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스타일 플랫폼 시대의 호텔
완결

라이프 스타일 플랫폼 시대의 호텔

에어비앤비가 던진 두 가지 질문


에어비앤비(Airbnb)는 무직 상태였던 브라이언 체스키(Brian Chesky)와 조 게비아(Joe Gebbia)가 월세를 충당하기 위해 생각해 낸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조촐한 출발과는 달리, 지금의 에어비앤비는 세계 최대의 공간 유통 플랫폼 중 하나로 성장했다. 현재 이들은 전 세계 191개국 8만 개 도시에서 500만 개 공간의 장·단기 임대차를 중개하고 있다. 기업 가치는 300억 달러(34조 1400억 원)를 거뜬히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창업 10년이 갓 넘은 스타트업이 전통적인 호텔 산업의 강자 힐튼(Hilton)의 가치를 넘어서는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에어비앤비가 이렇게까지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이들은 거의 없었다. 체스키와 게비아 또한 처음부터 주택 임대업이나 호텔 산업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에어비앤비의 성장은 결과적으로 호텔 산업 전반에 거대한 태풍을 몰고 왔다. 처음에는 에어비앤비의 성장을 애써 폄하했던 전통의 강호들이 그동안 관심을 갖지 않던 호스텔 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고, 호텔의 유통 시장을 장악했던 온라인 여행사들은 임대 주택 사업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호텔 산업이 이처럼 분주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시장 점유율은 큰 걱정거리가 아니다. 호텔 운영 실적 데이터 분석 업체인 STR의 보고서를 보면 에어비앤비의 공급 점유율은 아직 위협적인 수준은 아니다. 수치가 가장 높은 런던에서조차 공급 점유율은 8.9퍼센트에 그치고 있다. 수요 점유율은 4.8퍼센트, 매출 점유율은 3.9퍼센트로 더 낮다.[1] 그러나 호텔 산업의 걱정은 점유율을 넘어서는 심각한 수준이다. 지금 전통 호텔 산업은 기존의 호텔 시장이 완전히 해체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저는 아코르가 고객들의 일상생활 모든 부분에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는, 잘해야 1년에 서너 번 고객들과 마주칠 뿐인 호텔 이상의 것들이 제공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도 여전히 호텔 객실만을 고객들에게 제공하고자 한다면, 분명 우리는 10년 내에 여행객들로부터 외면당하게 될 것입니다.”[2]


유럽 최대의 호텔 체인으로 이비스(Ibis), 노보텔(Novotel), 소피텔(Sofitel)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아코르(Accor) 호텔 그룹 CEO 세바스티앙 바쟁(Sébastien Bazin)이 최근 한 호텔 콘퍼런스에서 했던 이야기는 두려움의 실체를 보여 준다. 호텔 산업이 두려움에 떠는 이유는 예상치 못한 에어비앤비의 가파른 성장이 기존 호텔 산업의 치부를 들춰냈기 때문이다. 그 치부란 바로 표준화된 상품과 분업화된 유통 시스템 속에서 쌓여 왔던 소비자들의 피로감이다. 에어비앤비는 그동안 호텔 산업이 외면해 왔던 근본적인 질문 두 가지를 던졌다.

첫 번째 질문은 표준화된 상품의 유통 기한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표준화는 호텔 산업이 지금까지 성장해 왔던 동력이었다. 1950년대 미국 전역에 고속 도로망이 깔리고 자가용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이동량이 급증했다. 하지만 숙박 인프라는 형편없었다. 제멋대로인 숙박료와 비위생적인 숙박 시설로 가족 여행 중 불편을 겪었던 건설업자 케몬스 윌슨(Kemmons Wilson)은 미국 전역의 고속 도로변에 위치한 대중적 호텔의 새로운 원형(prototype)을 구상한다. 홀리데이 인(Holiday Inn)으로 이름 붙은 이 원형은 표준화된 매뉴얼로 모든 시설과 서비스를 관리하고, 소유와 운영을 분리하여 위탁 운영 방식으로 모든 호텔을 통제하는 모델이었다.

예측 가능한 일관된 품질의 상품에 소비자들은 폭발적으로 호응했다. 1952년 첫 번째 지점을 오픈한 홀리데이 인은 100호점 개관까지 불과 6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홀리데이 인 모델은 미국 전역을 전광석화와 같이 장악했고, 고급 호텔들도 이 거대한 물결에 합류했다. 그리고 이 물결은 바다를 건너 전 세계 호텔 시장으로까지 확산되어 갔다. 이를 통해 전 세계 호텔 시장이 빠르게 팽창했고, 대부분의 시장이 동일한 호텔 상품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표준화된 호텔 상품들은 모두의 여행 패턴을 비슷하게 만들었고, 그 수요가 팽창하면서 생산자들의 이윤 또한 가파르게 상승했다.

한편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호텔 산업의 생산자들은 가격 차별화의 유일한 요소로 남겨진 우량한 위치를 선점하고자 치열하게 경쟁했다. 다양한 위치의 숙박 정보를 얻기 힘든 소비자들은 위치에 따라 값을 지불하게 되었다. 동시에 상품의 가격을 부풀리기 위한 다른 방법들이 동원됐다. 예를 들어, 객실의 금고는 일반적으로 사용 빈도가 높지 않지만, 필요할 수도 있는 상황에 대비하여 대부분의 객실에 설치된다. 소비자는 실제 사용 여부와 무관하게 금고 사용료가 포함된 숙박료를 지불하게 되는 것이다. 표준화된 상품이 공급되는 시장에서 소비자에게 선택권은 없다.

