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국내 주식 시장에서 조용히 급상승한 종목이 있습니다. AI나 조선업 관련 주가 아닙니다. 전형적인 20세기 산업, 방송국이 튀었습니다. 바로 SBS입니다. 2024년 12월 19일 SBS 주가는 1만 5390원으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2024년 3월 이후 완만한 우하향 기조를 이어 가는 중이었죠. 느리지만 분명한 하락세였습니다. 모회사인 태영건설 사태가 마무리되면서 방송 업계의 전반적인 상황이 주가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다음 날인 12월 20일, 이상 기류가 감지됩니다. 갑자기 2만 원으로 뛰어오른 겁니다. 그리고 이날 이유가 밝혀졌습니다. SBS가 넷플릭스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기로 한 것입니다. 주말이 지난 후, 12월 23일에는 2만 6000원까지 급등했습니다.
올해부터 6년 동안 SBS가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공급합니다. 물론 지금도 SBS의 드라마, 예능 일부를 넷플릭스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규모가 다릅니다. 일단 지금까지 SBS가 방영해 온 거의 모든 콘텐츠가 한국 넷플릭스에 공급됩니다. 당장 새해 첫날부터 1995년 방영되었던 드라마 〈모래시계〉가 풀렸습니다. 앞으로 방영될 신규 콘텐츠도 대상입니다. 외주 제작사와의 IP 문제가 걸리는 일부 신작 드라마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프로그램이 넷플릭스에 걸릴 수 있습니다. SBS 편성 전체를 넷플릭스가 서비스한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SBS는 이번 파트너십으로 어느 정도 규모의 기회를 잡게 된 것일까요? 구체적인 액수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웨이브나 디즈니 플러스 같은 OTT 플랫폼에서의 실적을 바탕으로 한 증권가의
추정치를 참고해 볼 수 있습니다. 국내 서비스의 경우 6년간 최소 3000억 원 정도의 매출이 예상됩니다. 이 부분은 SBS가 만든 콘텐츠를 단순 판매하는 개념에 해당합니다.
신규 콘텐츠 일부의 경우 넷플릭스가 투자에 나서게 됩니다. 전 세계 동시 공개,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급으로 공급될 수 있습니다. SBS가 〈낭만닥터 김사부 3〉를 디즈니 플러스에 독점 공급하면서 올린 매출이 18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6년간 드라마, 교양, 예능까지 SBS가 제작할 프로그램들을 꼽아 보면 넷플릭스의 투자금은 최소 6000억 원은 될 전망입니다. 1조 원에 달하는 현금이 SBS에 유입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순탄하게 간다면 시총 1조 원 달성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평가입니다. 현재 SBS의 시총은 3700억 원 수준입니다.
1200만 OTT의 가능성
이런 소식에 ‘K-콘텐츠의 쾌거’ 같은 단어를 꺼낸다면 시장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얘기가 될 겁니다. SBS 주가는 날았지만, 업계는 당황하고 있습니다. 특히 CJ ENM은 표정 관리가 안 됩니다. 2024년 안에는 어떻게든 마무리가 될 줄 알았던 웨이브와 티빙의 합병이 어그러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두 플랫폼 모두 위기입니다. 넷플릭스에만 있는 콘텐츠는 많아도 티빙이나 웨이브에만 있는 콘텐츠는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작비가 많이 드는 드라마는 넷플릭스에 판매하지 않고는 아예 손익을 맞출 수 없습니다. 예능이나 교양도 수익성을 담보하려면 팔 수 있을 때 팔아야 합니다. 지상파는 물론이고 CJ ENM, 종합편성채널 등에서 방영되는 모든 드라마와 많은 수의 예능 프로그램을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이유입니다. 국산 OTT라 해서 차별화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두 플랫폼의 합병이 주목받습니다. 2024년 9월 기준 MAU(월간 활성 사용자, Monthly active users)는 티빙이 787만 명, 웨이브가 427만 명입니다. 넷플릭스의 1167만 명에 비하면 게임이 안 되지만,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 법인이 출범할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집니다. MAU를 단순 합산하면 1214만 명. 넷플릭스를 근소하게 앞지릅니다. 물론, 티빙과 웨이브를 동시 구독하는 인원이 분명히 있을 테니 어느 정도 숫자는 줄어들겠지요. 그러나 그 감소분을 감안하더라도 해볼 만한 게임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