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 스마트폰은 왜 실패했을까

2024년 6월 12일, explained

신기술이 혁신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휴메인이 출시한 AI 핀. 사진: Humane
NOW THIS

포스트 스마트폰 시대를 위한 발명품인 ‘휴메인 AI 핀’을 제작한 휴메인(Humane)이 HP를 비롯한 기업들에 회사를 매각하는 것을 논의 중이다. 판매량이 목표치의 10분에 1에 그치면서 회사가 휘청인 것이다. 첫 제품이 출시된 지 불과 두 달 만, 제품 개발에 진입한 지 5년 만이다. 휴메인은 출범 당시 오픈AI의 CEO 샘 올트먼과 세일즈포스의 CEO인 마크 베니오프로부터 2억 4000만 달러를 모금하며 주목을 받았다.

WHY NOW

혁신의 모먼트를 만든 기업들은 언제나 현실에 존재하는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 방법을 재정의해 왔다. 기술은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동원되는 도구에 불과하다. 도구와 목적을 뒤바꾼 혁신은 지속하기 어렵다. 휴메인의 실패를 들여다보면 무엇이 혁신을 만들 기술인지 가늠할 수 있다.

제2의 두뇌

휴메인의 목표는 사람과 언제든 붙어 있는 제2의 두뇌, 즉 AI 보조자였다. 자석으로 옷에 부착되는 AI 핀은 사용자만을 위한 개인 비서가 된다. 디스플레이가 없는 대신 음성과 터치를 통해 기기를 제어할 수 있고, 레이저 프로젝터로 손에 영상을 비춰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카메라를 활용한 제스처 입력도 가능하다. 휴메인은 AI 핀이 스마트폰에 넘쳐 나는 화면과 콘텐츠에 잡아 먹히지 않고 현실 세계에 집중하도록 하는 기기라고 소개했다.

불완전한 기계

출시된 지 일주일, 다양한 매체에서는 혹평이 쏟아졌다. 발열이 심해 사용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번역 기능에 언어적 한계가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기술 매체 ‘씨넷(CNET)’에 따르면 음성 제어 AI 서비스는 불완전하고 신뢰할 수 없는 답변을 내놨다. 레이저 프로젝터 역시 햇빛이 있는 야외에서는 쓸모가 없었고 손가락 위에 영사된 텍스트는 구부러져 읽기가 힘들었다. 심지어 휴메인은 AI 핀의 충전 케이스에 화재 위험이 있으니 사용을 중단하라는 공지를 올리기도 했다. 

낙관적 사고

기술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제품이 시장에 나왔다. 이유가 무엇일까. 휴메인은 애플 HCI 분야에서 일한 임란 초드리와 운영체제 분야에서 PM으로 근무한 베사니 본조르노 부부가 설립했다. 애플 출신인 두 엔지니어의 창업은 실리콘밸리 내에서 많은 관심을 끌었다. 실리콘밸리가 보낸 신기술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지나치게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고로 이어졌다. 두 CEO는 낮은 배터리 수명과 전력 소비에 대한 경고를 무시했다. 출시 이전 핀을 시연했을 때 임원들은 핀의 배터리를 얼음 팩에 넣어 냉각시킬 정도였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핀의 디자인 준비 상태에 대해 두 CEO에게 질문했다가 해고당하기까지 했다. 두 창립자는 “부정적인 말을 함으로써 회사 정책을 어겼다”고 해고 이유를 밝혔다. 

고 피버

1967년 아폴로 1호가 불에 탄 이후, 우주산업에는 ‘고 피버(go fever)’라는 신조어가 생긴다. 잠재적인 문제나 실수를 간과한 채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 서두르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미 소요된 예산과 시간이 많을수록, 성공에 대한 낙관에 찼을수록 강화된다. 지나친 낙관과 투입된 예산에는 신기술을 향한 과열된 기대가 한몫했다. 아마존이 자랑했던 ‘저스트 워크 아웃(just walk out)’이 인간을 숨긴 것과 같은 이유다.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의 출현에 환호를 보낸다. 신기해 보이는 기술과 새로운 외형에 투자금이 몰리고 이름값이 오른다. 기술은 마케팅 용어의 한 차원으로 축소된다. 홍보를 위해 신기술을 사용하면서 시장에는 위험한 제품이 쏟아진다. 결과물을 빠르게 내야 한다는 생각, 성공할 것이라는 낙관이 오히려 AI 핀의 좌절을 불렀다.