두 번째 질문은 분업화된 유통 시스템이 제 기능을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숙박 예약을 위해 가장 많이 이용되는 사이트는 익스피디아(Expedia), 부킹닷컴(Booking.com) 등의 숙박 중개 사이트들이다. 예약 사이트들은 처음 등장하자마자 호텔의 가격 통제권을 가로채며 승승장구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형 호텔 체인들은 독자적인 유통 시스템을 통해 공급 물량과 가격을 일방적으로 통제해 왔다.[3] 견고했던 호텔 체인들의 성벽에 균열을 일으킨 것은 인터넷의 보급이었다.

1996년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가 사내 벤처로 출범시킨 익스피디아에 소비자들은 열광적으로 반응했고, 이는 온라인 여행사 붐으로 이어졌다.[4] 초창기에는 손익 분기점조차 넘기기 버거웠던 온라인 여행사들은 2011년 전체 예약 물량의 11퍼센트를 차지하며 가파르게 성장했고,[5] 2016년에는 이를 34퍼센트까지 확대하며 호텔 산업 최대의 유통 채널로 자리 잡았다.[6] 온라인 여행사들이 호텔 유통 시장의 주도권을 빼앗을 수 있었던 것은 소비자에게 선택할 권리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소비자가 특정한 장소에 특정한 기간 동안 머무를 호텔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옵션들을 제시했다. 그리고 소비자들이 가장 낮은 가격에 원하는 품질의 상품을 찾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분업화된 유통의 순기능에는 한계가 있었다. 유통 시스템이 생산자의 전횡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거래되는 상품의 물량과 가격에 대한 일정 수준의 통제권이 필요하다. 하지만 호텔은 상품을 유통 업자의 창고에 쌓아 두고 판매하는 것이 아니어서 통제 범위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낮은 진입 장벽으로 인해 경쟁 사이트들이 난립하게 되면서, 개별 온라인 여행사들의 입지 또한 점점 좁아지게 되었다. 결국 온라인 여행사들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 가격을 용이하게 조절할 수 있는 표준화된 상품들을 집중적으로 유통하게 되었고, 소비자의 선택권은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

에어비앤비의 탄생 이후, 소비자들은 호텔만큼이나 많은, 호텔보다 다양한 가치를 제공하는 대체재들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소비자가 실질적인 선택권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가격 또한 생산자나 유통 업자가 일방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경제학의 원리를 따르게 되었다. 그동안 호텔 산업을 지배해 온 카르텔이 끝까지 지켜 내고 싶어 했던 영역이 어느 순간 붕괴되고 만 것이다.

이제 호텔 산업은 과거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대량 생산의 패러다임을 과감하게 내던지고, 에어비앤비가 들춰낸 근본적인 문제들을 정면으로 상대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변화의 방향을 설정하고 산업의 가치 사슬을 재편하는 동시에, 다른 분야의 변화까지 이끌어 가고 있다. 반세기간 별다른 변화 없이 호황을 누릴 수 있었던 호텔 산업이 일사불란하게 변화하는 모습은, 앞으로 공간 비즈니스가 움직여야 할 방향을 알려 준다. 기존 호텔 산업은 물론 호텔 산업에 새로이 진입하는 이들에게도 새로운 목적지는 선명하다. 바로 라이프 스타일 플랫폼이다.

플랫폼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교류하며 가치를 창출하는 곳을, 라이프 스타일은 일상의 경험들이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는 삶을 의미한다. 사람들의 일상은 시간이 흐르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끊임없이 다양한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다. 과거에는 모두가 대량으로 공급된 상품을 같은 방식으로 소비했으나, 이제 사람들은 각자가 필요한 요소를 찾아 직접 소비의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최대한 풍성한 일상을 누리고 행복을 느끼는 것이 한 번뿐인 삶에 대한 예의다. 이를 위해서는 가능한 한 많은 요소들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누구에게도 선택을 강요당하지 않을 자유가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별 개수가 아니라 취향이다


홀리데이 인 모델이 자리 잡았던 1950년대 미국은 중산층의 황금기였다. 하지만 이제 전 세계에서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다. 2017년 기준 세계 상위 1퍼센트 부자가 차지하는 글로벌 부의 비중이 50퍼센트를 넘는다.[7] 1980년대 이후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는 낮은 취업률, 학자금 대출, 집값 상승 등으로 부모 세대보다 힘겨운 청년기를 보내고 있다. 골드만삭스(Goldman Sachs)의 보고서를 보면 과거 전 세대 평균의 70퍼센트 수준이었던 젊은 세대의 소득은 64퍼센트까지 떨어진 반면, 대학 졸업자의 평균 학자금 대출은 1만 달러(1138만 원)에서 2만 달러(2276만 원) 수준까지 상승했다.[8] 세계는 점점 더 부유해지고 있지만 사람들은 예전과 같은 소비력을 잃었다.

소득과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밀레니얼 세대들은 더 이상 물건을 사는 데 매달리지 않는다. 위리브(WeLive)나 룸스터(Roomster) 등을 통해 어렵지 않게 머무를 곳을 찾아내며, 우버(Uber)를 이용해 그때그때 필요한 곳으로 이동한다. 이들은 DVD나 음반을 구매하는 대신, 더 많은 영화와 음악을 넷플릭스(Netflix)나 스포티파이(Spotify)를 통해 즐긴다. 이들은 무언가를 ‘사는’ 대신 ‘하는’ 것에 훨씬 더 많은 돈을 쓰고 있으며, 여행은 이러한 지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인터넷의 발달과 저가 항공의 등장으로 뛰어난 기동력까지 갖춘 이들은 이제 부모 세대보다 더 자주, 더 다양한 곳을 여행하며 색다른 경험을 추구한다.

밀레니얼 소비자들은 시장에서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고도성장 시기에 안정적인 자산을 확보한 부모로부터 기반을 물려받은 경우다. 이들은 풍요로운 환경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고 자랐으며, 든든한 경제적 기반을 가지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다. 두 번째는 고도성장 시기가 끝나면서 어려워진 가정 환경 탓에 빈손으로 시작해야 하는 경우다. 이들은 소득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일하지만, 고액 연봉 일자리가 제한된 고용 시장에서 계층 이동은 쉽지 않다.

