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파이의 취향

bkjn review

우리가 어떤 음악과 ‘조우’할 기회가 여전히 존재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스포티파이의 취향

2025년 2월 5일

스포티파이가 2024년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연간 흑자는 창사 이래 처음입니다. 의아하게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스포티파이의 유료 가입자는 2억 6300만 명입니다. 2024년 4분기 월간 활성 사용자 수는 6억 7500만 명이고요. 세계 음악 스트리밍 시장 1위를 수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스포티파이는 지금까지 돈을 벌지 못한 겁니다. 음원 스트리밍 시장을 개척하고 수익을 낼 수 있게 되기까지 스포티파이는 정말 많은 실험을 했습니다.

흑자 전환에 가장 크게 기여한 요인은 감원과 가격 인상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노래방 기능이나 퀴즈, 팟캐스트 투자는 물론이고 AI를 도입한 추천 서비스까지 스포티파이가 개척하고 앞서나간 분야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혁신보다 사람을 줄이고 가격을 올리는 정책이 힘을 발휘했다니 좀 허무하긴 하네요. 그런데, 정말 그게 전부일까요?

스포티파이 음모론

스포티파이는 입이 무거운 회사입니다. 수많은 음원 플랫폼 중에서도 단연코 돋보이는 추천 기능과 셀 수 없을 정도로 세분된 ‘마이크로 장르’ 플레이리스트에 숨겨진 비밀에 관해 단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습니다. 스포티파이는 분명, 콘텐츠계의 퀀텀 투자사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이 즐겨 듣던 플레이리스트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듣도 보도 못한 아티스트의 음원이 등장하기 시작한 겁니다.

이를 자세히 들여다본 사람이 있습니다. 뉴욕의 작가 리즈 펠리(Liz Pelly)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상한 경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조금 전 들었던 곡인데 반복해서 재생되는 것 같아 플레이리스트를 살펴보면, 전혀 다른 아티스트의 다른 곡이었다는 겁니다. 들어보면 같은 곡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비슷하고요.

펠리는 스포티파이의 내부 문서, 근무했던 전 직원과의 인터뷰, 슬랙 메시지 등을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스포티파이가 아티스트들에게 불공정 행위를 했다는 의혹을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스웨덴 출신의 20명 정도의 아티스트가 500개 이상의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저비용 음악을 찍어내고 있다는 겁니다. 그걸 스포티파이가 의도적으로 플레이리스트에 포함하고 있고요.

Payola 스캔들

혹시 1950년대 미국 로큰롤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 계실까요? 엘비스 프레슬리, 척 베리, 리틀 리처드 등의 이름을 떠올리셨다면, 맞습니다. 풍요로운 음악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아티스트와 음악을 알릴 방법이 제한적인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레코드를 구입해서 들어보거나 공연장에 가지 않으면 대체 어떤 음악인지 알 도리가 없었죠. 그러니까, 사람들은 계산을 끝낸 다음에서야 자신이 무엇을 구입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음반을 구입하지 않고도 음악을 들어볼 방법이 있었습니다. 바로 라디오입니다. 라디오 전파를 타야 음악을 널리 알릴 수 있었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비리가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페이올라(Payola)’라는 이름의 뇌물이 만연하기 시작한 겁니다. 축음기 모델 ‘빅트롤라(Victrola)’에 돈을 지불(Pay)한다는 합성어였죠. 페이올라를 받아야 방송국 디제이들이 음악을 틀어주는 관행이었습니다.

