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의 포퓰리즘과 민주주의
완결

남미를 위협하는 포퓰리즘과 극단주의

독재 뒤에 민주주의가 찾아왔지만, 문제는 다시 자라나고 있다


그것은 이제껏 경험했던 가장 거대한 민주화의 물결 중 하나였다. 1977년에는 라틴아메리카의 20개국 중에서 3개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들이 어떠한 형태로든 독재 상태에 놓여 있었다. 1990년에는 군사 정부는 아니지만 일당 체제인 멕시코와 공산주의 국가인 쿠바만 독재 상태로 남았다. 이 지역에서 민주주의가 성장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냉전의 약화이다. 다른 하나는 대부분의 독재 정권이 경제 성장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주주의에는 전염력이 있었다.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 우파와 좌파 사이의 정권 교체가 일어나면서 라틴아메리카에서 하나둘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전망은 갑작스럽게 어두워지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Nicolás Maduro)는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Daniel Ortega)와 마찬가지로 선출된 대통령이긴 하지만 독재자처럼 통치하고 있다. 그는 쿠바의 지원에 의존하면서, 국가를 망가뜨리고 이웃 나라들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최소 370만 명의 국민이 경제 붕괴와 정치적 탄압을 피해 탈출한 베네수엘라에는 범죄 조직과 콜롬비아 게릴라들이 밀려 들어오고 있다. 오르테가와 그의 부인 로사리오 무리요(Rosario Murillo) 치하에서 망가져 버린 니카라과의 억압적인 가족 전제 정치는 거의 끔찍한 수준이다.

라틴아메리카 각 지역의 선거 과정에서 나타나는 민주주의에 대한 환멸의 신호가 없었다면, 이러한 극단적 전제 정치에 대한 우려가 덜했을 수도 있다. 선거 규칙은 무시되고 선거 관리 기구의 독립성은 침해받고 있다. 많은 유권자들이 권력 통제의 의지가 별로 없는 포퓰리스트들에게 눈을 돌리고 있다. 중도 노선의 정당들은 약화되거나 붕괴되고 있다.

 

끝없는 욕망


보수당의 후안 오를란도 에르난데스(Juan Orlando Hernández)가 의심스러운 방법으로 재선에 성공한 2017년의 온두라스 대선은 부정 선거임이 확인되었다. 6월에 선거를 앞두고 있는 과테말라에서는 최근 대통령이 범죄 조직과 부정부패를 조사해 전임 대통령 두 명을 구속시키는 데 기여한 유엔 조사단을 추방하는 명령을 내렸다. 2006년 취임한 볼리비아의 좌파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Evo Morales)는 오는 10월에 네 번째 연임에 도전할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에도 역시 위헌적인 요소가 있다. 정치 제도를 유린하고 부정부패 혐의를 받았던 아르헨티나의 포퓰리스트 전직 대통령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Cristina Fernández de Kirchner)도 10월 대선에서 재집권을 노린다.

라틴아메리카의 두 대국인 브라질과 멕시코도 있다. 두 나라의 대통령 모두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인 규범, 견제와 균형, 비판의 수용이라는 원칙을 무시하는 포퓰리스트들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 더 분명하게 나타나는 곳은 브라질이다. 군 장성에서 극우 정치인으로 변모한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가 지난 1월 1일에 권력을 거머쥔 것이다. 7선 국회의원을 지낸 보우소나루는 브라질 정계의 핵심 인사이지만, 군부 지배에 향수를 갖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보우소나르 정부의 장관 22명 중에서 여덟 명이 장성 출신이다. 차관 등의 주요 보직은 더 많은 군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자유는 무장한 권력이 원할 때에만 존재할 수 있다.” 지난 3월에 있었던 군 행사에서 그가 했던 발언이다. 이는 코스타리카에서는 뉴스거리가 될 수도 있다. 코스타리카는 군대를 폐지한 1948년의 결정이 국가의 자유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보우소나루는 1964년 군사 쿠데타를 혁명이라고 칭하면서 군부에 기념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보우소나루 가문과 리우 데 자네이루(Rio de Janeiro) 빈민가의 불법 무장 세력 간 특수 관계를 보여 주는 증거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AMLO라고 불리는 베테랑 좌파 포퓰리스트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즈 오브라도르(Andrés Manuel López Obrador)는 취임 첫 5개월 동안은 조금 온건한 입장을 취했다. 멕시코인들은 그의 검소한 생활 태도(그는 해외 순방 시 민간 항공사의 이코노미 좌석을 이용한다)와 부패와 범죄를 근절시키겠다는 약속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경고등이 켜져 있다.

