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없는 유럽

2024년 7월 11일, explained

이제 유럽은 유럽이 지켜야 한다.

2024년 7월 9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나토 창설 75주년 기념 행사에 각국 정상이 참가했다. 사진: Celal Gunes/Anadolu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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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서양조약기구(NATO) 75주년 정상 회의가 9일 미국 워싱턴에서 개막했다. 회원국들과 함께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우크라이나 정상이 참가했다. 최대 의제는 러시아의 침공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 지원이다. 나토 회원국들은 연간 400억 유로 수준의 군사 지원을 약속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의는 나토 영향력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WHY NOW

75년간 유럽 대륙의 안보를 보장해 온 미국이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유럽 국가들은 역사의 전환을 맞았다. 미국이 없는 유럽은 러시아의 위협에 홀로 맞서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유럽 국가 대부분이 안보 위기에 대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나토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나토

1945년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불과 몇 년 사이에 소련은 동유럽을 공산화했다. 소련의 위협이 서방에 확대하자 1949년 미국, 캐나다 등 북미와 유럽은 군사 동맹 ‘나토(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를 창설한다. 회원국 하나라도 공격을 받으면 회원국 모두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 유럽은 75년간 미국-유럽 동맹에 의지해 안보를 지키고 경제를 성장시켰다.

미국

그러나 유럽이 미국에 안보를 맡길 수 있었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미국은 나토를 탈퇴할 가능성이 있다. 왜 미국이 유럽을 위해 돈을 쓰고 피를 흘려야 하느냐는 것이다. 나토를 재건하겠다는 조 바이든이 이겨도 수위가 다를 뿐 상황은 큰 차이가 없다. 워싱턴의 관심은 유럽에서 인도·태평양으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 안보의 우선순위가 중국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유럽

세계에서 유럽의 중요성이 줄어들고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유럽의 경제 규모는 미국보다 컸다. 지금은 다르다. 미국의 GDP가 세계 전체 GDP의 26퍼센트다. 유럽은 20퍼센트다. 또 미국은 동시에 ‘두 개의 전쟁’을 치르지 않기로 했다. 지금 미국은 중국을 상대하는 것만도 버겁다.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할 수는 있어도 두 전선에서 싸울 여력은 없다.

러시아

미국이 없는 유럽은 러시아의 위협에 홀로 맞서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유럽 국가 대부분이 오랜 기간 안보 위기에 대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부터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까지 유럽에는 큰 전쟁이 없었다. 안보를 미국에 맡겨 놓고 평화를 당연하게 여겼다. 지난해 나토 국방비는 1조 2000억 유로였다. 그중 3분의 2를 미국이 부담했다.

전환

2022년 2월 27일 올라프 슐츠 독일 총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월 24일을 ‘자이텐벤데(Zeitenwende)’라고 규정했다. 역사의 전환점이라는 뜻이다. 독일은 재무장을 선언하고 국방비를 GDP의 2퍼센트 이상으로 늘리기로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역시 “유럽이 죽을 수도 있다”며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안보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출

그러나 수십 년 넘도록 국방에 투자하지 않던 관성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다. 경제 성장은 더디고, 고령화는 빨라지고, 복지 예산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국방비를 마음껏 늘리기가 어렵다. 나토 회원국은 올해 국방비를 18퍼센트 늘렸지만, 회원국의 3분의 1이 여전히 나토 국방비 지출 가이드라인인 GDP의 2퍼센트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의 국방비는 GDP의 2.7퍼센트다.

분열

국방비만 문제가 아니다. 나토가 확장하면서 새로 가입한 동유럽 회원국과 기존 회원국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 나토 회원국이자 EU 소속인 헝가리는 친러시아 성향을 보이며 우크라이나 지원을 반대해 왔다. 오는 10월 교체 예정인 나토의 수장인 사무총장을 선출하는 과정에도 잡음이 일고 있다. 사무총장 자리를 놓고 서유럽 대 동유럽 대결 구도로 가고 있다.

IT MATTERS

미국이 없는 유럽에 새로운 패권 국가가 나타날 가능성은 극히 낮다. 그렇다고 유럽 국가들이 더 끈끈하게 통합되기도 어렵다. 서유럽과 동유럽은 지리적으로 안보 인식이 다르고, 안보 협력도 지역화하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이 유럽에 핵무기를 공유할 수 있겠지만, 나토 회원국들이 미국의 핵우산만큼 든든하게 여길지 의문이다. 트럼프가 당선되고 미국이 유럽을 정말 떠나게 되면 동유럽 국가들에 핵무장 도미노가 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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