형태는 다양했습니다. 현금은 기본이고 앨범을 대량으로 건네받아 레코드 상점에 되파는 방법도 있었죠. 또, 음반사의 주식을 받거나 공동 작곡가로 이름을 올려 저작권료를 챙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라디오 DJ들은 음악계에서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돈으로 환전해 이득을 챙겼습니다. 부작용이 심각해졌고, 결국 미국 하원은 1959년부터 청문회를 열어 페이올라 관행을 조사하기에 이릅니다.
앨런 프리드는 미국에 로큰롤이라는 물결을 불러온 장본인으로 꼽힙니다. 그러나 프리드의 전설적인 DJ로서의 위치는 페이올라 스캔들과 함께 무너졌습니다. 출처: Radio Hall of Fame

들리지만, 듣지 않는

당시의 라디오 DJ들이 갖고 있던 권력을, 지금은 누가 갖고 있을까요? 한때는 이문세와 전영혁, 신해철과 유희열 등이 가졌던 그 권력 말입니다. 아무래도 알고리즘일 겁니다. 우리가 무엇을 들을 것인지 결정할 권한은 알고리즘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알고리즘을 만들고, 조정하며 변형하고 개입할 권한이 스포티파이나 애플 뮤직 같은 스트리밍 플랫폼에 있죠.

실제로 음악 레이블은 스포티파이로부터 저작권료를 받지만, 동시에 홍보비도 지출합니다. 이를테면 ‘Indie Rock Now’나 ‘Pop Rising’ 같은 플레이리스트에 자신의 곡을 포함시키는 대가로 스포티파이에 돈을 내는 것이죠. 21세기 페이올라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이것은 엄연히 합법이라는 것이겠죠.

스포티파이는 여기에 멈추지 않았습니다. 정액제 요금을 지불한 구독자들의 청취 패턴을 살펴보니, 어느샌가 사람들은 음악에 귀 기울이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냥 일상의 배경음으로 취향에 맞는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하거나, 셔플 기능을 이용하고 있었던 겁니다. 반복적인 패턴의 노이즈가 끝없이 재생되는 수면 앰비언트 사운드가 얼마나 인기 있는지, 분명 수없이 들었지만 들은 적이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음악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음악 소비가 예전과는 크게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소비되는 음악에까지 비싼 저작권료를 지불할 필요는 없다고, 스포티파이는 생각했던 것일까요? 무난하면서 튀지 않는, 그래서 플레이리스트가 재생 중이라는 사실도 문득 잊을 만한 음악이라면 스포티파이 입장에서는 최고일 겁니다. 저작권료가 저렴하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펠리는 스포티파이가 내부적으로 PCF(Perfect Fit Contents)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비용이 적게 드는 음악을 플레이리스트에 적극적으로 포함시켰다고 주장합니다. 게다가 그런 음악을 생산하는 데에 스포티파이가 관여했다고도 이야기하죠.

히라야마의 테이프

얼마 전 개봉했던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야쿠쇼 코지 役)는 올드팝을 좋아하는 중년의 공중화장실 청소부입니다. 히라야마는 음악을 테이프로 듣죠. 오늘은 어떤 음악을 들을지 신중히 골라 카세트 플레이어에 넣고 버튼을 누릅니다. 히라야마는 자신이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어떤 음악을 듣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순간, 그 음악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문득 찾아온 조카가 스포티파이 이야기를 꺼냅니다. 히라야마의 ‘밴 모리슨’ 카세트테이프를 보며 스포티파이에도 있을지 묻는 것이죠. 히라야마는 스포티파이가 ‘어디에’ 있는지 되묻습니다.
도쿄 시부야의 공공시설 청소부 히라야마는 카세트테이프로 올드 팝을 듣고, 필름 카메라로 나무 사이에 비치는 햇살을 찍는 매일을 살고 있습니다. 출처: 씨네큐브
스포티파이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모두 듣고 있지만, 아무도 듣고 있지 않죠. 히라야마의 테이프는 히라야마의 주머니 속에만 있으되 누군가 그 음악을 듣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옳지 않은 문제는 아닐 겁니다. 시대와 기술이 달라지면 예술의 작동 방식도 달라지는 법이죠. 다만, 우리가 어떤 음악과 ‘조우’할 기회가 여전히 존재하느냐의 문제입니다. 50년대의 페이올라는 뮤지션의 음악이 청취자에게 가 닿을 기회를 박탈했습니다. 음악 산업을 뒤틀었죠. 스포티파이는 어디서든 원하는 음악을 들려줍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요? 누군가는 의심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제가 듣고 싶은 음악을 들어 볼 작정입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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