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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당권 경쟁이 4파전으로 치러지게 됐다. 후보 등록을 하루 앞둔 23일, 출마 선언이 쏟아졌다. 나경원 의원(오후 1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오후 2시),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오후 3시)이 한 시간 간격으로 출마 회견을
열었다. 앞서 21일에는 윤상현 의원이 출마를 선언했다. 국민의힘 당 대표와 최고 위원을 선출하는 전당 대회는 오는 7월 23일 열린다.
WHY NOW
한동훈 전 위원장의 출마 키워드는 ‘수평적 당정’이다. 원희룡 전 장관은 ‘대통령 신뢰’, 나경원 의원은 ‘계파 없음’이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거리는 원 전 장관이 가장 가깝고, 나 의원은 중간, 한 전 위원장은 가장 멀다. 즉 친윤, 비윤, 반윤의 대결이다. 현재로선 반윤이 가장 앞선다. 한 전 위원장이 승리해 대통령과 차별화에 나서면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탈당밖에 없다.
룰
당 대표는 당원 투표(당심) 80퍼센트와 일반 국민 여론 조사(민심) 20퍼센트를 합산해 선출한다. 지난해 3월 전당 대회에선 당원 투표 100퍼센트 룰을 적용했는데, 총선 참패 이후 비윤계를 중심으로 민심을 30~50퍼센트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결국 민심 20퍼센트로 정해져 당심 비율이 전보다 약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높아 영남권 친윤계의 조직력이 작동할 수 있다. 당 대표가 대선에 나가려면 ‘대선 1년 6개월 전에 사퇴해야 한다’는 당권·대권 분리 규정은 유지하기로 했다. 7월 23일 당 대표 경선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28일 1·2위 후보가 결선 투표를 치른다.
한동훈 “수평적 당정”
출마 선언문에는 출마 배경과 문제의식, 해법이 담겨 있다. ‘윤석열 정부의 황태자’ 한동훈 전 위원장이 진단한 국민의힘의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이다. 총선 패배 두 달여 만에 돌아온 한 전 위원장은 출마 회견에서 “당정 관계의 수평적 재정립”을 강조했다. 총선 패배를 “저의 책임”이라 했지만 메시지를 보면 대통령의 책임으로 들린다. 한 전 위원장은 “지난 2년간 9번이나 집권 여당의 리더가 바뀌었다”며 “그 배경이나 과정이 무리하다고 의문을 갖고 비판하는 국민이 많았다”고
했다. 이준석 전 대표의 사퇴와 김기현 전 대표의 당선·사퇴에 대통령실이 개입한 것을 비판한 것이다. 지금 보수 진영의 차기 대권 주자는 한 전 위원장, 유승민 전 의원, 홍준표 대구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정도다. 유 전 의원은 당심과 거리가 멀다. 홍 시장과 오 시장은 남은 임기 동안 중앙 정부의 협조가 필요해 대통령과 각을 세우기 어렵다.
원희룡 “대통령 신뢰”
원희룡 전 장관은 출마 회견에서 “대통령 신뢰”를 강조했다. 원 전 장관은 “신뢰가 있어야 당정 관계를 바로 세울 수 있다”며 “저는 대통령과 신뢰가 있다”고
했다. 원 전 장관은 지난해 7월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에 김건희 여사 일가에 대한 특혜 의혹이 일자 장관직을 걸고 사업 백지화를 선언했다. 이때부터 윤 대통령의 ‘호위 무사’ 이미지가 생겼다. 총선 패배 후에는 대통령실 비서실장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당초 원 전 장관은 전당 대회 출마 계획이 없었지만, 19일 윤 대통령을 만난 뒤 출마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이 미는 후보라는 얘기다.
