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취임사로 전망하는 트럼프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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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 콤플렉스에 빠진 세계 최강대국의 새 지도자는 구원과 해방에 거래를 접목합니다. 

대통령 취임사로 전망하는 트럼프 2기

2025년 1월 21일

도널드 트럼프가 1월 20일 제47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이날 워싱턴DC 연방 의회 의사당 중앙홀에서 취임식이 열렸습니다. 트럼프는 40분간 진행한 취임 연설에서 “미국의 황금시대가 지금 시작됩니다”고 했습니다. 미국이 머지않아 그 어느 때보다 “더 위대하고, 더 강하고, 더 특별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도 했죠. 트럼프는 미국이 “오늘부터 변할 것이고, 매우 빠르게 변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트럼프는 취임 첫날부터 행정 명령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바이든이 서명했던 행정 조치와 행정 명령 78개를 폐지하고, 트럼프 2기 정부가 행정부를 완전히 통제할 때까지 공무원 신규 고용을 중단하고,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 재탈퇴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했습니다. 2021년 1월 6일 의사당 폭동 사태 가담자 1500명도 사면했습니다. 트럼프는 예고한 대로 엄청난 속도로 전임 정부의 흔적을 지우고 있습니다.

아찔하게 쏟아지는 행정 명령을 보며 앞으로 4년간 워싱턴발 경마식 보도가 뉴스를 가득 채우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은 변화들만 쫓다가 큰 줄기를 놓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트럼프의 취임사를 뜯어보기로 했습니다. 대통령의 연설은 국정 운영 방향을 선언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고도의 정치 행위이자 정치적 의제 설정의 핵심 수단입니다. 의제가 설정되고 확산하는 과정에서 말과 글, 즉 담론이 핵심 역할을 합니다.

대통령이 연설에서 어떤 단어를 사용하고 어떤 프레임을 씌우느냐에 따라 국정 운영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더구나 취임식 연설이니 트럼프와 참모진 모두 특별히 더 신경을 썼겠죠. 트럼프가 취임사에서 사용한 단어는 약 2900개입니다. 국문으로 번역하면 A4 6장 분량입니다. 취임사를 꼼꼼히 살펴보면 오늘내일 쏟아질 행정 명령보다 긴 호흡으로 트럼프 2기를 전망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럼, 지금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를 통해 트럼프 집권 2기의 국정 운영 기조를 살펴봅니다.

* 취임사 원문
* 취임사 번역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연설. 출처: CNN

미국 우선주의

트럼프는 취임사 전반에 걸쳐 우리(미국)와 그들(외국)을 대비했습니다. we(우리), our(우리의), American(미국인) 등 공동체의 정체성을 상기시키는 단어를 자주 쓰며 민족주의적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특히 America(미국)와 American(미국인)을 합해 총 41회 사용했습니다. nation(국가)도 20번이나 썼습니다. 집권 1기와의 차이라면 당시 트럼프에게 민족이란 백인 집단을 뜻했습니다. 그런데 2기에서는 그 민족이 ― 트럼프를 지지하는 ― 흑인과 히스패닉계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취임사에서 트럼프는 흑인과 히스패닉계를 콕 찍어 자신에게 투표해 줘서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지난 대선에서 히스패닉 유권자의 46퍼센트가 트럼프를 지지했습니다. 2020년 대비 14퍼센트포인트 급증했죠. 불법 이민자를 추방해 히스패닉계 미국인의 일자리를 지키고 경제를 살리겠다는 주장이 먹힌 겁니다. 트럼프의 확장된 민족주의와 미국 우선주의는 1기보다 더 철저하면서도 더 이중적인 외교·안보·무역·이민 정책을 예고합니다.