하지만 지갑의 사정과 상관없이, 인터넷의 발달로 각자 다양한 취향을 길러 온 세대는 저마다 차별화된 경험을 원한다. 다수를 차지하는 얇은 지갑의 밀레니얼 소비자들은 색다른 경험을 추구하되 지출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이들은 부모 세대보다 더 적극적으로 멤버십 포인트를 활용하고, 더욱 다양한 옵션들의 가격을 비교하며, 먼저 소비한 이들의 이용 후기를 부지런히 살펴본다.[9] 그리고 고가의 제품을 오랜 기간 저축해 사는 대신, 지금 당장 저렴하게 빌려 쓸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즉 이들은 원하는 경험을 자신의 경제적 상황에 맞추어 직접 설계하고 소비한다.

더 이상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호텔 상품들로는 적극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찾고 정확하게 원하는 것을 소비하는 이들을 붙잡기 어렵다. 호텔 상품의 생산과 공급을 전담했던 대형 호텔 체인들은 새로운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에 맞추어 사업 포트폴리오를 적극적으로 조정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한 움직임은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대형 호텔 체인의 호스텔 시장 진출과 명품 소비재 기업의 호텔 산업 진출이다.

 

호텔 같은 호스텔


2017년 런던의 사모펀드 퀸스게이트 인베스트먼트(Queensgate Investments)가 제너레이터(Generator Hostels)를 4억 5000만 유로(5763억 원)에 인수했다. 독립 호스텔 운영사 제너레이터는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호스텔 시장에 가장 많은 변화를 불러온 회사다. 원래 호스텔은 시설이 안전하지 않거나 깨끗하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제너레이터나 마이닝거(Meininger Hostels) 같은 몇몇 독립 호스텔 운영사들은 호스텔의 품질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겨 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제너레이터의 CEO 알라스테어 토먼(Alastair Thomann)이 한 온라인 미디어와 했던 인터뷰는 이들의 접근 방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우리는 호스텔의 럭셔리 버전입니다. 우리가 진출한 시장에서 새로 오픈하는 호스텔을 보면 정말 대단합니다. 그들은 모두 디자인을 추구합니다. 아주 고급스럽지요. 그들 모두는 거의 부티크 호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


퀸스게이트의 투자는 그동안 제도권 투자자들의 관심 밖에 머물렀던 호스텔 시장이 자본의 유입을 통해 성장의 닻을 올리는 신호탄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제도권 호텔 시장을 장악해 왔던 대형 호텔 체인들도 이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우수한 품질의 표준화된 상품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데 초점을 두었던 호텔 체인들은 그동안 저렴한 호스텔 시장을 외면해 왔지만, 이제 다른 가능성들이 발견되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 최대의 호텔 체인 메리어트(Marriott)가 2015년 초저가 브랜드 목시(Moxy)를 출범시켰을 때만 해도 시장 전반의 상황이 변화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럭셔리 호텔 리츠칼튼(Ritz-Carlton)부터 저가 비즈니스호텔 페어필드(Fairfield), 부티크 호텔 에디션(EDITION)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가격대에 걸친 상품 라인업을 갖추고 있는 메리어트가 사업 포트폴리오에 새로운 상품을 하나 더 담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이듬해인 2016년 유럽 최대의 호텔 체인 아코르가 비슷한 성격의 호스텔 브랜드 조앤조(Jo&Joe)를 설립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2018년 메리어트의 뒤를 쫓던 힐튼마저 호스텔 브랜드 모토 바이 힐튼(Motto by Hilton)을 내놓으면서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 확신이란 대형 호텔 체인들의 격전 무대가 고급 호텔 시장에서 초저가의 호스텔 시장으로 옮겨 왔다는 것이다.

대형 호텔 체인들은 호스텔에 호텔과 같은 품질을 담아내는 동시에 차별화된 상품을 공급하기 위해 노하우를 총동원하고 있다. 이들이 출시한 호스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협소한 객실에 비해 넓고, 다목적으로 유연하게 사용될 수 있는 공용 공간이다. 목시의 경우 간소한 프런트 데스크에 비해 널찍한 로비의 라운지는 체크인하려는 고객들의 대기 공간인 동시에 투숙객들이 자유롭게 앉아 간단한 업무를 보거나 친구들과 다트나 아케이드 게임을 즐기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라운지 한편에 설치된 냉장고에서는 언제든 원하는 음료나 맥주를 꺼내 마실 수 있고, 종종 설치되는 DJ 스테이션은 라운지를 생동감 넘치는 클럽으로 바꾸기도 한다.

대형 호텔 체인들의 호스텔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공통점은 투숙객들이 자연스럽게 로컬 커뮤니티와 섞여 ‘그곳에서만’ 가능한 경험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앤조의 경우 와이파이가 무료로 제공되는 라운지에 저렴하게 커피 한 잔을 즐기러 들르는 지역민들(townsters)을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다. 라운지 한가운데 놓인 커뮤널 테이블(communal table)에는 지역민들과 투숙객들(tripsters)이 자연스럽게 섞여 앉게 되고 로컬의 생생한 여행 팁을 얻기도 한다. 지역의 식재료로 만든 간단한 음식이 제공되는 레스토랑에도 지역민들과 투숙객들이 섞이고, 이들은 쿠킹 클래스에 함께 참여하기도 한다.