AMLO는 권력 핵심 기구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는 선거로 선출된 주지사들을 감독하는 “코디네이터(co-ordinators)”라는 직책을 만들고, 판사와 공무원의 임금을 삭감하고, 규제 당국을 자격이 없는 우군으로 채웠으며, NGO에 대한 공적 자금 지원을 중단했다. 그는 군부에 대해서도 이전과는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 상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설된 무장 경찰 조직인 국가 경비(National Guard)의 업무를 군부에 맡겼다. 대법원을 장악하기 위한 상정 법안은 사법 독립을 훼손할 수 있다. 지난 3월에는 세무 당국이 2015년부터 누적된 1만 2000페소(74만 원)라는 사소해 보이는 액수의 세금을 문제 삼아서 비판적인 신문 레포르마(Reforma)의 사주에 대한 세무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위협했다.

일부는 규모가 작긴 하지만, 이런 모든 행위들은 포퓰리스트를 위한 안내서에 나올 법하다. 상대를 깎아내리고 위협하면서 지지층을 구축하는, 하버드대학교의 스티븐 레비츠키(Steven Levitsky)와 대니얼 지블랏(Daniel Ziblatt)이 민주주의의 “심판을 매수한다”고 표현한 일들 말이다. 이러한 조치들은 역사학자인 엔리케 크라우제(Enrique Krauze)가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칭했던 과거 일당 독재 체제의 멕시코로 돌아갈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모든 지역이 이런 위협에 노출돼 있는 것은 아니다. 칠레와 우루과이는 여전히 민주주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정부들은 민주주의라는 목표를 향해 헌신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다국적 여론 조사 기관인 라티노바로메트로(Latinobarómetro)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확실한 민주주의자라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의 48퍼센트였다. 이는 2010년의 61퍼센트보다 낮은 수치다. 자국의 민주주의에 만족하고 있다는 답변은 24퍼센트에 그쳤다. 이 또한 2010년의 44퍼센트에서 하락한 결과다(그림 1 참조). 민주주의의 평판은 왜 이렇게 나빠진 것일까?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은 얼마나 위협적일까? 그리고 민주주의는 어떻게 반격할 수 있을까?
라틴아메리카의 민주주의의 손실(단위: 퍼센트). 다른 형태보다 민주주의를 선호한다고 답한 응답자의 비중(위), 자국의 민주주의에 만족한다고 답한 응답자의 비중(‘아주 만족한다’와 ‘꽤 만족하는 편이다’를 합산한 수치, 아래) 출처: 라티노바로메트로
경고 신호는 분명히 있었다. 브라질 상파울루 근교 지역인 엘도라도를 살펴보자. 2005년부터 2013년까지 브라질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에는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분명한 희망이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1년 전, 선거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을 때의 엘도라도 주민들은 범죄와 실업, 정부의 직무 유기에 질려 있었다. “이곳 주민들은 집을 나가면 과연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조차도 알 수가 없습니다.” 빈민가였던 시치오 조아닌냐(Sítio Joaninha)의 주민 대표인 클레베르 소우자(Cleber Souza)가 한탄하듯 말했다. 이 지역은 한때 좌파 노동당(PT)의 근거지였지만, 이제는 보우소나루에게 투표할 의향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에 대한 지지가 바로 현 사회가 요구하는 정의입니다.” 대형 DIY 가게의 주인인 안데르손 카리냐노(Anderson Carignano)의 말이다. “사람들은 질서를 되찾고 싶어 합니다.”

이러한 불만의 배후에는 범죄와 부패, 취약한 공공 서비스, 그리고 경기 침체가 뒤섞인 독한 폭탄주 같은 현실이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인구는 전 세계의 8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살인 사건 사망자의 비중은 전 세계의 3분의 1에 달한다. 많은 나라들에서 법치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1980년대에 새로 들어선 민주 정부들은 부채에 의존하는 국가 통제의 보호주의로 파산한 경제를 물려받았다. 그들은 ‘워싱턴 컨센서스’로 불리는 시장 개혁을 받아들임으로써 완만한 성장을 할 수 있었다. 민주 정부들은 사회 복지도 점차 늘려 나갔다. 21세기 들어 중국의 수요 덕에 광물과 석유, 그리고 식료품 수출이 급증하면서 많은 국가의 경제가 혜택을 받았다. 빈곤율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소득 불평등은 꾸준하게 감소했다.

