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틱톡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12시간 만에 부활했습니다. 현지 시각 19일부터 발효된 ‘틱톡 금지법’에 따라 서비스를 중단했던 틱톡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부활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금지법 시행을 75일간 유예했죠. 틱톡은 드디어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틱톡은 오히려 싸울 기회를 잃고 트럼프의 꽃놀이패 중 하나로 전락하게 됐습니다.
틱톡은 재미있다
한 때 우리는 페이스북에서 친구를 만들고, 가족과 소통했습니다. 동네에서 마주친들 인사 한마디 나눌 일 없던 사람들과 농담을 나누고 토론을 벌이는 공간이었죠.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소셜 네트워크는 사라지고 소셜 미디어만 남았습니다.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 바로 틱톡입니다.
틱톡은 쌍방 소통의 매체가 아닙니다. 나의 취향에 꼭 맞는 짧은 동영상이 끊임없이 재생되는 일방 매체입니다. 맥락이나 편성 시간에도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나의 취향을 학습한 알고리즘이 15초 안에 즐거워질 수 있는 영상을 끝없이 보여줍니다. 틱톡의 강점입니다. 강력한 알고리즘 말입니다.
이런 TV를 상상해 보죠. AI가 알아서 내가 좋아하는 배우를 주인공으로 하여 내가 좋아하는 줄거리로 드라마를 만들어 보여주는 TV 말입니다. 중간중간 배경 설명이나 복선을 깔기 위한 장면이 삽입되는 것도 아니고 짜릿하고 즐거운 장면만 이어지는 드라마입니다. 시청자 개개인의 취향에 맞춘 드라마를 원할 때마다 원하는 분량만큼 보여줍니다. 이런 TV가 바로 틱톡입니다. 영상을 ‘생성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골라서’ 보여준다는 점이 다를 뿐이죠. 틱톡의 알고리즘은 AI이며, 이 AI 기술이야말로 틱톡이 재미있는 이유입니다.
TikTok Algo 101
물론, 오픈AI나 앤트로픽의 적수가 틱톡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틱톡의 AI는 일종의 ‘강화 학습’ 모델입니다. 가장 유명한 모델로는 알파고를 들 수 있겠네요. 주어진 환경 안에서 입력값에 따른 최적의 출력값을 내도록 훈련된 모델입니다. 즉, 현재의 바둑판 상황에 따라 상대방이 둔 수를 읽어내고, 그에 가장 합리적인 수를 두는 식입니다. 즉, ‘생성형 AI’와는 카테고리가 다르다는 얘깁니다.
틱톡의 AI는 사용자의 데이터를 읽어 최적의 콘텐츠를 제시합니다. 문제는 사용자가 원하는 동영상이 아니라 사용자가 오래 시청하는 동영상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즉, 내가 건강 관련 콘텐츠를 원할지라도 폭력적인 콘텐츠에 더 오래 눈길이 머문다면, 틱톡은 내게 사고 장면을 계속해서 보여줍니다. 2021년에 유출된 틱톡의 내부 문건, 〈
TikTok Algo 101〉에 따르면, 틱톡 알고리즘의 핵심은 사용자의 재방문율과 사용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모든 소셜 미디어처럼 틱톡은 사용자의 데이터를 수집합니다.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용자가 보고, 듣고, 믿고, 꿈꾸는 것을 결정해 줍니다. 이 모든 과정을 지배하는 알고리즘을 매우 잘 만들었기 때문에 틱톡은 미국인을 가장 잘 아는 플랫폼이 되었고, 미국인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플랫폼이 되었죠. 문제는 이 알고리즘이 중국 기업, ‘바이트 댄스’의 손아귀에 있다는 점입니다.
틱톡의 영향력
틱톡 금지법이 발의되고 통과된 이유입니다. 중국이 미국 사용자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 콘텐츠 알고리즘을 통해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틱톡은 금지되어야 하는 플랫폼이 되었습니다. 미국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수정 헌법 제1조, ‘표현의 자유’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정말 틱톡은 그 정도의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틱톡의 시장 가치로 가늠해 볼 수는 있습니다. 세계 최대의 미디어 구매 대행사인 GroupM의 분석에 따르면, 틱톡이 미국에서 실제로 금지될 경우 메타와 유튜브가 150억 달러 이상을 나눠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실제로 틱톡은 2023년 미국에서만 160억 달러의 연 매출을 기록했죠. 틱톡의 현재 영향력을 돈으로 환산하자면 22조 원가량 된다는 얘깁니다.
일론 머스크도, 퍼플렉시티도, 오라클도 틱톡에 욕심을 내는 까닭입니다. 생성형 AI에 베팅하고 있는 이들 입장에서 미국을 좌지우지하는 알고리즘은 유용한 ‘아이템’으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퍼플렉시티의 AI 검색 기능에 틱톡의 추천 알고리즘이 결합한다면, 구글 검색의 아성을 훨씬 더 효과적으로 무너트릴 수 있을 테니까요. 지금 당장 틱톡이 벌어들이고 있는 막대한 광고비는 덤이겠고요.
틱톡의 진짜 주인
다만, 틱톡은 사고 싶다고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중국 정부가 못 팔게 했으니까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야망도 트럼프 대통령 못지않지요. 틱톡이라는 플랫폼이 가진 잠재력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틱톡의 모회사인 바이트댄스는 2025년 AI 인프라에 12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할 계획입니다. 2023년 미국의 AI 투자액이 874억 달러 정도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입니다. 바이트댄스는 투자액의 60퍼센트를 화웨이나 캠브리콘 같은 중국 반도체 업체에 쏟아부을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