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는 문관이다
1화

서문; 수사는 ‘잘’하는 것보다 ‘바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의 형사 사법 체계에서 검찰이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하다. 그 크기만큼 국민과 국가에 미치는 영향도 지대하다. 검찰권 행사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일정한 규제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검찰권이 남용되면서 검찰은 영향력만큼의 신뢰를 얻진 못하고 있다. 국가 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검찰은 거의 매번 꼴찌를 기록하거나 하위권을 맴돈다. 국민은 검찰을 믿지 못한다.

‘대한민국은 검찰 공화국’이라는 말이 있다. 검사들이 정치권력과 야합해 민주 공화국인 대한민국을 자신들의 세상으로 바꿔 놨다는 뜻이다. 검찰 공화국에선 검사들이 승진을 위해 정치권력과 결탁하고, 더 큰 출세를 위해 정치권력의 도구를 자처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정치 지향적인 검사들이 조직을 장악하면서 검찰은 정치권력의 요구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검사들은 검사라는 직업을 천직이라기보다 출세의 발판으로 여긴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인권 옹호 기관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살인검을 휘두르는 검찰’이라는 비판을 듣는다. 권력을 지향하거나 권력의 눈치를 보며 칼을 잘못 휘두른 탓이다. 검사는 무관이 아니라 문관이어야 한다. 비리를 규명하고 단죄한다는 차원에서 칼을 휘두른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검사의 기본 업무는 칼잡이가 아니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인권을 보장하고 사회 구성원들이 적법 절차를 준수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다.

검찰권은 실로 다양한 방식으로 남용되고 있다. 표적 수사가 대표적이다. 표적 수사는 범죄 혐의를 발견해 죄를 처벌하기보다는 특정한 사람의 죄를 짜내 사법 처리하는 데 수사의 목적이 있다. 미국과 일본에서도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검찰권 남용의 유형이다. 한국에서도 한명숙 전 총리 사건, 정연주 전 KBS 사장 사건, 이른바 ‘미네르바’ 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이 표적 수사의 사례로 논란이 되고 있다.

타건(他件) 압박 수사는 본건(本件)과 관련 없는 내용을 빌미로 피의자를 압박하는 수사 기법으로서 명백한 불법 수사다. 피의자 입장에서는 가혹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반드시 금지해야 한다. 타건 압박 수사는 목표가 정해진 수사다. 피의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심리적 압박이 발생한다. 벼랑 끝에 몰린 피의자가 자살을 택하는 경우도 많다. 사람을 죽게 만드는, 이른바 살인적 수사 방법인 것이다.

흔히 ‘밤샘 조사’로 표현되는 과도한 심야 조사도 개선이 필요하다. 자정을 넘기면 피조사자의 동의를 얻어 조사가 진행되는데,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심리적으로 위축된 피의자가 검사의 동의 요구를 거부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심야 조사는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예외적으로만 허용해야 한다. 피의자 또는 변호인의 동의가 있으면 심야 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한 규정도 삭제해야 한다. 심야 조사가 허용되는 시간을 앞당기면 이런 문제를 다소나마 해결할 수 있다. 자정 전에 조서 열람까지 모두 마칠 수 있게 시간을 당겨야 한다.

수사 과정에서 검찰의 의도에 따라 피의 사실이 언론에 공표되는 것도 문제다. 피의 사실 공표는 형법으로 엄격히 금지돼 있으나 실제로는 공공연하게 이뤄진다. 그 배경에는 ‘피의자 망신 주기’식의 나쁜 의도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근 10년 동안 검찰에서 피의 사실 공표 혐의로 검찰 관계자를 기소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보지 못했다.

검찰은 자신들의 방식엔 오류가 없다고 믿고 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은 것 같다. 검찰은 ‘무오류의 신화’ 속에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잘못했다’는 자기반성을 절대로 하지 않으려 한다. 검찰의 과거사 정리나 재심 사건 처리 과정을 보면 명백하게 알 수 있다.

과거 검찰은 판사를 대신해 피의자에 대한 구속, 불구속 여부를 사실상 결정하는 힘이 있었다. 바로 이 점이 검찰이 무오류의 신화에 빠지게 된 원인 중 하나다. 그렇지만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무오류의 신화가 생겨나게 된 배경 자체가 변했기 때문에 신화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그럼에도 검찰은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자신들은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는다는 신념 아닌 신념을 간직하려고 애쓰고 있다.

무오류의 신화는 투명하지 못한 검찰의 수사 절차와 명확하지 못한 수사 방법을 통해 한층 굳건해진다. 검찰권 남용을 막으려면 수사의 절차와 방법을 구체적으로 명문화해 법제화해야 한다. 피의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 법무부 훈령인 ‘인권보호수사준칙’을 개정하고 궁극적으로는 가칭 ‘수사 절차법’을 제정해 법률로 강제하면 수사의 절차와 방법을 명확히 할 수 있다.