목시 첼시에서 제작한 〈A.S.M.R. Bedtime Stories〉티저 영상. ©Moxy Hotels

독자적인 ‘오리지널 콘텐츠’로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2019년 4월 11일 미국 뉴욕의 목시 첼시는 오픈과 함께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자율 감각 쾌락 반응) 비디오 제작을 발표했다. 오로지 목시 첼시의 객실에서만 감상할 수 있는 비디오다. 몇 년 전부터 유튜브에는 500만 개가 넘는 A.S.M.R 영상들이 올라오고 있는데, 심리적 안정을 위한 사운드 테라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밀레니얼의 니즈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는 목시는 최근 인플루언서로 떠오르는 배우와 가수들을 섭외해 고된 여행이나 밤샘 파티에 지친 여행객들이 숙면을 취할 수 있도록 비디오를 제작했다고 밝혔다.[11] 목시는 새로운 세대의 여행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객실 이상의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랜 시간 쌓아 온 비즈니스 노하우와 막강한 자본력을 통해 공격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아직 초저가 호스텔 시장에서 호텔 체인의 생존을 장담하기는 이르다.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수준의 비용 절감을 실현해 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맨해튼의 경우 저가 호텔이라고 하더라도 1박에 대략 250달러(28만 원) 내외에서 숙박료가 책정되는 반면, 일반적인 호스텔의 숙박료는 50달러(5만 7000원 원) 수준까지 내려가는 경우도 있다. 이윤의 확보를 위해서는 과거와 다른 방식의 비용 구조를 장착해야 한다.

목시는 이를 매우 창의적인 방법으로 해결했다. 6평 남짓한 공간에 개별 욕실과 침대 네 개가 설치되는 객실을 도입하면서도, 스웨덴 가구 브랜드 이케아(IKEA)와의 협력을 통해 기존 호스텔들보다 쾌적하면서 일반적인 호텔들보다 저렴한 인테리어 패키지를 장착했다. 다중이 이용하는 숙박 시설들은 대략 5년에 한 번씩 가구를 교체하는데, 수개월 동안 객실을 폐쇄하고 인테리어 패키지를 전면 교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누구나 쉽게 조립하고 분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이케아의 모듈 시스템은 객실을 폐쇄하지 않고도 필요한 부분만 신속하고 저렴하게 교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조앤조는 목시에 비해 호스텔에 더 가깝다. 조앤조는 호스텔과 비슷한 수준의 공간 효율성을 내세우고 있다. 일반적인 호텔형의 객실은 물론, 열두 개의 침대가 설치된 기숙사형 객실이나, 구획되지 않은 공간에 빽빽하게 놓인 캐빈, 천막을 제공하기도 한다. 거실과 욕실은 공동 사용을 기본으로 하며, 옷장 대신 로커(locker)가 거실에 설치되어 있다. 장기 체류 목적의 개인 수요를 타깃으로 저렴한 숙박료를 책정한 대신, 호스텔처럼 객실 공간의 극단적 효율성을 확보한 것이다.

JO&JOE 의 공용 객실 'TOGETHER' ©Accor

반면 힐튼의 CEO 크리스토퍼 나세타(Christopher Nassetta)가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호스텔’이라 칭한 모토는 일반적인 호텔처럼 싱글이나 더블 침대가 놓인 객실을 기본으로 하며 각 객실에는 개별 욕실이 설치되어 있다. 각 객실은 5평 내외로 일반적인 호텔의 3분의 1 크기에 불과하지만, 필요할 경우 여러 객실을 연결해 하나의 객실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유연한 확장성을 부여했다. 즉 호스텔 객실을 호텔의 품질로 만든 것이 아니라, 호텔 객실을 잘게 쪼개 호스텔처럼 효율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상주 인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공간을 배치하고 있다. 예를 들어, 라운지, 카페, 바, 레스토랑 등 일체의 공용 공간을 프런트 데스크 중심으로 배치해 프런트 데스크의 직원이 이들을 동시에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수익성이 취약한 식음료 서비스를 대부분 셀프 서비스 콘셉트로 제공하면서 별도의 상주 인력이 없어도 기본적인 수요를 충족할 수 있도록 했다. 일반적인 호텔 객실에 구비되어 있는 미니바나 식기는 제공하지 않는다. 욕실 용품은 최소한의 필요를 충족하는 수준에서 비치한다.

제도권 자본의 유입과 대형 호텔 체인들의 진입으로 팽창하기 시작한 호스텔 시장은 앞으로 더욱 역동적인 성장을 이어 갈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여행 시장에서 젊은 세대의 비중이 점점 더 큰 부분을 차지해 갈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청년 학생 교육(WYSE) 여행 연합회와 세계 관광 기구(UNWTO)에 따르면, 청년 여행 시장은 2800억 달러(318조 6400억 원) 규모로 추산된다. 2017년 기준으로 전 세계 외국인 방문객의 23퍼센트가 청년들이다. 이미 큰 시장이며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또한 호스텔은 제한된 공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으로, 투자처를 찾는 자금을 흡수해 갈 가능성이 크다. 퀸스게이트의 투자 이후 제너레이터의 CEO 알라스테어 토먼(Alastair Thomann)이 했던 인터뷰는 호스텔의 공간 효율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현재 우리는 보유하고 있는 자금 3억 유로(3842억 원)를 호스텔 산업에 투자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호스텔은 수익성의 측면에서 부동산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이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단순히 방 안에 침대 하나를 더 놓는 것만으로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니 말입니다.”[12]

 

럭셔리 라이프 스타일 쇼룸

 

새로운 시장이 떠오르는 동안 전통적인 럭셔리 호텔들은 대형 호텔 체인들 사이에 계륵 같은 존재로 전락했다. 2008년의 미국발 글로벌 금융 위기는 럭셔리 호텔들의 전통적인 수요 기반이 갖는 취약성을 드러냈다. 2009년 미국 호텔들의 매출이 전년 대비 17퍼센트 감소했던 반면, 럭셔리 호텔들의 매출은 25퍼센트 감소했다. 전통적인 럭셔리 호텔들의 수요 기반이었던 베이비부머 세대들조차 불황에는 중저가 호텔들로 몰려들었다. 전통적인 럭셔리 호텔들은 적극적으로 생존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반얀 트리(Banyan Tree)는 아코르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노렸고, 일부 럭셔리 호텔 투자자들은 럭셔리 호텔 분야에서 퇴각을 선택했다.

