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전쟁이 잠시 멈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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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문제는 3단계입니다. 가자 지구를 재건할 때 가자 지구를 누가 통치할 것인가를 두고 양측이 충돌할 수 있습니다.

가자 전쟁이 잠시 멈췄습니다.

2025년 1월 20일

15개월 만의 휴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의 전쟁이 멈췄습니다. 전쟁 발발 15개월 만입니다. 1월 19일 오전 1단계 휴전이 발효되면서 이스라엘 인질 세 명이 471일 만에 풀려났습니다. 하마스가 석방한 인질 세 명은 모두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 접경지에서 납치한 20~30대 여성입니다. 하마스는 인질 세 명을 석방한 대가로 이스라엘 교도소에 갇혀 있는 팔레스타인인 90명을 넘겨받게 됩니다.

이번 전쟁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를 기습 공격하며 시작됐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휴전 협상이 시작됐는데, 이스라엘은 ‘인질부터 석방하라’, 하마스는 ‘가자 지구 공습부터 멈춰라’ 서로 양보하지 않으면서 협상이 1년 넘게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1월 15일 극적 타결됐죠. 이번에 발표된 휴전안은 지난해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제시한 3단계 휴전안을 바탕으로 합니다. 3단계에 걸쳐 영구적 휴전을 가져오는 안입니다.

1단계에서 양측은 42일간 일시 휴전합니다. 하마스는 개전 첫날 이스라엘 남부를 기습해 이스라엘 민간인과 군인 1200여 명을 살해하고 251명을 인질로 붙잡아 가자 지구로 데려갔습니다. 하마스는 그동안 몇 차례에 걸쳐 인질 일부를 석방해 현재 가자 지구에 남은 인질은 94명으로 추정됩니다. 그중 34명은 숨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니까 60명이 살아 있는 거죠.

1단계 휴전에서 하마스는 여성, 어린이, 50세 이상 남성 등 인질 33명을 석방합니다. 그 대가로 이스라엘은 민간인 인질 1명당 팔레스타인 수감자 30명, 여성 군인 1명당 수감자 50명을 넘겨줍니다. 이스라엘 구금 시설에는 90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수감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수감자 중에는 하마스에 가담해 붙잡힌 사람도 있지만, 단순히 전투 가능 연령의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체포된 사람도 있습니다.

1단계 휴전에서는 가자 지구 남부와 북부를 오가는 통행로가 열립니다. 이번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거점인 가자 지구 북부를 집중적으로 타격했는데, 이때 남쪽으로 피난을 갔던 북부 주민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습니다. 구호물자를 실은 트럭 600대도 매일 가자 지구로 드나들 예정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은 휴전 22일째 되는 날에 가자 지구를 남북으로 가르는 넷자림 회랑에서 병력을 철수합니다. 다만 가자 지구 남부와 이집트 사이에 있는 필라델피 회랑에는 당분간 병력을 유지합니다.

42일간의 1단계 휴전이 끝나면 2단계 휴전이 시작됩니다. 2단계 휴전은 대략의 틀만 정해져 있습니다. 1단계처럼 구체적 합의가 이뤄진 상태는 아닙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1단계 휴전 16일 차부터 2단계 휴전의 세부 내용을 협의할 예정입니다. 이 기간에 하마스는 남은 인질을 모두 석방하고, 이에 맞춰 이스라엘도 가자 지구에서 완전히 철수하는 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 3단계는 가자 지구의 재건입니다. 이번 전쟁으로 가자 지구 인구 230만 명 중 90퍼센트가 난민이 됐습니다. 주택도 90퍼센트가 파괴됐습니다. 국제 사회의 감독을 받으며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게 되는데, 3~5년이 걸릴 전망입니다. 이 단계에서 하마스는 숨진 이스라엘 인질의 시신을 이스라엘로 송환합니다. 이스라엘도 숨진 하마스 전투원의 시신을 돌려보내게 됩니다.
이스라엘-하마스 휴전 협정이 발효된 1월 19일, 이스라엘 인질 세 명이 풀려났다. 출처: CBS News

협상 타결의 주역

1월 15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휴전 소식을 직접 알렸습니다. 임기의 4분의 1을 휴전 협상에 썼으니 직접 발표할 만했습니다. 바이든은 성명에서 “끈질기고 고된 미국 외교의 결과”라고 자찬했습니다. 바이든이 연설을 마치고 퇴장하는데, 기자가 물었습니다. “협상 타결에 누구 공이 컸습니까? 대통령이십니까, 아니면 트럼프인가요?” 바이든은 이렇게 답합니다. “농담이죠?”

