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가 없습니다. 위기 수준입니다. 얼마나 심각한지는 숫자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올 1월의 구인배수가 0.28을 기록했습니다. 비어 있는 일자리의 개수를 구직자 수로 나눈 값입니다. 쉽게 말해 일자리 하나에 3~4명이 줄을 서 있는 상황이죠.
글로벌 금융 위기로 전 세계가 휘청이던 2009년 1월의 구인배수는 0.29였습니다. 상황이 그때보다도 안 좋다는 얘깁니다. 역대 최저치는 IMF 금융 위기로 고용 시장이 완전히 부서졌던 1997년 1월의 수치는 0.23이었습니다.
구직난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이 많아졌거나, 신규 채용이 줄어들었거나겠죠. 현재는 후자입니다. 비어 있는 일자리가 전년 같은 달 대비 무려 42.7퍼센트 감소했습니다. 1997년 통계가 시작된 이래 가장 큰 감소 폭입니다. 코로나가 덮쳐 왔던 2020년과 2021년 1월에도 각각 7.7퍼센트, 11.2퍼센트 감소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례적인 상황이 분명합니다.
모두에게 어려운 시기입니다. 하지만 특히 첫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층에게는 더욱 잔인한 시기입니다. 일생을 들여 한 칸씩 쌓아 나갈 사다리의 첫 디딤대부터 금이 간 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자리는 없다
어떤 일자리가 줄어들었을까요. 탄탄하고 안정적인 자리 위주로 줄었습니다. 300인 이상의 대형 사업체가 사람을 뽑지 않는 겁니다. 주로 대기업이나 중견 기업이 여기에 속합니다. 2022년에는 18만 2000명이 대형 기업에 취업했지만, 이듬해인 2023년에는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작년엔 이마저도 줄어들어 5만 8000명으로 떨어졌습니다.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요즘 북저널리즘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변화가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전해 드리고 있습니다. 국내외 정치는 물론이고 지정학적 리스크, 경제와 기술 분야에서도 어제와 오늘의 상황이 다릅니다. 기업으로서는 채용을 섣불리 늘리기 어렵습니다. 다음 달에 더 생산해야 하니, 내년까지 미국 지사를 내야 하니 사람이 더 필요하다는 결정을 할 수 없는 겁니다.
이런 상황은 사회에 처음 발을 내딛는 청년 층에 더욱 불리합니다. 경기가 좋아 미래를 보며 기업을 경영할 수 있을 때는 신입 사원을 채용해 우리 회사에 꼭 필요한 인재로 키워 나가겠다는 정책이 합리적입니다. 1~2년간의 투자로 고급 인적 자원을 확보할 수 있죠.
하지만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는 정반대입니다. 신입 사원은 일종의 ‘비용’이기 때문입니다. 업무 숙련도는 낮은데, 교육에 돈이 들어가죠. 딱히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사수가 신입 사원에게 쏟는 시간과 에너지, 낮은 숙련도로 발생하는 조직의 비효율 등을 기업이 감당해야 하는 겁니다. 실제로 경력직 채용 비중은 2009년 17.3퍼센트에서 2021년 37.6퍼센트로 증가했습니다.
20대에게는 더 불리하다
이렇게 되니 경력이 없는 청년이 취업에 성공할 확률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이 경력 없는 구직자가 근로계약 기간 1년 이상인 상용직으로 한 달 이내에 취업에 성공할 확률을
계산해 봤습니다. 2006년에서 2010년 사이 평균 1.8퍼센트였던 것이 2017년에서 2021년 사이에는 평균 1.4퍼센트로 떨어졌습니다. 같은 기간 경력이 있는 구직자의 성공률은 2.7퍼센트로, 두 배 가까운 수준입니다.
그 결과 20대는 ‘쉬고’ 30대부터 본격적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는 경우가 늘었습니다. 20대 동안에는 임시직 등을 전전하며 짧게나마 경력을 쌓다가 30대가 되어서 비교적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는 겁니다. 실제로 20대보다 30대의 상용직 고용률이 17퍼센트 포인트 더 높습니다. 이 중 7퍼센트 포인트가 경력직을 선호하는 채용 시장의 분위기 때문이라는 것이 한국은행의 분석입니다.
이렇게 되면 청년 세대는 더욱 가난해집니다.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시점이 늦어지면서 생애 총취업 기간이 2년 정도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비정규직 일자리라도 마다하지 말고, 일단 일을 시작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비정규직 근로자 중 1년 후에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비율은 10퍼센트입니다. 정규직 근로자가 1년 후에도 정규직인 경우는 87퍼센트인데 말이죠.
미래는 더 위험하다
일하는 20대 10명 중 4명은
비정규직입니다.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이직한 20~34세 청년들의 절반은 경력이 있어도
파견직으로 일하게 되고요. 불안정한 일자리는 소득 안정성도 떨어트리지만, 업무 숙련도 또한 떨어트립니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저숙련 노동자의 위치를 벗어나기 어려워지는 겁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변수는 AI입니다. 정확히는 AI 노출도(exposure)가 높으면서 AI 보완도(complementarity)는 낮은 직무의 경우 사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외과 의사나 판사의 경우 AI가 활용되기 쉬운 분야입니다. 환자의 병명을 진단하거나, 방대한 법률 데이터를 명료하게 정리하는 일은 AI가 쉽게 할 수 있습니다. AI 노출도가 높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과 인생을 좌지우지할 판단을 AI에 맡기는 일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죠. 그리고 인간은 책임 소재 때문에라도 AI에 그 권한을 넘기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AI가 인간을 대체하기 힘들기 때문에 AI 보완도 또한 높습니다.
이번에는 일반 사무직 중에서도 반복적인 업무가 많은 경우를 생각해 보죠. 매뉴얼에 따라 처리하기만 하면 되고, 인간의 판단과 그에 따른 책임은 그다지 요구되지 않는 업무 말입니다. 이 경우, AI 노출도가 높은데 보완도는 낮습니다. 즉, 전문가 집단이나 고숙련 노동자는 AI에 노출되어도 이를 활용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데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반면, 저숙련 노동자는 AI로 인해 노동의 가치가 평가 절하되거나 일자리를 잃을 위험도 커집니다.
지금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은 일자리를 구하기 힘듭니다. 구인 건수도 적을뿐더러 경력직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정규직은커녕 계약 기간 1년 이상의 상용직으로 일하기도 힘드니 시간제 일자리를 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제 다음이 정규직이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시간제 다음은 파견직, 비정규직 다음은 또다시 비정규직입니다. 그래서 경력은 쌓여도 숙련도는 쌓이지 않습니다. 결국, 이들의 업무 중 많은 경우가 AI에 대체될 위험에 놓이게 됩니다. 구인배수 0.28은 이렇게 잔인한 숫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