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의 콜라보레이션 전략

2024년 6월 26일, explained

이제 아이돌은 광고 모델이 아닌 브랜드다.

뉴진스 〈Supernatural〉 콘셉트 포토 ©newjean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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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뉴진스의 일본 데뷔 싱글 〈Supernatural〉이 오리콘 최신 차트의 정상을 밟았다. 뮤직비디오도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라인뮤직 뮤직비디오 부문 일간 차트에서 앨범에 속한 두 노래의 뮤직비디오가 나란히 1위와 2위를 차지했고, 유튜브 한국 일간 인기 뮤직비디오에서는 2위와 3위를 달렸다. 수록곡 중 〈Right Now〉의 뮤직비디오는 일본의 미술가 무라카미 다카시와의 콜라보로 화제를 모았다.

WHY NOW

아이돌과 셀러브리티를 활용한 콜라보레이션 전략이 바뀌고 있다. 이제 아이돌은 브랜드의 얼굴에 속한 것이 아니다. 브랜드와 브랜드로서, 얼굴과 얼굴로서 각자가 가진 이미지를 확장해 나간다. 뉴진스는 이 새로운 전략의 전면에 선 아이돌이다. 뉴진스의 사례를 통해 아이돌 마케팅 비즈니스의 미래, 그리고 그를 통해 달라질 팬덤의 모습까지 짚어 본다.

무라카미 다카시

〈Right Now〉 뮤직비디오에는 2집 〈Get Up〉 앨범에 등장했던 다섯 명의 뉴진스 파워퍼프걸 캐릭터가 등장한다. 사랑의 묘약을 찾아 나선 다섯 캐릭터는 무지개 색깔의 꽃을 발견하고 각종 초능력을 발휘한다. 순간 알 수 없는 오류가 발생한다. 세계는 충돌한다. 충돌한 세계의 틈새에서 무라카미 다카시가 제작한 다섯 멤버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무라카미 다카시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한 K팝 아이돌은 뉴진스만이 아니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카이카이키키와 걸그룹 블랙핑크 역시 시그니처 꽃을 주제로 협업을 진행한 바 있다.

앨범과 가방

블랙핑크와 뉴진스, 무라카미 다카시의 만남에는 다른 점도 있었다. 블랙핑크가 두 차례에 걸쳐 출시했던 ‘인 유어 에어리어(In Your Area)’ 캡슐 컬렉션은 티셔츠와 후드티, 재킷을 비롯한 의류와 토트백, 키링 등의 패션 잡화, 액세서리를 포함한 15종으로 구성됐다. 한정판 라이브스틱, 즉 응원봉도 함께 공개됐다. 뉴진스는 이 콜라보레이션의 범위를 조금 더 확장했다. 앨범에 카이카이키키의 슈퍼플렛 플라워와 다카시가 제작한 캐릭터가 함께 그려진 가방을 포함한 것이다. 앨범 상자를 열면 화려한 패턴의 크로스백과 드로우스트링백이 나타난다. 그 가방 안에 CD와 포토 북, 포토 카드가 들어 있다.

진입 장벽

스마트폰과 애플리케이션으로 음악을 듣는 시대다. 다른 말로는, 더 이상 실물 앨범은 음악을 듣기 위해 존재하는 물품이 아니다. 쓸모를 잃은 듯한 실물 앨범이지만 인기는 고공 행진 중이다. 한국의 연간 실물 음반 판매량 추이는 2019년 2509만 장에서 2023년 1억 1577만 장으로 크게 늘었다. 열성 팬을 목적으로 삼으면서다. 앨범 소비 시스템은 랜덤 포토 카드와 팬 사인회 응모권을 볼모로 삼으며 복잡해졌다. 여러 버전의 앨범을 제작해 과다 소비를 유도하거나 비싼 가격을 내세우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가벼운 팬들은 앨범 소비에 접근하기조차 쉽지 않다. 뉴진스는 앨범과 가벼운 패션 아이템을 결합함으로써 이 진입 장벽을 낮췄다.