나경원 “계파 없음”
나경원 의원은 출마 회견에서 “계파 없음”을 강조했다. 나 의원은 “저는 자유롭다. 각 세울 것도, 눈치 볼 것도 없다”고
했다. 나 의원은 2027년 대선에 불출마하겠다고도 했다.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는 한 전 위원장, 원 전 장관을 겨냥한 메시지인데, 나 의원은 차기 서울 시장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또한 나 의원은 22년 전 당에 들어와 한 번도 당을 떠난 적 없는 “정통 보수”임을 강조했다. 역시 최근 입당한 한 전 위원장, 바른정당 이력이 있는 원 전 장관을 겨냥한 메시지다. 나 의원은 22일에는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를 만나 지지를 확보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나 의원의 메시지는 “계파는 없고, 뿌리는 있다”로 요약된다.
윤상현 “한·원·나 대선 경선”
윤상현 의원은 출마 회견에서 대권과 당권 분리를 강조했다. 수도권에서 내리 5선에 성공한 ‘수도권 험지의 전략가’인 자신이 당 운영을 맡을 테니, 한동훈, 원희룡, 나경원 세 잠룡은 다른 일(대선 경선 참여)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전당 대회가) 대권 나가고 시장 (선거) 나가는 정치적 발판이 돼선 안 된다”고 했다. 윤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당정 관계를 파탄 내는 후보가 돼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어대한
이번 전당 대회를 앞두고 ‘어대한(어차피 당 대표는 한동훈)’이라는 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한 전 위원장은 한국 갤럽의 ‘장래 정치 지도자’ 여론 조사에서 내내 보수 진영 1위를 지키고
있다. 당심도 따른다. 국민의힘 당 대표 선호도 조사에서도 국민의힘 지지층 중에서 59퍼센트가 한 전 위원장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이어 원 전 장관(11퍼센트), 나 의원(10퍼센트)
순이었다. 정치권에서는 한 전 위원장의 당선을 높게 점치고 있다.
친윤계
친윤계는 한 전 위원장의 인기를 인정하면서도 붙어 봐야 안다는 입장이다. 1차 투표에서 한동훈 대 원희룡+나경원+윤상현 구도로 과반을 저지해 결선 투표까지 가면 친윤계가 2위 후보를 지원해 역전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지율 여론 조사의 표본과 국민의힘 당원은 구성이 다르다. 지난해 전당 대회 기준으로 투표권이 있는 당원은 84만
명이었다. 지역별로 영남이 40퍼센트, 연령별로 60대 이상이 42퍼센트였다. 이들은 한 전 위원장을 지지하면서도 임기가 3년이나 남은 대통령을 너무 흔들면 안 된다는 정서가 있다. 실제로 지난 전당 대회에서 김기현 의원은 출마 초기 지지율이 10퍼센트도 안
됐지만, 대통령실과 친윤계가 밀면서 52.93퍼센트 득표율로 당선됐다. 2위는 안철수 의원(23.37퍼센트)이었다.
IT MATTERS
원희룡 전 장관이 뒤늦게 출마를 결심하면서 판세가 복잡해졌다. 한동훈 전 위원장이 대세인 것은 맞다. 그러나 김기현 대표 당선 때처럼 대통령실과 친윤계가 노골적으로 결집하면 쉽게 이길 수만은 없다. 박빙 승부가 벌어지면 한 전 위원장은 친윤계 후보가 당선되면 안 되는 이유, 즉 총선 과정에서의 불협화음을 드러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이기면 당의 분열은 가속한다. 결국 당정 관계가 한 전 위원장의 출마 선언문에 담긴 수준보다 더 악화한다. 한 전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신주류가 대통령의 거부권 정치를 거부하고 야당에 동조할 가능성도 있다. 그때 윤 대통령에게 남는 옵션은 탈당밖에 없다. 그렇다고 국민의힘이 바로 한동훈 당이 될 수도 없다. 윤 대통령의 임기는 3년이 남았다. 인기가 바닥이라지만 내각, 공기업, 공공 기관 인사권이 있다. 자칫 당이 깨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