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지는 미국 연방 정부를 개조할 수 있을까요?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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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비효율성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은 물론 필요하지만, 정부의 비효율성은 포용성, 책임성,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한 비용으로 봐야 합니다.

도지는 미국 연방 정부를 개조할 수 있을까요? ②

2024년 12월 24일

연방 공무원이 정말 많은가

도지의 정부 개혁 프로세스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①불필요한 규제를 없앤다. ②사라진 규제를 담당하던 공무원을 해고한다. ③예산이 감축된다. 그런데 일감이 줄었다고 법적으로 신분이 보장되는 공무원을 어떻게 감축하겠다는 걸까요? 트럼프는 신분 보장이 되는 일반직 공무원을 신분 보장이 안 되는 정무직 공무원으로 전환한 다음, 해고하려고 합니다. 2020년 대선을 보름 앞두고 승인했던 행정 명령 ‘스케줄 F’를 재도입하려는 거죠.

트럼프의 스케줄 F는 2020년 대선에서 승리한 바이든이 2021년 1월 취임하자마자 즉각 폐기했는데, 트럼프 2기 때 재도입이 확실시됩니다. 트럼프는 좌파 공무원들의 조직적 방해로 집권 1기를 망쳤다고 생각하니까요. 미시간대학교 공공 정책 교수인 돈 모이니한에 따르면 최대 5만 명의 공무원이 스케줄 F로 재분류될 수 있습니다. 해고 1순위는 교육부 직원입니다. 트럼프는 공교육이 극좌파 광신도에게 넘어갔다고 생각하거든요.

여기까지가 도지의 논리입니다. 그럼, 이제 하나씩 따져 보겠습니다. 미국 연방 공무원은 230만 명으로 한국의 3배 수준입니다. 이게 정말 많은 수일까요? 최근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머스크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공무원 감축 계획을 비판했습니다. 후쿠야마는 “오늘날 미국 정규직 연방 직원 수는 1999년과 거의 같은데, 정부 예산은 그때보다 5배 이상 늘었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미국 연방 공무원은 인구 1000명당 7명으로, 한국 국가직 공무원(1000명당 15명)의 절반 수준입니다.

후쿠야마에 따르면 메디케어 및 메디케이드 서비스 센터는 전체 연방 정부 예산의 5분의 1인 1조 4000억 달러의 지출을 감독하지만, 정규직 직원은 6400명에 불과합니다. 이들은 수만 명의 의료 서비스 제공자를 평가하고 인증해 수천만 명의 미국인에게 적시에 보험료가 지급되도록 합니다. 만약 이 인원을 줄이면 메디케어 시스템에서 사기 행위가 늘어나 결국 예산이 더 낭비될 수 있습니다. 참고로 한국 국민건강보험의 연간 지출은 100조 원, 직원은 1만 6000명입니다.
2024년 2월 미국 의회예산처(CBO)가 발표한 2024-2034 미국 연방 예산 및 경제 전망. 출처: CBO

지출을 어디서 줄이나

머스크는 연방 정부 지출의 30퍼센트를 삭감하겠다고 공언합니다. 2조 달러입니다. 400개가 넘는 연방 기관도 99개면 충분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연방 정부 세출 예산을 들여다보면 아무리 쥐어짜도 2조 달러 감축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2024 회계연도(2023년 10월 1일~2024년 9월 30일)에 미국 연방 정부는 6조 5000억 달러를 지출했습니다. 정부 지출은 크게 세 영역으로 나뉘는데, 의무 지출, 재량 지출, 부채 이자입니다. 먼저, 의무 지출은 법에 따라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비용입니다. 누가 정권을 잡든 자동으로 나가는 돈입니다. 사회 보장 연금(노령 연금), 메디케어(고령자 의료보험),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보험) 등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의무 지출은 3조 9000억 달러로 전체 예산의 60퍼센트를 차지합니다. 고령화 등 인구 구조 변화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다음은 재량 지출입니다. 1조 7400억 달러로, 전체 예산의 27퍼센트입니다. 매년 의회에서 승인을 받아야 하는 비용입니다. 여기서 국방이 절반을 차지하고, 나머지 절반이 교통, 교육, 고용, 주거, 농업, 환경, 과학 등 비국방 예산입니다. 마지막이 부채 이자입니다. 8700억 달러로, 13퍼센트 정도 됩니다. 미국 정부가 발행한 국채의 이자 비용입니다. 미국이 디폴트를 선언하지 않는 한 내야 하는 금액입니다. 부채가 늘면서 부채 이자 역시 증가세입니다.

