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븐 시티가 엮어 내려는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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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가 스마트 시티를 건설합니다. 대체 왜, 자동차 회사가 도시의 미래를 만드는 것일까요?

우븐 시티가 엮어 내려는 미래

2025년 1월 9일

지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는 CES 2025가 열리고 있습니다. 어떤 기술이 등장해 우리의 삶을 바꾸게 될지 미리 엿볼 수 있는, 세계 최대의 IT 및 가전 전시회입니다. 이곳에 도요타가 돌아왔습니다. 2020년 이후 5년 만의 귀환입니다. 5년 전도, 올해도 도요타 아키타 회장이 발표한 내용은 전기차의 미래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요타가 만들고 있는 ‘도시’에 관한 소식이었죠.

5년 전 CES 2020의 같은 건물, 같은 행사장에서 아키타 회장은 똑같은 넥타이를 매고 ‘우븐 시티(Woven City)’ 건설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일본 후지산 인근에 축구장 약 100개 면적 정도 되는 땅이 있습니다. 지금은 문을 닫은, 도요타의 옛 공장 부지입니다. 이곳에 도요타가 스마트 시티를 건설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이 계획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5년이 걸렸습니다. 아키타 회장은 우븐 시티의 1단계 공사가 끝났다는 사실을, 그리고 올가을 도요타 임직원 100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입주가 진행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라스베이거스로 돌아왔습니다.

자동차 회사가 CES에서 선보이게 되는 것은 보통 전기차의 미래, 자율주행차의 미래 같은 것입니다. UAM 같은 근미래의 교통수단을 미리 체험할 수 있기도 하죠. 그런데 유서 깊은 자동차 회사, 도요타는 도시의 미래를 선보이겠다고 합니다. 대체 왜, 자동차 회사가 도시의 미래를 건설하는 것일까요?

모빌리티의 본질

1957년, 도요타는 미국 진출을 시도했다가 큰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승용차 모델, ‘크라운’을 미국 시장에 내놓았는데, 고객들의 불만이 쏟아진 겁니다. 일본에서는 성능도 인정받고, 고급형 모델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달랐죠. 크라운이 미국의 고속도로 환경을 버틸 만큼 튼튼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허허벌판을 끝없이 달려도 인가 한 채 보이지 않는 미국의 고속도로는 크라운의 엔진이 감당하기에 너무 길고 험했습니다. 장거리 고속 주행을 견디지 못한 엔진은 자꾸만 고장 나고 퍼지기 일쑤였죠.

도요타로서는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일본에는 아직 고속도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크라운은 일본의 도로 위에서는 꽤 멋지게 잘 달렸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고속도로 위에서는 쓸모없는 물건이었습니다.

이걸 자동차 성능의 문제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다니기에도 좁은 골목길이 그물망처럼 얽혀있는 베네치아에서, 덩치 큰 SUV는 제대로 다닐 수 없거든요. 그래서 도시와 모빌리티는 서로에게 맞추어 모습을 바꾸어갑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주로 걸어 다니던 시대에 만들어진 로마를 보면, 한 교차로에서 다음 교차로까지의 거리가 35m 정도입니다. 사람의 걸음이 보통 분속 60m 정도 되니 걸어서 40초 정도 걸리겠네요. 마차가 다니던 시대에 건설된 맨해튼은 이 거리가 200m까지 늘어나고, 자동차라는 이동 수단이 보편화한 이후에 발전한 강남의 주요 사거리를 보면 거리는 800m까지 늘어납니다. 이렇게 모빌리티는 도시와 한 몸입니다.

그래서 도요타는 미래를 달릴 모빌리티를 만들기 위해 미래의 도시부터 만든 겁니다. 자동차 회사로서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죠.
도요타 아키오 회장은 그저 회사를 물려받은 세습 경영인이 아니라 자동차 덕후입니다. ‘모리조’라는 이름으로 레이싱 드라이버로도 활약하죠. CES 2025에서도 자신이 도요타의 마스터 드라이버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출처: Toyota Motor Corporation

자율주행차의 실험실

우븐 시티는, 이른바 ‘스마트 시티’입니다. 도시가 만들어내는 데이터를 이용해 도시 전체를 촘촘히 관리하게 됩니다. 물론, AI의 역할이 결정적입니다. 도요타 아키오 회장이 보여준 우븐 시티의 삶은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고령자가 AI 반려동물과 함께 산책을 하고, 드론이 거주민들의 안전을 챙깁니다. 집 안에서는 로봇이 옷을 개어 정리하고요. 세탁기도, 건조기도 해 주지 못했던 일을 로봇이 결국에는 해 주게 될까요?

하지만 무엇보다 관심이 가는 것은 도로망, 교통망입니다. 도요타가 만든 도시니까요. 세 종류의 전용 도로가 도시를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있습니다. 각각 자동차 도로, 보행자 도로, 공유 이동 수단 도로입니다.

이 중 우븐 시티의 자동차 전용 도로는 자율주행 차량을 위한 것입니다. 사실, 현실 세계의 도로는 자율주행차 입장에서 변수가 너무 많습니다. 갑자기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 이상하게 설치된 현수막에 가려진 신호등 등 사람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속출하죠. 자율주행차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도로는 다를 수 있습니다. 도시의 교통 시스템과 주요 데이터를 공유할 수도 있겠고, 도로를 자율차 전용으로 운용하면 변수도 최소화합니다. 자율 주행차 시대에 건설된 건물은 기존과 주차장 위치도 다를 테고, 버스 노선은 지금보다 훨씬 다양해질 수 있습니다. 이 변화를 우븐 시티에서 미리 실험하겠다는 겁니다. 실제로 우븐 시티를 달리게 될 자율 주행 차량, ‘e-팔레트’는 운송과 배달은 물론 광장 등에서 이동형 점포로도 활약할 예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쌓이게 되는 자율 주행 교통 데이터를 앞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죠.

