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비전 프로, 컴퓨팅의 미래

6월 8일, explained

‘애플 비전 프로’가 공개됐다. 애플은 이를 헤드셋이 아니라 ‘공간 컴퓨터’로 정의한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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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혁신이 베일을 벗었다. 현지 시간 6월 5일 ‘세계 개발자 콘퍼런스(WWDC) 2023’에서 애플은 새 디바이스 ‘애플 비전 프로(Vision Pro)’를 발표했다. 고글 형태의 혼합 현실(MR) 헤드셋으로 가격은 3499달러, 우리 돈 456만 원이다. 내년 초 미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출시된다. IT 전문 매체 ‘더 버지(The Verge)’는 “애플이 끝내 TV를 만들었다”라고 평했고 애플은 자신들이 만든 걸 ‘최초의 공간 컴퓨터(spatial computer)’라 칭했다.

WHY NOW

장난감으로 보이거나 아이폰 사용자만의 이야기로 들리기 쉽다. 그러나 비전 프로는 현시점 IT 산업에서 게임 체인저로 가장 유력한 후보다. 1000명이 넘는 개발자가 7년 넘게 개발에 참여해 탄생시킨 애플 기술의 집약체라서가 아니다. 팀 쿡 애플 CEO는 비전 프로가 열어갈 공간 컴퓨팅 시대를 아이폰이 연 모바일 컴퓨팅 시대에 빗댔다. 이들이 제시한 것은 컴퓨팅의 미래다.

One More Thing?

애플워치 이후 9년 만의 “원 모어 씽(One More Thing)”이었다. 소문은 무성했다. 2021년을 전후로 애플 소식에 정통한 《블룸버그》의 마크 거먼(Mark Gurman)에 의해 애플의 AR 헤드셋 루머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업계 리더 메타(Meta)가 헤드셋 ‘퀘스트’ 시리즈 출시에도 영업 이익률이 감소하며 주가 폭락이 예고되던 때였다. 마침내 공개된 비전 프로는 퀘스트에 비해 디스플레이와 인터페이스, 처리 속도 모두에서 크게 진일보했지만 원 모어 씽이랄 건 없었다. 성능에 걸맞은 킬러 앱도 부재했다. 일부러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공개하고 디즈니, 게임 소프트웨어 업체 유니티와 협업을 발표했지만 시장은 반신반의다.

퀘스트와 비전

애플은 왜 유수의 기업들이 실패한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을까? 비전 프로가 탐내기에 퀘스트의 시장은 작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메타버스 시장의 최대 경쟁자를 애플로 보지만 애플은 그 너머를 본다. 양사의 정체성과 전략도 다르다. 메타의 출발은 소셜 미디어다. 연결, 커뮤니티 형성에 강점이 있다. 메타버스를 꿈꾸는 이유다. 애플은 하드웨어 회사다. 운영 체제와 사용자 경험을 개인화하고 폐쇄형 생태계에서 통일성을 추구하는 데 강하다. 퀘스트가 탐구하려는 게 가상 공간이라면 비전 프로가 보여 주려는 건 압도적 기기를 통한 컴퓨팅의 새 패러다임이다.

시선의 경제학

랩탑, 데스크탑, 스마트폰, 스마트패드, 광고판, 사이니지 등은 공통점이 있다. ‘시선 강탈’이 목표라는 점이다. 디스플레이는 시선을 가두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가상(VR)·증강(AR) 현실 헤드셋으로 불리는 ‘HMD(Head Mounted Display)’는 겉보기엔 답답해도 시야와 공간의 제약을 초월한 플랫폼이다. 애플은 이를 공간 컴퓨팅으로 명명하며 사용자가 있는 공간에 컴퓨터 인터페이스를 덧입혔다. 시선을 가두고 뺏는 게 아니라 해방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이다. 비전 프로가 상용화에 성공하면 그간 통용되던 시선의 경제를 대체할 혼합 현실 공간의 경제가 문을 연다.

앰비언트 컴퓨팅

2017년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자 월트 모스버그는 미래의 IT 패러다임으로 ‘앰비언트 컴퓨팅(Ambient Computing)’ 개념을 강조했다. 사용자가 마치 공기처럼 기기를 거의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디지털 행위를 하는 컴퓨팅 환경을 의미한다. 시선과 손동작을 추적하는 기능이 강조된 이유다. 기기 중심이 아닌 행위 중심, 애플의 ‘휴먼 인터페이스’ 원칙과도 맞아떨어진다. AR·VR·MR을 포함, 스마트홈과 자율주행 기술의 종착지다. 그간 가상 현실 분야가 엔터테인먼트 등 콘텐츠에 집중한 것과 달리 애플은 생활 환경 그 자체를 콘텐츠 삼아 컴퓨팅 인프라를 구축한 것이다.

