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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주변의 공중 보행로인 ‘서울로7017’이 철거될 것인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은 국감 자리에서 “서울로7017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좋지 않고 이용도가 떨어지는 것은 분명하다”고
밝힌 바 있다. 철거 이야기를 강력하게 꺼내지 못하는 것은 ‘전임 시장 지우기’ 비판을 우려해서다. 철거 관련 논의를 강력히 부인하지 못하는 것은 서울 도심 지역 개발을 통한 정치적 득실을 계산하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WHY NOW
서울은 개발과 정비, 재생의 과정에서 시민의 목소리를 성의껏 들어 반영한 적이 없다. 개발은 국가의 권리라는 생각이 유효한 시대가 있었다. 시간이 흘러 도시 계획은 지자체의 권한이 되었다. 그러나 그곳을 걷고, 그곳에서 삶을 꾸리는 것은 결국 시민이다. 서울로7017의 탄생과 철거 논의를 살펴보면, 왜 우리가 도시 계획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가 보인다. 도시는 시민의 것이다.
개발의 시대, 2000년대
서울의 2000년대는 화려했다. 모든 것이 개발되고, 정비되었다. 청계천 복원, 뉴타운 사업, 광화문 광장, 새로운 시청 건물까지. 이명박에서 오세훈으로 이어지는 전임 시장들은 서울을 뜯어고쳤다. 그리고 새로운 건물과 시설을 지었다. 그런데 그 흐름이 끊긴다. 2011년, 오세훈 당시 시장이 학생 무상급식에 반대하다 주민투표가 무산되면서 스스로 시장 자리를 내려놓으면서다.
낡은 도시, 개발할까 재생할까
박원순 전 시장의 모토는 ‘개발’이 아니었다. ‘보존’이었다. 박 전 시장의 주요 경력 중 하나인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시절, 집중적으로 고민했던 분야가 바로 도시재생이었다. 도시재생은 재개발과 목적은 같으나 방법은 반대다. 밀어내고 새것을 세우면 전면 재개발이다. 낙후된 지역의 판잣집을 헐어내고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서면 성공적으로 평가받는다.
보존하고 살려내는 도시재생
반면, 도시재생은 최대한 지켜서 다시 살려내는 데에 역점을 둔다. 거주하고 있는, 장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최대한 삶의 방식을 유지할 수 있게 하되, 헐어낼 곳은 헐어내고 필요한 시설을 집어넣어 새로운 활력을 끌어들인다. 세운상가를 깨끗하게 재정비하고, 청년 창업인에게 좋은 조건으로 자리를 내 주었던 사례가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로7017은 합격일까
모든 사업은 실패하기도 하고, 성공하기도 한다. 관건은 방향성과 성공률이다. 시대와 시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최대한 실패를 줄이며 나아가야 한다. 박 전 시장이 추진했던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최대 모뉴먼트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서울로7017’이다. 평가는 엇갈리지만, 종합해 보면 방향도 성공률도 반반이다. 아쉽다. 그러나 의미가 있다.
고가 도로라는 야만
고가 도로는 산업화 시대의 산물이다. 사람보다 자동차를 더 수월하게 이동시키기 위해 도로를 겹쳐 쌓았다. 고가도로를 중심으로 사람 다닐 길이 끊긴다. 아래쪽으로는 햇볕도 차단된다. 지역이 단절되고 주변은 낙후될 수밖에 없다. 최근 고가 도로 주변을 새롭게 개발하려는 지자체의 시도가 적지 않다. 번듯한 사진을 보면
그럴싸하다. 그러나 직접 가 보면 공기가 다르다. 습하고 텁텁한, 지하실의 냄새가 난다. 서울역 주변의 회현고가도로도 마찬가지였다. 차량 흐름만으로 봐서는 분명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그 주변은 어두웠고 낙후되었다. 고가 도로가 낡아 무너질 위험에 처하자, 박 전 시장은 이 고가 도로를 철거하기로 한다. 대신 도시재생의 상징성을 이곳에 불어넣는 청사진을 그린다. 고가 도로 일부를 남겨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를 본뜬 공중 정원을 선보이겠다는
야심이었다.
서울역 주변을 걷다 보면
서울역 근처에서 이동을 계획하다 보면 직선거리로는 가까운데도 도무지 걸어서는 갈 수 없겠다 싶은 장소들이 있다. 역사를 중심으로 보행로가 군데군데 끊겨있고, 어마어마한 폭의 서울역 환승센터가 서울역 광장 자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로7017은 서울역 주변에서 도보로 이동하고자 하는 시민들에게는 유용한 길이다. 하루 평균 방문객은 약 1만 8000명, 근처 만리재길에는 산책을 마친 후 친구들과, 연인과 함께 들를 수 있는 세련된 가게들도
들어섰다.
비싸고 불편한 서울의 상징
그러나 서울로7017은 돈이 많이 든다. 오세훈 서울 시장의 최근 발언에 따르면 유지 및 관리 비용이 연 16억 원 수준이다. 공중 공원이라는 콘셉트에 맞춰 빼곡히 들어선 600여 개의 콘크리트 화분에는 각종 꽃과 나무가 ‘가나다’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이 부자연스러운 공원을 유지하는 데에는 돈도 사람도 많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는 콘크리트 바닥이기 때문에 한여름, 한겨울에는 보행자에게 혹독한 길이 되기도 한다.
IT MATTERS
보행자를 위한 길을 만들겠다는 철학에 충실했다면 서울로7017과 함께 복잡한 주변 교차로에 건널목을 새로 설치했어야 옳다. 한여름 타는 볕을 피할 그늘을 어떻게 배치할지, 혹한기 칼바람에도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안전장치는 무엇인지 고민했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고려 이전에 이 길을 걷게 될 시민들의 이야기를 더 들었어야 했다. 그런데 급했다. 당시 이 사업의 민간 협력단체 대표가 “시민들이 민원을 내서 브레이크가 걸렸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서울시의 추진력은 대단했다.
그리고 그 추진력의 근원은 정치적 시간표였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서울시장 재선과 이후의 대선까지, 예상 밖의 정치적 사건과 박 시장 본인의 사망으로 그 시간표는 뒤틀렸지만, 더 크게 뒤틀린 것은 박 시장이 꾸준히 추진했던 도시재생의 진정한 철학과 보행자 중심의 도시로 회귀하겠다는 신념이었다. 그래서 서울로7017은 편리하고 아름답지만 동시에 불편하고 아쉽다.
오세훈 시장은 서울을 다시 개발의 장소로 탈바꿈하고자 한다. 오세훈 2기 서울의 모뉴먼트는 한강 르네상스일 수도 있고, 서울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용산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게 될 ‘국가상징공간’ 프로젝트가 가장 눈에 띈다. 광화문에서 서울역, 용산을 잇는 지구를 국가상징가로로 개편한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에 서울로 7017은 장애물이다. 철거 관련 용역은
진행 중이다. 정치적 시간표도 짜여 있다. 지방선거는 2026년, 대선은 2027년이다. 정치의 시간표에 맞출지, 시민의 시간표에 맞출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