상원 외교위원장과 부통령 8년을 지낸 바이든은 자타가 공인하는 외교 전문가입니다. 이스라엘-하마스의 휴전은 바이든 정부의 외교 성과라 할 수 있습니다. 임기 종료 직전에 터진 버저 비터 같은 것이죠. 그런데 미국과 중동 주요 언론은 이번 협상 타결에 트럼프의 공이 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휴전안 초안을 제시한 것도 바이든이고 끈질지게 협상한 것도 바이든 정부였는데, 어째서 그런 말이 나올까요.

그동안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하마스에 대한 “완전한 승리” 전에는 전쟁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해 왔습니다. 바이든이 1년 가까이 어르고 달래고 압박해도 요지부동이었는데, 한두 달 사이에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겁니다. 휴전안이 발효된 날은 1월 19일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트럼프가 제47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하루 전이었습니다. 네타냐후의 변심은 집권 2기를 시작하는 트럼프에 대한 선물이라는 해석이 많습니다.

실제로 네타냐후는 휴전 협상 타결이 발표되고 바이든보다 트럼프에게 먼저 전화해 감사를 표했습니다. 1월 18일 성명에서는 “트럼프가 당선된 순간부터 휴전 협상에 참여해 왔다”면서 트럼프 덕분에 협상이 타결됐다고 했죠. 물론 바이든에 대한 감사도 빼놓지 않았지만, 순서상 트럼프를 앞세웠습니다.

트럼프는 1월 7일 하마스를 향해 강력한 경고를 날렸습니다. 1월 20일 자신의 취임식 전까지 하마스가 이스라엘 인질을 석방하지 않으면 “중동에 지옥이 도래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네타냐후 총리에게도 취임식 전에 전쟁을 끝내라고 압박했죠.

트럼프는 엄포만 놓은 게 아닙니다. 트럼프 2기 인사가 휴전 협상에도 참여했습니다. 바이든 정부와 차기 트럼프 정부가 한 몸처럼 협상에 나섰습니다. 트럼프가 중동 특사로 발탁한 유대인 부동산 사업가 스티브 위트코프는 1월 11일 이스라엘을 방문해 네타냐후를 만났습니다. 위트코프는 네타냐후에게 취임식 전날까지 휴전해야 한다고 압박했죠. 동시에 바이든의 중동 특사 브렛 맥거크도 카타르 도하에서 이스라엘, 하마스, 카타르, 이집트의 협상 대표들과 휴전의 세부 조건을 조율했습니다.

종합하자면, 이스라엘-하마스의 휴전 협상은 바이든과 트럼프의 전례 없는 협력으로 타결될 수 있습니다. 바이든은 차기 행정부의 중동 특사가 협상 테이블에 합류하도록 용인했고, 트럼프는 이스라엘과 하마스를 강력하게 압박해 지난한 협상의 선을 넘게 했습니다. 그 결과 바이든은 임기 종료 전에 전쟁을 끝낸 대통령이 됐고, 트럼프는 임기 시작 전에 전쟁을 끝낸 대통령이 됐습니다.
가자 지구 남부와 이집트 국경 사이에 있는 필라델피 회랑. 출처: JCFA

1단계보다 어려운 2단계, 2단계보다 어려운 3단계

가자 지구에 일단 총성이 멈췄지만, 아직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가장 민감한 문제는 2단계, 3단계 휴전에서 협의하도록 미뤄 놨는데, 이스라엘과 하마스 모두 양보하기 어려운 내용이라 휴전 협상이 깨지고 전투가 다시 시작될 수 있습니다.

2단계 휴전 협상은 1단계 휴전이 16일째 되는 날부터 시작될 예정입니다. 이때 필라델피 회랑의 이스라엘군 주둔 문제가 논의될 전망입니다. 하마스는 필라델피 회랑에 주둔하고 있는 이스라엘군의 철수를 요구하는데, 이스라엘은 다른 건 몰라도 필라델피 회랑 문제만큼은 양보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필라델피 회랑은 가자 지구 남부와 이집트 국경을 따라 나 있는 14킬로미터 길이, 100미터 너비의 길죽한 통로입니다. 하마스는 이 회랑 지하에 600여 개의 땅굴을 파서 이집트로부터 물자를 들여온 것으로 알려집니다. 이스라엘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하마스를 공격했지만, 하마스는 그때마다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이 땅굴을 통해 무기를 밀반입해서 재기할 수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이스라엘의 전쟁 목표는 ‘하마스 소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필라델피 회랑을 통한 하마스의 무기 밀수를 막을 방안이 나오지 않는 한 병력을 철수하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네타냐후는 필라델피 회랑이 통제돼야 한다고 하면서도 통제 주체가 반드시 이스라엘군이어야 한다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군은 물리고 첨단 감시 장비를 갖춘 다국적군이 주둔하는 방안이 제시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이집트도 하마스의 무기 밀수를 철저하게 단속하는 방안을 내놔야 하겠죠.

