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처음으로 1.5°C 한계를 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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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협정의 목표가 깨진 것도 아니고 세상이 당장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위험은 분명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구가 처음으로 1.5°C 한계를 넘었습니다.

2025년 1월 16일

가장 뜨거웠던 2024년

2024년은 기후 관측 역사상 가장 더운 해였습니다. 지난해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55도 상승했습니다. 파리기후협약에서 정한 한계인 1.5도를 처음으로 넘었습니다. 이 같은 내용은 1월 10일 세계기상기구(WMO)가 펴낸 보고서를 통해 확인됐는데요, WMO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유럽 중기예보센터(ECMWF) 등 세계 6개 기상 관측 기구로부터 받은 관측 자료를 종합해 지난해 지구 기온 상승치를 확정했습니다.

지구 기온의 높고 낮음을 판단할 때 기준이 되는 시점인 ‘산업화 이전’은 1850~1900년입니다. 산업화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전이라 상대적 기준점이 됩니다. 사실 산업혁명은 1760년경부터 영국에서 시작됐지만, 당시엔 기상 관측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국제 사회는 인류가 기상 관측을 시작한 무렵인 1850~1900년의 평균 기온을 산업화 이전 대푯값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구 평균 기온을 다룬 뉴스를 보면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기온의 절댓값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기상 관측 기구의 보고서에도 절댓값은 나오지 않습니다. 구글링을 해도 잘 안 나옵니다. “산업화 이전보다 1.55도 올랐다”는 식으로만 기재되죠. 지구 평균 기온이 작년보다 1.55도 올랐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지금 기온이 몇 도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지구 평균 기온을 측정하는 방식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구 평균 기온은 전 세계 국가들이 관측한 기상 데이터를 가공해서 산출되는데, 국가별로 측정 방식이 다르고 관측 지점도 세계에 골고루 분포돼 있지 않습니다. 사막과 고산지에는 관측소가 매우 적습니다. 지구 표면의 70퍼센트를 덮고 있는 바다에도 관측 지점이 부족하죠. 또 남반구보다 북반구에 몰려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과학자들은 데이터가 모자란 부분에 인공위성 등을 활용한 추정치를 채워 넣습니다. 추정치를 넣어야 하는 부분이 너무 많고, 기관별로 추정 모델도 다르죠. 그래서 지구 평균 기온은 절댓값으로 얘기하지 않고 “산업화 이전의 추정치보다 몇 도가 올랐다”는 식으로만 얘기합니다. 절댓값은 알 수 없으니, 편차 형태로 제시하는 것이 참값에 더 근접하기 때문입니다.

아주 작은 부분도 틀리지 않아야 하는 과학자로서는 올바른 태도겠지만, 일반 시민으로선 지구 평균 기온을 모른 채로 작년보다 몇 도가 더 올랐다는 얘기만 들으면 좀 답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략적인 수치를 말씀드리자면, 1850~1900년의 지구 평균 기온은 14도쯤입니다. 지난해 지구 평균 기온이 이 기간보다 1.55도 높았으니까, 15.55도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 1850~1900년의 평균 기온이 y축의 0.0이다. 2024년에 1.5도를 처음으로 넘었다. 출처: 세계기상기구

1.5도가 넘으면 일어나는 일

국제 사회는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해 지구 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제한하자는 약속을 했습니다. 2015년에 체결한 파리기후변화협약입니다. 많은 연구자는 1.5도를 초과하면 해양 순환 시스템 붕괴, 북방 영구 동토층의 급격한 해빙, 열대 산호초 생태계 붕괴 등 여러 가지 기후적 전환점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럼, 지난해 지구 기온 상승 폭이 1.5도를 넘었으니 올해부터 재난 영화 같은 대형 사건이 갑자기 급증하는 걸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지난해 1.5도 한계를 초과했다고 해서 장기 목표에서 실패했다는 건 아니다”고 말합니다. 구테흐스가 지적한 대로 “다만 목표 달성을 위해 더 열심히 싸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구 기온 상승 폭은 20년 평균으로 계산합니다. 한두 해의 이상 기후가 통계를 왜곡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컨대 많은 과학자가 지난해 지구 기온 급등의 원인으로 2023년 중반에 시작돼 2024년 5월까지 이어진 엘니뇨를 지목합니다. WMO는 2024년 기준으로 장기적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1.3도 정도 높아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특정 개별 연도에 1.5도를 넘었다고 해서 파리협정의 목표가 깨진 것도 아니고 세상이 당장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위험은 분명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구가 점점 더워져 20년 평균 기온이 1.5도 한계를 넘으면 수많은 과학자가 경고한 비가역적인 기후의 전환점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아직 잡히지 않고 있는 미국 LA의 산불,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겼던 파키스탄 홍수, 이탈리아를 강타했던 국지성 호우와 가뭄, 아프리카 동남부를 휩쓴 사이클론 같은 ‘역대급’ 재난이 세계 각지에서 일상이 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9년

굳이 ‘희망 회로’를 돌려 보자면 그래도 기대되는 구석이 있기는 합니다. 2023년에도 지구 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48도 올랐지만, 많은 사람이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2024년 1.55 상승은 파리협정에서 정한 한계점을 처음으로 넘긴 사건이라 더 큰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0.07도의 차이지만 인간은 상상력의 동물이니까요. 올해 11월 브라질에서 열리는 유엔기후정상회의에서 전보다 강력한 합의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우려도 있습니다. 1.5도를 넘겼다는 소식이 세계 각국 정상에게 경각심을 갖게 해서 더 강력한 기후 정책을 추진하게 할 수도 있지만, 기후 위기 부정론자들에겐 기후 위기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방증처럼 쓰일 수도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그토록 경고하던 1.5도를 넘겼지만 ― 20년 평균 기온 같은 복잡한 설명은 생략하고 ― 이거 봐라, 천지개벽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논리가 나올 수 있습니다. 아마 트럼프가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죠.

유엔 사무총장은 개별 연도의 실패가 파리협정의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했지만, 사실 파리협정에서 정한 약속은 지난해를 기점으로 달성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굳이 복잡한 기후 예측 모델을 돌려 보지 않아도 어림할 수 있습니다. 지구 기온 상승 폭이 2024년에 처음으로 1.5도를 넘었으니 2024년을 20년 기간의 중간점으로 잡아 단순 계산하자면, 현 추세가 이어지면 2033년에 20년(2014~2033년) 평균 기온이 1.5도 한계를 넘게 됩니다.

기상 관측 이래 지구가 가장 더웠던 10개 연도에는 지난 10년이 모두 포함됩니다. 우리는 이미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대응할 시간은 9년 남았습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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