그러나 전통적인 럭셔리 호텔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최근 호텔 산업에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낯익은 이름,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LVMH)의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LVMH 같은 명품 소비재 브랜드들과 호텔의 인연은 뿌리가 깊다. 리츠칼튼이나 포시즌스(Four Seasons) 같은 전통의 럭셔리 호텔 브랜드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LVMH의 제품을 어메니티로 폭넓게 사용해 왔다. 그러나 이들은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명품들 또한 함께 사용했고, 명품 소비재 브랜드들은 럭셔리 호텔이 통제하는 라이프 스타일의 부속품에 불과했다. 이 부분이 LVMH 입장에서는 아쉬웠을 것이다. 이제 이들은 전통적인 럭셔리 호텔들을 이용해 직접 라이프 스타일 플랫폼을 구축하고자 나섰다.

2018년 말 LVMH는 럭셔리 열차 ‘오리엔트 익스프레스(Orient Express)’로 널리 알려졌던 럭셔리 호텔 벨몬드(Belmond)를 26억 달러(2조 9600억 원)에 인수했다. 럭셔리 호텔, 크루즈 및 열차를 운영하며 독특한 포지셔닝을 해왔던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는 오랜 기간 적자에 시달렸다. 2017년 기준으로 매출은 전년 대비 60만 달러(6억 8300만 원)가 감소한 5억 6100만 달러(6378억)에 그쳤고, 순손실은 4500만 달러(512억 원)를 기록했다.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라는 브랜드를 매각하고 호텔 실적을 개선하려 했지만 획기적인 변화는 없었다.

LVMH가 위기에 처한 벨몬드를 인수한 것은 예상 밖의 전개였다. 하지만 LVMH는 벨몬드를 인수하기 전에도 이미 럭셔리 호텔 브랜드 경험이 있었다. 2006년 슈발 블랑(Cheval Blanc)이라는 럭셔리 호텔 브랜드를 직접 출시했고, 2011년 불가리(BVLGARI)를 인수하면서 메리어트와 합작으로 탄생한 불가리 호텔의 지분 또한 넘겨받았다. 여기에 벨몬드가 가세하면서 LVMH의 호텔은 56개로 늘었고, 럭셔리 호텔 브랜드로서는 결코 가볍지 않은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LVMH는 벨몬드를 통해 모든 디테일이 완벽하게 제어된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리모와(Rimowa) 캐리어를 끌고 벨몬드 호텔에 체크인한 고객이 디올(Dior) 샤워 젤로 샤워를 하고, 아쿠아 디 파르마(Acqua di Parma) 로브(robe)를 걸친 채로 지방시(Givenchy) 침구에서 휴식을 취한다. 저녁에는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지인들과 즐거운 저녁을 즐긴다. 돔 페리뇽(Dom Pérignon) 샴페인과 함께. 아침이 되면 카페 코바(Caffe` Cova)의 티라미수와 에스프레소로 가벼운 식사를 마치고, 펜디(Fendi)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일광욕을 즐긴 후, 겔랑(Guerlain) 스파에서 마사지를 받는다. 체크아웃하기 전에는 면세점 DFS에 들러 친구에게 줄 선물을 구입한다. LVMH에게 있어 24개국에 46개소의 특별한 입지를 확보하고 있는 벨몬드는 이처럼 다양한 품목의 브랜드들이 어우러진 라이프 스타일의 이상적인 쇼룸이다.

이미 전 세계 명품 소비재 시장을 지배하는 LVMH는 점점 성장 동력을 잃어 가는 럭셔리 호텔에 왜 이토록 구애를 보내는 것일까? 명품 소비재 브랜드들은 좋은 물건을 소유하려는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소비에 편승하여 성장해 왔다. 그러나 소유보다 경험을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들이 시장의 전면에 부상하면서 차질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경험에 초점을 맞춘 쇼룸을 적극적으로 확충해 봤지만, 단일 브랜드 제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쇼룸만으로 수십 개에 이르는 브랜드들이 소비의 동반 상승을 이끌어 내기에는 한계가 존재했다. 이러한 점에서, 수많은 요소들로 이루어진 특별한 경험을 표방하는 럭셔리 호텔은 밀레니얼 소비자들을 붙들고자 하는 명품 소비재 브랜드들이 필요로 했던 라이프 스타일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호텔의 가능성을 알아챈 것은 패션 브랜드들뿐만이 아니다. 비록 작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고급 레스토랑 브랜드들은 이미 럭셔리 호텔 분야에 진입해 세력을 넓혀 가고 있다. 미국의 고급 퓨전 일식 레스토랑 체인 노부(Nobu Restaurants)는 2013년 첫 번째 노부 호텔을 라스베이거스(Las Vegas)에 오픈한 이래, 현재 총 여덟 개의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셰프 노부 마쓰히사(松久信幸)의 퓨전 요리에 매료된 영화배우 로버트 드니로(Robert De Niro)의 제안으로 노부 레스토랑 체인이 출범했을 때, 여러 럭셔리 호텔들이 노부 레스토랑 입점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노부는 호텔이 제안하는 라이프 스타일의 한 요소로 편입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음식 문화를 퍼뜨리기를 원했다. 노부 호텔 또한 유명 레스토랑 체인이 독자적인 라이프 스타일 플랫폼을 지향하면서 탄생한 결과물인 셈이다.