99센트 스마트폰

게다가 시장은 아직 스마트폰을 대체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아마존이 2014년 출시했던 파이어폰 역시 불편을 해결하거나 필요를 제기하지 못한 제품 중 하나였다. 파이어폰에는 전방에 120도 카메라가 네 개 달려 있었다. 사용자의 얼굴이나 피사체를 인식해 그럴듯한 입체 이미지를 만들어 줬다. 카메라로 피사체를 비추면 파이어폰은 이미지를 직접 인식해 검색하고, 그를 아마존에서 바로 구매할 수 있도록 연결해 줬다. 새로운 기술이었지만 사람들의 불편과 필요를 해소해 주지는 못했다. 개발자까지도 “이 기능이 고객들에게는 아무 가치가 없을 것”이라 밝히기까지 했다. 파이어폰에서는 애플리케이션을 찾기 힘들었다. 스마트폰의 기본 특성마저 구현하지 못했던 것이다. 제품 출시 6주 만에 199달러였던 파이어폰은 99센트가 됐다. 그런데도 아무도 사려 하지 않았다.

질문의 순간

휴메인 AI 핀은 그런 아마존의 파이어폰을 닮았다. 기술이 문제를 발굴하거나 재정의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가 혁신의 주인공이 되면서다. 파괴적 혁신은 산업에 존재하는 문제를 문제로 명명하고 새로운 방식의 해결을 제안하며 시장을 창출한다. 넷플릭스는 영화와 콘텐츠를 접하고 보는 공간과 방식, 소비 방법을 바꿨고 에어비앤비는 여행의 페인포인트와 숙소의 한계에 주목했다. 애플은 공간에 얽매인 인터넷이라는 문제를 발견하고, 그 해결 방안으로서 아이폰을 세상에 내놨다. 혁신은 그간 불편하다 느끼지 못했던 문제를 발굴하고, 문제라고 이름 붙이는 데서 탄생한다. 기술은 그 질문을 직관적으로 던지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혁신보다는 객기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 상호 작용을 연구하는 한양대학교 고민삼 교수는 “서비스를 디자인할 때 중요한 것은 문제 해결이지, 기술이 아니”라고 말했다. 문제를 먼저 생각하고, 그것에 맞게 기술을 정하는 게 알맞은 순서라는 의미다. 우리는 때때로 새로운 형태의 기기를,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을 제시하는 것을 ‘혁신’이라 착각한다. 그러나 혁신은 결과물이 아닌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 있다. 휴메인의 AI 핀은 시의적절하게 문제를 발굴하지 못했다. 그들이 제기한 스마트폰의 문제는 사람들이 체감하기엔 너무 일렀다. 기술은 그들이 명명한 문제를 매끈하게 해결할 정도로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다. 혁신은 불편함의 감각이 태동하기 시작할 때, 과거부터 준비해 온 매끈한 기술의 해결 방안이 합쳐질 때 탄생한다. 그런 점에서 휴메인의 AI 핀은 혁신보다는 객기에 가까웠다.

IT MATTERS

휴메인이 열려 했던 스마트폰 이후의 세계는 어디로 향할까. 스마트폰 시장은 스마트폰을 대체할 하드웨어가 아닌, 인공지능이 결합할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다음 단계로 보고 있다. 그러나 마냥 상황이 밝지만은 않다. 기술 매체 ‘더 버지(The Verge)’는 스마트폰에 AI를 먼저 도입한 삼성의 갤럭시S24의 기능을 두고 “재미있지만 이상적이지는 않다”고 평가했다.

애플이 이번에 WWDC에서 발표한 새로운 아이폰은 어떨까. 시리와 나누는 대화, AI 기반 이미지 생성 기능과 맞춤형 이모티콘 제작은 재미있는 기술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애플의 기술이 아이폰 모먼트의 혁신을 다시 한번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 해결하고 발굴할 문제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정의해야 한다. 기술은 그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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