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정말 금지한다면 농부들이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옥수수유를 더 이상 만들지 않게 되면, 당장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을 갈아엎어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살충제 없이 농사를 지으려면 엄청난 투자와 생산량 감소를 동시에 감당해야 할 테고요. 그런데 이건 백신 반대와는 결이 다릅니다. 약간 애매한 구석은 있지만, 건강한 먹거리를 원하는 보편적인 욕구와 맞아떨어집니다. 100퍼센트 음모론의 영역이라고 할 수도 없고요.
음식이 아닌 음식
일부 전문가 집단에서는 케네디 장관을
환영하는 분위기까지 감지됩니다. 주로 초가공식품(ultra-processed food, UPF)의 위험성을 경고해 온 학자들과 관련 단체들입니다.
“(화학적) 식품 첨가물을 면밀히 조사하겠습니다.”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인준된 후 케네디 장관이 내놓은 발언입니다. MAHA는 ‘만성 질환 전염병’ 퇴치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두고 있습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환경 오염을 줄이고 식품 첨가물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죠. 그리고 식품 첨가물은 초가공식품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공식품을 먹지 않고 살아가기란 불가능한 세상입니다. 몸에는 썩 좋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그중에서도 초가공식품에 대한 경고와 관심이 매우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 개념은 비교적 최근 정립되었습니다. 2010년, 브라질 과학자인 카를로스 몬테이루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이 시작이었죠. 연구팀은 식품을 네 그룹으로 나눕니다. ‘미가공 혹은 최소가공식품’, ‘가공된 요리용 재료’, ‘가공식품’, ‘초가공식품’ 등입니다.
예를 들어, ‘햇반’은 가공식품입니다. 공장에서 만들어졌지만, 누구나 햇반의 재료가 무엇인지 알 수 있죠. 그런데 초가공식품은 겉모습으로 재료나 맛을 가늠하기 힘듭니다. 그야말로 ‘초가공’ 했기 때문입니다. 기름은 정제하거나 수소화하고, 단백질은 가수분해하며 전분은 변성시킵니다. 조미료로는 설탕이나 소금처럼 자연에서 얻은 것 외에도 실험실에서 창조된 화학 첨가물이 사용됩니다. 발음하기도 낯선 이름의 첨가물입니다. 아이스크림, 소시지 등은 물론 프링글스 류의 스낵까지 우리 주변 먹을거리는 높은 확률로 초가공식품입니다. 포장지 뒷면에 우리에게 익숙치 않은 성분이 많이 나열되어 있으면 초가공식품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원재료의 모습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말리고 갈아 넣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공정은 저렴하게 만들어 많이 팔기 위한 것입니다. 사업의 기본이죠. 그런데 이게 ‘식품‘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렴하게 만들기 위해 단위 부피당 칼로리가 높아집니다. 많이 팔기 위해 우리의 혀와 뇌를 속입니다. 그 결과 이상한 현상이 벌어집니다. 그 누구도 앉은 자리에서 물 2리터를 다 마시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콜라 한 통을 앉은 자리에서 다 마시는 사람들은 많죠. 아이스크림 한 통의 열량은 대략 1000Kcal 정도입니다. 자제력을 잃어버린다면 한 번에 다 먹을 수 있죠. 그런데 밥 세 공기를 앉은자리에서 다 먹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비슷한 칼로리인데 말이죠.
뇌가 중독되는 과정
이뿐만이 아닙니다. 의사이자 의학 전문 방송인인 크리스 반 툴레겐 박사는 스스로 초가공식품 위주의 식단을 섭취하면 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실험했습니다. 뇌스캔 결과, 식욕과 관련된 호르몬을 조절하는 영역과 욕망-보상 영역 사이의 연결이 늘어났습니다. ‘식품 중독’을 유발한다는 겁니다. 화학 성분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미 말리고 갈고 분해한 음식이니 흡수가 빨라 쾌락을 더 빠르고 강하게 느끼는 효과가 있습니다. 통제력을 잃고 필요 이상으로 먹게 됩니다. 의존하게 되기도 하고요.
한때는 지방이, 다음은 설탕이 비만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었습니다. 요즘엔 초가공식품이 지목됩니다. 따라서 이를 정조준하는 케네디 장관의 정책은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거대 기업과 정부의 횡포로부터 공공의 건강을 지키고자 하는 투사로 비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정부 규제에도 구멍이 있습니다. 식품 첨가물을 관리하는 부처는 FDA입니다. 제약업계에서는 FDA의 허가를 받는 일이 아주 중요합니다. 허가 없이는 의약품을 제조, 판매할 수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식품업계는 조금 다릅니다. 식품 첨가물 중 많은 수가 ‘GRAS(Generally Recognized As Safe)’라는 항목으로
분류되기 때문입니다. 1950년대, 소금이나 식초 같은 일반적인 성분을 규제 바깥에 두기 위해서 생긴 항목이지만 식품 공항이 발달하면서 수많은 성분이 별다른 검증 없이 GRAS로 분류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구멍이 초가공식품을 제조하고 판매하는 데에 기여했죠.
영웅의 정치는 위험하다
이번 기회에 식품 산업의 패러다임을 뒤집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까닭입니다. 초가공식품은 강력한 마케팅과 저렴한 가격으로 소득 수준이 낮은 지역에서 더 큰
악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시간과 돈이 부족할수록 초가공식품은 벗어날 수 없는 선택이 되지요. 케네디 장관의 정책이 이 불공평의 고리를 정말 끊어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MAHA는 더욱 위험합니다. 이렇게 신뢰할 만하거나 약간 진보적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는 보건의료 정책에 극단적이거나 음모론적인 정책이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약과 독이 함께 섞여 있으니 약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결국 독은 독이지요. 예를 들면 생우유를 확대, 권장하자는 정책을 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저온 또는 고온 살균된 우유를 마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유를 마음 놓고 마실 수 있죠. 그런데 케네디 장관은 살균하지 않은 생우유가 염증을 없애고 면역력을 높인다고 주장합니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대체 의학입니다. 대다수의 전문가는 생우유가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이런 주장이 좀 더 극단적으로 발전하면 백신 반대 운동이 됩니다.
우리는 종종 착각합니다. 훌륭한 사람의 주장은, 우리 편의 목표와 과정은 늘 정의롭다는 착각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으며, 집단으로서의 인간은 더욱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결국, 누구의 정책이냐는 중요치 않습니다. 무엇을 근거로 정책을 수립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건강에 관한 정책이라면 데이터와 과학에 근거해야겠죠.
단, 과학에 언제나 단 하나의 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늘 새로운 연구와 이론이 쏟아지고 어제의 결론이 오늘 뒤집히니까요. 그래서 ‘다양한 과학’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통념과는 다른 진짜 과학이 있다는 맥락의 용어입니다. ‘대안적 진실’의 변종입니다. 음모론의 시작이고요.
그래서 판단의 근거는 과학이 아니라 ‘과학적 사고’여야 합니다. 백악관은 수천 명 규모의 보건복지부 인력 감축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FDA에서는 이미 정리가 시작되었고요. 과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반론을 제기할 행정부 내부의 목소리가 잘려 나가고 있는 겁니다. 영웅 서사를 쓰고자 하는 케네디 장관을 거스르기는 앞으로 더욱 힘들어질 겁니다. 어쩌면 이번 기회에 진짜 부패와 결탁, 정의롭지 못한 자본의 논리가 도려내질 수도 있겠죠. 그러나 다른 무언가도 함께 도려져 나갈지 모르겠습니다.