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아파트와 불평등 한국 사회

6월 9일, explained

브랜드 아파트는 한국 사회 불평등의 상징이 되었다. 우리가 사는 곳이 정말로 우리 자신을 말해줄까.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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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더 팰리스 73’이 들어선다. ‘세기에 다시없을 주거 명작’을 목표로 프리츠커상을 받은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가 참여한 이 아파트의 분양가는 100~400억 원에 이를 예정이다. 남의 동네, 남의 집이다. 그런데 인터넷이 시끄러웠다. 아파트 시행사에서 낸 분양 광고 문구 때문이었다.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WHY NOW

시행사는 “신중하지 않은 표현”이었다며 사과문을 올렸다. 시행사는 왜 신중하지 않았을까. 먹히는 표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 먹힌다고 생각했을까. 아파트 광고의 익숙한 문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한참 전에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라던 아파트 광고 문구를 보았다. 특별함과 차별화를 내세우는 것은 흔한 광고의 문법이지만, 아파트 광고는 ‘남들과 다른 나’가 특별한 개성이 아니라 돈으로 결정된다고 말한다. 실제로 대도시의 입지 좋은 브랜드 아파트는 몇십억 원이 오갈 정도로 비싸다. 우리는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게 아니라, 이미 평등하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다.

한국에서 아파트의 의미

아파트는 우리나라 주택 유형의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지배적인 주거 형태다. 하지만 한국에서 아파트가 주거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아파트는 한 가계가 거주하기 위해 점유하는 공동주택 공간을 넘어, 가계의 경제적 지위와 생활 양식을 나타낸다. 적게는 몇십, 많게는 몇천 단위가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는 입주민임을 인증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빽빽한 아파트가 몇십 동씩 들어서 있는 단지는 미로 같아서 한 번 길을 잃으면 단지 밖으로 나가기도 힘들다. 이렇게 단지화된 아파트는 한국 아파트의 독특한 형태다.

세계와 한국의 아파트

20세기의 유럽에서 시작된 아파트는 원래 공공 임대 주택으로 시작되었다. 아파트는 노동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인간적인 주거 환경으로써 지원되던 것이다. 한국에서의 아파트는 처음부터 판매용으로 지어졌다. 1950년대에 지어진 단독 건물 형태의 종암·개명 아파트는 민간 건설사가 건축하여 분양했다. 최초의 단지식 아파트인 마포아파트는 1962년 한국주택공사가 임대 아파트로 공급했다가 5년 후 분양 방식으로 전환했다. 아파트 원산지 유럽에서는 아파트가 ‘최소한의 주거 환경’이었다면, 당시의 우리에게는 그 ‘최소한’조차 선망의 대상이었다. 틀기만 하면 나오는 난방, 깨끗한 상하수도 시설과 수세식 변기는 최고급 아파트에 들어가야만 느낄 수 있는 삶의 혜택이었고, 이것들이 아파트의 상징성과 가치를 높였다.

상품으로써의 아파트

아파트는 주거 형태인 동시에 상품이 되었다. 한때 정부는 아파트를 둘러싼 수요를 실수요와 투기 수요로 구분하려 했지만, 사실 이 둘은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는 개념이다. 재건축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30~40년 된 아파트에 살면서 재건축을 통해 아파트값이 오르기를 기대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가 낡고 오래되어 위험하므로 안전 등급을 D등급 이하로 받았는데도 현수막을 걸고 축하하는 건 그 이유다. 재건축 대상 아파트로 점쳐질 때부터 아파트의 가격은 비싸진다. 재건축이 정말로 시행되고 나면 대부분의 아파트값은 천정부지로 오른다.

욕망이 몰리는 재건축

재건축 때 오르는 것은 아파트의 값만이 아니다. 용적률과 층고도 높아진다. 같은 대지를 이용해서 더 많은 사람이 들어와야 그 이익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지난 1월, 서울 지역 아파트에 일제히 적용되었던 35층 높이 제한을 전면 해제했다. 이 소식에 설레는 아파트 단지가 하나 있다. 서울 강북 재건축의 대장주로 꼽히는 마포구의 성산시영 아파트다. 성산시영 아파트는 최고 층수를 40층으로 높이겠다는 정비 계획 신청서를 냈다. 재건축이 가시화되자 거래량과 시세가 오름세를 보이고 있고, 소위 ‘1군 건설사’로 불리는 현대건설, DL이앤씨 등이 수주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건설사에게 아파트 단지는 중요한 실적이다. 돈이 몰리는 대형 프로젝트이자 건설사의 주요 포트폴리오가 되기 때문이다.