 

축제는 끝났다


원자재 호황이 끝나면서 급격한 변화가 찾아왔다. 전체로 놓고 보면, 이 지역의 2003년부터 2012년 사이의 연간 경제 성장률은 평균 4.1퍼센트였다. 2013년부터는 이 수치가 1퍼센트로 떨어졌는데, 1인당 소득도 그만큼 줄어들었다(그림 2 참조). 태평양 연안에 있는 몇몇 국가들의 사정은 조금 더 나았다. 다른 국가들은 상황이 훨씬 나빴다. 브라질은 2015~2016년의 심각한 경제 불황에서 겨우 회복하는 중이었고, 아르헨티나는 경제 성장세가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만성적 패턴에 빠져 있었다. 멕시코의 연간 성장률은 수십 년 동안 2퍼센트에 그치고 있다.
나무늘보들의 대륙, 1인당 GDP(단위: 1000달러, 2010년 물가 기준) 출처: 유엔중남미경제위원회(ECLAC), 세계은행
부진의 기저에는 낮은 생산성과 경직된 규제, 소규모 기업들의 확장과 효율화를 촉진하는 인센티브의 부족,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이익을 얻고 있는 부패한 정치 구조가 있다.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한때는 노동력의 증가로 지역 경제가 성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인구학적 혜택은 이제 거의 끝났다. 2020년대에 이르면 많은 국가에서 생산 인구의 감소가 시작될 것이다. 경제가 불안해지면서 빈곤이 두드러지기 시작했고 소득 불평등 수치의 감소세도 둔화되었다. 이는 기존 정치의 위기를 더욱 악화시켰다.

암울한 상황을 배경으로, 전 세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민주주의의 병폐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보다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다. “모든 계층에서 정치에 대한 일종의 거부감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회학자이자 브라질의 전직 대통령인 페르난도 엔히키 카르도주(Fernando Henrique Cardoso)의 말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정치 구조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더 이상 부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의 일부는 중재자를 거치지 않고 직접 소통하는 소셜 미디어 중심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혁명의 결과다. 여기에 정치적 관습도 한몫을 했다.

라틴아메리카에는 오랜 군사 독재와 포퓰리스트의 역사가 있다. 때로는 아르헨티나의 후안 페론(Juan Perón)처럼 그 둘이 하나로 합쳐진 인물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독재자 전통은 2세기 전의 길고도 치열했던 독립 전쟁, 험난한 지형에서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는 거대한 영토를 통치하는 어려움에 기인한다. 많은 나라들이 천연 자원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었던 라틴아메리카 사회는 식민 통치와 노예제의 잔재 속에서 극단적인 소득 불평등으로 오랫동안 고통받아 왔다. 풍부한 천연 자원과 불평등의 결합은 포퓰리스트들이 활용하기 좋은 분노를 낳았다.

그런데 라틴아메리카에는 또 다른 정치적 전통이 있다. 중산층 중도 노선의 하나인 이것은, 민주 공화국으로 거듭날 때 만들어진 입헌주의 원칙을 공고하게 하고자 하는 오랜 투쟁의 과정에서 다져진 전통이다. 이러한 정치적 흐름은 지난 40년 동안 많은 나라들에서 다양한 형태로 그 기세를 키워 왔다. 바로 정치인들은 진실해야 하고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보는 전통이다. 현재 정치인들이 그러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유권자들은 브라질의 노동자당이나 멕시코의 제도혁명당과 같은 지배 정당들을 버렸다. 옥스퍼드대학교의 로렌스 화이트헤드(Laurence Whitehead)는 “자기들끼리 잇속을 챙기고 부정부패를 저지르면서 공공의 이익을 말하는 위선적인 태도” 때문이라고 말한다.

