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 쇼크 이후
그러다 1973년 오일 쇼크가 일어납니다. 4차 중동 전쟁에서 서방 국가들이 이스라엘의 편을 들자 중동 산유국들이 석유 금수 조치를 선언해 국제 유가가 4배 넘게 오릅니다. 오일 쇼크를 겪으며 서유럽 국가들은 에너지가 국가 경제와 안보에 직결되는 전략적 자원이라는 인식을 확고히 갖게 됩니다.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에너지원을 다변화하기로 합니다.
프랑스는 원전 비중을 크게 늘리기로 합니다. 오일 쇼크 당시 프랑스 전력 생산에서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8퍼센트에 불과했지만, 이후 원전을 대폭 확대해 현재 원자력 비중은 70퍼센트 가까이 됩니다. 한편 독일은 중동산 석유 일변도에서 벗어나 원자력, 천연가스, 재생에너지 등을 혼합해 사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자연히 소련산 천연가스 수입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제 정세에 따라 공급과 가격이 널뛰는 중동산 석유보다 공산주의 정권이긴 해도 공급이 안정적인 소련산 천연가스가 더 믿을 만했으니까요.
빌리 브란트 이후 취임한 서독 총리들은 동방 정책을 이어 갑니다. 사민당 정권은 물론이고 기민련으로 정권이 바뀌어도 동방 정책의 큰 틀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특히 에너지 정책에선 소련과 점점 밀착했는데, 산업 구조상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습니다. 독일은 자동차, 기계, 화학, 철강 등 에너지 집약적인 제조업 분야가 발달한 나라입니다. 이 산업들은 에너지를 안정적이고 저렴하게 공급받아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서독은 값싼 소련산 천연가스에 중독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1980년대 초반에 서독은 이미 유럽 최대의 소련산 천연가스 수입국이 됩니다. 천연가스 소비량의 20~25퍼센트를 소련에서 들여오죠. 1990년대가 되자 이 비중이 25~30퍼센트까지 올라갑니다. 소련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 심화를 우려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1990년대 초반과 후반에 두 개의 대형 사건이 터집니다. 1991년 소련의 붕괴, 1998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집권입니다.
* 〈러시아 천연가스와 독일 정치의 50년사 ②〉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