머스크는 2조 달러를 줄이겠다고 했죠. 재량 지출 전체보다 많은 금액입니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교통, 교육, 고용, 주거, 농업, 환경, 과학 등 모든 기관을 없애야 합니다. 미군도 해체해야 합니다. 그래도 2600억 달러를 다른 곳에서 더 감축해야 합니다. 머스크가 아무리 ‘제거’에 능하다지만,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만 머스크는 2조 달러 삭감의 기간을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1년 기준인지, 2년 기준인지, 4년 기준인지 아직 모릅니다. 만약 트럼프 임기인 4년 기준이라면 연간 5000억 달러입니다. 2조 달러보다 한층 현실성 있는 목표지만, 여전히 재량 지출의 29퍼센트를 차지합니다. 행정부의 국정 철학과 정책 우선순위는 재량 지출에서 드러나는데, 재량 지출을 저만큼 깎으면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의무 지출에도 손을 대는 수밖에 없습니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에 사회 보장 연금과 메디케어는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저소득층 의료보험인 메디케이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현재로선 메디케이드가 예산 감축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메디케이드의 이용 자격을 확대했는데, 이걸 되돌리는 거죠. 연방 정부의 낭비성 예산에 메스를 대겠다는 명분으로 시작한 일인데, 결국 저소득층의 의료보험 혜택이 줄어드는 이상한 결과에 이를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비용

게다가 실리콘밸리와 워싱턴은 효율이라는 용어의 정의부터 다릅니다. 머스크가 말하는 효율과 정부가 말하는 효율은 다릅니다. 머스크의 효율이 수익성과 투자 회수 기간 같은 성과 지표라면, 정부의 효율은 공공의 이익과 사회적 약자 보호입니다. 오히려 지나친 수익성을 경계하는 것이 정부의 효율입니다. 파괴적 혁신은 자기 고객만 생각하는 우버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기존 택시 산업을 파괴하고 택시 기사에게 피해를 줘도, 내 고객에게는 도움이 되니까요.

그러나 정부에는 고객이 없습니다. 대신 시민이 있습니다. 파괴적 혁신이 일어날 수가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됩니다. 정책 입안자는 뭔가를 파괴하고 새로 건설할 수 없습니다. 뭔가를 파괴할 때 이기고 지는 사람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효율성보다 책임성, 투명성, 공정성, 다양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입니다.

2016년 10월 백악관 프런티어 회의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이런 말을 합니다.

“정부는 결코 실리콘밸리와 같은 방식으로 운영되지 않을 겁니다. 민주주의는 원래 복잡하고 어수선합니다. 미국은 크고 다양합니다. 복잡한 이해관계와 서로 다른 관점이 많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하는 일의 일부는 다른 사람들이 다루고 싶어 하지 않는 문제를 다루는 것입니다. 가끔 CEO들이 저에게 리더십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는 이런 식으로 일합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말하죠. 제가 앱을 만들 때 그 앱을 가난한 사람이 살 수 있을지 걱정할 필요가 없고, 앱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시리아와 예멘 문제를 제쳐 둘 수 있다면, 당신들의 제안은 정말 훌륭하다고요. (웃음과 박수) 그렇다고 해서 정부에 개선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정부의 비효율성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은 물론 필요하지만, 정부의 비효율성은 포용성, 책임성,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한 비용으로 봐야 합니다. 다시 오바마의 말입니다.

“과학계, 기술계, 기업가 커뮤니티는 때때로 정부가 본질적으로 망가졌으니 시스템을 완전히 해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망가진 게 아니라 정부는, 이를테면 재향 군인을 돌봐야 할 뿐입니다. 그건 당신의 대차 대조표에는 없지만, 우리의 공동 대차 대조표에는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재향 군인을 돌볼 신성한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어렵고 복잡합니다. 우리는 기존 체계를 완전히 없애 버릴 수는 없습니다.”

트럼프가 진짜 하고 싶은 것

요약하면, 연방 공무원 정원이 비대하다고 할 수 없고, 2조 달러나 되는 돈을 줄일 곳이 마땅치 않고, 비효율은 민주주의의 비용이기도 해서 도지의 연방 정부 개혁은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에다 도지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한 가지 이유를 더 추가하고 싶습니다. 바로 트럼프의 속내입니다.

트럼프가 연방 정부 축소와 예산 절감을 외쳐서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트럼프는 재정적 보수주의자가 아닙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행동으로는 오히려 큰 정부를 옹호하는 정책을 펴왔습니다. 적자 지출이나 재정 건전성에 대한 의식도 별로 없어 보입니다.

