망

김진태 초대 강원 특별자치도지사의 한마디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 특별법이 최종 가결되자 김 지사는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지르고 “강원도가 맘껏 성장할 수 있도록 판이 열렸다”고 말했다. 그렇다. 김 지사의 강원도는 맘껏 성장하고 싶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고 싶고, 설악산 오색케이블카처럼 국립공원에도 개발이 진행되어야 한다. 강원특별자치도의 장래 희망은 성장이다. 평화와 환경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특별법은 김 지사에게 백지수표를 발행했다.

김 지사의 백지수표

수표에 적힌 금액은 어마어마하다. 개발이 끝나고 한 세대가 지나면 청구서가 날아든다. 그 청구서를 미리 계산해 보는 작업이 바로 ‘환경영향평가’다. 그 권한이 환경부에서 자치도로 넘어간다. 이밖에, 산림에 수목원이나 공원시설 등을 설치할 권한, 농업진흥지역 해제 권한 등도 김 지사 손에 달렸다. 20세기 내내 우리는 환경을 파괴하면 돈이 벌리는 광경을 목격해 왔다. 자연스럽게 지역 민심은 성장을 향한다. 개발을 향한다. 개발이 시작되면 정치인의 인기가, 정당 지지율이 오른다. 그리고 총선이 코 앞이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86명의 의원이 특별법 발의에 나선 까닭이다. 그 86명에는 우원식, 남인순 의원 등 기후 위기에 목소리를 내 온 의원들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환경단체들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토환경을 인질 삼아 강원도 표를 구걸”한다며 국회를 비난한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강원도까지 가 닿기에는 너무 작다.

정치가의 절박함

이쯤 되면 표결을 두 번 한다고 통과될 법이 통과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왜 의원들은 이 의원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을까. 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강원도의 민심을 감당할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절박했기 때문이다. 강원도는 대한민국의 지역 격차의 원인과 결과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상징적인 지역이다. 세월이 쌓이면서 지역 내의 불만도 쌓였다. 아니, ‘한’이 쌓였다. 안보 때문에, 환경 때문에 강원도가 늘 희생만 해 왔다는 ‘한’이다. 그 민심은 “기회손실”을 말한다. 강원도의 깨끗한 자연환경이 “족쇄”가 되었다고도 이야기한다.

친환경의 비용 정산

강원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 〈환경관리, 중앙집권형에서 지방분권형으로〉에 언급된 얘기다. 해당 보고서의 첫 페이지에는 이런 문장이 실려있다. “환경재 사용과 생산에 있어 도시는 무임승차, 지방은 기회손실, 그 사례가 강원도이다.” 이것이 강원도의 민심이다. “(환경 관련 새로운 법규와 제도 도입 및 이를 당연시하는 인식 배경에는) 저널리즘에 의해 생산된 ‘급진적 환경감수성’이 자리하고 있다.” 수도권의 감각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다.

농심(農心)이 상처받을 때

정부 정책 속에서, 특히 개발 이슈 관련해 강원도는 소외되고 희생되어 왔다는 이 정서,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 농심(農心)이 들고 일어났다. 정치 지형도가 바뀌었다. 지난 3월, 네덜란드 지방의회 선거에서 신생 농민시민운동(BBB)당이 사실상 1당으로 부상한 것이다. 농민시민운동은 네덜란드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 대한 반발로 창당되었다. 가축 수를 3분의 1가량 줄이고 수천 개의 농장을 폐쇄하겠다는 정책이었다. 정부의 친환경 정책이 농촌에 변화와 그 비용은 크게 떠넘기고 있다는 공감대가 새로운 정치세력을 탄생시켰다. 정치학자들은 이 움직임을 “서민적 민족주의”라고 정의한다. 농민시민운동은 스스로를 “사회적 우파”라고 칭한다.

IT MATTERS

특별법을 뜯어보면 있어야 할 것이 없다. 지향점이다. 제주도의 경우 특별자치도법 구상 때부터 ‘국제자유도시’라는 성격을 명확히 했다. 그러나 강원도의 경우 명칭 변경과 함께 선언적 의미만 담긴 정도다. 대신 지금까지 감당해 온 “기회손실”을 만회하겠다는 결심만은 단단히 담겼다.

서울에서 강원특별자치도 출범은 큰 뉴스가 아니다. 그게 문제다. 수도권에 과몰입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초래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전 세계적인 기후 위기의 비용은 불공평하게 분배된다. 한 국가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기후 위기의 비용을, 서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더 무겁게 감당해 온 것은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역의 지지 정당으로 이익을 나누는 지금의 행태를 멈추면 답이 보인다. 첫걸음마를 뗀 ‘생태계 서비스 지불제’처럼 환경을 지키는 지역주민의 활동이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확대하는 것이다. 사회적 가치가 돌아갈 곳에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방법을 찾는 것, 환경을 지키는 행위가 그대로 지역사회의 이익으로 환원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야말로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