소득과 부의 양극화, 그리고 이로 인한 라이프 스타일의 양극화는 누가,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필요로 한다. 대형 호텔 체인들은 다수를 차지하는 얇은 지갑에 초점을 맞추어 영토를 지키고자 한다. 다른 한편에서 이들의 영토를 빼앗고자 하는 이들은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두터운 지갑의 더 많은 부분을 점유하고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부동산에서 라이프 스타일 비즈니스로

 

호텔 비즈니스에서 부동산은 전체 자산의 80퍼센트 정도를 차지한다. 이 때문에 성장의 닻을 막 올리던 무렵 호텔 산업의 사업 모델은 대부분 부동산 투자 및 관리였다. 하지만 다른 유형의 부동산들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는 호텔 공간의 유통 방식은 오랜 기간 호텔 투자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해 왔다. 주택은 영구적인 사용을 전제로 분양 또는 거래가 이루어지고, 기업 사무실은 10년에서 15년에 이르는 장기 임대차 방식으로 유통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호텔은 각각의 객실을 하루 단위로 유통해야 하기 때문에, 현금 흐름이 경기 변동이나 계절 변화에 따라 더욱 큰 부침을 보인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에게 이러한 특징은 장점이라기보다 결점이었다.

그러나 최근 부동산 시장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개발 일색이었던 부동산 관련 뉴스에는 최근 들어 재생이라는 단어가 점점 더 자주 등장하고 있다. 주택의 매매에 집중해 온 부동산 중개소들이 시들해지는 동안 주택 임대차를 중개하는 온라인 플랫폼들이 젊은 세대 사이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개발의 광풍이 불었던 시기에 들어선 도심의 대규모 오피스들이 점점 높아 가는 공실률로 고전하는 반면, 오피스를 날짜나 시간 단위로 쪼개어 유통하는 공유 오피스들이 영토를 넓혀 가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패러다임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에서 기존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호텔 산업 또한 이러한 부동산 전반의 패러다임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유럽 호텔 시장 점유율 1위인 아코르는 2016년 상반기에 주택 단기 임대 플랫폼 원파인스테이(Onefinestay)를 인수한 데 이어, 2017년 공유 오피스 플랫폼 넥스트도어(NextDoor)의 지분 50퍼센트를 인수했다. 주택이나 오피스처럼 이미 포화된 시장에 진입하여 안착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자본의 투입이 불가피하다. 이미 안정된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호텔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큰 도전이다. 그러나 아코르는 시간과 자본의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호텔 부동산 지분을 58퍼센트가량 매각하고, 이를 통해 확보한 현금 57억 달러(6조 4866억 원)로 이미 구축된 주택 임대차 및 공유 오피스 플랫폼들을 한꺼번에 인수하는 과감함을 보였다.

에어비앤비와 같은 시기에 런던에서 출범한 원파인스테이는 에어비앤비처럼 주택을 단기간 임대하지만, 소정의 심사를 통과한 고급 주택들만 게시한다. 또한 임대 전후의 정리 정돈을 전담하는 별도의 하우스 키핑(house keeping) 팀이 있다. 에어비앤비와 달리 서비스가 제공되고, 그 품질이 보증된다. 넥스트도어는 프랑스의 통신사 계열의 부동산 개발 회사 부이그(Bouygues Immobilier)가 2014년 출범시킨 공유 오피스 플랫폼으로 현재 프랑스에 여덟 개의 공유 오피스를 운영하고 있다. 23개국에 280여 개의 공유 오피스를 운영 중인 업계의 절대 강자 위워크(WeWork)와 아직은 비교하기 어려운 규모지만, 아코르는 호텔 네트워크를 통해 3년 내 유럽 전역에 지점을 80개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유럽 호텔 시장의 맹주 아코르는 어떤 미래를 보고 있는 것일까? 아코르의 최근 행보는 마치 모든 유형의 공간을 유통하는 플랫폼을 구축하려는 듯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아코르의 CEO 바쟁은 한 온라인 미디어에 다음과 같이 고백한 적이 있다.
 

“당신은 매일 페이스북에 여섯 번, 구글에 두세 번가량 접속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사람들이 여행하지 않을 때에도 그들과 접촉을 이어 갈 창구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그물망을 키워 가는 중입니다. 사실 우리가 상품에 초점을 둔다는 점을 제외하면, 에어비앤비는 우리가 15년 전에 생각했어야 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해냈습니다. (…중략…) 우리는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에어비앤비는 서비스를 지향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공유 경제 섹터에 고가 체인으로 자리 잡으려는 이유입니다.”[13]


메리어트나 힐튼처럼 부동산 투자 및 관리 모델에서 출발했던 아코르는 이제 그들과 다른 각도에서 점유율을 바라보며 호텔 비즈니스를 새롭게 정의해 가고 있다. 아코르는 단순히 여행객들을 더 많이 점유하는 데서 만족하지 않고, 사람들의 24시간을 점유하려 한다. 집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낼 때에도, 회사에서 일을 할 때에도, 그리고 여행을 떠나서 휴식을 취할 때에도 우리는 항상 그 목적에 부합하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 아코르는 호텔만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종류의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 전체를 기획하고 통제하고자 한다.

사실 밀레니얼 세대의 공간 소비 패턴과 그로 인해 변화한 부동산 유통 방식은 아코르를 비롯한 대형 호텔 체인들의 전문 분야다. 호텔 산업은 그동안 현금 흐름의 변동성이 큰 호텔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다양한 방안들을 강구해 왔다. 성수기와 비수기에 따라 동일한 객실의 가격을 달리하는 가변 가격(dynamic pricing) 정책, 그리고 많은 물량을 높은 가격에 소비하는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판매하는 수익 관리(revenue management) 기법을 도입했다. 또한 오랜 기간에 걸쳐 온·오프라인 여행사, 이벤트 대행사, 다국적 기업 본사는 물론 신용 카드사에 이르는 유통 채널 다각화를 추진해 왔다.