정부 개혁

트럼프는 “역사적인 행정 명령을 연이어 발표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상식을 회복하기 위해 신속하고 과감한 행동에 나서겠다고 했죠. 트럼프는 country(국가)와 nation(국민)을 전면에 내세우고 government(정부)의 무능과 부패를 부각했습니다. 즉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정부를 확 바꾸겠다는 뜻입니다. 트럼프는 이전 정부를 비판하는 동시에 자신만이 정부를 바꿀 유일한 적임자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정부를 싫어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집권 1기 때 공무원들이 말을 안 들어서 국정 운영에 속도가 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지난 4년간 정적 바이든이 법무부와 연방수사국(FBI)을 동원해 자신에게 정치 보복을 가했다고 생각합니다. 트럼프가 사법 시스템의 당파성과 무기화를 종식하겠다고 말해서 정치 보복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사실 그 말이 더 무섭습니다. 바꿔 말하면 당파적이고 무기화된 법무부를 대수술하겠다는 소리입니다. 교육, 보건 분야도 큰 변화가 예상됩니다.

국경 봉쇄

트럼프는 취임사에서 “남쪽 국경에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남쪽 국경이란 미국 남부와 멕시코의 국경 지대입니다. 중남미 이민자들이 이 루트를 통해 미국으로 들어오는데, 여길 틀어막겠다는 거죠. 집권 1기 때 트럼프에게 불법 이민자가 성폭행범이자 마약 범죄자였다면, 2기에선 “위험한 범죄자, 교도소와 정신병원 출신”인데다 “재앙적인 침략”자입니다.

트럼프 2기의 반이민 정책은 ‘범죄·테러와의 전쟁’ 수준으로 격상될 전망입니다. 트럼프는 멕시코 접경 지역에 군대를 파견하기로 했습니다. 단순히 불법 이민을 막는 게 아니라 국경을 방어하겠다고 했는데, 인권 단체들의 반발에 대비해 안보 논리를 내세우는 것으로 보입니다. 불법 이민자 추방이 아니라 미국 국민 보호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죠. 또한 트럼프는 집권 1기 때 도입했던 멕시코 잔류 정책을 복원하고, 바이든 정부가 시행했던 불법 이민자에 대한 체포 후 석방(catch and release) 정책을 폐기하기로 했습니다.

보호 무역주의

트럼프는 취임 전부터 관세 폭탄을 예고해 왔습니다. 모든 나라에 10~20퍼센트의 기본 관세를 매기고, 중국에는 60퍼센트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죠. 취임사에서 관세에 대한 언급은 두어 줄 정도에 그칩니다. 무역 시스템을 전면 개편해서 “외국에 관세와 세금을 부과할 것”이라고 했죠. 그러고는 정부 개혁이나 반PC를 말하다가 갑자기 “위대한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를 거론합니다. 매킨리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알래스카의 매킨리산을 과거 오바마가 원주민 언어를 존중해 데날리산으로 이름을 바꿨는데, 이걸 다시 매킨리산으로 돌려놓겠다고 했죠.

그런데 매킨리는 상원의원 시절인 1890년 미국 관세를 역사상 최고율인 평균 50퍼센트로 올리는 관세법을 만든 인물입니다. 트럼프는 그 시절 미국이 고관세를 부과해서 역사상 가장 부유했다고 믿습니다. 멀쩡한 산의 이름까지 바꿀 정도로 고관세 정책에 확신을 갖고 있는 거죠. 트럼프는 취임사에서 관세 징수를 위해 대외수입청(External Revenue Service)을 설립하고 있다고 했는데, 대통령의 즉흥적인 말 한마디로 관세가 매겨지면 동맹국이라도 가만히 있지 않겠죠. 고관세를 부과하는 논리와 행정 절차를 만들어 외국 정부의 반발을 다소 누그러뜨리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에너지와 기후 정책

트럼프는 취임사에서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을 선언했습니다. 석유와 가스 시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입니다. 트럼프는 바이든의 그린 뉴딜을 폐기하고, 전기차 의무화 정책(electric vehicle mandate)도 없애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전기차 의무화 정책이라는 이름의 정책은 없어서 친환경차 우대 정책이나 배기가스 규제를 축소할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는 인플레이션이 방만한 정부 지출과 에너지 가격 상승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하겠다고도 했죠. 간단히 말하면 화석 연료를 최대한 활용하자는 겁니다.