코카콜라

이런 뉴진스의 전략은 가벼운 팬층을 앨범에 진입시키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다. 코카콜라는 뉴진스의 연결된 세계관을 활용해 상품을 노골적으로 노출하지 않고도 브랜딩 효과를 얻어갈 수 있었다. 뉴진스가 2023년 4월에 발표한 음원 〈zero〉는 ‘코카콜라 맛있다’라는 추억의 가사를 활용하며 독특한 CM 송과 뮤직비디오를 선보였다. 뉴진스는 코카콜라를 들고 제품을 노골적으로 홍보하는 대신 청량한 바다에 놓인 새빨간 문을 통과했다. 제품을 많이 노출하기보다 뉴진스가 가진 감성과 코카콜라의 이미지를 조화하려는 시도다. 이 둘의 인연은 계속해 이어졌다. 지난 5월 발매된 앨범 〈How Sweet〉의 뮤직비디오에서는 뉴진스의 멤버 ‘해린’이 땅에 떨어진 코카콜라 병을 줍는다.

아네모이아와 y2k

코카콜라와 뉴진스는 잘 어울리는 한 쌍처럼 보인다. 공격적인 마케팅 때문만은 아니다. ‘아네모이아(Anemoia)’는 묘사되는 과거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가 그 시절의 분위기와 문화 요소에 그리움을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1998년 첫 방송을 시작한 파워퍼프걸, 오랜 시간 이미지를 각인시킨 코카콜라, 1990년대 일본 오타쿠 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무라카미 다카시까지. 뉴진스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라는 것을 떠올린다면 그들이 꾸준히 전개하는 y2k(2000년대) 무드는 아네모이아에 해당한다. 뉴진스가 선택한 특별한 콜라보레이션에는 과거를 향한 향수, 즉 레거시가 묻어 있다.

레거시와 신선함

콜라보레이션은 두 브랜드 모두의 가치를 공고히 하거나 새롭게 포장할 수 있을 때 효과를 발휘한다. 뉴진스와 레거시를 갖춘 브랜드의 협업은 둘 모두에게 신선한 기획이었다. 뉴진스는 기존의 브랜드가 가진 레거시를 활용해 타깃인 젊은 세대가 느끼는 아네모이아를 겨냥했다. 누군가를 직관적으로 이해시켜야 하는 브랜딩에서 레거시는 구구절절한 설명보다는 직관적인 얼굴로 드러난다. 코카콜라의 빨간 배경과 하얀 글씨, 파워퍼프걸의 독특한 그림체와 다카시의 유명한 꽃처럼 말이다. 레거시를 무기로 삼은 브랜드도 뉴진스의 얼굴을 통해 신선함을 얻을 수 있었다. 자칫하면 잊히거나 고루해질 수 있는 얼굴은 트렌디한 신인 걸그룹의 이미지를 얻는다. 브랜드의 고유한 색은 유지하면서도 확장을 해나갈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이다.

브랜드가 된 아이돌

과거의 아이돌은 광고 모델에 지나지 않았다. 즉 이미 존재하는 제품을 홍보하고, 그를 알리는 확성기 역할만 했던 셈이다. K팝 전성시대의 아이돌은 조금 다르다. 아이돌은 레거시의 얼굴에 흡수되는 광고의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전하는 독립된 브랜드로서 기능한다. 동일한 위치에서 협업하면서 기존의 브랜드도, 브랜드로서의 아이돌도 자신의 페르소나를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이런 형태의 콜라보레이션은 뉴진스를 통해 전면화됐다. 민희진 대표가 논란의 기자회견에서 말했듯, K팝 씬에서의 ‘포뮬러’는 어떤 방식으로든 퍼져 나가기 마련이다. 뉴진스가 전면화한 이러한 형태의 콜라보 모델은 아이돌 브랜딩 전체에 있어 뉴노멀이 될 가능성이 크다.

IT MATTERS

변화는 비즈니스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던 아이돌 팬의 모습 자체가 바뀔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의 아이돌 팬의 모습은 무거웠다. 아이돌의 사진을 지니고 다니고, 팬 사인회에 열성적으로 참석하며 수십 장의 앨범을 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브랜드가 된 아이돌은 더 넓고, 더 가벼워질 수 있다.

팬들은 음원 무한 스트리밍을 돌리기보다 틱톡과 릴스 등의 쇼트폼 플랫폼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음악을 BGM으로 선택한다. 패션 아이템으로, 음료수와 브랜드의 선택으로 자신이 해당 그룹의 팬임을 알릴 수도 있다. 우리는 모두 가볍고 편안하게 ‘버니즈’의 일원이 될 수 있다. K팝 시장은 그렇게 팬덤의 타깃을 넓혀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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