아파트의 트렌드 변화

시공사들은 재건축 수주전에서 저마다 새로 지어질 아파트에 뭘 제공할 수 있는지를 내세운다. 압구정2구역 재건축 설계 공모에 참여한 건축사들이 리처드 마이어, 도미니크 페로 등 유명 건축가의 이름을 내세우고 ‘로봇 친화형 단지’ 건설을 약속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파트 디자인 트렌드는 더 이상 건축물 하드웨어만이 아니라, 삶의 경험인 소프트웨어로까지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SWNA의 이석우 대표는 “과거에는 필요한 공간을 적절히 구현하는 게 전부였다면, 현재는 브랜드별로 지향하는 가치와 정체성을 설정하고, 그에 걸맞은 공간을 디자인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한다.[1] 

달라진 마을의 단위, 아파트 단지

요즘 고가 아파트의 3대 조건은 수영장과 스카이라운지, 여기에 아침과 점심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식당이 꼽힌다. 신세계푸드나 아워홈, 삼성웰스토리 같은 식품 관련 업체들도 아파트 식당 사업권 수주전에 뛰어드는 판국이다. 사람들은 아파트를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 단지를,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삶을 구입한다. 아파트에서는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운동하고 문화생활을 즐기는 등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한때 아파트의 트렌드였던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는 초등학교를 넘어 중품아와 고품아, 학교를 넘어 지품아(지하철)와 공품아(공원)로도 발전했다. ‘X품아’라는 신조어는 한국 아파트 단지의 완결성을 보여주는 단어다.

모두의 공간이 아닌 아파트

최근 고급 아파트는 단지 내에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입주민만 이용할 수 있는 놀이터와 영화관, 북 카페 등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분양가 자율화로 촉발된 아파트의 브랜드화는 아파트 내의 삶의 질을 바꾸었을 뿐 아니라, 브랜드 아파트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만들게 되었다. 밀레니얼의 일부가 스스로를 정의하는 ‘아파트 키드’, ‘신도시 키드’라는 용어는 그 일부이다. 인테그의 송승원 대표는 “중산층과 부유층이 아파트를 구입하고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구축하면서 아파트가 선망이 되었다. 이때 기업은 차별화를 위해 자사의 아파트에 살면 남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고, 이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브랜드화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IT MATTERS

아파트(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2013, 마티)에서 저자 박철수는 “아파트 단지는 생활 환경의 절대적 우월성 속에서 수요자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편리라는 말이 행복한 삶과 동의어가 아니며, 더욱이 우리가 살아야 할 지혜로운 삶과는 거리가 멀다는 데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 문제를 곱씹어야 한다”고 적었다. 아파트는 편리하다. 분리수거 등 쓰레기 처리 과정은 깔끔하고 주차 공간이 제공되며, 택배를 잃어버리거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받을 일도 여간해서는 없다. 하지만 지금 브랜드 아파트들의 가격은 편리함의 값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비싸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재건축의 과정은 감히 탐욕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행복하고 지혜로운 삶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아파트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다. 서울 둔촌주공에서 있었던 250마리의 길고양이 이주 작전이나, 강남구 한 아파트에서 일하다 숨진 경비원을 위해 조의금을 모금한 것도 결국 아파트에 사는 시민들이다. 시민들은 아파트라는 공간을 단순히 누리는 소비자가 아니라 이 공간을 만들어내고 공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천자이기도 하다. 고급 아파트의 외형만이 아니라 아파트 내에서 일어나는 시민들의 실천에 주목할 이유다.

한편 브랜드 아파트 단지 내에서 생겨나고 있는 커뮤니티 공간은 아파트 바깥의 사회에도 필요하다. 브랜드 아파트가 코호트를 이루며, 기존 공공 공간이 하던 역할은 아파트 내의 커뮤니티가 대체하고 있다. 하지만 택배 노동자들도 출입하지 못하는 아파트 단지, 입주민 전용 놀이터 등 프리미엄 아파트 입주민만의 커뮤니티는 아파트 외부와 내부를 단절시킨다. 아파트 바깥의 시민들에게는 공공 공간이 아니라, 카페와 쇼핑몰 같은 소비 공간이 남는다. 소비 공간에서는 시민이 없다. 소비자만이 있을 뿐이다.

세계는 각 나라를 평가하기 위해 국내총생산(GDP)가 아니라 다른 지표가 없을지 골몰하고 있다. GDP를 대체할 지표로 거론되는 것은 유엔의 국가 행복 지수나 사회 발전 지수 등이다. 행복하기 위해,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적어도 아파트 안에서만 존재하는 행복은 아닐 것이다. GDP 13위의 대한민국, 국가 행복 지수와 사회 발전 지수의 성적은 57위와 17위로 나타났다.
[1]
〈브랜드, 아파트 공화국을 움직이는 엔진에 대하여〉, 《월간 디자인》, 2023. 6. (다음 문단의 인테그 송승원 대표의 말 역시 해당 기사를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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