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란드가 미국 땅이 되면 생기는 일

bkjn review

트럼프가 그린란드를 사고 싶어 합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그린란드가 미국 땅이 되면 생기는 일

2025년 1월 13일

그린란드를 다시 위대하게

1월 7일 도널드 트럼프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가 ‘TRUMP’라는 글자가 크게 적힌 부친의 개인 전용기를 타고 그린란드 수도 누크를 방문했습니다. 5시간쯤 머물며 팟캐스트용 영상 콘텐츠를 촬영하고 갔습니다. 트럼프 당선인은 장남이 그린란드에서 찍은 사진을 자신이 소유한 소셜 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리며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일어나야 할 거래다. MAGA. 그린란드를 다시 위대하게!”

장남이 그린란드를 방문하기 보름 전이었죠. 트럼프는 페이팔 공동 창업자인 켄 하워리를 주덴마크 대사로 지명하면서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트럼프는 집권 1기 때인 2019년에도 그린란드를 사고 싶다고 했는데, 덴마크 총리가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딱 잘라 거절했죠. 당시 트럼프는 덴마크 총리의 발언을 문제 삼아 예정된 덴마크 국빈 방문 계획을 취소했습니다.

그린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섬입니다. 남한의 21배 크기입니다. 국토의 80퍼센트가 얼음으로 덮여 있는데, 그 아래 방대한 광물 자원이 매장돼 있습니다. 인구는 5만 6000명입니다. 주민 대부분이 에스키모로 불리는 이누이트족 원주민입니다. 그린란드는 18세기부터 덴마크의 지배를 받았는데, 2009년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모든 정책에 자치권을 이양받았습니다. 덴마크와 별도로 총리와 의회를 둡니다. 국기도 따로 있죠.

즉 그린란드는 덴마크 왕국에 속하지만, 그린란드 자치 정부가 독립적 권한을 행사하고 있어 덴마크가 자기 마음대로 팔고 말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린란드는 원하기만 한다면 주민 투표를 통해 덴마크로부터 독립할 권한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덴마크 총리는 트럼프의 매입 제안에 “그린란드는 매물이 아니다”라면서 “그린란드의 미래를 결정하고 정의할 수 있는 건 오직 그린란드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린란드의 수도 누크. 사진: Antanasc

북극의 지정학

멀쩡하게 자치 정부와 의회가 있는 국가를 돈으로 사겠다니 황당한 얘기인데, 미국은 역사적으로 영토를 돈으로 사들인 적이 꽤 많습니다. 1868년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720만 달러에 매입했고, 1803년에는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주를 1500만 달러에 샀습니다. 제국주의 시대가 한참 전에 끝나긴 했지만, 그린란드를 사겠다는 제안을 허투루 볼 수만은 없는 이유입니다. 그럼, 트럼프는 왜 그린란드를 탐낼까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기후 위기로 북극 빙하가 녹으면서 북미와 유럽, 아시아를 연결하는 새로운 항로가 열리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아시아로 물자를 보낼 때는 보통 수에즈 운하를 거칩니다. 30~35일이 걸립니다. 그런데 얼음이 녹으며 생기는 북극 항로를 이용하면 15~20일이면 됩니다. 현재는 여름철에만 열리는 항로인데,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이용 가능 일수가 늘고 있습니다. 그린란드는 이 바닷길을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둘째, 그린란드에는 풍부한 지하자원이 있습니다. 러시아 GDP의 20퍼센트가 북극 지역에서 나옵니다. 미국 지질조사국은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5퍼센트, 가스 매장량의 25퍼센트가 북극에 있다고 추정합니다. 핸드폰부터 미사일까지 거의 모든 첨단 제품에 들어가는 희토류도 천지입니다. 전 세계 희토류 매장량의 44퍼센트가 북극에 있는데, 이걸 개발하면 세계 희토류 공급의 70퍼센트를 점유한 중국산 희토류에 대한 미국의 의존도를 낮출 수 있습니다.

셋째, 안보 전략 측면에서도 가치가 높습니다. 러시아와 중국이 북극해에서 전략 자산을 늘리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데, 알래스카만으로는 러시아와 중국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알래스카 공군 기지는 태평양과 북극을 방어하지만, 북극 서부에 국한돼 있습니다. 북극 항로와 북극 동부를 포함한 북극 전체에 통제권을 확보하려면 그린란드 장악이 필수적입니다. 실제로 그린란드에는 냉전 시대에 구소련의 미사일 공격을 막기 위해 설치된 미군 기지가 있습니다.
그린란드와 북극해 지도. 출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트럼프식 팽창주의의 결말

그린란드가 미국 땅이 되는 것은 이론적으로 가능합니다. 그린란드가 주민 투표를 통해 덴마크 왕국에서 독립하고 미국으로 편입되는 결정을 내리면 됩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생길 가능성은 작습니다. 현지 여론도 미국의 일부가 되는 것에 부정적인 반응이 더 많습니다. 그린란드는 지금이라도 당장 덴마크로부터 독립할 수 있지만 그러지 않고 있습니다. 독립국이 되고는 싶지만, 그랬다간 덴마크의 재정 지원이 끊기니까요.

그린란드는 덴마크 정부로부터 연간 8000억 원의 보조금을 받습니다. GDP의 20퍼센트에 달합니다. 우리나라 예산이 600조 원이 넘으니까 8000억 원이 큰돈이 아닌 것 같지만, 그린란드 인구는 5만 6000명입니다. 1인당 1430만 원꼴입니다. 게다가 독립국이 되면 무상 교육, 무상 의료 같은 덴마크의 복지 혜택도 사라집니다. 북유럽 복지가 익숙한 그린란드인에게 푸에르토리코 같은 미국의 자치령이 되라는 제안은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지 못합니다.

그린란드 사람도 원하지 않는 트럼프의 그린란드 매입 제안은 논리적으로도 결함이 있습니다. 트럼프는 그린란드가 전략적으로 미국에 중요하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미국의 일부가 될 이유는 없습니다. 이미 미국은 그린란드의 광물 자원 개발에 투자하고 있고, 군사 기지도 두고 있습니다. 덴마크 정부는 그린란드의 버려진 군사 기지를 중국이 사들이려는 시도를 차단하기도 했습니다.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고려한 결정이었는데, 그린란드 매입 제안은 양국의 파트너십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트럼프의 그린란드 욕심은 그렇지 않아도 여기저기 금이 간 나토 동맹을 확실히 깨트릴 우려가 있습니다. 트럼프는 그린란드 장악을 위해 나토 동맹국인 덴마크에 군사력을 동원하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막말에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절대로 무력으로 국경을 바꿀 수 없다”고 했고, 프랑스 외무 장관은 “유럽 연합(EU)의 주권적 국경을 공격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에나 하던 말을 동맹국 미국에 하고 있는 겁니다.

트럼프식 팽창주의의 가장 위험한 점은 중국과 러시아의 영토 확장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겁니다. 자유주의 진영의 리더인 미국이 군사력을 써서라도 그린란드를 가지겠다, 파나마 운하를 환수하겠다,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겠다, 멕시코만을 아메리카만으로 개명하겠다, 이런 팽창주의적 발언을 계속하면 권위주의 진영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습니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그럴 법한 일이 되고, 중국 역시 대만을 침공해도 미국이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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