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bye, Golden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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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값의 추이를 잘 들여다보면 신호가 보입니다. 달러의 황금기가 저물 수 있다는 신호입니다.

Goodbye, Golden Era!

2025년 2월 10일

아주 먼 옛날, 지구가 생겨났습니다. 펄펄 끓는 용암 상태의 행성이었죠. 이 행성은 천천히 식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더 무거운 물질들은 핵으로 깊이 가라앉았습니다. 금도 그중 하나입니다. 꽤 무거운 금속에 속하거든요. 모든 금이 가라앉은 것은 아닙니다. 아주 조금은 지각에 남았죠. 여기에 지구가 다 식어서 지표면이 단단해진 이후에는 우주에서 날아온 금이 지각에 남았습니다. 예를 들면 소행성 같은 것들에 섞여 지구와 충돌한 것이죠.

금은 귀한 금속입니다. 인류의 욕망을 자극하죠. 노랗고 반짝이는데 조금만 열을 가하면 예쁜 모양으로 가공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흔한 것도 아닙니다. 힘이 있는 자에게만 허락된 금속이었죠. 권력자가 금으로 치장하면 할수록 금의 가치는 더욱 높아졌습니다. 계급의 상징을 품었으니까요. 귀한 금속 중에서도 더욱 귀한 금속이 되었죠.

그래서 인류는 쉬지 않고 금을 캤습니다. 무려 4000년 동안 말입니다. 지금까지 약 18만 7000 톤이 채굴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모자란 것 같습니다. 금값은 장기적으로 보면 꾸준히 우상향하고 있거든요. 1999년 금의 국제 가격은 1온스당 245달러였습니다. 지난 2025년 2월 4일, 2873.6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11배 넘게 가격이 뛴 겁니다. 그냥 물가 상승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같은 기간 나스닥 지수는 4배 상승했습니다. 금은 갈수록 비싸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 금값은 그냥 오르는 수준이 아니라 ‘급등’하고 있죠. 올해 들어서만 국내 금값은 7퍼센트 포인트 넘게 상승했습니다. 한 달 새 말입니다. 그 결과 돌반지 60만 원 시대가 도래했다며 떠들썩합니다. 새로운 투자 상품으로 금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있고요. 그런데 금값의 추이를 잘 들여다보면 신호가 보입니다. 달러의 황금기가 저물 수 있다는 신호입니다.

미국 정부의 폰지 사기

금은 돈이었습니다. 우리의 생각만큼 ‘금화’라는 것이 널리 유통되었던 것은 아니지만, 녹이 슬지 않는 높은 안정성 덕분에 화폐로서의 기능에 딱 알맞았죠.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세계의 통화는 여전히 금이었습니다. 금화로 장을 봤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금 1온스에 35달러라는 규칙하에 전 세계의 경제가 움직였습니다. ‘금본위제도’입니다.

미국을 믿든, 믿지 않든 35달러를 내면 미국 정부가 금 1온스를 줍니다. 그렇다면 달러라는 화폐를 금 대신 세계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죠. 금은 누가 뭐래도 만질 수 있고, 팔 수 있으며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는 ‘실물’이니까요. 금본위제도라는 체제에 달러는 국제 통화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미국 정부가 ‘급전’이 필요해진 겁니다. 베트남 전쟁 때문이었습니다. 돈이 필요해지자 미국 정부는 달러를 찍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윤전기를 돌려 필요한 재원을 마련한 겁니다.

금본위제의 기본 핵심은 다음의 조건입니다.

미국 달러의 총량 = 미국 정부의 금 보유량

이 공식이 깨지면 금본위제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달러의 가치와 금의 가치가 연동되려면 누가 얼마의 달러를 가져가든 그만큼의 금을 미국 정부가 내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걸 알면서도 전쟁 비용을 대느라 미국 정부는 달러를 계속 찍어냈습니다. 이 세계에 달러가 갑자기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금은 갑자기 많아질 수가 없습니다. 채굴의 속도에는 한계가 있으니 말입니다. 결국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 등 각국 정부가 나서 미국에 금을 내놓으라고, 금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미국의 대답은 금본위제 포기였습니다.

1971, 금의 탄생

그게 1971년 8월 15일입니다. 이날이야말로 금이 다시 태어난 날이라 할 수 있죠. 이 순간부터 금은 돈이 아니라 ‘자산’이 되었거든요. 달러화와 금값의 줄다리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금이 달러로부터 자유로워진 순간부터 둘은 라이벌이 되었습니다. 달러의 힘이 세지면 금값이 떨어지고, 달러의 힘이 약해지면 금값이 오르는 현상이 반복되었죠. 당연한 일입니다. 강달러라는 얘기는 미국 금리가 높다는 뜻입니다. 금을 사는 것보다 달러를 들고 있는 것이 이득이죠. 약달러는 그 반대입니다. 금을 사야 이득입니다.