국가가 부유해지면 부패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의 정치권에서는 특이하게도 주로 중산층 지역에서 부패가 만연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지역의 특징은 지나칠 정도로 규제가 강압적이라는 것인데, 실무적인 차원으로 가면 공무원들에게 재량권이 폭넓게 주어져 있다. 원자재 호황은 국가의 재정 원천이 더 풍부해진다는 것을 의미했지만, 동시에 정치인들이 훔칠 수 있는 돈이 많아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오베브레시(Odebrecht) 등 브라질과 라틴아메리카 전역의 건설 기업 뇌물 사건에서 시작된 라바 자투(Lava Jato·세차라는 뜻)라는 이름의 수사는 부정부패의 규모를 대중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이로 인해 남미 지역 정치권 전체가 썩었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사실 이는 지연된 사회 변화의 문제를 보여 주는 수사였다. 권력자에게 너그러운 라틴아메리카의 전통은 이제 민주주의의 산물인 독립적인 사법부와 탐사 저널리즘으로부터 도전을 받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수많은 정치인들이 부패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페루에서는 네 명의 전직 대통령들이 수사를 받고 있다. 그중 한 명인 알란 가르시아(Alan García)는 지난달 리마의 자택에 그를 체포하러 온 경찰이 들이닥치자 자살했다.

 

중도가 사라진다


아이러니하게도, 포퓰리스트들은 이러한 스캔들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그들이 사법부와 언론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거나,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민중의 구원자라는 후광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적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은 주로 중도 정당들이다. 이들은 좋은 정부를 세우기 위해서 분투해 왔다. 민주화 초기의 개혁에 대한 열망은 최근 정치권에 나타난 두 개의 조류에 휩쓸리고 말았다. 바로 분열과 분극화다.

새로 구성된 브라질 의회에는 30개의 정당이 입성했다. 다섯 개 정당이 원내에 있었던 1982년과 비교하면 크게 늘어난 결과다. 단원제 의회인 페루에서는 130개 의석이 11개의 정파들로 나뉘어 있다. 한때는 민주당과 보수당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던 콜롬비아 의회에는 현재 16개의 정당들이 들어와 있다. 칠레의 안정적인 제도 역시 조각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의 한 가지 이유는, 대통령은 직선제로, 입법 의원들은 비례 대표로 선출하는 이상스럽기도 하고 독특하기도 한 라틴아메리카의 정치 제도다. 소속 정당을 바꾸는 데에도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어떤 나라들에서는 정치가 돈을 버는 수단이 되거나, 뻔뻔하게도 자신의 사업적 영리를 취하기 위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페루에서는 영리를 목적으로 정당에 돈을 내고 들어가기도 한다. 리마의 파시피코대학교의 정치학자 알베르토 베르가라(Alberto Vergara)는 이로 인해서 정당의 정체성과 국가 민주주의의 대의성이라는 속성이 훼손되고 있다고 말한다.

낡은 좌우 구분법이 더 이상 유일한 정치적 관점이 아니라는 점은 또 다른 요인이다. 복음적 보수주의자들이 낙태나 동성애 권리와 같은 이슈들을 놓고 자유민주적 세속주의자들과 맞서고 있다. 지난 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양당 체제였던 코스타리카에서는 작년에 있었던 대선에서 정치적 경험이라고는 거의 없었던 복음주의 기독교 가스펠 가수가 결선 투표까지 올라갔었다(패배하기는 했다). 분열의 결과, 집권당은 인기는 없지만 반드시 필요한 개혁을 밀어붙이는 데 필요한 의회 내 다수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치러진 선거들을 보면 남아메리카에서는 오른쪽으로,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에서는 왼쪽으로 급선회한 것을 볼 수 있다. 두 경우 모두 정상적인 민주주의하에서 가능한 정권의 교체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극단적인 정치적 분극화라는 형태로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온건 개혁 중도파 붕괴의 원인이기도 하고 결과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치는 더 불안정해졌다.

하지만 낙관적인 전망도 가능하다. 라틴아메리카의 민주주의는 드러나 보이는 것보다는 더 회복력이 있는 편이다. 여론 조사 결과들은 라틴아메리카에서 독재 정부를 반기는 이들이 전체의 5분의 1에서 4분의 1 사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몇몇 국가들에서는 견제와 균형이 안전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예를 들어,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정부는 군 장성들과 경제 자유주의자들, 사회적 보수주의자들로 구성된 금방이라도 무너질 수 있는 조합이다. “보우소나르 세력은 정당도, 아무것도 아니고, 잠깐의 유행에 불과합니다.” 전직 대통령 카르도주의 말이다. 그는 의회와 자유로운 언론, 그리고 사회 단체들의 대항력에 신뢰를 걸고 있다. “항상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되지만, 현재의 제도권이 독재의 선상에 올라타지는 않을 것입니다.”