도쿄와 우븐 시티는 에어 택시가 연결합니다. 도요타가 5억 달러를 투자한 에어 택시 스타트업, ‘조비(Joby)’가 이를 담당합니다. 공유 이동 수단 도로에는 스쿠터, 자전거 등의 공유 이동 수단이 다니고 보행자 전용 도로에는 오직 사람만 안전히 다닙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탄소 중립을 실현할 수 있는 교통수단만이 우븐 시티를 달릴 수 있습니다. 당연히 기존의 내연차는 탈락이겠죠. 그렇다면 우븐 시티는 전기차 보급률 100퍼센트를 달성하게 될까요?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도요타의 친환경은 조금 다른 트랙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친환경 차의 정의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친환경 자동차의 대표 명사는 도요타의 ‘프리우스’ 하이브리드 모델이었습니다. 탄소 중립의 관점에서 보면 당시 도요타는 가장 앞서 나가는 완성차 업체였죠.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지난 2022년 발표된 그린피스의 친환경 자동차 제조사 순위에서 도요타는 10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계 10대 완성차 업체 중 꼴등입니다.

도요타가 2023년 전 세계에서 판매한 차량은 1억 50만 대입니다. 이 중 전기차는 2만 5000대 정도입니다. 같은 해 현대차는 전기차 26만 8700여 대를 팔았습니다. 그러니 도요타가 전기차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지적은 맞는 얘깁니다. 과거의 영광에 매여 시기를 놓친 것일 수도 있고 단순한 판단 착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도요타도 할 말이 있습니다. 대신 하이브리드에 집중했거든요. 여기서 도요타는 좀 다른 질문을 합니다. 전기차가 무조건 친환경인지 말이죠.

전기차로의 완전한 전환에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주유소는 문을 닫고 대신 전기차 충전소가 문을 열어야 합니다. 이건 돈이 들고 탄소도 배출되는 일이죠. 게다가 전기차는 비쌉니다. 부자 나라는 탄소 감축을 위해 전기차에 보조금을 얹어주지만, 그럴 여력이 없는 나라가 더 많습니다. 그러니 100퍼센트 전기차가 아니라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더 적합한 지역이 분명히 있다는 겁니다. 신흥국을 중심으로는 하이브리드 차량과 상황에 따라 전기차처럼 탈 수 있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을, 유럽과 미국 등을 대상으로는 전기차를 주력으로 판매하는 전략의 이유입니다.

또, 지역별로 수소 에너지에 집중하는 곳도 있고,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는 곳도 있습니다. 전기차가 아니어도 이런 방법으로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습니다. 전 세계에 자동차를 판매하는 도요타는 각 지역의 사정에 유연하게 대응하며 결과적으로는 탄소 감축 효과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게 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합니다.

그렇다면 우븐 시티를 달리게 될 자동차는 어떤 모델일까요? 만약 우븐 시티에서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달리고, 그럼에도 이 도시가 넷제로를 실현할 수 있게 된다면 도요타는 스스로의 신념을 성공적으로 증명할 수 있게 됩니다. 도요타는 친환경 에너지가 기본값이 된 미래 도시에서 어떤 모빌리티가 정답인지를 직접 보여줄 작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거대한 실험실

우븐 시티는 일종의 테스트 베드에 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도요타 회장도 ‘살아있는 실험실(Living laboratory)’이라고 천명했고요. 원래 도시란 완벽히 계획한 대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도시에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 과정에서 구체적인 모양이 잡힙니다. 현실의 거리에는 범죄자도 있고, 노점상도 있습니다. 그라피티를 하는 청소년과 노숙인이 공공시설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기도 하죠. 또, 높은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도시를 떠나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븐 시티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일종의 무균실이죠. 모든 변수가 완벽히 통제된 실험실처럼, 낯설고 당황스러운 장면은 없겠지요. 그러니 우븐 시티는 ‘살아있는 실험실’일지언정 ‘살아있는 도시’는 되지 못합니다. 미래 도시상의 표준이 될 수는 없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실험실에 불과하다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실험실에서 잘 걸을 수 있는 이족 보행 로봇이 현실 세계에서 천천히 걸음마를 하듯, 우븐 시티도 미래의 도시가 갖추어야 할 자격에 관해 중요한 시사점을 남길 수 있습니다. 또, 자동차뿐만 아니라 새로운 교통 시스템과 그에 어우러지는 삶의 방식까지 실험할 수 있는 최적의 실험장이 될 겁니다. 도요타 회장은 우븐 시티에 거주하게 될 모두가 일종의 ‘발명가’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문자 그대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려 새 도시의 면면을 발명할 수도 있겠지만, 완전히 새로운 모빌리티 시스템이 구현된 스마트 도시에서 삶을 꾸려나가는 것만으로도 새 시대의 발명이 될 수 있겠지요. 우븐 시티의 실험을 주목할 만한 이유입니다. 우븐 시티는 진짜 미래가 아닐 수도 있지만, 적어도 미래이긴 합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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