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낙관주의 선언
마크 앤드리슨은 지금의 인터넷을 만들었습니다. 1993년에 세계 최초로 이미지를 표시할 수 있는 웹 브라우저 ‘모자이크’를 개발했죠. 이게 인기를 끌자 넷스케이프를 설립합니다. 2년 뒤 나스닥에 상장하죠. 닷컴 버블이 꺼지기 직전인 1999년에 넷스케이프를 43억 달러에 AOL에 매각합니다. 그해 앤드리슨은 벤 호로위츠와 함께 옵스웨어(Opsware)라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또 차립니다. 2007년에 HP에 16억 달러를 받고 매각합니다.
두 회사를 팔았을 때 앤드리슨은 아직 30대 후반이었습니다. 은퇴할 나이가 아니었죠. 2009년 앤드리슨은 호로위츠와 함께 ‘앤드리슨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라는 VC를 설립합니다. 줄여서 a16z라고 합니다. 첫 글자 a와 마지막 글자 z 사이에 16개의 글자가 있다는 뜻입니다. a16z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스타트업 명예의 전당 수준입니다. 트위터, 페이스북, 에어비엔비, 스카이프, 스트라이프, 깃허브, 피그마, 로블록스, 코인베이스, 오픈AI 등이 있습니다.
앤드리슨은 닷컴 열풍부터 버블 붕괴, 스마트폰의 등장, 클라우드, 메타버스, 암호 화폐, AI까지 실리콘밸리의 중흥기를 겪었습니다. 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걸 지켜본 사람이죠. 또한 a16z는 운용 자산이 350억 달러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VC입니다. 게다가 앤드리슨과 호로위츠 두 창업자는 실리콘밸리에서 목소리가 가장 큰 사람들입니다. 은둔의 경영자가 아니라 카메라와 마이크 앞에 서는 걸 즐기고 책과 아티클을 끊임없이 발표하는 슈퍼 인플루언서입니다.
그런 앤드리슨과 호로위츠가 얼마 전 트럼프 지지를 선언하고 고액을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우클릭을 상징하는 장면입니다. 실리콘밸리의 리버럴이 왜 트럼프를 지지하게 됐을까요. 9개월 전 앤드리슨이 서브스택에 올린 글 ‘
기술 낙관주의 선언(The Techno-Optimist Manifesto)’에 힌트가 있습니다. A4 용지로 20장 분량인 긴 글인데요, 한마디로 요약하면 “성장이 곧 진보”라는 얘기입니다.
앤드리슨은 기술이 일자리를 빼앗고 불평등을 심화하고 환경을 파괴하고 인간성을 훼손하고 미래를 위협한다는 ‘거짓말’을 거부합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문명은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합니다. “성장하지 않는 것은 침체”라며 성장하지 않으면 제로섬 게임과 내부 갈등, 퇴보, 붕괴가 일어나 결국 인류가 멸망한다고 주장합니다. 그에 따르면 성장의 원천은 인구 증가, 천연자원, 기술, 세 가지입니다. 앞선 두 가지는 수명이 다했고, 남은 건 기술 발전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