그동안 호텔 산업이 발전시켜 온 유통의 메커니즘은 이제 경쟁 우위로 작용하고 있다. 모든 유형의 부동산에서 현금 흐름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지만, 호텔처럼 고도화된 관리 체계가 아직은 보편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호텔 산업이 이제 부동산 시장 전반의 패러다임을 쫓는 것이 아니라 이끌어 가는 입지로 올라설 수 있는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 호텔 시장 점유율 6위의 아코르가 그동안 쌓아 온 노하우를 활용해 모든 유형의 공간을 유통하겠다고 덤벼드는 것도 나름의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호텔 유통 시장을 장악했던 온라인 여행사들 또한 부동산 전반의 패러다임 변화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익스피디아는 2015년 민박 중개 플랫폼인 홈어웨이(HomeAway)를 39억 달러(4조 4382억 원)에 인수했다. 2018년에는 샌프란시스코 기반의 주택 단기 임대 플랫폼 필로우(Pillow)와 시카고 기반의 주택 단기 임대 플랫폼 아파트먼트젯(ApartmentJet)을 인수했다. 이들에 대한 인수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최소한 1700만 달러(193억 4600만 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필로우는 주택 소유자가 단기 세입자에 대한 정보에 접근하여 해당 세입자가 다시 전대하는지를 모니터링하도록 하며, 아파트먼트젯은 공동 주택의 소유자와 관리 회사가 주택을 리스트에 등록해 빈집으로부터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이다. 익스피디아와 온라인 여행사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부킹 홀딩스 또한 부킹닷컴(Booking.com)을 통해 단기 주택 임대를 중개하기 시작했다. 공통적으로 호텔 상품의 유통을 넘어 주택 임대차로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는 것이다.

낮은 진입 장벽으로 경쟁이 과열됐던 온라인 여행사들은 그동안 자체적인 인수와 합병을 통해 호텔 유통 시장의 질서를 재편했다.[14] 하지만 호텔들이 ‘Book Direct(직접 예약)’와 ‘Best Rate Guarantee(최저가 보장)’ 캠페인을 통해 더 이상 온라인 여행사들에게 최저가의 혜택을 제공하지 않으려 하고, 에어비앤비 같은 주택 단기 임대 플랫폼들마저 전통적인 호텔 상품을 유통하기 시작하면서 온라인 여행사들은 존폐의 위기에 몰렸다.[15] 이러한 상황에서 유통 상품의 범위를 확장하려는 움직임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부동산을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들에게 빌려주는 공간 유통은 재고를 쌓아 두고 판매할 수 없기 때문에 팔 수 있는 시기를 놓치는 것이 치명적이다. 특히 유통 기한이 하루 단위로 짧은 호텔의 경우에는 그 영향이 더욱 크게 나타난다. 이 부분은 대형 호텔 체인들과 온라인 여행사들에게는 이윤의 확보를 위태롭게 만드는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시간의 압박은 상품의 물량을 전적으로 통제하는 대형 호텔 체인들보다 상품을 직접 통제할 수 없는 온라인 여행사들에게 더욱 크게 작용했다. 사실 에어비앤비나 위워크 또한 이러한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시간의 한계 극복은 숙박 비즈니스뿐 아니라 부동산 시장의 공통 과제가 되었다.

 

다시 호텔의 시대가 온다

 

“호텔 비즈니스는 라이프 스타일 비즈니스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가 호텔 산업으로 확장하는 것이 훨씬 쉬운 일입니다.”
- 코넬대학교 호텔경영학과 교수, 체키탄 데브(Chekitan Dev)
 

호텔은 임대 주택과 공유 오피스를 중개하기 시작하고, 에어비앤비는 호텔을 유통하고 있다. 예약 사이트들은 에어비앤비가 되려 한다. 업계 간 영역이 불투명해지면서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지금 호텔 산업에서의 경쟁은 단순히 호텔 시장의 점유율이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의 점유율을 차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 레이스가 과연 어디까지 확산될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입지를 다진 기업들이 호텔 산업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최근 일본 도쿄 긴자에 3호점을 오픈한 무지(MUJI) 호텔이 대표적인 사례다. 무지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헬스 트레이닝 기구 브랜드인 에퀴녹스(Equinox), 미국의 영화 제작사인 파라마운트(Paramount), 스웨덴 가구 브랜드 빕(Vipp), 중국의 IT 기업 넷이즈(NetEase), 그리고 레고(LEGO)와 같이 각각 다른 곳에서 출발하여 라이프 스타일 플랫폼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많은 이들이 호텔 산업으로 몰려들고 있다.

무지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제품으로만 구성한 무지 호텔의 어메니티. ©MUJI HOTEL GINZA
라이프 스타일 플랫폼을 둘러싼 격전은 시대를 앞서 타올랐다 소멸되어 가던 불씨 두 개를 되살려 내기도 했다. 바로 부티크 호텔과 캡슐 호텔이다. 이들은 표준화된 대량 생산의 패러다임에 도전장을 내밀며 시장에 거센 파도를 일으켰지만 견고한 가치 사슬을 변화시키지 못하면서 시들해지고 말았다가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들을 호텔 산업으로 소환해 낸 것은 새로운 소비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은 밀레니얼 세대와 호텔 산업의 근본적 문제를 들춰낸 에어비앤비의 상호 작용이었다. 다양한 경험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새로운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콘텐츠를 기반으로 하는 호텔들은 그동안 애타게 갈구해 왔던 풍성한 대체재였다. 에어비앤비는 이들에게 풍부한 대체재가 기존 호텔 산업 바깥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반면 전 세계 시장을 가득 채운 표준화된 호텔 상품들은 경험을 추구하는 밀레니얼 소비자들을 붙잡기에 역부족이었고, 가격에 끼어든 거품은 오히려 이러한 소비자들의 반감을 키웠다.

