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개량은 빠른 해결책이 아니다

2024년 7월 10일, explained

우리에게는 강한 사과가 필요하다. 사과를 바꾸는 게 가장 빠른 대안일까?

아폴로 품종의 사과가 농장 수확 박스에 담겨 있다. 사진: Geography Photos/Universal Images Group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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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사과를 만들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대구 군위에 위치한 농촌진흥청의 사과연구소에는 8만 4000평에 이르는 재배 용지에 30여 개 사과 품종이 빼곡히 들어찼다. 최근 연구진은 기후 위기에 대응한 신품종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에는 과수원 온도를 낮출 수 있도록 스마트폰으로 냉수를 살포하는 무인 스마트팜 기술도 확보했다.

WHY NOW

사과는 서늘한 곳을 좋아하는 과일이다. 기후와 날씨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날은 점점 더워진다. 사과를 계속 즐기기 위해서는 날씨와 사과, 둘 중 무언가가 달라져야 한다. 사과를 바꾸는 건 조금 더 쉬운 선택지였다. 그러나 사과를 바꾸는 해결책에만 미래의 식생활을 걸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사라질 과일

사과는 사라질 과일이다. 지구 온난화가 지금의 추세대로 계속된다면 한반도 남단에서는 2090년쯤 사과 재배가 불가능해진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농업전망 2024’에 따르면 2033년 사과 재배 면적은 3만 900헥타르로 올해 면적인 3만 3800헥타르보다 8.57퍼센트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9년 동안 축구장 4000개 규모의 사과밭이 사라지는 것이다. 사과 생산량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사과는 2024년 50만 2000톤에서 2033년 48만 5000톤까지 감소할 전망이다.

사과값

우리는 이미 사과 멸종 시대의 초입을 경험하고 있다. 국내 사과값은 주요 95개국 중 가장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 26일 기준 사과 1킬로그램의 가격은 한국이 6.82달러, 약 9000원으로 1위를 기록했다. 물가가 높은 일본과 미국, 싱가포르와 비교해도 높았다. 사과꽃이 개화하지 않거나 수정 시기를 놓치면서 착과가 안 되는 사례가 늘었기 때문이다. 관계자들은 “앞으로 각 지역에 맞는 사과 품종과 대체 품종 개발이 이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품종 개량

사과만이 품종 개량 논의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식량 안보가 화두로 등장한 배경 역시 품종 개량과 유전자 연구에 대한 필요성을 키우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곡물 자급률은 22.3퍼센트다. 대부분의 소비 곡물을 해외에서 수입하는 셈인데, 특히 콩(7.7퍼센트)과 옥수수(0.8퍼센트), 밀(0.7퍼센트)의 자급률이 크게 낮다. 수산물 개량에 관한 연구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해수 온도가 높아지면 양식과 채취 시기가 짧아지며 식량 공급에 차질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오징어은 위기에 처했다.

규제

국내에는 유전자 변형 생물체 법(LMO법)을 통해 유전자를 변형한 농작물을 개발할 때는 중앙 행정 기관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최근 농진청은 가뭄에 내성이 있는 콩 종자를 개발하기 위해 우루과이에 연구실을 냈다. 국내의 법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대형 식품업계 관계자는 이런 상황이라면 굳이 R&D 활동을 할 필요가 없다며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유럽은 2023년 7월, 유전자 변형 식물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제안을 발표했다. 제안이 승인된다면 유전자를 변형한 식물은 기존 식물과 동일하게 취급된다. 안전 검사와 변형 라벨링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유전자 연구

최근에는 갈변이 되지 않는 사과, 곰팡이병에 걸리지 않는 작물 등을 만들어 내는 유전자 편집 기술도 활발히 연구 중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유전자 연구와 품종 개량이 불러올 문제도 작지 않다고 지적한다. 특정 유전자를 없애거나 침묵시키는 등의 유전자 편집도 마찬가지다. 시민단체와 과학자들은 작물의 RNA를 조작하게 되면 목표 유전자 외에 다른 유전자도 저해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특정 유전자를 저해시키면 유사한 기능을 담당하는 유전자 집단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질병에 취약해지면서 농민들이 더욱 강한 살충제를 사용하게 될 수 있다.

공장식 농업

그뿐만 아니다. 민간을 중심으로 유전자 개량 및 변형 연구가 진행된다면 지금과 같은 공장식 농업 시스템이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공장식 농·축산업에 사용되는 땅은 지구 전체 면적의 26퍼센트를 차지한다. 다국적 거대 기업들은 유전 기술에 집착하며 다음 시대의 먹거리를 상품화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종자 회사인 ‘코르테바’와 ‘바이엘’은 단백질 함량이 증가한 대두, 찰옥수수, 제초제에 내성이 있는 쌀에 대한 특허를 내면서 새로운 유전 기술 경쟁에서 앞서 나가고 있다. 공장식 농업 모델은 중장비와 비료와 같은 인공 투입재에 농부를 의존시키는 상태에 빠트린다. 토양은 고갈되고 생물 다양성은 더더욱 빠르게 손실된다.

느린 대안

문제는 현존하는 식품의 ‘양’이 부족하다는 점이 아니다. 세계 식량의 30퍼센트는 쓰레기로 버려진다. 더 많은, 더 강한 식품을 만들어 내려는 빠른 해결책보다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느린 대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의미다. 물리적, 생물학적, 화학적 간섭을 최소화하고 토양 유실을 막아 홍수, 가뭄에 대한 저항력을 키우는 탄소 농업이 대안으로 논의된다. 아보카도와 같이 기후를 파괴하는 음식을 낭비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 기후 위기를 완화할 수 있는 생물 다양성을 재건하는 것 역시 대안 중 하나다. 대량 농업 시스템과 품종 개량이라는, 지금의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으로는 기후 위기에 일시적인 대응만을 가능케 할 것이다.

IT MATTERS

빠른 해결은 기존의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 골자다. 다국적 기업에 의해 전 세계로 뻗어 나갔던 식품 유통 시스템, 그리고 농업 전체를 조용히 관리해 왔던 비료와 중장비의 세계가 그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시스템이 많은 문제를 만들어 왔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품종 개량과 유전자 조작이라는 대안에는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GMO 식품은 아직 안전성에서도, 그것이 불러올 결과에서도 모두를 설득하지 못했다. 각종 논의와 갈등으로 인해 우리는 이미 골든 타임을 놓치고 있다. 규제도, 연구도, 다른 해결책에 대한 논의도 계속돼 지연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느린 대안으로 논의됐던 것이 사실은 가장 빠른 대안일 수 있다. 자연의 힘을 재건하는 데서 새로운 해결을 시작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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