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부를 위한 십자군
트럼프가 도지의 수장으로 머스크를 앉힌 건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머스크가 올해 대선에서 트럼프 측에 3억 달러 가까이 투자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머스크는 트럼프보다 정부 규제에 할 말이 많은 사람입니다. 트럼프는 부동산 개발 정도를 했지만, 머스크는 전기차, 에너지, 우주 발사체, 통신 위성 사업에다 사람 뇌에 칩을 심는 사업, 도시 아래 터널을 뚫는 사업까지 거의 모든 연방 기관의 규제와 다퉈 왔으니까요.
게다가 머스크는 ‘제거’에 능합니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평전 《일론 머스크》를 보면 그가 제거에 얼마나 광적으로 집착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머스크의 생산 철학 중 하나가 “부품이든 프로세스든 가능한 한 최대한 제거하라”입니다. “나중에 10퍼센트 이상 다시 추가하지 않게 된다면 처음에 충분히 제거하지 않은 것”이라고도 합니다. 사람도 제거 대상입니다. 머스크는 2022년 트위터를 인수하고 직원 80퍼센트를 해고하죠.
비벡 라마스와미는 머스크보다 더 극단적입니다. 라마스와미는 2023년 공화당 대선 경선에 출마해 연방 공무원의 75퍼센트를 줄이겠다는 공약을 내놨습니다. 그는 ‘사고 실험’이라는 전제하에 이렇게
말합니다. “먼저, 사회 보장 번호가 홀수로 끝나는 공무원을 해고합니다. 남은 사람 중에서 사회 보장 번호가 짝수로 시작하는 사람을 해고하는 겁니다. 그럼 성차별, 인종 차별, 이념 차별 논란 없이 75퍼센트를 삭감할 수 있죠.”
도지는 연방 정부의 지출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하고 AI를 이용해 비효율적 지출을 감지할 계획입니다. 머스크와 라마스와미는 이런 기술적 과제를 해결할 최고의 인재를 접촉하고 있습니다. 접촉 명단에는 a16z의 공동 설립자 마크 안드레센, 팔란티어의 공동 창업자 조 론스데일, 우버 창업자 트래비스 칼라닉, 보링컴퍼니 CEO 스티브 데이비스, 테슬라 임원을 지낸 안토니오 그라시아스 등 머스크의 오랜 인연이 포진해 있습니다.
250번째 생일 선물
그럼, 도지는 연방 정부를 어떻게 개혁할까요. 머스크와 라마스와미는 2024년 11월 20일
‘정부 개혁을 위한 도지의 계획’이라는 글을 《월스트리트저널》에 공동 기고합니다. 기고문은 미국의 건국 이념으로 시작합니다. “미국은 우리가 선출한 사람들이 정부를 운영한다는 기본 이념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법적 명령은 의회가 제정한 법률이 아니라 선출되지 않은 관료들이 만든 ‘규칙과 규정’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기고문에서 도지의 세 가지 목표를 제시합니다. 규제 철폐, 행정 감축, 비용 절감입니다. 머스크와 라마스와미는 첨단 기술을 활용해 불법적인 연방 규제를 적발해 없애겠다고 말합니다. 물론 도지는 규제를 없앨 권한이 없습니다. 도지는 트럼프에게 수천 개의 연방 규제를 폐지해 달라고 요구하고, 대통령이 행정 조치를 통해 규제를 없애면, 그에 비례해 규제를 감독하는 공무원을 감축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머스크와 라마스와미는 워싱턴 기득권 세력의 반격에도 대비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수천 개의 규제를 없애면 반대자들이 행정부의 월권을 주장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 같은 조치는 행정부의 월권이 아니라, 의회의 승인 없이 규칙과 규정으로 공포된 수천 개의 불법 규제를 철회하는 것이므로 오히려 행정부의 월권을 바로잡는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둘은 트럼프가 연방 공무원이 주 5일 사무실에 출근하도록 요구하는 것과 같은 규칙을 부과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를 통해 “우리가 환영하는 자발적 퇴직의 물결”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머스크가 트위터에서 인원을 감축할 때 재미를 봤던 수법이죠. 현재 연방 공무원 230만 명 중 130만 명이 재택근무를 하는데, 이들은 평균 주 2일을 집에서 근무합니다. 이들에게 주 5일 사무실 출근은 삶의 환경이 뒤바뀌는 일이죠.
기고문에서 두 사람은 구체적인 연방 지출 삭감 대상도 미리 공개했습니다. 공영 방송 공사 예산 5억 3500만 달러, 국제기구 지원금 15억 달러, 진보 단체 보조금 3억 달러가 여기에 포함됐습니다. 도지의 활동 시한은 2026년 7월 4일, 즉 미국의 250번째 독립기념일까지입니다. 기고문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미국의 250번째 생일에 건국자들이 자랑스러워할 연방 정부를 선물하는 것보다 더 나은 생일 선물은 없을 것입니다.”
두 개의 판례
기고문에서 헌법은 네 번, 건국자는 두 번 언급됩니다. 머스크와 라마스와미는 도지의 활동이 법적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헌법과 건국자를 거론하며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두 사람은 도지 개혁의 북극성은 미국 헌법이며, 특히 바이든 행정부 때 나왔던 두 가지 대법원 판결에 주목했다고 밝혔습니다. 두 판결이란 웨스트버지니아 대 환경보호청(2022) 사건, 로퍼 브라이트 대 레이몬도(2024) 사건입니다.
웨스트버지니아 대 환경보호청(EPA) 사건에서, 연방 대법원은 특정 규제에 대해 의회가 구체적으로 위임하지 않았다면 연방 기관이 광범위하게 해석해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러면서 ‘중대 문제 원칙(major questions doctrine)’을 강조했습니다. 의회가 명확히 부여하지 않은 경제적·사회적으로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행정 기관이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는 원칙입니다.
로퍼 브라이트 대 레이몬도 사건에서, 연방 대법원은 셰브론 원칙을 뒤집고 연방 기관의 포괄적·재량적 규제 해석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셰브론 원칙이란 1984년 석유 회사 셰브론 대 천연자원보호협회 사건 때 생긴 판례인데, 의회가 어떤 사안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았을 때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연방 기관의 해석에 따라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이 두 판례로 연방 기관의 규제가 의회가 명시적으로 승인한 범위를 넘어서진 않는지 재검토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미국 연방 정부의 각 부처와 독립 기관이 발행한 행정 명령을 집대성한 미국 연방규정집은 1960년대에는 2만 쪽 분량이었습니다. 지금은 18만 쪽이 넘습니다. 그만큼 연방 정부가 비대해진 거죠. 예를 들어 환경보호청은 화석 연료 발전소에 2039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90퍼센트 감축하도록 하고, 그렇지 않으면 전력 공급을 할 수 없도록 규제합니다. 그런데 이런 법은 없습니다. 환경보호청이 셰브론 원칙에 따라 부과한 규제입니다.
환경, 에너지, 노동, 안전, 보건, 의료, 금융, 통신 등 연방 기관이 포괄적 권한을 근거로 광범위한 규제를 해왔던 분야들이 도지의 도전을 받게 될 수 있습니다. 도지는 불법적 규제 목록을 작성해 대통령에게 제출하고, 대통령은 행정 조치를 통해 해당 규제의 집행을 즉시 중단하고, 재검토 및 철회 절차를 밟을 수 있습니다. 이 규제를 되살리려면 의회가 법령을 재정비해 법에 규제 근거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되살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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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는 미국 연방 정부를 개조할 수 있을까요? ②〉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