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의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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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미국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테크 엘리트가 그린 설계도대로 사회를 재구성해도 될 것인가가 연구 주제입니다.

일론 머스크의 쿠데타

2025년 2월 12일

예를 들어,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가정해 보죠. 군용 카모플라쥬 도색을 한 테슬라의 사이버트럭 몇십 대가 워싱턴 DC의 거리를 달리는 겁니다. 무장한 젊은이들이 차량에서 뛰어내려 각 정부 부처를 장악합니다. 이 장면을 누군가 목격했다면 이야기했을 겁니다. ‘쿠데타’라고 말입니다.

예일대학교의 티머시 스나이더 교수는 지금 일론 머스크가 정부효율부(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 DOGE·도지)를 통해 벌이고 있는 일들을 지켜보며 쿠데타를 떠올렸습니다. 지금까지의 쿠데타는 물리적으로 발생했죠. 권력을 품고 있는 공간을 점령하고, 몰아내고, 장악했습니다. 지난 2021년의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 같은 것 말입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양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공간 대신 전산 시스템을 장악하는 쪽이 훨씬 강력하죠. 스나이더 교수는 지금 이런 방식으로 쿠데타가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머스크의 쥐

지금 워싱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일종의 세대 충돌, 혹은 문화 충돌에 가깝습니다. 팀 A는 연방 공무원입니다. 시니어급으로, 중장년이 많습니다. 스스로를 행정 전문가라 생각하죠. 팀 B는 테크 엘리트입니다. 스페이스X나 뉴럴링크 등에서 개발자 등으로 일하며 머스크의 인정을 받은 20대의 젊은 수재입니다. 이들은 서로를 ‘공룡(dinosaurs)’과 ‘머스크 쥐(Muskrats)’로 멸칭합니다.

중장년의 공무원이 20대 개발자에게 자신의 팀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지, 왜 직원들을 해고하면 안 되는지를 열심히 설명하는 풍경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청년들이 도지의 핵심 인력이기 때문입니다. 정부 전산망 곳곳에 접속해 효율을 높일 방법이 없는지 검토하고 있습니다. 행정 부서의 효율을 높이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사람을 자르고 팀을 없애면 예산 항목이 줄어드는 겁니다.

20세기에는 팀 A가 당연히 권력자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 역학 관계에 전복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부 권력이 기술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 권력이 정부를 통제합니다. 21세기에는 영토나 무기 같은 것보다는 디지털의 권한이 힘의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디지털과 데이터, 접근성이 권력입니다. 누군가에게는 통쾌한 변화일 수 있겠지만,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분노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스나이더 교수처럼 말입니다.

영리한 선택

변화는 반발을 부릅니다. 반발이 강할수록 도지의 쿠데타는 실패한 쿠데타로 남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래서 머스크는 첫 번째 타깃을 심사숙고해 정했습니다. 미국 국제개발처(USAID)입니다. 공적개발원조(ODA) 기구로, 우리나라의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과 유사합니다.

USAID는 1960년대 설립됐습니다. 2023년 기준으로 연간 약 650억 달러 규모의 해외 원조를 실행했습니다. 미국은 해외 원조의 약 40퍼센트를 담당해 왔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원조 사업 대부분을 맡아 실행하는 곳이 USAID입니다.

대표적으로 2003년 시작된 ‘대통령 긴급계획(Pepfar)’을 들 수 있습니다. 흔히 에이즈로 알려진 HIV 퇴치를 위한 지원 사업입니다. 아프리카와 개발도상국 환자의 치료를 지원해, 지금까지 2500만 명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미국의 ‘선한 영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사례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업이 내 삶을 바꿨다고 체감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 아프리카 어딘가에 쏟을 돈을 아껴 내 실업 급여를 올려줬으면 하고 바랄 수도 있겠죠.

이것이 USAID가 타깃이 된 이유입니다. 해외에서 좋은 일을 한다고 하는데, 내 세금을 어떻게 쓰는지 체감할 일은 없습니다. 좋은데 썼다 하니 그런 줄 안 것이죠. 그래서 이들의 지출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면 의심에 쉽게 불이 붙습니다. 예를 들어, USAID가 진보 성향의 특정 언론에 820만 달러를 지원했다는 식의 주장 말입니다.
미국에서는 지난 5일,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50501’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50개의 주에서 50개의 시위를 같은 날 벌이자는 뜻이다. 시위대의 분노는 일론 머스크를 향했다. “아무도 일론 머스크를 선출하지 않았다”는 푯말이 넘쳤다. 출처: euronews
가짜뉴스였습니다. 언급된 언론사는 정치 전문 매체인 〈폴리티코〉입니다. 820만 달러가 지급된 것은 맞지만, 지급의 주체는 미국 정부 전체입니다. 정치 분야 심층 리포트 등을 제공하는 Pro 요금제 구독료로 보입니다. 200만 명이 넘는 연방 정부의 공무원 숫자를 생각하면 이상한 금액은 아니죠. 실제로 USAID가 〈폴리티코〉에 지불한 금액은 2만 4000달러입니다.

하지만, 이 소식은 일론 머스크가 X에 퍼 나른 이후 삽시간에 퍼져나갔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리는 줄 알았던 원조 기구가 특정 언론사에 돈을 퍼줬다니, 괘씸합니다. USAID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그럴듯해집니다.

