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노동당의 정권 교체

2024년 7월 8일, explained

노동당의 승리가 아니라 보수당의 패배다.

7월 6일 영국 신임 총리 키어 스타머가 영국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에서 첫 내각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Chris Eades-WPA Pool/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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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4일 치러진 조기 총선에서 제1야당인 중도 좌파 노동당이 압승했다. 하원 650석 중 노동당이 압도적 과반인 412석을 차지했다. 집권 보수당 121석, 자유민주당 72석, 스코틀랜드국민당 9석, 영국개혁당 5석, 녹색당 4석 등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영국은 14년 만에 정권 교체가 이뤄지게 됐다. 신임 총리 키어 스타머는 취임 일성으로 변화의 시작을 알렸다.

WHY NOW

이번 총선 결과는 노동당의 승리라기보다 보수당의 패배다. 14년을 집권한 보수당의 무능에 대한 유권자의 심판이었다. 노동당은 압도적인 과반 의석을 차지했지만, 압도적인 민심을 얻지는 못했다. 노동당의 득표율은 33.7퍼센트였다. 보수당(23.7퍼센트)과 강경 보수 영국개혁당(14.3퍼센트)의 합산 득표율은 38퍼센트였다. 노동당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은 이유다.

스타머

선거 다음 날인 5일,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영국 총리로 공식 취임했다. 스타머는 1962년 영국 런던에서 공구 제작자인 아버지와 간호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2008년부터 5년간 잉글랜드·웨일스 왕립 검찰청(CPS) 청장을 지냈다. 2015년 하원의원에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했다. 2020년 전임자 제러미 코빈에 이어 노동당 대표로 선출됐다.

보수당

보수당은 1834년 창당 후 최소 의석인 121석에 그쳤다. 기존 의석에서 250석을 잃었다. 보수당은 집권 14년간 브렉시트, 경제 혼란, 물가 급등, 공공 의료 악화, 이민 급증 등 뭐 하나 잘한 게 없었다. 보리스 존슨 전 총리는 코로나19 봉쇄 기간에 술 잔치를 벌여 사퇴했고, 리즈 트러스 전 총리는 대규모 감세 정책을 발표해 파운드화 폭락을 초래했고 취임 44일 만에 사퇴했다.

수낵

영국 하원 임기는 5년이다. 지난 선거는 2019년 12월에 열렸다. 다음 총선은 내년 1월까지 열면 됐다. 그런데 리즈 트러스의 뒤를 이어 총리에 취임한 리시 수낵은 ‘7월 깜짝 조기 총선’을 발표했다. 수낵은 전임자들이 어질러 놓은 혼란을 어느 정도 수습했다. 특히 인플레이션이 잡힐 기미가 보였다. 선거가 늦어질수록 불리해진다고 판단하고 정치적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우클릭

노동당은 중도층을 잡기 위해 우클릭 전략을 택했다. 노동당은 그동안 안보 분야에서 보수당보다 상대적으로 덜 강경했는데, 이번에는 “국가 안보의 당”을 자처하며 집권하면 핵 잠수함을 건조하겠다고 밝혔다. 국방 지출도 국내총생산(GDP)의 2.5퍼센트로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또 소득세와 법인세를 동결하고, 국경 경계를 강화하겠다며 기존 좌파 색깔을 지운 정책을 내놨다.

제3의 길

스타머가 주도한 노동당의 우클릭은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제3의 길’에 비견된다. 1994년 토니 블레어는 41세 나이로 노동당 대표로 선출됐다. 당시 노동당은 사회주의 국유화를 주장하는 정당이었다. 블레어는 노동당을 노동 계급의 정당에서 중간 계급의 정당으로 바꿨다. 좌우 대립을 넘어 실용이라는 제3의 길을 주창하며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총리로 재임했다.

통합

스타머 역시 2020년 노동당 대표로 선출된 뒤 무상 교육, 무상 의료, 초고소득자 증세 같은 강성 좌파 정책을 버리고 중도 노선을 택했다. 당내 노선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더구나 스타머 전임 당 대표는 노동당 역사상 가장 좌파적이라는 제러미 코빈이었다. 스타머는 코빈과 그의 추종 세력이 반유대주의를 조장한다며 출당시키고 분열된 당을 통합했다.

영국개혁당

한편 이번 총선에서 극우 성향인 영국개혁당은 5석을 차지했다. 창당 6년 만에 처음으로 의회에 입성하게 됐다. 영국개혁당은 ‘영국의 트럼프’라 불리는 나이절 패러지가 당 대표를 맡고 있다. 패러지는 극단적인 반이민주의자로 이주민에 대한 인종차별적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보수당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강경 보수층이 영국개혁당으로 옮겨 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IT MATTERS

노동당은 보수당보다 3배 넘는 의석을 확보했다. 그런데 득표울을 살펴보면 노동당 33.7퍼센트, 보수당 23.7퍼센트, 극우 성향 영국개혁당 14.3퍼센트였다. 보수 진영의 득표율을 합하면 38퍼센트로 노동당을 뛰어넘는다. 그래서 이번 총선을 노동당의 승리라기보다 분열된 보수의 패배로 보는 분석도 있다. 스타머 정부가 보수당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중도 정책을 고수할 경우, 영국개혁당은 이를 파고들어 노동당과 보수당을 모두 깎아내리면서 보수의 대표 주자로 올라설 수 있다. 즉 중도 좌파 정권이 실패하면 더 우경화된 우익 포퓰리즘이 득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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