홀로렌즈의 미래 컴퓨팅

유능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스티브 잡스가 즐겨 인용한 말이다. 차별화가 강점인 애플은 이번에 무엇을 훔쳤을까? 비전 프로의 비전을 보려면 퀘스트가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MS)의 AR 기기 홀로렌즈(Hololens)를 봐야 한다. 홀로렌즈는 2015년 1월 공개되며 차세대 컴퓨팅 패러다임으로 ‘고도로 개인화된 컴퓨팅’을 제안했다. 생산성 소프트웨어에 강한 MS답게 실용성이 강조됐다. 주변 공간은 금세 작업 환경으로 탈바꿈됐고 윈도우10과의 연계도 쉬웠다. 홀로렌즈는 기업용으로 포지셔닝해 산업 시장에서의 입지가 강하다. 비전 프로와 B2B, B2C 시장을 각각 취할 것으로 보인다.

공간 컴퓨팅이 말하는 공간

비전 프로는 컴퓨팅의 미래를 앞당길 수 있을까? 앰비언트 컴퓨팅의 길은 멀다. 애플이 몰입을 토대로 기기 간의 심리스(seamless)함을 강조할수록 비전 프로의 한계는 명확해진다. 공간 컴퓨팅이 말하는 공간이 제품 예시처럼 집, 사무실 등 실내에 포커싱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기기 무게를 줄이고자 밖으로 뺀 외장 배터리는 완충 시 두 시간 사용이 한계다. 밖에 못 쓰고 나갈 건 없지만 계절을 고려한 디자인은 아니다. 이동의 제약을 초월한 모바일이나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대체하진 못한다는 점에서 ‘고급 가전’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진짜 과제, 경량화

AR 기기의 핵심 과제는 결국 경량화·소형화다. 몰입 경험만큼 중요한 과제다. 웨어러블로서의 사용성이 극대화된 미래 컴퓨터의 형태는 안경이나 렌즈일 수도, 뇌에 칩을 심는 방식일 수도 있다. 애플은 어디까지 콤팩트한 폼팩터를 제시할 수 있을까? 비전 프로 발표에 담긴 후문은 우려를 더한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팀 쿡과 운영진은 경량화된 AR 글래스의 상용 시점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디자인팀의 우려에도 불구, 조기 출시를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스키 고글 형태로 공개된 이유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애플이 완제품이 만들어진 후 제품을 공개했던 관례를 스스로 깨는 것이라 지적했다. 경량화는 생각보다 먼 미래의 일일지 모른다.

IT MATTERS

스마트폰은 성숙기에 접어든 지 오래됐다. 애플도 성장 둔화에 직면했다. 돌파구가 필요하다. 애플의 공간 컴퓨터가 등장한 배경이다. 과도한 가격, 크게 새로울 건 없지만 압도적으로 끌어올린 기존 AR 산업의 기술들, 애플 생태계와의 완벽한 상호 작용에서 읽히는 것은 애플의 다급함이다. 애플은 덜어내는 것에 강하고, 필요한 기술을 적절히 배치해 완성도 있는 절제의 디자인을 보여 줬다. 미니멀리즘과 실용성이 애플의 프리미엄을 만들었다. 애플의 팬들에게 비전 프로는 비싼 가전을 여러 개 사는 것보다 효용이 좋은 일일지 몰라도, 각 기능이 사용자 모두를 설득하기엔 어려움이 클 것으로 보인다. 대중들에겐 너무 급진적이고 얼리 어답터들에겐 다소 시들한 반응이 나온 이유다.

실리콘밸리의 빅테크는 기존의 기술이 해결하지 못한 것을 해결하며 성장했다. 애플에 걸린 기대 중 하나는 배터리나 경량화 등 여타 AR 기기가 극복하지 못한 문제를 말끔히 해결한 제품의 출시다. 컴퓨팅의 새로운 개념을 제안한 고무적 발표에 그칠지, 접근성과 대중성을 끌어올려 정말 새로운 컴퓨팅의 시대를 열지는 차기작이 결정할 것이다. 애플의 팬들은 1세대에 관대하고, 비전SE에 대한 기대감도 여전하다. 그러나 애플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경쟁자들은 애플의 헛발질을 노리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는 지난해 10월의 커넥트 컨퍼런스에서 애플과 메타의 격돌을 생태계 개방성을 중심으로 설명했다. 이제껏 컴퓨팅의 역사가 개방형과 생태계의 경쟁이었으며 윈도우와 맥, 안드로이드와 iOS가 그 연장선이라는 것이다. 메타는 개방형 생태계를 중심으로 메타버스를 구축하고 있다. 애플이 폐쇄형 생태계의 장점을 제대로 녹여내지 못하면 메타의 퀘스트는 언제든 두려운 존재가 될 수 있다. 삼성, 퀄컴, 구글이 손을 잡고 연내 발표 예정인 혼합 현실 기기도 변수다. 퀄컴의 칩, 구글의 안드로이드, 삼성의 하드웨어가 진입 장벽을 낮춰 저가형 시장을 선점하면 비필수 기기인 공간 컴퓨터의 구매 동인이 줄어든다. 애플은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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