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신 투사의 탄생
방황을 끝낸 케네디 주니어는 야심가로 거듭납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환경 변호사로서 입지를 다지게 되는데요,
언론의 주목도 받게 되죠. 2007년에는 글로벌 대기업 듀폰을 상대로 3억 8200만 달러의 배상 판결을 이끌어내기도 합니다. 듀폰의 공장으로 인해 웨스트버지니아주 주민들이 중금속에 노출된 사건이었습니다.
경력이 탄탄해지면서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TV쇼에도 얼굴을 비추고 강연도 적극적으로 다닙니다. 정치인이 되기 위한 밑그림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그러나 ‘영향력’에 대한 갈구가 있었다는 것이 주변인들의 공통된 증언입니다.
그러던 중, 2000년대에 들어서는 본격적으로 백신 음모론에 가담하게 되었습니다. 일부 백신은 방부제로 ‘티메로살’이라는 수은 화합물 성분을 함유하고 있는데요, 이게 자폐를 유발한다는 겁니다.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한 부모의 사례를 조사하면서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과학적으로는
근거가 없는 주장입니다. 다만, 케네디 주니어는 제약 업계와 보건 당국, 주류 언론 사이에 모종의 음모가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비영리 단체인 ‘어린이 건강 방어(Children’s Health Defense)’를 설립해 본격적인 백신 반대(Anti-Vaccination) 활동에 나섭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케네디 주니어는 팬데믹 당시 국립 감염병 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했던 앤서니 파우치 박사, 저개발 국가에 백신 보급 운동을 벌이고 있는 빌 게이츠 등을 대놓고 비난했습니다. 이들이 코로나19 백신을 홍보하기 위해 팬데믹을 과장했다고도 주장했죠. 또, 사석에서 코로나19가 백인과 흑인을 공격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일부 유대인과 중국인은 바이러스에 강한 면역력을 갖고 있다고 이야기한 장면이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좀 엇나간 이야기나, 유명인이 음모론에 빠진 경우로 보였죠. 하지만 케네디 주니어에게는 서사가 있었습니다. 큰아버지와 아버지는 인종 차별과 같은, 그 시대의 통념에 맞섰던 정치인이었습니다. 사회가 모순을 안고 있고, 이를 개혁해야 한다고 믿었으며, 결국 이루어냈죠. 자신에게도 그러해야 할 사명이 있었습니다. 또, 케네디 주니어는 큰아버지와 아버지의 죽음에도
음모가 개입되어있다고 믿습니다. 이런 음모론적 세계관 안에서 FDA(미국 식품의약청)와 제약회사가 결탁되어 있다는 상상은 꽤 그럴듯합니다.
대안적 건강
문제는 미국에서 코로나19 백신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의 문제가 9대 1의 논의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우리보다 훨씬 첨예한 이슈였습니다. 백신 의무화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내 몸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점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이는 음모론에 대한 신봉과 정치적 분열로 이어졌습니다. 그 혼란 속에서 케네디 주니어는 믿을 수 없는 기성 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대안 세력으로 떠올랐고요. 누군가는 그의 아버지나 큰아버지의 모습을 겹쳐보기도 했겠죠.
즉, 케네디 주니어라는 인물을 거물급 정치인으로 키운 것은 팬데믹이었습니다. 연방 정부가 백신에 대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해 제약 회사가 이익을 추구한다는 주장은 백신을 의심하는 부모들이 귀를 기울일 법한 것이었지만,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자 모두의 문제가 되었던 겁니다. 어린이 건강 방어 웹사이트 트래픽이 치솟았고, 케네디 주니어는 관련 책을 발간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의미한 정치 세력이 되었습니다.
다만, 그가 태어날 때부터 들고 태어난 민주당 당적과는 결이 맞지 않았죠. 백신 음모론은 민주당이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의제였으니 말입니다. 오히려 트럼프 당시 대통령과 그 지지 세력이 반길 만한 이야기였습니다. 처음에는 민주당 경선에 참여했지만, 중도 하차합니다. 그리고 무소속으로 대권에 도전하게 되죠. 양당제가 공고한 미국의 현실을 고려할 때, 케네디 주니어가 얻은 지지율은 꽤 유의미했습니다. 한때 15퍼센트까지 기록했으니까요.
물론, 케네디 주니어는 판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트럼프 당시 후보에 대한 암살 미수 사건 이후 대선판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습니다. 결국, 케네디 주니어는 대권을 포기하고 트럼프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합니다. 트럼프 캠프가 케네디 주니어에게 보건복지부 장관 자리를 약속했다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그리고 그 소문은 꽤 믿을 만했죠. 바로 자신이 믿는 ‘건강’과 ‘정의’를 향한 의제를 내놓았거든요. 이름하여 ‘MAHA(Make America Healthy Again)’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