필라델피 회랑 문제를 다루게 될 2단계 협상도 난제이지만, 진짜 문제는 3단계입니다. 가자 지구를 재건할 때 가자 지구를 누가 통치할 것인가를 두고 양측이 충돌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가자 지구 통치에 반대합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통치하는 안에도 반대합니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 대한 통제권을 놓지 않으려 하는데, 하마스로서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안입니다.
2020년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아랍 4개국(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수단, 모로코)이 아브라함 협정을 맺고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출처: 미국 국무부

트럼프 2기의 중동 정책

결국 공은 트럼프에게 넘어갈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철저하게 이스라엘 편입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이 모두 이스라엘 편을 들었지만, 트럼프만큼 노골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원하진 않았습니다. 트럼프는 집권 1기 때 팔레스타인의 격렬한 반대에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공식 선언하고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겼습니다. 시리아 영토인 골란고원을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했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미국의 지원도 삭감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는 구체적인 중동 정책을 공표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중동 전쟁을 끝내겠다 정도였죠. 트럼프 2기의 중동 정책은 초기에는 1기의 연장선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노골적인 이스라엘 편들기입니다. 하마스로서는 바이든 임기가 넉넉히 남았을 때 휴전에 합의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 수 있습니다.

트럼프는 임기 후반기부터는 업적에 욕심을 낼 수 있습니다. 트럼프는 집권 1기 때 이른바 ‘세기의 거래’라고 불리는 아브라함 협정을 주도했습니다.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아랍 4개국이 외교 관계를 수립한 협정인데, 협정의 명칭은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공통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트럼프의 외교 정책 중 거의 유일하게 국제 사회에서 호평을 받았죠. 트럼프 자신도 아브라함 협정에 자부심과 애정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간 미국 정부의 팔레스타인 정책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쟁점 사안에 먼저 합의하고, 그 합의를 걸프 아랍 국가들이 추인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는 그 순서를 바꿨습니다. 팔레스타인을 지원하는 걸프 지역 수니파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회복시켜 팔레스타인을 고립 상태로 만들어,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에 유리한 합의안에 동의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려고 했습니다.

먼저, 트럼프는 2018년 이란 핵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해 시아파 이란을 걸프 지역의 최대 위협 세력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미국은 공공의 적 이란을 지렛대 삼아 이스라엘과 걸프 왕실의 수교를 중재했습니다. 미국은 걸프 아랍이 ‘새로운 적’ 이란의 시아파 초승달 벨트에 맞서려면 ‘70여 년간 적’이었던 이스라엘과 화해하고 안보 협력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2020년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은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수단, 모로코 등 아랍 4개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합니다.

아브라함 협정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수니파의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마저 이스라엘과 국교 정상화를 논의하기 시작합니다. 미국, 이스라엘, 사우디가 협상을 구체화하던 중,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하며 논의가 중단됩니다. 사우디는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수교의 전제 조건으로 달면서 협상에서 발을 뺍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배경에는 사우디-이스라엘의 수교로 중동 정세가 재편돼 팔레스타인이 고립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였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팔 분쟁이 타결되면 노벨 평화상이 뒤따라옵니다. 1978년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중재해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가 노벨 평화상을 받았죠. 1993년에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오슬로 평화 협정을 중재해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팔레스타인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가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트럼프는 남 좋은 일만 시키는 중재자 역할에는 만족하지 않을 사람입니다. 트럼프는 이-팔 합의를 중재하고 이 합의를 국제 사회에 추인받는 식으로는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판을 만들고 판을 흔드는 건 언제나 트럼프 본인이어야 하니까요.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라는 아브라함 협정의 완성을 통해 팔레스타인을 고립시켜 이-팔 분쟁을 타결하는 동시에, 우크라이나 전쟁도 종식시켜 두 개의 전쟁을 끝낸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으려 할 겁니다. 팔레스타인에는 악몽 같은 일이 될 수 있습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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