법원에서 시행 중인 양형 기준제와 마찬가지로 기소 기준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기소 기준제는 점수를 매겨 기소·불기소 및 입건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다. 각 범죄별로 기본적인 점수를 부여한 다음 가중되거나 감경되는 사유에 따라 점수를 더하거나 빼는 방식으로 최종 점수를 산출하여, 이 최종 점수를 공소 제기의 기준이 되는 점수(기준 점수)와 비교하여 기소·불기소 및 입건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사건 처리의 공정성·객관성이 제도적으로 보장될 수 있다.

검찰의 피의자 신문 조서가 누리고 있는 과도한 특혜도 폐지해야 한다.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 조서는 일단 작성되기만 하면 피고인의 부인(否認) 여부와 관계없이 재판 과정에서 증거로 채택돼 왔다. 증거 능력 면에서 다른 수사 기관이 작성한 조서보다 우월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검사 입장에선 강압 수사의 유혹을 받게 된다. 조서는 강압 수사에 의해 왜곡될 위험이 있는 만큼 피의자 측이 내용을 인정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증거 능력을 부여해야 한다. 공정한 재판을 위해 법원이 추구하는 공판 중심주의와 구두 변론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조서의 증거 능력 제한이 필요하다.

검찰권 남용에 대한 법리 해석도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타건 압박 수사 등 수사 및 조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혹 행위의 범위를 넓게 해석해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하나의 예다. 또 형식적으로 적법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재량권을 벗어난 공소권 행사라면 반드시 통제가 필요하다. 공소권 남용에 대한 대법원의 소극적인 입장도 큰 걸림돌이다. 후술하겠지만 대법원의 소극적 입장을 대신하여 하급심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아울러 외국 사례를 참조해 검찰권 남용을 통제하는 과정에 시민을 참여시켜야 한다. 미국의 대배심 제도와 일본의 검찰심사회 제도는 대표적인 시민 참여 제도다. 미국의 대배심 제도는 시민이 검사의 기소 단계에 직접 참여해 검사의 기소 재량권 남용을 사전에 통제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일본의 검찰심사회 제도는 검찰관의 부당한 불기소 처분을 사후에라도 바로잡을 수 있는 제도로 재판원 제도와 함께 일본 형사 사법에서 시민 참여를 구현하는 쌍두마차로 인정받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제도를 연구하면 현재 검찰이 운영하는 검찰시민위원회 제도의 발전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검찰은 외부의 목소리에 조금 더 귀를 열어야 한다. 대한변호사협회가 2015년 10월 사법사상 최초로 검사평가제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검찰의 반발은 대단했다. 법정 공방의 대상이 내리는 평가는 공정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맹목적 감정이 아니라 합리적 이성에 근거하고 객관적 사실에 기초해 평가한다면 변호사의 평가라도 공정성을 가질 수 있다. 특히 검찰 수사는 비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에 더더욱 감시하고 평가해야 한다. 검사 옆에서 검사의 행태를 지켜볼 수 있는 변호사가 검사를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본다. 법정 공방의 상대라는 이유로 검사에 대한 변호사의 평가가 부적절하다는 비판은 타당하지 않다.

검찰권 남용을 통제하고자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검찰권이 남용되면서 많은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당하고 형사 사법의 정의가 왜곡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에 몸을 담았을 때는 전체 사건의 1퍼센트도 안 되는 정치적 사건의 처리에만 문제가 있어 이런 비판을 받는다고 치부했다. 그러나 검찰을 떠난 뒤 비로소 깨달았다. 검찰권은 검찰 업무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남용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국민의 불신도 차곡차곡 쌓여 왔을 것이다.

《검사는 문관이다》는 미시적 관점에서 검찰권 남용 통제 방안을 다룬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약칭 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굵직하면서도 민감한 문제는 일부러 제외했다. 그런 문제는 이미 충분히 논의되어 사실상 정치적 결단만 남았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거시적인 문제 못지않게 미시적인 문제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독자들이 인식하면 좋겠다. 검찰권 행사의 실무적 과정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야 검찰 조직 전체가 바뀔 수 있다. 검찰권 남용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검찰 수사와 검찰권 남용을 직접 경험하게 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갑작스레 찾아올 수 있다.

세상이 변했다. 그런데 검찰만 변하지 않고 있다. 검찰도 이제 세상을 바로 볼 필요가 있다. 검찰권 남용을 유효적절하게 통제하면 피의자 및 사건 관계인의 인권은 더욱 보장받고 검찰에 대한 신뢰는 상승할 것이다. 일선 검사들의 우려와 달리 검찰에게 오히려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검찰권 남용의 통제는 검찰 스스로 나서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