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광고하는 방법

bkjn review

구글의 광고는 따뜻하고 다정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AI를 광고하는 방법

2025년 2월 13일

매년 2월 두 번째 일요일 저녁, 미국이 풋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국프로풋볼(NFL) 리그의 결승전, 슈퍼볼이 개최되거든요. 올해는 필라델피아 이글스와 캔자스시티 치프스가 맞붙었습니다. 이글스의 압승이었죠.

그런데 슈퍼볼 경기장 바깥에서도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오픈AI와 구글의 제미나이가 정면으로 맞붙은 겁니다. 이쪽은 오픈AI가 승리했습니다.

800만 달러어치의 시간

슈퍼볼은 경기 한 건만 놓고 본다면 세계 최대 규모의 스포츠 이벤트입니다. 하프타임쇼도 늘 뉴스거리가 되죠. 마이클 잭슨, 마돈나, 비욘세, 콜드플레이 등 시대를 상징하는 뮤지션이 매년 상상을 초월하는 무대를 선보입니다. 올해는 ‘래퍼들의 래퍼’, 켄드릭 라마가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스타들은 개런티를 받지 않습니다. 무대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 가수’라는 공식적인 인정을 받는 셈이거든요.

그럴 만합니다. 현지 시각 지난 2월 9일 열린 2025년 슈퍼볼은 미국 내 평균 시청자 수 1억 2770만 명을 기록했습니다. 2024 파리 올림픽 개막식 시청자 수가 2860만 명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게 얼마나 대단한 숫자인지 알 수 있습니다. 더 직관적인 숫자도 있습니다. 800만 달러, 올해 슈퍼볼의 30초짜리 광고 단가입니다. 1억 2770만 명의 30초를 사는 가격이죠.

오픈AI: 상냥한 진보의 시작점

시대가 시대인만큼, 올해 광고전에는 AI 기업들이 참여했습니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오픈AI입니다.
오픈AI는 1억 2770만 명 앞에서 진보의 출발점이 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출처: 오픈AI
“모든 종류의 진보는 한 점에서 시작됩니다(All progress has a starting point).”

멋집니다. 1분짜리 광고를 통해 오픈AI가 역사의 순간을 만들고 있음을 선언했죠. 저는 이 광고를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애플의 슈퍼볼 광고가 떠올랐습니다. 정확히 41년 전의 광고입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제작한 이 광고는 매킨토시의 등장보다 더 파격적이었습니다. 출처: 유튜브
당시의 애플도, 현재의 오픈AI도 스스로를 역사의 창조자로 묘사합니다. 오늘과 내일은 다를 것이며, 그 변화를 만드는 것은 바로 자신이라고요. 그런데 애플과 오픈AI의 광고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과거에 대한 정의입니다.

1984년 출시된 매킨토시는 ’태초의 PC’라 할 수 있습니다. 매킨토시 이전의 PC는 복잡한 명령어를 입력해서 가동해야 하는, 소수의 전문가만을 위한 고급 계산기였습니다. 반면, 매킨토시는 GUI(Graphical User Interface),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시대를 연 제품입니다. 파일을 삭제하려면 명령어를 입력하는 대신 휴지통 아이콘을 클릭하면 되는 식이죠. 매킨토시는 기술의 장벽을 무너뜨린, 일종의 ‘전복’이었습니다.

반면, 오픈AI는 인류의 역사가 진보해 왔으며, 그 과정에는 기술이 있었음을 강조합니다. 도트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 그래픽은 마치 우주의 비인간 존재가 관찰한 인류의 기술사를 묘사하는 듯한 분위기마저 풍기죠. 바퀴에서 농업으로, 항해에서 달 탐사로 이어지는 인류 기술 성장 서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이 오픈AI의 챗GPT입니다. 사업을 계획하거나 외국어 학습을 할 때 도움을 주는 존재로 등장하죠.

오픈AI는 스스로를 혁명가로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AGI나 초지능을 내세워 현재를 전복하겠다고 위협하지도 않았고요. 그저 우리의 일상은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평화로운 약속을 보여줬습니다.