소비의 중심축이 베이비부머 세대에서 밀레니얼 세대로 옮겨진 것 못지않게 생산과 유통의 중심 또한 활발한 세대교체를 거치는 중이다. 호텔 산업은 오늘날 약 60만 개의 호텔이 가지고 있는 2270만 개의 객실을 전 세계에 공급하고 있으며,[16] 이 호텔들이 직접적으로 창출해 내는 가치는 전 세계 GDP의 3퍼센트, 파생한 간접적 가치들까지 합하면 10퍼센트에 이른다.[17] 하지만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3차 산업 중 하나인 호텔 산업이 이러한 위용을 갖추게 되기까지 사회 전반의 혁신과 변화를 이끌었던 적은 없다. 오히려 혁신과 변화의 물결을 거스르지 않고 유연하게 흡수하며 성장을 이어 왔다.

이제는 호텔 산업이 공간업과 부동산 시장 전반에 걸친 혁신과 변화를 선도해 가고 있다. 공간업과 부동산 시장에 새로 뛰어드는 이들은 호텔이 되려 하고 있고, 호텔을 닮아야 하는 입장에 있다. 홀리데이 인 모델이 개발된 이후, 다시 한번 호텔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호텔 산업에 새로운 영토를 확보하거나 호텔 산업을 통해 기존의 영토를 확장하고자 기회를 모색하던 많은 이들에게 지금은 최적의 시점이다. 아직은 누구도 확실한 승기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러 분야에서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점유하고 있는 대다수의 브랜드가 아직 판에 뛰어들지도 않았다. 이들도 결국 소비자와의 접점을 늘리기 위해서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호텔 산업에 발을 들이게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다큐멘터리 채널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이 독특한 자연환경 주변에 사파리 리조트 컬렉션을 만들어 낸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진공청소기로 시작해 생활 가전제품 분야에서 영역을 확대해 가는 다이슨(Dyson)이 언젠가 호텔 산업에 진출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생활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는 편의점들이 캡슐 호텔을 론칭할 수도 있다.

물론 이처럼 수많은, 그러나 아직은 설익은 생각들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각각의 모델에 현실적이고 치밀한 전략들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호텔업은 단순히 독특한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하는 것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만만한 시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는 호텔이 되려 하고, 호텔은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가 되려 하는 시대에,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가격대에,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선택할 수 있게 된 소비자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변화임이 분명하다. 소비자들은 끊임없이 다양한 가치를 원하며 더 유연하게 자신의 일상을 구현하기를 원한다. 라이프 스타일 플랫폼에 대한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호텔도 브랜드도 달라져야 한다.
[1]
[2]
[3]
호텔 산업이 가파르게 성장하던 초창기만 해도 호텔은 전체 여행 패키지의 일부분으로 항공권과 함께 유통됐다. 변화는 호텔 체인들이 항공사를 모방한 독자적인 유통 시스템을 갖추면서 시작됐다. 상품의 가격을 직접 통제할 수 없던 상황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호텔 체인들은 의기투합하여 수많은 호텔들의 예약 채널을 일원화했다. 이를 통해 대형 호텔 체인들은 공급 물량과 가격을 통제하며 호텔 유통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했다.
[4]
항공권 및 호텔 온라인 예약 시대를 열었던 세이버(Sabre)는 1996년 인터넷 플랫폼 트래블로시티(Travelocity)를 출범시켰고, 1997년에는 프라이스라인(Priceline)이 탄생했다. 이후 2000년에 핫와이어(Hotwire), 부킹닷컴,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가, 2001년에 오비츠(Orbitz)가, 2002년에 호텔스닷컴(Hotels.com)이, 2004년에 카약(Kayak)이, 2005년에 트리바고(Trivago)와 아고다(Agoda)가 뒤를 이었다.
[6]
〈Channel Optimization in Hospitality: Secrets of Data-Driven Hoteliers〉, Phocuswright & Sabre, 2017.
[7]
〈Global Wealth Report 2017〉, Credit Suisse, 2017.
[8]
〈Millennials: Coming of Age〉, Goldman Sachs, 2016.
[9]
뉴질랜드의 멤버십 마케팅 자문사인 에이미아(Aimia)의 보고서에 따르면 베이비부머 세대의 20퍼센트가 포인트를 얻기 위해 개인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한 반면, 밀레니얼 세대는 29퍼센트로 높게 나타났다. 또한 구매 전 가격 비교 여부에 대해서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28퍼센트가 수준이었던 반면, 밀레니얼 세대는 49퍼센트에 달했다. 베이미부머의 31퍼센트만이 이용 후기를 검색하는 반면, 밀레니얼 세대의 경우 47퍼센트가 이용 후기를 살펴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10]
[12]
[13]
[14]
인수합병을 통해 성장하던 미디어 그룹 IAC는 2003년 익스피디아를 비롯해 호텔스닷컴, 핫와이어를 인수했고, 이듬해 트립어드바이저까지 인수한 후 익스피디아로 합병하여 2005년 다시 상장했다. 이후 익스피디아는 2013년 트리바고, 2015년 트래블로시티 및 오비츠를 인수했다. 한편 1999년 증시에 상장한 프라이스라인은 2005년 부킹닷컴을 인수했고, 2007년 아고다를 인수했으며, 2013년 카약을 인수했다. 그리고 2018년 부킹 홀딩스(Booking Holdings)라는 지주 회사를 출범시켰다. 치열했던 호텔 유통 시장이 익스피디아와 부킹 홀딩스의 양분 체제로 정리된 것이다.
[15]
2018년 말, 에어비앤비는 호텔 유통 채널 최적화 플랫폼 사이트마인더(SiteMinder)와 연계하여 공식적으로 호텔 상품을 유통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여행사들과 에어비앤비가 실질적으로 동일한 사업 모델을 갖게 되면서 직접적인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된 것이다.
[17]
〈Travel & Tourism Economic Impact〉, WTTC,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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