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를 둘러보는 산책자의 새해 인사

bkjn review

프랑스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샤를 보들레르에게 현대는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AI 시대를 둘러보는 산책자의 새해 인사

2025년 1월 1일
다음 챕터로 넘어가는 시기가 있습니다. 몰아닥치는 변화를 바라보는 일은 일종의 기회이기도 하고, 절망과 좌절이기도 하며 희망이기도 하죠. 현대를 목격한 사람들은 어땠을까요? 미셸 푸코는 프랑스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샤를 보들레르가 현대라는 용어를 발명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악의 꽃》으로 문학의 정의를 새로 썼던 이 인물에게 현대는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현대성이란 일시적인 것, 사라지기 쉬운 것, 우발적인 것으로서, 이것이 예술의 절반을 차지하며 예술의 나머지 반은 영원한 것과 불변의 것으로 되어 있다.”

보들레르가 미술 비평문, 《현대 생활의 화가》에서 정의한 ‘modernité(현대성)’입니다. 기존의 체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기술이 사회로 스며들면서 발생하는 낯선 풍경에서 보들레르는 영속할 수 없는 가변성을 발견합니다.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는 기차, 파리의 거리와 거리 사이마저 자본주의의 도구로 이용하는 ‘파사드’ 같은 것들 사이를 산책하며 말이죠. 종교와 철학과 같이 불변의 가치와 진리를 이야기하는 것들이 힘을 잃고 덧없는 현재를 숭배하는 사회를 감지합니다.

19세기에 보들레르가 예술의 영역에서 발견한 현대성은 20세기와 21세기로도 이어집니다. 그리고 영역을 확장하죠. 종교와의 단절을 선언한 세계는 이데올로기의 시대로 진입합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이 20세기 후반을 지배하는 문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냉전이 끝나자, 이 이데올로기도 무력해집니다. 이데올로기와 작별한 사회는 찰나의 감각에 의존하는, 빠르게 사라지는 유행의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때마침 경험했던 몇 차례의 생산성 혁명이 이 속도를 단단히 떠받쳤습니다. 세계화를 통해 중국이라는 저렴한 공장이 가동을 시작했고, 인터넷과 아이폰의 등장으로 시간과 공간의 벽이 무너졌죠. 이 모든 것들이 풍요를 보장했습니다. 그러다 우리는 벽에 부딪힙니다.

풍요롭지 않은 현대의 우울

경제는 상승 곡선을 그리기도 하고, 하향 곡선을 그리기도 합니다. 가난한 시절은 잔인하지만, 그 잔인한 시절은 역사의 페이지를 다음 장으로 넘기는 힘이 됩니다. 몇 차례의 경제 위기와 전쟁을 겪으면서 우리는 이제 이 시대를 끝내고 다음 시대로 넘어갈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옳고 그름이, 진실과 거짓이 뒤섞이고 새로운 기술이 불현듯 등장해 손쓸 틈 없이 파고듭니다. 사람들이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은 힘의 균형추가 쉴 새 없이 굴러다니는 정치 쪽이 아닙니다. 기술 쪽입니다. 인간의 지성을 폭발적으로 확장할 AI 기술이 다음 챕터로 나아갈 힘이 되리라는 기대입니다.

아직 우리는 기차와 전화의 등장만큼 힘이 센 AI를 경험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미 실감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MIT에서 AI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한 연구자의 탄식이 소소하게 화제가 되었습니다. “2023년에는 지식과 코딩이 공짜가 되었다면 이제는 사고하는 과정도 공짜가 되었다.” 오픈AI가 추론 특화 모델인 o1의 후속작, o3를 발표한 뒤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이었습니다. 이제 수학도, 코딩도 자신이 아무리 시간을 갈아 넣어 봤자 AI를 능가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죠.

202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AI 구루, 제프리 힌턴 교수는 AI 기술이 인류를 멸종시킬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30년 안에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 힌턴 교수의 생각입니다. 대다수의 전문가가 20년 안에는 인간보다 똑똑한 AI가 개발될 것으로 본다며, 지능이 낮은 존재가 더 높은 지능을 가진 존재를 통제한 사례는 역사에 없다는 겁니다. 힌턴 교수는 대기업들이 수익성을 중심에 두고 AI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돈을 좇다 보니 안전성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오픈AI의 영리 법인 전환에 반대하는 입장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겠지요.

다정한 혁신의 가치

새로운 시대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전복을 원합니다. 부족해진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킬 산업 구조의 전복, 옳고 그름의 경계선을 납득할 수 없는 사람들이 동의할 만한 윤리의 전복, 자본이 자본을 낳고 인간 노동의 가치가 평가 절하되는 경제 구조의 전복 같은 것 말입니다. 과격해 보일 수 있겠지만, 이들 중 누군가는 혁명가입니다. 역사를 만드는 사람 말입니다. 그리고 2025년, 이 혁명의 사상적 기반은 기술 낙관주의(Techno-Optimism)입니다. 기술이 성장을 만들고, 성장이 진보라는 믿음 말입니다. 힌턴 교수처럼 디스토피아를 우려하는 목소리와 기술이 유토피아를 가능케 할 것이라는 구호 중, 어느 쪽에 마음이 기우시나요? 아시다시피, 백악관은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저는 힌턴 교수의 우려에 근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럴 만하다고도 믿습니다. 다만, 제 믿음의 근거는 혁명가들이 아닙니다. 마치 쇼 비즈니스의 달인처럼 화려한 언변과 매콤한 X 계정을 자랑하는 사람들 말고도 기술에 희망을 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혁신가들’입니다. 예를 들면 ‘에포크 AI(Epoch AI)’를 이끄는 스물여덟의 젊은 AI 연구원, 제이미 세비야 같은 사람들 얘깁니다.

에포크 AI는 비영리 단체로, 기업들이 화려하게 포장하여 발표하는 AI 모델들의 성능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공개하고 있습니다. MIT 연구원을 좌절케 했던 고급 수학 능력 테스트, ‘프런티어 매스(Frontier Math)’ 벤치마크도 에포크 AI의 작품이죠. 투자를 위한 낙관주의에 휩쓸리지 않고, 인류의 AI 기술이 현재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 믿을만한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LLM을 기반으로 구축된 AI 모델에게 언어의 장벽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얼마나 많이 학습했느냐에 따라 성능이 갈릴 뿐이죠. 인간 언어의 장벽뿐 아니라 종간의 언어의 장벽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출처: Vox

생물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AI를 개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구 종 프로젝트(Earth Species Project)’라는 비영리 단체는 동물의 언어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하는 언어 모델, ’NatureLM’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자연과 단절되어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는 인류가 다시금 이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나아가서는 동물에게 더 광범위한 법적 권리를 부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도록 말이죠.

이런 기술들은 혁명적인 사건을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무언가를 전복시킬 수 있을 리 없죠. 막대한 부를 쌓아 올리거나 힘의 균형추를 가져올 수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혁신들이 쌓여 우리는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게 됩니다. 누군가 다치거나 낙오되지 않고도 우리의 내일은 더 나아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현대가, 보들레르의 현대처럼 갑작스럽고 덧없는 것일 이유는 없죠. AI는 혁명일 필요가 없습니다. 혁신이어도 됩니다. 

2025년이 변화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해가 될 것은 자명합니다. 그러나 그 변화가 다정하고 평화로웠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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