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THIS
케냐 의회가 6월 25일 정부가 제출한 증세 법안을 가결했다. 국가 부채를 갚기 위해 세금을 올리는 법안이었다. 달걀, 양파, 감자 같은 식료품, 인터넷 사용료, 은행 송금 수수료 등에 부과하는 세금을 인상하는 내용이다. 의회를 통과한 법안은 대통령이 서명하면 발효된다. 그런데 대통령이 법안을 돌연 철회하기로
했다. 전국적인 반대 시위 때문이다.
WHY NOW
수도 나이로비에서 시작된 시위는 전국으로 퍼졌다. 거의 모든 도시에서 시위가 열렸다. 증세 반대는 물론이고 대통령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결국 대통령은 법안을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시위를 주도한 사람 중 다수가 Z세대였다. 이들은 소셜 미디어와 AI를 이용해 신속하고 유기적인 시위를 조직했다. 디지털 액티비즘이 대중을 물리적 광장으로 불러냈다.
증세
케냐는 연간 세수의 37퍼센트를 빚 갚는 데 쓴다. 원금 상환이 아니라 이자 지급만 그렇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차관을 더 빌리려면 증세로 재정 취약성을 줄여야 한다고 압박했다. 그래서 작년에 이미 소득세를 올리고, 석유 제품의 부가세를 16퍼센트로 두 배 올렸다. 그래도 돈이 모자랐다. 결국 연간 27억 달러 상당의 세금을 추가로 징수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었다.
Z세대
케냐 국민은 분노했다. 이미 과도한 세금을 내는데, 추가 증세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라에 돈이 필요하면 정부 지출부터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케냐는 젊은 나라다. 인구가 5600만 명인데, 80퍼센트가 35세
미만이다. 즉 4500만 명이 Z세대라는 얘기다. 인터넷 보급률은 87퍼센트다. 모바일 인터넷 가입자는 4370만 명이다. 케냐 Z세대는 디지털로 시위를 조직했다.
소셜 미디어
2011년 아랍의 봄은 트위터 혁명이었다. 이번 케냐 시위 역시 소셜 미디어가 이끌었다. 주역은 틱톡과 X였다. Z세대 키보드 워리어들은 소셜 미디어에 다양한 케냐 부족 언어로 증세 법안을 설명하는 영상을 올렸다. 공유하기 좋은 이미지와 노래도 만들어서 올렸다. 게시물마다 의회를 점거하자거나 증세 법안을 철폐하라는 뜻의 해시태그를 붙여 화력을 모았다. #OccupyParliament #RejectFinanceBill2024
AI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이미지, 노래, 영상을 제작할 때는 AI가 사용됐다. AI는 증세 법안 시민 교육에도 활용됐다. 한 개발자는 사용자가 증세 법안에 대해 무엇이든 묻고 답변을 받을 수 있는 GPT 모델을
만들었다. 법안의 상세 내용을 소개하고,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내 급여에서 세금이 얼마나 더 빠져나가는지 등을 알려 준다.
웹사이트
증세 법안은 케냐 의회에서 찬성 195표, 반대 106표, 무효 3표로 가결됐다. 시위 활동가들은 증세 법안을 지지한 정치인들을 웹사이트로 저격했다. 사이트 이름은 ‘
수치의 벽(Wall of Shame)’이다. 정치인의 이름, 소셜 미디어 계정, 사무실 전화번호를 나열하고, 그 정치인과 관련이 있는 사업체 이름까지 열거했다. 불매 운동을 하자는 얘기다.
모바일 송금
이번 시위는 디지털로 시작되고 조직됐지만, 디지털에 그치지 않았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디지털 시위를 물리적 광장으로 옮겼다. 수도 나이로비 외곽에서 도심 상업 지구로 이동해 시위를 하려면 교통비가 들어간다. 시위 지지자들은 모바일 송금으로 시위대에 돈을 보냈다. 케냐는 스마트폰이 도입되기도 전에 이미 세계 최초로 모바일 송금 서비스를 시작한 나라다.
해킹
급기야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해커들의 집단 ‘어나니머스(Anonymous)’까지 등장했다. 어나니머스는 공식 X 계정에 1분 17초짜리 영상을
게시했다. 케냐 시위와 경찰의 강경 진압 소식을 들었다면서, 정치인들에게 해커들이 곧 봉기할 것이라고 알렸다. 케냐 정치인을 향해 ”여러분의 모든 비밀이 폭로되어 당신이 얼마나 부패하고 불의한지 보여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IT MATTERS
그동안 디지털 액티비즘은 현실을 바꾸지 못하고 온라인에서만 치열하게 댓글 배틀을 벌이는 ‘게으른’ 정치 참여 정도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번 시위는 디지털에서 시작해 물리적 광장으로 나아갔다. 케냐 시민 사회와 정치는 시위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케냐에는 43개의 부족이 존재한다. 각자 정당이 있어 정치 이슈가 부족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이번에는 달랐다. 민족 중심에서 이슈 중심으로 의제가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