트럼프는 미국이 다시 제조업 강국이 될 것이라 주장하는데, 다른 제조업 강국에는 없는 것이 미국에는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석유와 가스입니다. 미국은 기후 위기에 책임이 가장 큰 나라입니다. 산업화 이후 현재까지 미국의 이산화탄소 누적 배출량은 전 세계 누적 배출량의 24.6퍼센트로 압도적인 1위입니다. 그런 나라가 화석 연료를 펑펑 쓰겠다, 파리협정에서 탈퇴하겠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2기의 기후 정책은 국제 사회의 합의를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단일 연도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인 중국에도 뭐라 할 수 없겠죠.

미국식 제국주의

트럼프는 영토 확장도 언급했습니다. 멕시코만의 이름을 아메리카만으로 바꾸고, 파나마 운하를 미국이 통제해야 한다고 했죠. 그런데 뉘앙스가 남의 것을 뺏는 것이 아니라, 원래 우리 것이었거나 우리가 가질 자격이 있는 것을 돌려받겠다는 식입니다. 트럼프식 제국주의는 부당한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서사를 만들어 지지층의 호응을 끌어내려 합니다. 특히 연설 후반부에 ‘manifest destiny(명백한 운명)’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19세기에 미국 정착민이 서부를 개척할 때 등장한 개념입니다. 쉽게 말해 미국인은 북미 대륙을 지배할 운명을 타고났다는 소리입니다. 그렇게 미국인은 서부와 남부를 합병하고 멕시코 땅까지 뺏었죠.

트럼프는 이 개념을 북미 대륙을 넘어 우주에도 투영합니다. 다시 미국의 부를 늘리고, 영토를 확장하고, 화성에 성조기를 꽂겠다는 겁니다. 트럼프는 19세기 개척 정신을 소환해 과거의 제국주의적, 팽창주의적 향수를 자극하는 내러티브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앞서 트럼프는 관세를 운운하며 매킨리 대통령을 거론했는데요, 매킨리 임기 중에 미국은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해 쿠바, 푸에르토리코, 필리핀, 괌을 얻었습니다. 미국식 제국주의의 문을 연 사람이죠. 트럼프식 팽창주의는 중국과 러시아에 잘못된 메시지를 던지는, 변형된 형태의 먼로주의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고립주의와 선택적 개입

취임사에서 읽히는 트럼프 2기의 외교·안보 기조 중 하나는 고립주의와 선택적 개입입니다. 먼저, 트럼프는 이전 정부가 “외국 국경 방어에는 무제한으로 돈을 쓰면서 미국 국경 방어에는 소홀”했다고 비판했습니다. 또 “(다른 나라에) 더는 이용당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는데, 미국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 국제 분쟁 개입은 최소화하겠다는 말입니다. 또 “가장 강력한 군대를 구축할 것”이라면서도 “우리가 개입하지 않은 전쟁을 통해 우리의 성공을 측정할 것”이라고 말해, ‘힘을 통한 평화’ 노선을 드러내고, 끌려 들어가는 전쟁은 피하는 선택적 개입의 기조를 재확인했습니다.

트럼프는 ― 자신이 중재한 평화 협상 덕분에 ― 며칠 전에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인질을 돌려보냈다면서 자신은 “평화주의자이자 통합가”가 되기를 원한다고도 했습니다. 무척 아름다운 말이지만, 동맹이나 다자 협력을 통해 해법을 찾기보다는 양자 협상을 통해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뜻입니다. 거래의 달인답습니다.

문화적 보수주의

트럼프는 연설에서 “공적, 사적 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인종과 성별을 사회적으로 조작하려는 정책을 종식시킬 것”이라고 했습니다. 최근 몇 년간 미국에서 추진돼 온 다양성·형평성·포용성(Diversity, Equity & Inclusion, DEI) 정책이나 적극적 우대 조치(affirmative action)를 사실상 부정했습니다. 트럼프는 인종을 불문하고 능력에 따라 평가받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구조적 차별의 개선책을 불필요한 특혜로 몰아갈 위험이 있습니다. 또한 트럼프는 “오늘부터 미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남성과 여성, 두 성만 인정합니다”라고 했습니다. 학교에서 ‘비판적 인종 이론(critical race theory)’을 교육하는 것을 중단시킬 의사도 비쳤죠.

