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누구인가

bkjn review

우리가 어떤 세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 세대의 삶을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노인은 누구인가

2025년 2월 4일

2025년은 여러모로 변화의 시기가 될 전망입니다. ‘노인’의 정의도 달라질 것 같습니다.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2025년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바로 ‘노인 기준 연령을 높이는 사회적 논의 본격 시작’입니다.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지만, 정부가 공식적으로 이 문제에 손을 대겠다고 나선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입니다. 정치권에서 노인 연령 상향 문제는 몹시 까다로운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노인의 정의

65세라는 노인의 기준은 1981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노인복지법’을 제정하면서 경로우대 대상을 65세부터로 정했습니다. 하지만, 이 숫자가 등장한 것은 훨씬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889년 독일이 도입한 세계 최초의 공적 노령연금 제도입니다. 수급 연령이 70세였는데, 1916년에 이를 손보면서 65세로 하향되었습니다. 즉, 65세부터 노인이라는 공식은 1916년 독일의 상황을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1916년 독일의 65세와 2025년 한국의 65세는 다릅니다. 사실, 요즘 50대나 60대에게 ‘노인’이라는 호칭은 어딘가 어색하지요. 실제로 정부 조사에 따르면 스스로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연령’은 평균 71.6세입니다. 그런데 법적으로는 65세부터 노인입니다. 법과 인식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작업인데, 노인 연령 상향 논의가 논쟁이 되는 까닭이 있습니다. 바로 돈 때문입니다.

법이 정한 경로우대의 연령, 65세를 전후로 국가의 노인복지 사업을 경험하게 됩니다. 63세에는 국민연금 수급이 시작되고, 65세부터는 지하철 무임승차 등의 경로우대제, 기초연금,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노인 일자리 사업, 행복주택 등의 대상이 됩니다. 즉, 기준을 70세로 옮기면 65세에서 69세에게 지원되던 복지를 아낄 수 있다는 얘깁니다.

그러면 얼마나 아낄 수 있을까요. 지하철 무임승차만 놓고 어림짐작해 보죠. 2024년도 기준으로 서울 지하철 경로 무임승차 인원은 2억 3262만 명이었습니다. 이 중 64세에서 69세까지의 이용 비율은 약 57퍼센트 정도로 추정됩니다.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2003억 원이죠. 노인복지 사업 전체로 이 계산을 확장하면 국가 재정 계획 전체를 다시 짜야 할 규모가 될 겁니다. 바꿔 말하면, 이런 혜택을 기대했던 사람들이 최대 5년을 더 기다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상대적 박탈감이 되고, 정치인으로서는 표 이탈을 우려할 수밖에 없겠죠.

새로운 노인

미루고 또 미룬 이유입니다. 이번 선거 다음으로, 다음 대선 이후로 말입니다. 하지만 더는 미루기 힘듭니다. 노인의 기준을 다시 세우는 문제를 못 본 척하는 사이 우리는 이미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제대로 들여다보고 결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논의 이전에 우리는 노인이란 어떤 존재인지에 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까지 60세를 축하하는 ‘환갑 잔치’는 집안의, 그리고 마을의 큰 행사였습니다. 그만큼 ‘장수’는 드문 일이었고, 그래서 축하할 일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60세는 인생에 별일이 없으면 맞이하게 될 일입니다. 노환과는 거리가 먼 나이입니다.

의학적으로 노인을 정의해 보죠. 실제로 기대여명이 15년 남은 시점을 노인이라 한다면, 1991년 기준으로는 65세가 노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수명은 점점 늘어나고 있죠. 2030년이 되면 평균 기대여명은 90세를 넘길 것으로 예측됩니다. 그렇게 되면 77세는 되어야 노인이라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사회경제적으로는 어떨까요. 조금 복잡합니다. 노인을 베이비 붐 세대와 그 이전 세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954년 이전에 태어난 세대는 한국전쟁을 경험했습니다. 아동기나 청소년기에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후 그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전쟁이 남긴 사회적, 경제적 상처를 그대로 흡수하며 자랐습니다. 기본적인 식량이 부족했고, 강한 반공 교육을 경험했죠. 그나마 중등교육은 특권층의 것이었습니다. 2008년 집계에서 고졸 학력을 가진 노인은 전체의 10퍼센트 정도였습니다.