AMLO에 맞서는 야당 세력이 약하고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이제 막 시작된 시점인 멕시코에서는 우려가 훨씬 더 크다. 하지만 경제가 악화되면 대통령에 대한 인기는 시들기 마련이다. 그리고 중도 세력들이 모든 곳에서 전멸한 것은 아니다.
낡은 정당 체제가 붕괴된 잔해 속에서, 새로운 세대의 활동가 주도하에 민주주의가 부활할 조짐도 보이고 있다. “브라질에는 새로운 정치 생태계가 있습니다.” 투자 은행가인 에두아르도 무파레지(Eduardo Mufarej)는 말한다. 그는 젊은 민주주의 지도자들에게 정치와 윤리, 정책을 교육하는 민간 기구 레노바(Renova)를 설립했다. 2018년 총선에 출마했던 후보들 중에서 120명이 레노바 출신이었다(소속 정당은 22개에 걸쳐 있었다). 열 명이 연방 의회에, 일곱 명이 주 의회에 입성했다. 그들은 모든 정치인들이 사리사욕을 챙기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사람들에게 입증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중 한 명이 공교육 개선을 주장하며 상파울루에서 연방 의원으로 당선된 25살의 활동가 타바타 아마랄(Tabata Amaral)이다. 그녀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5000명의 자원 활동가를 모집했다. 선거 비용 125만 헤알(3억 7500만 원) 역시 개인 후원으로 모금했다. 의회 운영비를 줄이기 위해서, 그녀는 레노바 출신의 (소속 정당이 서로 다른) 두 명의 의원들과 보좌관을 공유하고 있다. 그녀는 임기의 시작과 함께 낡은 정치에 맞서야만 했다. 의회에서 그녀에게 제공한 브라질리아 시내의 아파트를 어느 다선 의원의 아들이 불법으로 점유하고 퇴거 명령에 불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페루의 훌리오 구즈만(Julio Guzmán)은 2016년에 대통령 선거에 나서려 했지만, 선거 관리 위원회에서 절차상의 이유로 그의 후보 자격을 박탈시키면서 발목이 잡혔다. 이후 그는 새로운 중도 정당의 건설을 위해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는 모든 당원들을 철저하게 검증하고, 후원금을 공개하는 “다른 방식의 정치를 하느라” 바쁘다고 말한다. 그의 소속 정당인 모라도(Morado)가 타깃으로 하는 유권자들은 “미래를 지향하고, 기업가 정신을 갖고 있으며,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중산층”이다.

 

극과 극


극단주의가 득세한 작년 콜롬비아 대선에서는 보수당의 이반 두케(Iván Duque)와 최근까지도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Hugo Chávez)를 지지했던 좌파의 구스타보 페트로(Gustavo Petro)가 결선을 치렀다. 승자는 이반 두케였다. 하지만 클라우디아 로페스(Claudia López)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요구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도 성향인 녹색당 소속의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 근소한 차이로 결선 진출에 실패한 그녀는 정치인들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를 복원하는 일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그 일에는 포퓰리스트들이 점령하고 있는 감정적인 지형들과의 일전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접근법은 다를 것이다. “권위적인 정치 조직에 가입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습니다. 우리 당원들은 시민들의 대의에 적응을 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 거죠.”

이러한 일들은 나무들이 죽어 버린 숲에서 새싹을 틔우는 일이다. 하지만 이는 라틴아메리카의 사회가 가진 역동성의 징표이자, 민주주의의 가장 위대한 자산이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conomist Intelligence Unit)의 ‘민주주의 지수(Democracy Index)’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민주적인 지역이다. 지난 40여 년 동안 이곳에서는 시민의 권리와 정치적 참여라는 문화가 만들어져 왔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라틴아메리카에서 민주주의를 지켜 내는 힘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모든 증거는 시민들이 새로운 정치 질서를 원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시민들은 정치인들이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것보다 공공 서비스와 치안, 법치에 관심을 갖기를 원한다. 그리고 시민들은 바로 지금, 그것을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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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권력 #민주주의 #시민 #선거 #이코노미스트 #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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