구글: 갑작스러운 환각 치즈

구글의 광고는 오픈AI보다 따뜻하고 다정했습니다. 미국 50개 주에 각기 다른 광고를 냈는데요, 각 지역의 중소기업을 홍보해 준다는 콘셉트였죠. 광고에는 구글의 AI 모델, 제미나이를 활용해 홈페이지에 게시할 제품 설명을 작성하고 디자인을 구상하는 등의 모습이 담겼습니다. 그런데 잡음이 생겼습니다. 위스콘신에서 말입니다.

광고에는 다양한 위스콘신 치즈를 판매하는 사장님의 사연이 담겼습니다. 20년 전에는 온라인 판매 매출이 5퍼센트 정도였지만, 지금은 90퍼센트에 달한다고 합니다. 시간도 없고 글재주도 없는 사장님은 제미나이의 도움을 받아 웹사이트에 올릴 치즈를 소개 글을 작성하고, 덕분에 매장에서 손님들을 더 오래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광고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제미나이가 작성한 치즈 소개 글이 거짓이었던 겁니다. 사장님이 판매하려는 ‘스모크 고다 치즈’ 소개 글인데, 제미나이는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고다 치즈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치즈 중 하나로, 전 세계 치즈 소비량의 50~60퍼센트를 차지합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전문가는 남미나 아프리카, 서남아시아 지방의 ‘프레시 치즈’류가 고다 치즈보다 훨씬 소비량이 많다고 이야기합니다. 모차렐라나 리코타 같은 종류입니다.

이 사실이 보도되자 구글은 광고의 해당 부분을 수정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사달이 난 뒤였습니다. 오히려 영상을 수정했다는 것 때문에 댓글 창은 더 거센 비난으로 가득 찼습니다. 제미나이의 환각 증상을 ‘은폐’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지금은 수정된 영상이 업로드 되었습니다. 출처: Google Workspace
구글의 광고는 지난 파리 올림픽 때에도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올림픽 육상 스타에게 생성형 AI를 이용해 팬레터를 작성하는 소녀의 이야기였죠. 하지만 동경과 용기의 문장을 사람이 아닌 AI가 대신 작성한다는 콘셉트는 시청자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구글이 광고하는 미래는 인간의 독창성을 축소할 것”이라는 비난까지 나왔죠.

기술의 주인

오픈AI는 올해 슈퍼볼 광고를 ‘소라(sora)’로 제작하지 않았습니다. 참 의외죠? 콘셉트을 구상하고 아이디어를 시각화하는 초기 작업에는 소라를 사용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인간 애니메이터가 작업하여 완성했다고 합니다. 인간의 창의성을 존중한다는 메시지도 함께 담은 겁니다. 구글의 행보와는 비교되는 부분입니다.

슈퍼볼 시청자들은 스포츠 팬입니다. 가족과 친구와 함께 간식거리를 들고 TV 앞에 앉은 사람들이죠. 이들 중 일부는 챗GPT의 사용자이기도 하지만, AI의 발전으로 일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생성형 AI를 말로만 들어봤지, 아직 제대로 경험한 적 없는 사람들 또한 많을 겁니다. 그래서 오픈AI의 전략이 영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냥한 설득과 겸손한 포부의 언어 말입니다.

증기 기관이나 인터넷 같은 기술은 다수의 동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우리 사회에 들어왔습니다. 자본의 힘이기도 했고, 정부의 의지이기도 했죠. 하지만 AI는 다릅니다. 증기 기관이 방직 공장을 세우는, 철도를 건설하는 자본가의 기술이었다면, 이번에는 우리 모두의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오픈AI에 구독료를 내고 있으며, 독자 여러분 중에도 엔비디아의 주식을 가진 분이 계시겠지요. 구글의 서비스를 사용하며 광고 수익도 올려주고 계실 테고요

기술은 한 기업의 것이 아닙니다. 사실, 역사를 통틀어 기술은 독점적으로 만들어진 적이 없습니다. 기술의 결과를 독점한 경우는 있었지만 말입니다. 우리에겐 기술이 어떤 방식으로 와야 하는지 생각해 볼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표현할 권리도 있죠. 이번 슈퍼볼 AI 광고 대전이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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