패권의 문제로 봐도 그렇습니다. 전 세계가 달러화로 무역하는 까닭은 ‘패트로 달러’ 체제 때문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의 산유국들은 원유 판매 대금을 미국의 달러화로 받습니다. 이상한 일이죠. 자국 통화로 받으면 여러모로 편리하고 경제적 영향력도 강력해질 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70년대 당시 미국이 필요했습니다. 미국의 군사력이 필요했고, 기름 팔아 번 돈을 투자할 안전한 투자처도 필요했습니다. 미국 국채 같은 것 말입니다.
사실, 미국은 금값을 늘 경계해 왔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1933년, 대공황에 따른 은행 줄도산을 막기 위해 개인의 금 소유, 매매 등을 전면 금지한 바 있죠. 출처: U.S. Money Reserve
이렇게 달러화는 석유와 엮이면서 기축 통화의 지위를 다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금과 석유는 다릅니다. 미국 달러화를 들고 간다고 미국 정부가 은행 금고에서 석유를 내어주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미국은 달러의 경쟁자가 될 수 있는 금을 여전히 경계합니다. 남극에서 북극까지, 전 지구가 그 가치를 무조건 인정하는 화폐는 이 둘뿐이니까요. 금과 달러의 가치는 시소를 타듯 서로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이 둘 사이의 관계에 뭔가 이상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2019, 세계화의 종말

시장이 본격적으로 술렁이기 시작한 것은 2019년경입니다. 달러가 강해져도 금값이 버티는 현상이 두드려졌습니다. 공식이 깨진 겁니다. 팬데믹에 따른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금의 강세가 계속되고 있으니까요.

그 이유가 드러난 것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였습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러시아를 향한 ‘제재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러시아가 들고 있던 달러 자산이 모두 동결된 겁니다. 규모가 무려 3000억 달러입니다. 러시아로서는 위급한 상황이라도 생기면 쓰려고 열심히 저금해 뒀는데, 막상 돈을 써야 할 때가 오자 은행이 돈을 내어주지 않는 일이 발생한 셈이죠.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달러화 자산 동결이라는 제재 수단은 달러 패권 때문에 가능하지요. 그런데 거꾸로 이 제재가 달러 패권을 흔듭니다. 달러로 재산을 모아둬도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목격하게 되니 말입니다. 전쟁 이후 각국 중앙은행은 대놓고 금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2021년과 2022년 사이에만 1136톤을 사들였죠. 1950년 이후 최대치입니다. 물론, 그럴 수 있는 나라들은 그랬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미국의 제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이미 낌새를 눈치챈 국가를 중심으로 달러보다 금을 쟁여두자는 움직임은 이미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가 자유롭게 무역하며 저물가 시대를 즐기던 때에는 달러를 의심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을 견제할 만한 세력들이 등장하면서 미국은 장벽을 세우기 시작했죠. 중국 앞에, 러시아 앞에는 아주 두껍고 높은 벽을 세웠습니다. 관세의 방어선을 세우고 제재를 통해 피 흘리지 않는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제 미국 눈 밖에 나면 달러가 휴지 조각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우리도 이 전쟁에 휘말려 있습니다. 지난 2019년, 미국이 이란을 제재하면서 한국의 우리은행에 60억 달러 규모의 원유 수출 대금이 묶여버렸습니다. 이 돈이 이란에 지급되기까지는 4년이 걸렸죠. 이란은 우리은행을 상대로 이 동결 자금 관련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했습니다.

금의 죗값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제재 전쟁은 더욱 독해질 겁니다. 그렇다면 각국의 중앙은행은 금을 더욱 사들이겠죠. 게다가 트럼프는 금리를 낮춰야 한다고 연준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금의 힘이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렇다 보니 금을 캐고자 하는 욕망도 집요해지고 있습니다. 버려지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등에서 금을 캐내는 ‘도시 광산’ 개발 같은 것 말입니다. 전자 기판 1톤당 150그램 정도의 금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금을 향한 욕망이 잔인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남미를 중심으로 불법 금광 개발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범죄 조직이 개입한 불법 광산에서, 금광 노동자들은 독한 화학 물질과 더 위험한 환경을 감당해야 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불법 채굴을 근절하기 위해 정부가 여러 광산을 봉쇄하기도 했습니다. 광산에 갇혔던 광부들이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밖으로 나오면 체포했죠. 하지만 그들은 먹고살 방법이 없어 더 이상 파 내려갈 수 없는 광산으로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광산 밖으로 나온다고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결국, 한 광산에서는 500여 명이 갇혀 있다가 100명 넘게 숨지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앞으로도 금을 얻기 위해 누군가는 유독 물질을 들이마시고, 무너지는 갱도 안으로 발을 내디딜 겁니다. 달러 패권이 흔들릴수록 더욱 그렇겠지요. 이 새로운 시대에 개인도, 국가도 준비가 필요합니다. 다만, 역사는 예상치 못한 등장에 방향을 바꾸곤 합니다. 달러와 금의 힘겨루기에도 변수가 등장할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면 암호 화폐가 진짜 화폐의 기능을 할 수 있게 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겠죠.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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