바로 며칠 전에 트럼프의 성향을 잘 드러내는 소식이 있었죠. 트럼프가 미국 의회에 부채 한도를 폐지하거나 적용 유예를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공화당 내 이탈표가 나오면서 결국 트럼프의 요구가 쏙 빠진 임시 예산안이 통과됐습니다. 미국 의회는 행정부가 빌릴 수 있는 돈의 한도, 즉 부채 한도를 정합니다. 거의 매년 1~2조 달러씩 적자를 보니까 부채가 계속 쌓이는데, 현재 부채 한도는 31조 4000억 달러입니다.

그런데 2025년 1월 20일 취임 첫날부터 트럼프는 할 일이 많습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반이민 정책을 예고했는데, 그러려면 국경 경비 강화에 큰돈이 들어갑니다. 가뜩이나 돈 들어갈 곳은 많은데, 대규모 감세를 예고한 터라 정부 수입은 줄어들 전망입니다. 결국 빚을 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트럼프는 부채 한도에 구애받지 않고 빚을 내서 공약을 추진하려 합니다. 그러나 공화당 강경파들은 일부 MAGA 의원을 제외하고는 재정 건전선 면에서 트럼프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들은 재정 지출 최소화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재정적 보수주의자들입니다. 정부가 부채 한도를 올리고 싶으면 일단 지출부터 삭감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트럼프는 집권 1기 때도 그랬습니다. 2017년 트럼프가 취임했을 때 미국 부채는 20조 달러였습니다. 트럼프 임기 4년간 28조 달러가 됐습니다. 4년 만에 무려 8조 달러가 늘었습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서 국가 부채를 가장 빠르게 늘린 대통령입니다. 오바마는 9조 달러를 늘렸지만, 오마바는 임기가 8년이었죠. 트럼프는 집권 1기 때 대규모 감세 정책으로 세입은 줄이고, 코로나19 대응 경기 부양책을 쓰느라 세출은 크게 늘렸습니다.

종합하면, 트럼프는 연방 지출을 줄일 생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연방 정부의 군살을 빼겠다고 하는 건 트럼프가 재정 건전성을 우려해서가 아닙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해서도 아닙니다. 연방 공무원을 겁박하는 겁니다. 스케줄 F로 재분류될 수 있는 공무원이 5만 명쯤이라고 했는데요, 5만 명을 다 해고하지는 않을 겁니다. 어차피 트럼프의 목적은 공무원 길들이기니까요. 수천 명 정도 해고해서 공직 사회를 긴장하게 만들고 고분고분하게 하는 정도에 그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도지의 결말은?

이제 마지막입니다. 그럼 도지의 개혁은 결국 어떻게 될까요. 저는 다음 전개를 예상합니다. 머스크는 밈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천재적인 마케터입니다. 벌써 머스크는 도지의 엑스 계정을 개설하고 특유의 문화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납세자의 돈을 어디에 쓰나? 항문 주름을 인식하는 스마트 변기 연구에 690만 달러.” 이런 게시물을 올리며 분위기를 띄우는 거죠. 트위터를 인수하고 대규모 구조 조정을 할 때도 썼던 수법입니다. 머스크는 밈을 퍼트리고, 우호 여론을 조성하고, 여론에 힘입어 원하는 바를 얻어 냅니다.

머스크는 연방 정부의 예산 낭비 사례를 밈으로 만들어 퍼트립니다. 도지의 엑스 계정이 개설 한 달 만에 팔로워가 벌써 245만 명인데, 본격 활동에 들어가 몇천 만 단위를 넘어서면 온라인상에서 우호 여론이 급격히 조성되겠죠. 그러나 연방 정부의 예산을 대폭 삭감하거나, 인력을 대폭 감축하는 건 앞서 소개했듯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법적 논란도 많고요. 게다가 트럼프도 본보기로 일부를 해고해 공직 사회를 길들이는 것이 목적이지, “You’re all fired!”가 목적은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머스크가 계속 연방 정부 해체 작업을 밀고 나가면 어떻게 될까요. 한 개인이 연방 정부와 맞서는 모습은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습니다.

트럼프는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주목받는 걸 못 견디는 사람입니다. 지금이야 머스크가 트럼프 2기의 실세로 불릴 만큼 둘 사이가 각별하지만, 1년 뒤에도 그럴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원래 앙숙은 절친이었다가 되는 거니까요. 온라인과 언론이 ― 결코 달성할 수 없는 ― 머스크의 정부 개혁에 관심을 기울일수록 트럼프의 심기가 점차 뒤틀릴 겁니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자강두천’ 끝에 연방 정부 개혁은 교육부 공무원을 일부 정리하는 선에서 끝날 공산이 큽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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