그 결과, 트럼프 2기가 시작된 지 단 2주 만에 USAID는 거의 해체되었습니다. USAID에서 근무하는 만여 명의 직원이 강제 휴가에 돌입했습니다. USAID의 모든 지급이 막혔습니다. 전산 시스템도 닫혔습니다. 여론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누가 죽는가

도지의 계획에 따르면, USAID는 미 국무부 산하의 부서로 흡수되어 290명만 남겨질 예정입니다. 사실상 문을 닫게 되는 겁니다. 국무부는 정부의 지출이 다음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할 것이라 밝혔습니다. “미국을 더 안전하게 만드는가? 미국을 더 강하게 만드는가? 미국을 더 번영하게 만드는가?”

‘해외 어딘가의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는’ 시혜적인 사업이라면 조건을 단 하나도 만족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닙니다. 해외 원조는 안보의 영역이며 경제의 영역입니다. 국익과 직결되는 사업입니다.

시리아 북동부에 위치한 알 홀 수용소에는 한 때 IS(이슬람 국가)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사람들과 가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전 세계를 테러 공포에 몰아넣었지만, 이제는 잊혀졌죠. 이 곳의 운영과 관리를 지원하는 데에 USAID의 자금이 사용되었습니다. 구호 활동가들의 노력에도 이 곳에서는 아이들이 용병으로 팔려나가고 IS의 사상교육이 계속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USAID가 갑자기 철수하면서 이 곳은 사실상 IS 잔재들의 손에 완전히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새해 첫날, 뉴올리언스에서 군중을 향해 트럭이 돌진해 14명이 사망했습니다. 퇴역 군인이 몰았던 그 트럭에서는 IS를 상징하는 깃발이 발견되었죠. 시리아 어딘가를 지원하는 일은 뉴올리언스의 새해 첫 날이 안전한지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HIV 퇴치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문가들은 USAID의 지원이 끊기면서 보균자들이 갑자기 약을 투여받을 수 없게 되었다고 우려합니다. 이렇게 되면 치료제에 내성이 생긴 변종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수많은 아이들이 HIV에 무방비로 노출될 테고요. HIV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아이들은 인신매매되어 소년병이 되거나 지역의 갱단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을 겪으며 감염병 재난 앞에 국경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뻐져리게 깨달았습니다. 다만, 당시 중국으로부터의 입국을 가장 먼저 막아섰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배운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쿠데타인가, 혁명인가

물론, USAID의 원조가 늘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2022년 대지진으로 초토화되었던 아이티에 대한 지원입니다. 부패한 아이티 정부를 신뢰하지 못한 USAID는 NGO를 통한 간접 지원을 택했고, 현지 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한 NGO들은 종종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티 북부 지역에 의류 공장을 건설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려다 수백 명의 농부들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일이 발생한 일이 있었습니다. 예상했던만큼 일자리가 생겨나지도 않았죠, USAID는 이 사업에 7200만 달러를 쏟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을 손익계산서로 깔끔하게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해외 원조의 성과는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도 못한 방식으로 오랜 기간이 지난 후에 돌아옵니다. 실은 행정 업무의 많은 부분이 그렇습니다. 아이들에게 5달러 더 비싼 급식을 제공하면 40년 후에 그들이 의료 보험 재정에 의존하는 비율이 줄어드는 식이죠.

‘쥐’로 불리우는 B 팀이 영리하고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위험한 까닭입니다. 그들에게는 40년 후를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현재의 성과가 스스로를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도지가 올해 미국 연방 정부의 예산을 아낀만큼, 도지의 젊은 테크 엘리트들의 몸값도 올라갈 겁니다. 물론, ‘공룡’들도 개선할 점이 있을 겁니다. 다만 개선의 목적을 단기적인 수치 개선에 둘 것인지, 장기적인 공공선에 둘 것인지에 관한 판단이 필요하겠죠.

스나이더 교수는 도지의 활동을 ‘쿠데타’로 정의합니다. 도지가 재무부의 전산 시스템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유권자가 투표로 선출한 국회의원이 세금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 결정하는데, 도지가 지급 단계를 틀어쥐면서 그 결정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겁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법을 무시할 수 있다면, 투표도, 의회도, 시민권도 무의미하다고요. 실제로 USAID를 실질적으로 폐쇄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이었던 순간은, 도지의 소프트웨어 담당 임원인 톰 크라우스가 재무부에 지급 중단을 지시했던 일입니다.

일단 법원이 제동을 걸고 있습니다. 도지가 재무부 결제 시스템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한 겁니다. 물론, 머스크는 해당 조치를 취한 판사를 탄핵해야 한다며 맞불을 놓고 있고요. 도지의 다음 타깃은 교육부입니다. 학자금 대출 정보부터 학생과 학부모, 각 대학의 기부금 정보까지 엄청난 데이터가 몰려 있는 곳이죠.

지금 미국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테크 엘리트가 그린 설계도대로 사회를 재구성해도 될 것인가가 연구 주제입니다. 실험은 중간에 멈출 수도 있고, 실패하거나 성공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 결과에 따라 도지는 쿠데타 집단이 되거나 성공한 혁명 세력이 될 겁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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