트럼프 2기에서 문화 전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입니다. 그리고 이 전쟁은 미국 내부에서만 벌어지진 않을 겁니다. 서유럽과 캐나다 같은 미국 동맹국들에선 LGBTQ,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 권리 신장 등에서 진보적 가치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트럼프 2기가 문화, 사회 영역에서 강경 보수주의를 앞세우면 미국 내 전통적 기독교 보수층과 백인 복음주의자에겐 지지를 받을지 몰라도 동맹국들과 가치 측면에서 더욱 멀어질 수 있습니다.

역사적인 속도

트럼프가 취임식에서 공언한 일들이 완료되면 “미국의 황금시대가 시작”됩니다. 연설 첫머리부터 이 말이 나오죠. 트럼프는 연설 중간중간에도 미국이 곧 “더 강해질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합니다. 현재의 위기를 열거하는 동시에 자신만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트럼프 특유의 정치적 수사입니다. 지지자의 결집을 유도하는 전략이기도 합니다.

트럼프 취임사에서 특징적인 것은 미래 시제인 will이 자주 등장한다는 겁니다. 취임사 2900여 단어에서 will이 93번 쓰였습니다. 바이든 취임사에선 28번밖에 나오지 않은 말입니다. 트럼프는 ‘무엇을 하겠다’는 구체적 행동 의지와 약속을 반복해서 사용하며 청중에게 강력한 추진력을 어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트럼프는 취임 전날인 1월 19일에 열린 MAGA 집회에서 “역사적인 속도와 힘으로 행동하겠다”고 했죠. 달리 말하면, 제대로 된 참모도 없이 덜컥 당선됐던 집권 1기와 달리 지난 4년간 MAGA 싱크탱크 등에서 준비한 정책들을 빠르게 추진하겠다는 겁니다. 트럼프 2기가 1기보다 더 무서운 이유입니다.

메시아 콤플렉스

트럼프는 취임사에서 펜실베이니아에서 암살당할 뻔한 이야기도 꺼냈습니다. 암살자의 총알이 귀를 스쳤지만 살아남았다는 에피소드를 언급하며 “하나님이 나를 살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려고 한 것”이라는 식으로 종교적·운명적 서사를 강조했습니다. 트럼프는 대선 승리를 “역사적인 정치적 복귀”라고 부르며 자기 자신을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살아 있는 증거”로 제시합니다. 트럼프의 연설에서 자주 보이는 특징인데, 종교적·영웅적 서사를 통해 지지층에 대한 카리스마적 호소와 결집력 강화를 유도합니다.

트럼프의 취임사를 통해 들여다본 트럼프 2기의 국정 운영 방향을 종합하자면, 트럼프 2기는 1기보다 더 선명한 MAGA 기조 속에서 더 강하고 더 빠르게 행동할 것으로 보입니다. 독트린 같은 것은 없습니다. 미국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정책을 추진할 뿐입니다. 경제적으로 인프라, 에너지, 방위 산업 투자 등으로 인해 단기 호황이 있을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가치 동맹이 퇴조하고 각자도생하는 국제 질서가 들어설 것입니다.

한마디로, 메시아 콤플렉스에 빠진 세계 최강대국의 새 지도자는 구원과 해방에 거래를 접목합니다. 좋게 말해 온화하고 나쁘게 말해 무르다는 평가를 받는 바이든이 메시아적 자기 인식을 가졌다면 인류애로 똘똘 뭉쳐 국제 사회가 그야말로 ‘위 아 더 월드’가 될 수 있었겠죠. 트럼프는 다릅니다. 트럼프가 줄 수 있는 구원은 선택적 구원입니다. 누군가는 천국을, 누군가는 지옥을 맛볼 수밖에 없습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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