이들이 겪은 전쟁은 어떠한 흔적을 남겼습니다. 전쟁 상황이 집중되었던 중부지방과 상대적으로 영향이 덜 했던 지역을 비교하여 추적 연구한 결과, 전쟁을 더 참혹하게 겪은 사람들이 우울증이나 공포감, 불면증, 외로움 등을 경험할 확률이 높았습니다. 또, 어린 시절 전쟁을 더 직접적으로, 잔인하게 경험한 사람일수록 정치적으로도 보수화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세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 세대의 삶을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자녀는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특히 최근 노인 인구에 진입한 베이비부머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954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인구를 우리나라의 1차 베이비부머로 분류합니다. 이들은 1930~40년대생 부모가 70년대와 80년대에 이룬 부를 상속 받는 세대지요. 고도성장기였습니다. 근로소득으로도 유의미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도시에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하면 중산층의 꿈에도 가까워졌죠. 부모 세대가 빈곤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던 터라 교육 수준도 달라졌습니다. 2023년 집계에서는 고졸 학력 노인의 비율이 31퍼센트로 증가했습니다.
80년대에 20대를 보낸 1차 베이비부머는 부모 세대와 모든 면에서 다른 세계를 경험했습니다. 출처: KBS옛날티비
새로운 노인에게 필요한 것

그런데 우리나라 노인복지 사업을 잘 살펴보면 ‘빈곤’을 구제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늘 1위를 사수하는 항목 중에 노인 빈곤율이 포함됩니다. 노인 인구 가운데 중위소득 50퍼센트 이하인 사람의 비율을 뜻합니다. 2023년 노인 빈곤율은 38.2 퍼센트로, 전체 인구의 14.9 퍼센트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입니다. OECD 회원국 평균은 14퍼센트(2020년 기준) 수준이고요.

유럽 국가들과 비교하면 우리는 공적 연금의 출발이 늦었습니다. 소득 보전율도 낮은 편이지요. 게다가 2033년부터 국민연금 수급 연령이 65세로 변경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60세 정년 이후 5년간의 소득 크레바스(소득 공백)도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국민연금 말고도 기초연금 같은 ‘지원’ 성격의 연금이 필요합니다. 일자리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업의 정칙 명칭은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입니다. 즉, 정년 이후에도 일하는 삶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 노인의 빈곤을 완화하기 위해 지원금을 쥐여주는 쪽으로 설계된 겁니다.

하루 세 시간, 한 달에 열흘 일하면 29만 원을 받습니다. 공익형 노인 일자리의 근로 조건입니다. 환경 미화나 스쿨존 안전관리지도, 저소득 독거노인 도시락 배달 등의 업무를 합니다. 정부는 이런 일자리의 질을 높이기보다는 수를 늘리는 데에 집중해 왔습니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빈곤 노인에게 생활비 보조를 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렇다 보니 노인에게 금전 지원을 하기 위해 ‘하나 마나 한 노동’을 붙였다는 시선도 있습니다. 노인의 일이 평가 절하당하는 분위기에 일조했죠.

예전보다 더 교육받았고 더 건강한 노인들은 다른 사회를 원합니다. 경험 많은 숙련자로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사회에서 더 오래 쓸모 있기를 원하죠. 노인이 무력하고 지원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존중받으며 사회를 함께 이끌어 나가는 ‘주체’가 되고자 합니다. 결국 노인 빈곤 문제, 정년 연장 논의, 노인 연령 상향 논의, 노인복지 정책 등이 한 테이블에서 같이 재정립될 필요가 있습니다.

새로운 사회를 위한 설계도

청년 세대가 흙수저와 금수저로 갈리고 20대와 30대의 유행이 다른 것처럼, 노인은 이제 우리 사회의 다수이며 다양한 특성을 가진 개인이 공존하는 집단입니다. 1960년생을 노인으로 정의할지의 문제보다 1960년생이 어떤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 이를 위해 어떤 제도를 만들 것인지의 문제가 중요합니다. 그래야 1960년생의 1985년생 자식 세대의 삶이 여유로워지고, 2015년생 손주 세대의 미래에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노인연령 상향 논의는 아주 작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어쩌면 연령이 아닌 전혀 다른 기준으로 급여와 연금, 복지 체계에 관해 생각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역할과 욕구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체계의 수립입니다. 우리가 조정해야 할 것은 숫자 한두 자리가 아니라, 이 사회의 패러다임 전체입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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